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반도에는 현재 태원太原이라는 지명은 옮겨지거나 복사(copy)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베트남에는 태원이라는 지명은 복사(copy)되어 존재한다.
≪中國歷史地名大辭典≫에서 태원부를太原府 찾아보면,
太原府
唐置,治晋阳,即今山西太原縣,五代后唐建军西京,又改北京,周时为北汉都,宋移并州治阳曲,后遂为太原府,元置太塬路,改冀宁路,明复曰太原府,为山西布政使治,清为山西省治,民国废。
明置,宣德后入于安南,在今安南东京北四百五十里。
(1)당唐이 설치하여, 진양晉陽을 다스렸으며, 바로 지금의 산서 태원현太原縣이며, 오대五代에 후당后唐이 군軍을 세워 서경西京이 되었으며, 또 고쳐 북경北京 되었으며, 주周 때는 북한군北漢都이 되었으며, 송宋이 병주并州를 옮겨 곡양陽曲을 다스렸으며, 후에 마침내 태원부太原府로 되었으니, 원元이 태원로太原路라 하였다가. 고쳐 기령로冀寧路라 했으며, 명明이 다시 태원부太原府라 불렀으며, 산서포정사山西布政使에서 다스렸으며, 청清이 산서성山西省에 (속하여) 다스렸으나, 민국民國이 폐지하였다
(2)명明이 설치하였으며, 선덕宣德 뒤로부터 안남에安南 들어가니, 지금의 안남安南 동경 북쪽으로 450리이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서,

구글지도에서 월남越南의 하내河內 산서山西 태원太原

첫댓글 아! 제가 글을 운영자 아이디로 올렸내요ㅜㅜ; 댓글이 있으니 다시 올리지는 못하겠군요.
다시 쓸 필요를 없을것 같아요 아무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한문의 문맥에서 是 即 猶 뜻의 차이를 파악(把握)하기가 힘드는 경우가 있죠. 시詩에서는 시적대상과 시적자아를 동일시 하기때문에 猶도 是의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죠. 문집이나 시상을 소재를 고전에서 빌어오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저는 한 때는 이러한 시나 문집들에서 대륙조선의 근거를 많이 찾아는데, 고전을 공부하여 보니, 그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어, 시나 문집으로는 대륙조선의 증거를 삼는 것은 애매함과 후에 많은 논란을 남기게 됨을 알았습니다.
제 댓글을 다시 올렸습니다.
고전(古典) 한문(漢文)도 "문학"(文學)과 "비문학"(非文學)을 구별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네요...
한시(漢詩)에서 표현의 기법이 문제되겠고요...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고전(古典)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전(古典) 연구도 필요합니다.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고전(古典)을 제대로 전공하신 분들에게는 유리하시겠지요...
네, 그렇군요... "태원"(太原)이라는 지명이 한반도로 옮겨지거나 복사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1443년) 10월 24일 4번째 기사
함길도 도관찰사 정갑손에게 도의 인민을 5진에 입거시키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백성들이 동요하게 두는 것을 책망하다
함길도는 조종(祖宗)께서 왕업을 일으킨 땅이어서 실로 주(周)나라의 빈기(邠岐), 한(漢)나라의 풍패(豊沛), 당(唐)나라의 태원(太原)과 같고 다른 도(道)와는 견줄 수 없는 것이다.
"咸吉道, 祖宗興王之地, 實周之邠歧, 漢之豐沛、唐之太原, 固非他道之比"
<조선왕조실록>
중종 8년(1513년) 5월 18일 1번째 기사
조강에 나아가다
함경도는 굶는 백성이 태반인데, 대신은 가을을 기다려 곡식을 운반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데 감히 가을을 바라겠습니까! 백성이 다 굶어 죽는데 대신은 앉아 보고만 있으면서 구제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본도는 나라의 북문(北門)이요, 또한 왕업을 일으킨 땅이라, 한(漢)의 풍패(豐沛), 당(唐)의 진양(晉陽)과 같습니다.
"咸鏡道餓民太半, 而大臣以爲。 待秋成運米。 然今久不雨, 敢望秋成乎? 百姓皆餓死, 而大臣坐視不救可乎? 本道乃國之北門, 亦是興王之地, 如漢之豐沛, 唐之晋陽"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3권
전라도(全羅道)
전주부(全州府)
<형승(形勝)>
국가(國家)의 풍패(豐沛)로 산천(山川)이 영수(靈秀)하다. [윤곤(尹坤)의 기(記)에 있다.]
주(周) 나라의 조상(祖上)이 일어난 곳이요, 일도(一道)의 으뜸이다. [모두 서거정(徐居正)의 기(記)에 있다.]
안팎으로 산(山)과 개천(川)이 있다. [성임(成任)의 시(詩)에, "안팎의 산(山)과 강(江)이 판적(版籍)에 들어 있다" 하였다.]
(계속)
생각하건대 전주(全州)는 산천(山川)의 좋은 기운(氣運)이 얽히고 서려 왕업(王業)의 자취를 창립(創立)하였으니, 실(實)로 우리 조선(朝鮮)의 근본(根本)이 되는 땅으로 주(周) 나라의 태빈(邰豳)과 같은 곳이요, 목조(穆祖)가 북방(北方)으로 옮겨간 것은 마치 주(周)의 태왕(太王)이 빈(邠)을 떠난 때이다.
바로 위에 인용된 기록들에 따르면,
한(漢)의 "풍패"(豐沛)라는 표현이 전라도(全羅道) 전주부(全州府)만이 아니라, 함길도(咸吉道) 함경도(咸鏡道)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如漢之豊沛 唐之晉陽에서 如는 우리말 한자의 음훈은 "같을여"인데, 보통 "같다"는 뜻으로 새기지만" "~와 같다"는 뜻으로 새겨야 文意에 더 적합합니다.. 如의 뜻은 비유할 때 많이 쓰이는 글자이며, 한문의 복문이나 중문의 문장구조에서 영어의 "IF" 처럼 가정의 뜻으로 쓰입니다. 그것은 "~같다면(~이라면,~ 한다면)"으로 쓰이게 됨니다. 수학적으로 A=B 뜻에 적합한것은 如보다 是를 사용하여 A是B로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입니다. 이러한 풍패에 대한 최두환 선생님의 오해는 한문의 문장에 대한 오해이기도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네,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