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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의 등산칼럼》
기록의 위대함 보여준 히말라야 등반기록 지킴이
걸어 다니는 히말라야 등반기록 보관창고 홀리
히말라야에서 등정시비가 불거질 때마다 마치 법정에서 사건을 심리하는 법관처럼 분쟁의 전면에 등장하는 한 여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홀리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홀리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한마디로 말해 그녀는 히말라야등반기록의 최고권위자이자 독보적인 통계자료 정보원(情報源)으로 명성이 높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런 일에 매달려 오랜 세월을 바친 것일까.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것이다.
히말라야 등반기록 지킴이로 50년 넘게 네팔에서 활동한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의 삶을 다룬 전기가《엘리자베스 홀리/버나데트 맥도널드지음. 송은희 옮김. 하루재클럽》다.
‘살아 있는 히말라야 데이터 베이스’로 불리는 홀리는 모험의 세계로 뛰어든 사람들과 또 그곳에서 모험에 패한 뒤 죽음으로 승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기록하는 히말라야 등반기록 지킴이다.
많은 산악인들은 홀리가 등반 기록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많은 히말라야 등반 자료를 모았다. 카트만두를 거쳐 가는 수백 명의 산악인들과 직접만나 인터뷰를 해온 그녀는 백과사전을 만들 것처럼 사실과 수치에 강하게 집착한다.
영국의 언스워드(Walt unsworth)는 에베레스트라는 특정한 산 하나에만 매달려 700여 쪽 분량의 방대한 자료집을 펴냈으나 홀리는 어느 특정 산에 한정하지 않고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모든 산을 광범하게 다루었다. 이런 점이 그녀가 이루어낸 업적이기에 그녀를 가리켜 “살아있는 기록 보관소”라고 표현해도 조금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홀리의 ‘히말라야 데이터 베이스’는 기록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준 산물이다. 그녀가 있었기 때문에 히말라야등반의 역사가 온전히 남아있게 되었다는 점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등산사의 초기 자료조차 기록부재로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홀리의 역사기록은 더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히말라야 등반기록을 담은 적지 않은 책들이 선보였다 그러나 여기 소개하는 《엘리자베스 홀리》의 전기는 기록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준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인류역사에서 기록정신의 위대함을 알려준 일화는 많다. 1916년 가장 극적인 생환기로 꼽히는 인듀어런스 호의 새클턴 스토리가 생생한 사진기록으로 전해오는 것은 사진가 프랭크 헐리의 목숨을 건 기록정신 때문이다. 그는 기울어져 가는 선체의 활대 끝에 올라 카메라를 설치했고, 목숨을 걸고 부빙위에 올라 사진을 찍는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헐리의 집요한 기록정신 탓에 한 세기 전의 극한상황을 지금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1911년 남극점 선점 경쟁에서 패배한 스코트가 귀환 도중 최후의 순간까지 일기를 남겨 영국국민을 감동케 한 일도 기록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준 일화다.
이 책의 저자 버나딧 맥도날(Bernadette Mcdonald)은 한국독자들에겐 낮선 작가이지만 그녀의 필명은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홀리의 전기 외에도 10여권의 산악도서를 저술한 작가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폴란드의 히말라야 황금세대를 다룬 《프리덤 클라이머. Freedom Climbers》는 보드먼- 태스커상과 밴프 그랑프리. 아메리칸 알파인 클럽 산악문화상 등 6개의 상을 휩쓸었으며, 9개국에서 출간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은 동구권의 폴란드 등반가들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핍박받던 상황에서 히말라야 등반의 절대강자로 부상하는 폴란드등산가들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다. 비록 그들이 전쟁으로 얼룩진 환경에서 살았고,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듯 보였으나, 야심차고 숙련된 폴란드등반가들은 공산주의 체제 앞에서 그들만의 자유를 향한 등반을 했다. 폴란드 국민이 철의 장막에 갇혀있던 시절 용감무쌍한 몇몇 폴란드등반가들은 극한의 모험을 찾아 산의 세계로 나섰다. 자이언트 17개의 완등을 이루어낸 예지 쿠쿠츠카. 히말라야의 겨울 산을 누볐던 동계등반의 절대강자 안드레 자바다. 가셔브룸4봉 서벽에 등로 주의의 전형을 보여준 보이테크 쿠르티카. 성차별에 맞선 철의 여제(女帝) 반다 루트키에비치. 크리스토프 비엘리키 등 폴란드등반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프리덤 클라이머》이다. 이 책은 하루재 클럽에서 곧 출간될 예정이다.
홀리는 1960년부터 50년간 다양한 등반을 취재해오며 등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탁월한 에베레스트등반에 대해 9가지 사건을 꼽았다. 1922. 1924년에 있었던 조지맬러리의 등반 이 사건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에베레스트 여명기에 열악한 장비를 가지고 그만한 고도까지 오른 점을 높이 샀다. 1953년의 힐러리와 텐징의 초등. 1963년 미국이 최초로 이룩한 노먼 디렌퍼스 원정대의 웨스트 리지 4.5.6등, 1978년 인류가 최초로 이룩한 메스너와 하벨러의 무 산소등정. 1975년 보닝턴의 남. 서벽초등, 이 등반은 에베레스트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등로주의의 전형을 보여준 등반이다. 1980년 개인에 의해 이루어진 메스너의 단독등반. 1983년 스티븐 베너블스의 캉슝벽 등반. 1975년 다베이 준코에 의해 이루어진 최초의 여성등정. 1980년 안드레 자바다가 이룩한 동계초등 등이다. 그녀의 평가는 물론 에베레스트라는 한 산에 한정된 평가이지만 그 평가 자체는 정확했다.
또한 그녀는 시각장애인의 등반에 대해 몹시 부정적이고 못마땅해 했다. 시각장애 산악인의 등반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묘기를 부리는 사람쯤으로 여기면서 냉소적인 코멘트를 날렸다.
히말라야 최후의 대과제
홀리가 조심스럽게 말하는 히말라야등반의 최후과제는 호스슈트래버스(Horseshoe Traverse)를 꼽는다. 눕체로 올라가 로체를 횡단한 다음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반을 꼽았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고도의 숙련된 등반기술과 고소적응력이 관건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누가 이 멋진 횡단등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는 미지수다.
홀리는 등반 속도가 빠르고 황소만큼 뚝심이 센 부크레예프와 젊은 시절의 메스너라면 아마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부크레예프는 이미 죽었고, 메스너는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등정논란, “다시 가야해!”
그녀는 원정대를 인터뷰할 때는 사형 집행자와 맞먹을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드러내며 펜을 잡는다. 등정자의 증언이 모호할 때는 먹이 감을 앞에 둔 맹수의 눈빛이 되며, 단호하게 “다시 가야해!!”라고 일격을 가한다.
정상 사냥꾼(Peak Hunter)을 다룰 때의 주된 관심은 정확한 통계였다. 2010년 한국최초 세계 8번째로 14봉 완등을 이룩한 고 박영석의 기록엔 6개월 동안 무려 5개를 오른 전례가 없는 기록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홀리는 8천 미터급 고봉을 오른 모든 산악인을 순위표를 만들어 기록한다. 이 순위표 덕분에 해마다 사람들은 이들이 등반을 어떻게 했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999년 이탈리아 산악인 마르티니는 에베레스트 등정 후 14개봉 완등을 선언했다. 거기에는 로체등정문제가 의혹으로 부상했다. 그는 “정상 가까이 갔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의심스러운 주장을 폈다. 그러나 홀리는 마르트니가 선언한 14봉 완등 중에서 로체를 빼버렸다. 홀리는 마르티니의 말을 토씨 한글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록하고 기사화 했다. 마르티니는 이 기사를 보고 “홀 리가 그러는데 정상에 오르지 못 했데 다시 가야해” 그 다음해에 다시 로체를 오른 후 정상사진을 증거물로 홀리에게 제시했다. 마르티니는 로체등정 시비 때문에 2년 동안 의도적으로 홀리를 피해 다녔으나 결국 로체를 한 번 더 올라 확실한 증거를 마련해야했다.
러시아 최고 산악인 부레크 예프는 시샤팡마를 두 번 올라갔다. 첫 번째 등정이 홀리와의 인터뷰에서 거짓으로 들어나자 “다시 가야해 홀 리가 말하길 정상에 가지 못했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홀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 같은 산을 두 번씩이나 오른 브레크 예프는 1997년 안나푸르나 1봉 남벽에서 눈사태에 쓸려 종적을 감췄다.
정보로 쌓여진 산을 만든 홀리 자료의 미래적 가치
2004년 미국 알파인 클럽에서는《히말라얀 데이터 베이스- 엘리지베스 홀리 원정대 자료》라는 제목의 CD가 발매되었다. 평생에 걸친 홀리의 집요한 작업의 결과물이 불멸의 유산으로 남게 된 것이다. 미국 알파인 클럽으로 귀속될 이 산악파일과 책자의 미래적 가치는 거대하다. 7000여개의 원정대 세부기록과 산악인 55.600명의 신상명세와 방대한 성향분석이 기록된 이 자료는 신 루트를 탐구하는 산악인. 등산서적과 등반역사를 연구하는 작가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맥도널드는 《에리지베스 홀리. 원제 Keeper of the Mountains》를 저술하기 위해 에드먼드 힐러리 부부. 크리스 보닝턴. 라인홀드 메스너. 장 크리스토프. 더그 스콧. 톰 혼바인. 찰스 휴스턴. 알린 불룸. 쿠르트 딤베르거, 보이텍 쿠르티카, 그렉 차일드, 타베이 준코, 콘래드 앵커, 존 로스켈리, 에라르 로레탕, 스티브 베너블스, 캐서린 데스티벨, 에릭 심슨, 멕 레너드, 등 세계 산악 계에 영향력을 미친 수많은 산악인들과 인터뷰했다.
《에리지베스 홀리》의 전기에 대해 라인홀드 메스너와 존 크라카우어는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세기적인 등반가 메스너는 -힐러리와 텐징의 에베레스트 초등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히말라야 등반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엘리자베스 홀리 뿐이다. 모든 유명 산악인과의 면담을 토대로 그녀는 정보로 쌓여진 산을 만들었다. 마침내 우리는 멋진 이야기와 베일에 싸인 홀리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저술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존 크라카우어는 -아주 흥미로운 여성의 삶을 담은 훌륭한 전기다. 엘리자베스 홀리의 신비로운 삶의 베일을 들춰내면서, 작가는 히말라야의 등산역사를 엿볼 수 있는 멋진 특강을 들려준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부터 바부 치리, 라인홀드 메스너에 이르기까지 홀리의 45년 카트만두의 삶을 관통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함께 흥미롭게 재해석한 내용들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 책은 하루재 클럽이 펴낸 7권 째의 야심작이다.
해외원정을 꿈꾸는 산악인이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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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고급 정보는 저히 한크랙 산악회에 보물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선생님,언제나 뜻있는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