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나흘째
아주 특별한 산과 강과 별들의 품속에서 자고 일어나서 그런 것일까? 부릅튼 입술은 아팠지만 가슴 한가득 채워진 호연지기로 이세상을 다 담을 수 있을것 같은 장부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옥룡설산의 신새벽에 잠깐 넋을 잃었다가 오늘도 바쁜 일정탓에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식사는 어제 백숙을 먹고 남은 닭죽으로 해결했다. 양이 제법되어 다들 넉넉히 먹은 듯 했다. 점심 때까지 먹을 생수를 몇 병 산 후 지체 없이 남은 호도협트래킹 구간인 중도객잔-티나객잔으로 걷기 시작했다.
동 트기 전 옥룡설산의 모습..
기약없이 마음만 묻고 온 차마객잔..
이른 아침 트래킹이라 그런지 정말 공기가 상쾌했다. 코 속을 파고드는 청정냉기에 정신은 맑아지고 시야는 차마고도와 진사강과 옥룡설산을 한꺼번에 다 담아 냈으니, 여기에 오래 살면 왠지 무협고수가 될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절벽길을 걷다가 발을 헛딛었는데 때마침 옥룡설산에서 운기조식을 마친 은거고수가 허공답보로 진사강을 건너오던 중 낙하하는 나를 구해 차마객잔 지하 동굴로 데려가 천하제일비급이라는 옥룡대라심결을 내게 전수해 주고 허구헛날 진사강 강바닥만 파고 있는 강호만인의 공적인 쥐박마제를 척결한다는 한 무협지의 주인공이 잠깐 되어 보기도 했다. 시덥잖은 생각을 잠깐 하고 걷다보니 어느샌가 옥룡설산 봉우리 위로 해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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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아래 또 절벽..
걷다보니 차마객잔에서 묵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날 중도객잔까지 갔더라면 어두워서 멋진 풍광을 많이 놓쳤을테니 말이다. 차마객잔을 떠나 중도객잔을 거쳐 티나객잔까지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만취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일이 많았다.
높이 약 6,000M의 옥룡설산과, 약 5,400M의 하바설산 사이의 2,000M 이상의 협곡길 호도협. 윈난성의 차를 싣고 티베트로 가던 마방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옛길이자 옥빛 금사강의 물길을 따라, 흰빛 설산에 기대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호도협은 16Km 코스를 1박 2일동안 걷는게 일반적이다. 세계 3대 트래킹 코스지만 가끔 여기저기서 상술 냄새가 났다. 하지만 어떠랴? 이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 하찮은 상술정도야..
눈호강에 겨워 걷다보니 어느새 당초 묵을려고 했던 중도객잔에 도착했다. 옥룡설산 최고의 조망,천하제일화장실이 있는곳. 거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나면 일어서서 또다시 볼일이 생기는 곳. 중도객잔 건축기사의 실수인가? 아니면 위트인가? 그만이 알일이다.
천하제일화장실..볼일 볼 장소로는 너무 아까운 곳..눈앞에 옥룡설산이 바로 펼쳐진다..
중도객잔 마당에서...
어머니의 젖줄같이 흘러내리는 관음폭포..
티나객잔에서 리장가는 차가 오후3시에 한편 밖에 없는지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중도객잔을 벗어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탁 틔인 시야에 관음폭포와 굽이쳐 돌아가는 절벽길이 너무 멋져 탄성이 나온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지루할 겨를없는 트래킹은 오늘의 목적지인 티나객잔으로 계속되었다. 예상보다 빨리 티나객잔에 도착했다. 부지런히 걸은 탓이리라. 차편만 좀 많았더라면 넉넉히 구경하고 왔을건데 혹시나 차편을 놓치면 어떡하나라는 불안한 마음에 일행들을 재촉한게 돌이켜보니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티나객잔에서 차표를 끊고 휴식시간의 백미 피지우(맥주)를 한잔씩 했다. 아~정말 중국맥주 너무 맛있었다. 오전 11시, 아직 점심을 먹기는 이른 시각이어서 호랑이가 한번에 건넜다는 호도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티나객잔 앞에서...
호도협은 상호도(上虎跳), 중호도(中虎跳), 하호도(下虎跳) 세 구간으로 나뉘는데 "협구(峽口)"와 "호도석(虎跳石)"이 가장 유명하다. 또한 중호도에는 "만천성(滿天星)"과 "일선천(一線天)"이 있고 하호도에는 "고협출평호(古峽出平湖)"와 "대구(大具)"가 있다. 일반 관광객들은 호도협에서 상호도만 주로 구경하는데 우리처럼 주로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은 중호도로 험한 길을 내려가야만 한다.
중호도로 내려가는 길이 정말 만만찮았다. 내려가는 도중 올라올 길이 걱정되면 말안해도 뻔한 법.
거의 직경사를 내려가고 올라왔으니 중호도 구경 한번 한 사람은 왠만한 산은 쉽게 탈 수 있을것 같았다.
만물을 집어 삼킬듯한 중호도의 기세를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다..
중호도의 굉음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듯 하다...
중호도 구경을 마친 우리는 좀 더 빠른길로 올라가기 위해 천계라는 철제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기로 했다. 완전 수직계단이었다. 올라가기 전에는 못 느꼈었는데 몇 계단 올라가다보니 차라리 돌아 갈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덜거리고 진땀이 나더니 이내 오도가도 못할만큼 공포가 엄습했다. 진짜 무서워 죽을 뻔 했다. 어떻게 올라갔는지 정신이 없는 가운데 위에 도착하고 나서야 한 숨을 몰아쉬었다. 내려다 보기조차 싫었다. 그런데 가만보니 돌아 올라오는거나 별 반 차이가 없는 듯 했다. 아~ 목숨걸고 올라왔는데 ...멘붕이다..
중호도 천계..올라가다 보면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들림..극기훈련을 중호도에서 하다니..
올라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 다들 상당히 지친 듯 했다. 왕복 2시간여를 소요하고 나서야 티나객잔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뿔뿔히 흩어져 있다. 힘들 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원래 밥때가 되면 눈에 총기가 돌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그렇지 못하다. 몇 번을 불러서야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국수, 볶음밥,계란토마토볶음,전병을 시켜 먹었는데 옆 테이블 중국청년 3명은 얼마나 요리를 시켜 먹는지 살짝 위축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후 2층으로 올라가 옥룡설산을 쳐다보며 내일 있을 등반에 대해 상의를 했다. 사실 중국에서 만나 인연이 된 중국아낙의 남편 택시기사가 오늘 자기집에서 묵고 내일 옥룡설산으로 데려다 준다고 약속했었는데 민폐를 끼치는 것도 그렇고 새벽같이 나와야 하는데 여러므로 서로 불편할 것 같아서 가기로 했던 것을 취소 하기로 했다.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니 다음에 오면 꼭 연락 달라하면서 괜찮다고 했다. 중국일반농가에서 좋은 체험이 될 뻔한 기회였는데 못내 아쉬웠다.
티나객잔 밖이 요란해 지면서 리장행 차가 출발을 알린다. 1박2일의 호도협 트래킹을 마친 우리는 지친 몸을 차에 싣고 리장고성으로 향했다. 피곤이 밀려왔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억지로 눈을 감고 몇번 시도 했는데 실패다. 지리개굴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보니 차가 갑자기 선다.
도로에 차가 양방향 모두 정차해 있었다. 처음엔 예사로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흔한 일이라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는데 어? 이건 좀 상황이 달랐다. 대형배관같이 생긴 걸 실은 차가 코너에서 고장이 나서 다른 차들이 오도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왼쪽 녹색차가 빠져나가지 못해 한참을 기다렸다. 녹색차 운전기사가 내리더니 다른 운전기사가 올라 가 운전을 해서 겨우 빠져 나갔다. 같은 대형 1종이라도 디테일 면에서 차이가 나는듯 했다.
겨우 빠져 나온 차는 리장으로 가던 중 또 한번 교통사고를 발견하게 되고 30분 이상을 연착해 리장고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 하자마자 취소한 방을 다시 배정 받고 내일 옥룡설산 등반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구하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당초 계획했던 옥룡설산 등반에 대해 현지사람들의 말들이 달라 정확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일단 내일 출발해서 부딪히며 해결하기로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찿아 나섰다. 1박2일의 쉽지만은 않은 호도협 트래킹을 무사히 마친 우리는 어느 동북식당에서 자축의 잔을 높이 치켜 들며 위하여 삼창을 하고 제법 근사한 만찬을 했다.
만찬때 먹은 백주 탓인지 제법 취기가 올랐다. 특히 형님들께서 상당이 업이 되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중국사람들이 오가는 대로변에서 크게 우리노래를 불렀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밤12시 까지 자유시간을 가졌다. 동파문자에 관심이 많은 지리개굴님과 회장님은 부탁하는 글을 바로 동파문자로 써주는 곳을 찿아가 글을 샀고 말로만 듣고 고성 밤문화가 궁금했던 우리는 휘황찬란한 홍등아래 발그래 취기가 오른 중국아가씨들을 쳐다만 보았다. 우리로 치면 단란주점이다. 한박스에 얼마라고 말하는게 딱 우리하고 너무 비슷했다. 여기까지 와서 상업적 주점을 간다는건 말이 안되...는게 아니라 돈 걱정이 앞서 아이쇼핑? 만 했다(웃자고 해본 소리니 오해마시길). 낮과 밤이 너무 다른 고성이다. 고성은 야경이 정말 아름답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했다. 세계문화유산에 걸맞지 않은 퇴폐적 상업분위기가 씁쓸하게 느껴졌다. 혹 고성 밖이라면 몰라도 고성내에 너무 많은 주점들이 귀가 아플정도로 음악을 틀고 호객행위를 해대니 선조들이 애써 다져놓은 천년고성을 무색케 했다.
성이 김씨가 주인장인 사쿠라 까페, 맞은편엔 라이벌 복숭아 까페가 있다.
숙소로 재차 돌아오는 길에 백주 몇병을 또 샀다. 내일 옥룡설산 등반을 해야 하는데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머리는 절제를 외쳤지만 몸은 달콤함을 원했다. 오늘도 회장님 방에서 결산을 한다. 말이 결산이지 한 잔이다. 산제비형님이 또 보이질 않는다. 나만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내 룸메이트가 보이질 않는데 걱정하는건 당연한데 다들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제비형님이 돌아왔다. 미웠고 반가웠다. 걱정했던 일이 풀려서 그런지 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앞으로 3일이 남았다.
잠들기 전, 믿지도 않는 신께 빌었다. 제발..제발..
장판이 고장나 한기를 느껴 일어났더니 옆 침대에 쌔근쌔근 잠자고 있는 제비형님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 어디서 뭐 하고 왔을까? 갑자기 든 의문을 삭히고 잠들기엔 이미 새벽은 밝아오고 있었다.
첫댓글 뜻밖의 여정....영화 제목이랑 같네. ㅋㅋ
호도협 중 최고의 코스, 아니 이번 원정에서 최고의 코스였던듯. 날밤새신 병장님~ 고생많았슴다.
아~ 그 철계단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머물러 있겠지...멘붕 인정~~
글 발이 점점 느는것 같어^^
철계단이젤아찔했음..뭐~이런계단이..
산제비님혼자나가서 소고기사묵고왔겠죠..ㅋㅋ
차마에서 티나까지 정말 멋진 길이었죠..그리구 중호도의 굉음은 지금 생각해도 웅장하네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함 가고 싶습니다..
저런 멋진곳도 있네요^^
"잠들기 전, 믿지도 않는 신께 빌었다. 제발..제발.." 이렇게 맘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던거야 그런거야?
오래전 전설같기도 하고 어제 저녁에 꾸었던 꿈 같기도 하구~~
서병장님~~
까묵기 전에 5부좀 올리시죠~~?? 5부 기다리다 모가지 빠지겠소~~^^
ㅋㅋㅋ~~
왔다가 그냥 갑니다~~
다시 읽어도 재밋네. 감사드립니다. 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