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의 추억
강용숙
‘윙 -’
찬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호수의 수면이 ‘파르르’ 진저리를 칩니다.
서쪽 산등성이 위에 눈썹만큼 남아 있던 해가 사라지자 어두움이 와락 밀려왔습니다.
‘포르릉 포르릉’ 나무 위를 다니며 놀던 참새들도, 거친 목소리로 ‘깍깍’거리던 까마귀도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노마는 오후 내내 호숫가 둑길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왜 안 나오실까? 저 물속에 어딘가에 또 집이 있는 걸까? ’
‘끄응’ 신음소리를 내며 노마는 앞발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뱃속은 자꾸만 먹을 걸 달라고 요동을 칩니다. 노마는 슬슬 일어나 물가로 내려갔습니다. 물이라도 벌컥벌컥 마셔 허기를 달래고 싶어서입니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얘, 일어나. 추운데 밤새 여기 있었나 봐.”
노마는 아득히 먼 곳에서 새들이 재잘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머리를 건드리는 것 같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얘들아, 이 멍멍이 죽은 것 아니니?”
참새한 마리가 호들갑을 떨자 다른 참새들이 몰려왔습니다. ‘콕콕. 콕콕’ 새들은 노마의 꼬리와 등을 쪼았습니다. 까마귀도 나지막하게 날며 노마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간지러워.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니?’
노마는 새들의 소란에 간신히 몸을 털며 일어났습니다.
“어머나, 죽은 것이 아니었구나.”
참새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쳤습니다.
노마는 어슬렁어슬렁 호수 둘레를 돌며 아침 요깃거리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말라비틀어진 염소 똥, 소똥, 등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노마는 아저씨가 낚시할 때 앉아있던 간이의자 옆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플라스틱 통속에는 피라미 새끼 몇 마리가 둥둥 떠 있습니다.
‘저거라도 먹을까? 하지만 익히지 않은 물고기는 싫어.‘
노마는 좀 더 참아 보기로 했습니다. ‘깡충 깡충’ 한쪽 발을 절룩이며 어린 까치 한 마리가 다가왔습니다.
“안녕? 난 저기 미루나무에 살아. 친구들은 날 찔뚝이라고 부르지. 아무튼, 넌 왜 집에 가지 않니? ”
노마는 말없이 눈을 감았습니다.
“너 혹시 말썽피우다 쫓겨 난 거 아냐? 아님, 집을 잊어버렸어?”
호기심이 많은 찔뚝이는 노마가 대답할 때까지 물을 셈인가 봅니다.
노마는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주인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어. 투망을 걷으러 들어갔는데 아직 안 나왔거든.”
“어머나, 그럼 물에 빠져 죽은 거야. 난 그런 사람을 몇이나 봤어. 이 호수는 조금만 들어가면 갑자기 아주 깊어지걸랑.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들어가곤 해.”
“뭐야? 죽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노마가 펄쩍 뛰자 찔뚝이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내 말이 맞아. 빨리 집에 가서 식구들에게 알려 줘.”
“집엔 아무도 없어. 아저씨하고 나, 둘이 살아.”
노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잠시 사라졌던 찔뚝이가 멀찍이 무언가를 물어다 놓으며 말했습니다.
“얘, 그러지 말고 이거라도 먹고 힘 내. ”
먹으라는 말에 노마가 눈을 크게 떴습니다. 비닐봉지 속에 빵 부스러기가 조금 붙어 있었습니다. 냉큼 비닐을 핥아보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어두움이 몰려오고 하늘에는 보석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스락’ 하는 소리에 노마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잡목이 어우러져있는 틈사이로 파란불 두 개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노마는 배에 한껏 힘을 주며 사나운 척 말했습니다.
“너, 누구 얏? ”
“야아옹. 너야말로 못 보던 개잖아? 여기서 뭐하고 있지?”
고양이도 만만치 않은 기세로 그르렁 거렸습니다.
“남이야 뭘 하던 무슨 상관이야? ”
“너 들개지? ”
“들개? 그런 개도 있니? ”
“나처럼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들고양이라고 부르지. 그러니까 넌 들개잖아? ”
노마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살찐 몸을 뒤뚱거리며 고양이가 몇 발자국 다가왔습니다.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먹을 것 좀 줄까?”
꽤 인정스러운 고양이 같았습니다. 속으로는 뛸 듯 기뻤지만 노마는 못들은 척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거 먹어. 싱싱한 거야.”
고양이가 노마 앞에 던져 놓은 것은 죽은 쥐였습니다.
노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도리질 했습니다.
“왜, 싫어?”
“난 이런 거 먹어 본적이 없어.”
“흥, 아직 배가 덜 고픈 모양이군.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이든 먹어야 해. 이것저것 가리다간 굶어죽기 십상이라고. 그나저나, 왜 이러고 있는지 이야기나 해 볼래?”
노마의 눈앞에 지난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수산에서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저씨 집이 있는 들골메로 갈 때는 봄이었지. 나는 조그만 바구니에 담겨 아저씨의 자전거 뒤에 태워졌어. 집에 도착하니 여자아이 둘이서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더라.
큰 아이가 물었어.
“아빠, 이 강아지 종류가 뭐야?”
“그냥, 밖에서 기르는 잡종이야.”
갑자기 아이가 입을 뾰족하게 내밀며 투덜거렸어.
“아빤, 머리에 리본 달아주는 개를 사 달랬더니 겨우 잡종이야?”
“내 친구네 집에 갔더니 그 집 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더라. 그래서 한 마리 얻어온 거야. 제 어미 닮았으면 영리할거래. 그 중 인물이 예쁜 것으로 골라왔지.”
“영리하면 뭘 해. 그래도 똥개잖아? ”
“짐승은 밖에서 키우는 것이 좋아. 그래야 건강하게 잘 자라는 거야.”
아이의 투덜거리는 소리에 난 괜히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 내가 유명한 애완용개가 아닌 것이 꼭 내 잘못인 것처럼 말이야.
작은아이는 나를 덥석 안으며 말했어.
“그래도 너무 귀엽다. 얘, 내거 할 거야.”
큰 아이가 동생에게 퉁명스럽게 말했어.
“강아지가 혼자 갖는 물건이냐? 네 것이 어디 있어? 욕심쟁이.”
아빠가 말했지.
“난 지 한 달 밖에 안됐으니까 사람으로 말하면 갓난아기야. 아무거나 먹이지 말고 처음부터 버릇을 잘 들여야 해.”
큰 딸 혜정이와 작은 딸 의정이는 나를 무척 예뻐했어.
혜정이가 말했어.
“요 꼬맹이 이름을 뭐라고 할까? 메리? 해피? 갈색바탕에 검은 점이 있으니까 점박이? 그건 너무 흔한 이름들이고. 옳지! 낼 친구들에게 물어 봐야겠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난 후 혜정이 친구들이 몰려왔어. 아이들은 서로 날 안아보겠다고 법석을 떨었지.
한 아이가 말했어.
“야, 이 강아지 ‘깐돌이’ 라고 부르면 어떠냐?”
“그게 무슨 뜻이냐? ”
“만화에 나오잖아? ‘달려라 깐돌이’ ”
“엥, 별루다. ‘도그’는 어때? 영어로 개가 ‘도그’ 잖아?”
“야, 촌스럽게 도그가 뭐냐? 먹는 핫도그 같잖아. ”
아이들은 내 이름을 ‘방울’이라고 지었어. 방울처럼 귀엽고 똘방거린다나?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혜정 엄마가 말했어.
“얘는 엄마 닮아서 앞으로 덩치가 커질 건데 큰 녀석을 방울이라고 부르면 안 어울리지.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름은 중요해. 좀 더 근사한 이름을 지어보자.”
생각 끝에 식구들은 내 이름을 ‘노마’ 라고 부르기로 했어. 동화에 나오는 이름인데 주인에게 아주 충성스러운 개였대. ‘노마야, 노마야’하고 식구들이 부르니까 내가 갑자기 큰 개가 되어버린 것 같지 뭐야. 나는 한동안 혜정, 의정이의 방에서 함께 지냈지. 쉬나 응가를 못 가린다고 가끔씩 얻어맞긴 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어.
어느 날, 아저씨가 송판을 가져다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어. 아저씨는 나무판자로 만든 집에 날 밀어 넣었어.
“네가 너무 커서 이제는 여기서 자야겠다.”
방에서 쫓겨 난 며칠은 잠이 오질 않아 낑낑댔어. 하지만 차츰 새 집이 익숙해지더니 바깥 생활이 오히려 더 좋아졌어. 대문만 나서면 친구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야. 그중에 옆집 깜순이와 나는 눈만 뜨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놀았지.
엄마가 말했어.
“노마 저 놈. 바람났나 보다. 만날 깜순이네 집에 가서 사네. ”
이건 비밀인데 그 후에 깜순이가 내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는 거 아냐.
어느 날, 밤늦게 아저씨가 술에 잔뜩 취해 돌아왔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처음 봤다니까. 아저씨는 내가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는데 거들떠보지 않고 방에 들어갔어. 조금 있으니 아저씨가 혜정 엄마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가만히 들어보니 정말 큰일이었어. 아저씨가 친구의 빚보증을 섰는데 친구도 갚을 길이 없다나. 친구의 빚을 대신 갚아 주려면 집까지 팔아야 한대.
어느 날 저녁이었어. 혜정이가 나를 끌어안더니 막 우는 거야.
“노마야. 난 의정이하고 할아버지 집에 가서 살아야 해. 얼른 아빠가 돈을 벌어서 같이 살 집을 얻어야 할텐데... 엄마는 멀리 도시 식당에 취직해서 거기서 살고. 너를 못 데리고 가니까 넌 당분간 아빠하고 있어야 한단다. ”
더위가 한창 위세를 부리던 지난 여름, 혜정이네 식구들은 그렇게 뿔뿔이 헤어졌어. 식구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아버지는 나와 함께 살던 마을을 떠났어. 낡은 자전거에 옷가방을 싣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잠을 잤지.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하는 것 같았어. 공사장이나 마트에서 잡일도 했지. 일이 없을 때는 나를 데리고 낚시를 다니곤 했어. 종일 낚시터에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갈 때는 잡은 물고기들을 도로 강에다 놓아주었지. 이상하지 않니? 왜 종일 힘들게 잡은 고기를 놓아주는 걸까? 하긴 요리하는 걸 모르니까 그런지도 모르지. 아저씨는 라면을 끓이는 일 말고는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어. 그래서 자주 읍내 식당에 가서 뼈다귀나 음식 찌꺼기를 얻어와 내게 주곤 했어. 식구들과 함께 살 때는 무뚝뚝한 것 같았는데 나 혼자 있으니 살뜰히 챙겨 주었지. 나를 끌어안고 ‘꺼억 꺼억’ 우는 날도 있었어. 아저씨가 나를 안고 울 때는 나도 저절로 눈물이 났어. 엊그제 아저씨는 저어기 호수 가운데로 투망을 던져놓고 둑에 앉아 있었어. 그런데 해질녘 투망을 걷으러 들어가더니 아직도 나오지 않는 거야. “
들고양이가 말했습니다.
“네 주인은 죽은 것이 틀림없어. 넌 이제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해. 나는 저 산 밑 빈집에서 살고 있는데 원하면 너도 거기로 와. 찾아보면 먹을 건 많아.“
노마는 아저씨를 더 기다려볼 생각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너 고집이 엄청 세구나. 아니면 의리가 있는 거야?”
고양이가 등을 돌리고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노마는 더 춥고 배가 고팠습니다. 온몸에 힘이 쪽 빠지면서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검은 호수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왔습니다. 빛 가운데서 아저씨가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노마를 불렀습니다.
“노마야! 이리오렴.”
노마는 벌떡 일어나 호수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저씨, 살아있을 줄 알았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데도 아저씨는 여전히 멀리 서 있었습니다. 한동안 제자리걸음만 하던 노마의 몸이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반짝이는 별무리 중에서 별 하나가 호수로 뚝 떨어졌습니다.
노마가 신음하듯 중얼거렸습니다.
“아저씨이... 몸이 안 움직여져요. 도저히... 안...되겠어요. 아푸, 아푸, 꼬르르-륵- .”
<끝>
강용숙 약력
1991년 아동문학연구 동화로 등단
<수상> 한국아동문학 작가상. 한국아동문학 창작상. 이야기부분 황금상. 한정동 아동 문학상. 선사문학상. 김영일 아동문학상. 강서문인상. 강서문학상 대상
<작품집> 별난마트에는 도깨비가 있어요. 냐옹이 언니. 땡큐 땡큐 곱빼기로 땡큐. 여 우네 학교가기. 땅꼬마 날개 펴다. 외 30여권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