말무덤
-유동하는 역사
강진에는 말무덤이 많다. 의로운 말이 묻혔거나, 말이 죽으면 묻은 곳이라며 말무덤이 전해온다. 하지만 그건 풍문이고 전설일 뿐이다. 우리의 처절한 역사를 돌아보면 말고기를 고스라니 땅으로 돌려보낼 리 없다. 일반 무덤과 달리 큰 대형의 무덤이 있기에 말무덤이라고 했을 뿐이다. 전라도에서 그런 대형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마한사람들이었다.
마한은 한강유역으로부터 전라도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했던 소국들의 느슨한 연맹으로 보인다. 백제에 의해 점차 남쪽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처럼 지역 단위의 소국들과 세력이 커진 중급 이상의 나라들이 있었을 것이다. 54소국이 흩어져 있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였을 것이다. 나는 그들 나라를 나라 아닌 나라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은 물길과 평야를 끼고 나라 아닌 나라를 형성하였다. 자기 영역의 곡창을 기반으로 동아시아의 해상 교역에도 활발히 참여하였다. 그러며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던 봉분 형식의 무덤 양식을 받아들이고 변형시켰을 것이다.
강진에도 커다란 마한 무덤들이 있다. 첫 번째로 가장 많은 것은 말무덤군이다. 5~6기 이상의 말무덤이 모여 있다. 두 번째는 들판에 단독으로 있는 말무덤이다. 세 번째는 산자락의 분구묘다. 분구묘는 경주의 무덤군처럼 대형의 봉분을 만들고 사람이 죽으면 봉분을 파 합장하는 마한 특유의 방식이다. 나주의 대형옹관묘들은 그런 분구묘에서 출토되었다. 마한 세력은 어느 정도 물길과 평야의 규모에 비례해 발달하였을 것이다.
강진의 병영성 부근에는 옹벽 테두리를 두른 세 봉분이 있다. 지역에서는 마한의 무덤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병영중학교 옆 조산이고, 둘은 삼인리 논가운데의 솔밭등이다. 사람들은 풍수지리를 고려한 수구막이로 해석한다. 세 번째는 별락자락의 꽃밭등이다. 꽃밭등은 지름 15~20미터에 해당하며 작천평야를 한 눈에 조망하는 명당터인데 군사용도의 망대 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강진군에서 산책길을 조성하고, 꽃밭등 위에 팔각정까지 세웠다. 모두 대형무덤이었겠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형을 겪은 상태다.
병영성이 세워지기 전 병영천은 병영성 북쪽에서 합해져 하고리 앞 들판을 지났을 것이다. 세 무덤 모두 내의 안쪽에 위치했을 것이다. 지금은 노거수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자라고 팔각정이 건립되어 발굴이 요원하다. 병영성의 마한 무덤은 다른 지역의 일명 말무덤들을 발굴하여 강진지역 마한세력의 윤곽을 잡은 뒤에야 발굴할 가능성이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