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4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직 겨울방학이 시작 안 된 초겨울, 산에는 잎을 지운 나무들이 앙상하니 떨고, 가실 끝난 들판에는 검불들만 바람에 날렸다. 교실까지 치고 올라온 바람이 유리창을 때려대자, 오래된 나무 창틀이 늙은 개처럼 덜컹덜컹 짖었다. 낡은 창틀을 달랜다며 아이들이 여러 번 접은 종이 쐐기를 창문 틈에 꽂았고, 바람은 이제 벌어진 틈새로 스며들어 아이들의 목덜미를 스쳤다.
선생님이 판서하는 사이에 창밖으로 눈이 갔다. 저 위쪽에 사람의 모습이 어른거려서였다. 아낙 셋이 소매동이를 이고 밭둑길을 걷고 있다. 교실 뒤편의 변소를 푸는 중이다. 그런데 줄줄이 걸어가는 세 아낙 중에 끝에 있는 조그마한 아낙이 눈에 익다. 잘못 본 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본다. 그 아낙이 맞다. 그럴 리가 없는데. 다시 눈을 비벼본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 준 그 아낙이 영락없다. 설마 하며 다시 눈을 비비고 보아도 그 아낙이 틀림없다. 꾸덕꾸덕 마른 똥무더기가 차올라 도저히 앉아서 일을 볼 수 없는 시골중학교의 더러운 변소를 그 아낙이 푸고 있는 것이다. 그니가 지금 저기에서 그 천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쿵쿵대기 시작한다. 동무들 누가 보아버리면 어쩌나. 쫑긋예처럼 입이 싼 녀석이 교실에서 왜장이라도 쳐버리면 어쩌나.
와따메! 해진이네 엄니가 변소를 푼다네이! 해진이네 엄니가 소매동이를 이고 저기서 똥을 푸고 있다네이!
큰일이다. 그랬다가는 진짜 큰일이다.
장에서 양말 한 켤레를 슬쩍할 때처럼 몹시도 가슴이 쿵덕거린다. 눈은 칠판에 있지만 신경은 온통 창 너머 밭둑길로만 쏠려 간다. 아낙들이 안 보이면 마음이 놓였다가, 보이면 다시 쿵쿵대기를 반복한다. 아낙들이 빨리 일을 끝내고 사라졌으면 좋겠다. 변소를 안 퍼 변소칸이 똥으로 차버려도 좋으니, 낑낑대며 참더라도 학교에서는 똥을 안 싸도 괜찮으니 지금 당장 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발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
쉬는시간이 되어도 밖에를 안 나갔다. 아이들이 놀자고 끌어도 신경질을 내며 종일토록 교실에만 처박혀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평소에는 서너 번은 가던 변소를 한번도 안 갔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아낙에게 다녀왔다는 말도 안했다. 저녁도 건너뛰었고,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는 인상을 쓰며 둑만 부렸다. 배고픈 줄도 모른 채, 저수지둑이며 사장케며 선창이며를 밤이 이슥할 때까지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참으로 길고 짜증난 하루였다.
“그나저나 그 성님은 어쨌으끄나? 혹, 잽혀갔으까아?”
느럭느럭 하늘로 피어 오르는 공장의 연기를 따라가고 있다가 그곳으로 돌아온다.
“참, 깝깝한 소리하요. 그런 일로 다 잡혀가것소?”
촌사람 아니랄까봐 무지하게 겁도 많다.
“그 숙모도 숙모요. 다시 그 자리로 와야 만나서 같이 집에 갈 것 아니요?”
“내 말이 그말 아니냐. 암만해도 딸네집으로 간 거 탁어야. 휘유.”
아낙이 길게 한숨을 뿜는다. 숨을 참으며 전복 두어 개를 따고 수면 위로 올라온 해녀의 휫게소리(숨비소리) 같다.
“그러믄 어지께는 어디서 잤는가?”
저 남쪽 끄트머리 외딴 섬에서 올라온 촌아낙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망망대해 같은 도시의 밤을 어디서 보냈을까.
“너 공부 못해서 어차끄나? 언능 가자.”
대답 대신 자리를 털며 아낙이 다시 보퉁이를 인다.
“정류장까지만 데려다 주고 들어가믄 되네.”
아낙을 보내고 나면 청소시간쯤 될 것이다. 면회를 핑계삼아 느지막이 들어가면 된다.
“그래도 안그러께 언능 가자.”
아낙이 발길을 서두른다.
“해는 지제, 배는 고파 오제, 아는 사람은 없제, 오따, 몸살지칠 일이든마이.”
아낙은 걸음에다 말을 얹는다.
“역전에서 국밥은 한 그릇 사 묵었는데 인자 잠잘 일이 꺽정이여야. 이 일을 어채야 쓰끄나? 멜치 폰 돈은 있제만, 어디 대고 들어가기도 그라고…, 어만 데 갔다가 또 먼 꼴을 당할지 몰르것고…, 그란다고 야밤에 차를 탈 수도 없고…, 해나 그 성님이 다시 올지도 몰르고…, 그래서 역에 들어가 한쪽 구석에 쪼글시고 있었니라.”
땀이 차는지, 걸을 때마다 아낙의 보라색 막슬리퍼가 찔복댄다. 간신히 발만 꿰게 만들어진 색깔도 다 바랜 막슬리퍼를, 그것도 신이라고 신고 아낙은 거기서 여기까지 왔다. 대체 저 아낙은 뭐냐. 품앗이 가는 차림새에, 머리에는 임을 이고, 슬리퍼를 찔쩍거리며 도시를 걷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구냐. 정말 내가 아는 그 아낙이 맞기는 하는 거냐.
“그라고 쭈글세서, 자다 깨다 깨다 자다 보께 날이 희끗 새잖컷냐. 여름이라 밤이 짧으께 그나마 다행이드라. 인자 차 타고 핑 집이 가야것다 맘 묵고 표를 끊으로 갔제. 어차피 성님도 안 오께 혼자서 갈 수밲이 없것든마.”
다시 슬리퍼가 찔꺽댄다. 그 소리가 귀에 영 거슬려 슬며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러면 그렇지, 양말도 안 신은 아낙의 발뒤쭉지가 시꺼먼 홍합껍질이다.
아버지들은 좀 나았지만, 애들이나 아낙들에게 양말은 겨울에만 신는 ‘발의 옷’이었다. 그것도 할머니나 엄니가 헝겊을 대고 몇 번이나 징그고 징근 것들이었다. 여름에 양말을 신고, 거기에 운동화까지 갖추었다면, 그의 아버지가 면장이나 조합장이나 배를 두어 척 가진 선주인 경우였다. 나머지 애들은 모두 맨발에 검정고무신이었다. 그것도 아깝다며 들고다닌 녀석이 있었으니, 가난은 어쩌면 서러운 기억인지도 모른다. 고무신에 땀이 차 찔복거리면 아이들은 지푸라기 몇 올이나 마른 풀 한 줌을 바닥에 깔았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고무신이 미끄럽지 않았다. 지푸라기나 마른 풀이 땀을 먹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운동화 같은 고무신을 만들어 신고, 아이들은 떨지락을 뛰어다니며 총싸움을 하고, 소를 찾아 산을 뒤지고, 밤에는 저수지둑에서 채놀이를 하고, 국민학교의 달빛 맑은 운동장에서 칼싸움을 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곳에 만든 그들만의 세계였다. 그 세계가 있어 그 아이들은, 또 어른들은 덜 쓸쓸한지도 모른다. 아낙에게 옛날의 슬리퍼 운동화를 만들어주려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뙤약볕만 오살하다. 도시에서는 그런 하찮은 것도 찾기 힘들다. 그러니 그 세계를 만드는 것은 더더욱이다. 시골과 도시의 사이이다.
“광주표를 끊을라다가야, 표 끊는 아가씨한테 여차꼴로…, 구미는 어추쿠 가냐 물었제. 기차 타믄, 한…, 두 시간이믄 간다 안하냐. 그 말 들으께 또 고민되드라께. 그냥 집이로 가끄나, 여기 온 짐에 너나 한번 보고 가끄나. 너한테 가믄 가차이 사는 느그이모도 볼 수 있것고야.”
아낙이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본다.
“그란데 꼴새가 말이 아니냐 안. 이 꼴로 어추쿠 학교를 찾어가까. 가므는 선생님도 찾아봬야 할 건데 이런 촌년 꼴새로 갠짐하까아? 그 생각에 또 한참을 문젰제.“
몰골이 초라하다는 짐작은 있었는갑다. 그런 입성으로 아들의 학교를 찾는 것이 에런 일이라고 생각은 했던 모양이다. 그랬으면 바로 대구로 갔어야 했다. 아낙도 아들도 안 에럽게 말이다.
“그러면 여기 일찍 왔겠는데 어째 인자사 왔는가?”
대전에서 구미는 넉넉잡아도 세 시간이니 아침 일찍 이 도시에 도착했을 것이다. 역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삼십 분, 정류장에서 학교까지 아낙의 걸음으로도 삼십 분, 도저히 계산이 안 맞는다.
“역에 내리기는 했는데, 그란데 또 자신이 안 서는 거여. 진짜로 가끄나 마끄나. 암만 그래도 학교로 아들을 찾어가는데 이 꼴로 가도 괜찬하까? 무담씨 찾어갔다가 아들 우세시키는 건 아니까? 거그다가 전에 느그아부지가 했던 말도 생각나고야. 그래서 자꾸 발뒤꿉지에 힘을 주게 되드라께.”
그랬겠지. 촌아낙이라도 그런 생각쯤은 했겠지. 아들을 만나면 선생님도 만날 텐데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기는 했겠지. 아무리 섬에서 농사만 짓고 산 무지렁이 아낙이어도 그 정도 중정은 있었겠지. 그건 알겠는데 마지막 말이 미늘이 되어 턱을 꿴다.
“아부지라우? 아부지가 뭐라 했는데라우?”
아낙은 말없이 댓 걸음을 더 걷는다.
“아부지가 뭐라드냐고라우?”
두어 걸음 걷다가 옆을 보며 재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