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36: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했던 사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미육군전략처OSS는 한반도에 침투해 일본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목표로 ‘냅코 프로젝트’를 계획합니다. 그런데 이 작전의 정예요원들은 다름 아닌 한국인. 그중 암호명 A의 신상은 시선을 끌었습니다. 나이 쉰에 가족을 남겨두고 특수 공작원이 되기로 한 사람, 그의 이름은 CIA 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바로 유한양행柳韓洋行의 창업주로 알려진 고故 유일한(1895-1971) 박사입니다.
유일한은 1905년 10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향합니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재정과 외교를 서서히 장악해가기 시작하자, 그의 아버지였던 유기연이 나라를 구할 인재가 되어 돌아오라는 당부와 함께 어린 아들을 떠나보냅니다. 유일한은 14세 때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해 군사훈련을 받고 24세에는 필라델피아 한인대표자회의에서 서재필, 이승만과 함께 결의문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또 재미한인들이 참여한 군사조직 ‘맹호군’ 창설을 주도하고 OSS의 특수요원이 됐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준비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유일한은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도 늘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한 끝에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기업가’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26년 주식회사 유한양행을 창업하였습니다.
사망 전 그는 “주식은 전부 학교에 기증하고,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종대 유한킴벌리 초대회장은 유일한 박사의 자녀를 대신해 회사를 이끈 인물로 이 회장은 “딸이고 아들이고 회사에 개입이 없었다.”면서 “그분 곁에서 보니까 기본 정신이 가족을 위한 게 아니라, 머릿속에 민족이라고 하는 게 철저하게 박혀있더라.”고도 말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당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원칙과 양심을 지켜 나간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오늘날 최소한 기억해야 하는 양심과 정신은 무엇인지? 복잡한 삶에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며 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후 나라가 주권을 되찾고도 그는 민족의 진정한 독립을 꿈꿨습니다. 그는 1964년 개인 주식을 팔아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배움을 포기했던 아이들이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참고: 정혁준 저『십대를 위한 롤모델 유일한 이야기』꿈결,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