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 둘레길 ( 5) 2010, 3, 26
16:15분..... 장충공원 사거리(동대입구)에서 성곽길 시작지점 찾아 가는길..... 장충동 로타리(3호선 동대 입구 5번출구)에서 신라호텔 지나서 약수동 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에 성벽이 보이고 성곽 안내지도가 있다.
시대에 따라 축조 방식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성벽..
암문을 지나 성곽길을 계속 가면....
16:24분....성곽이 끝나는 지점 도착..... 성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진행하는 길 성곽의 바깥으로 난 길을 따라 오다가 이 성벽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면, 성벽의 끝 부분에서 성곽 안쪽(사진에서 흰색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다시 성곽을 따라 진행한다. 소나무 숲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통나무로 휴식할 수 있는 의자가 설치된 쉼터에서 조금 더 가면 왼쪽 에 <자유총연맹>으로 가는 내리막 오솔길이 있다. 성곽을 버리고 이 길로 진행하면 <자유총연맹>주차장이고 , 정문을 통과하면 <장충단길>을 만난다. <자유연맹> 정문에서 장충단길을 따라 왼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국립극장>, <남산공원>입구를 만날수 있다. 성곽이 끝나는 지점에서 직진하는 길이 있으니 조심....그리고 앞에 전망 할수 있는 팔각정이 있다.
16:34분...... 남산공원 순환로 , 국립극장 진입로.....
국립극장 앞에서 순환로를 따라 약 2-3분 거리에 삼거리를 만나고 이 삼거리의 좌측길(남산 순환로)로 진행하면 왼쪽으로 숲속에 성곽이 보이고.....
국립극장에서 대략 300m지점에 성곽길의 이정표가 있다. 가파른 나무계단이 성곽을 따라 이어진다.
성곽의 이정표.....
성벽의 봄....
높고 아득한 성벽위로 바람이 나무가지에서 울고 있었다. 매미른 나무가지 사이로 새가 날아 갔다. 거대한 도시 서울의 숨소리가 마치 깊은 지층에서 울리듯 들렸다. 오백년 왕조의 영화가 한갓 돌틈으로 남았다. .....
성벽을 넘어 가는 계단길.....
성벽을 넘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다시 성곽과 해어져 이정표 따라 산책길로 가다가....
<남산순환도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성벽이 다시 따라왔다.
17:38분..... N 서울 타워가 숲사이로 보이고..... 팔각정에 도착...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목면산>은 도성의 남쪽에 있는 남산인데 <인경산>이라도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니 <남산>은 보통명사이고 <목면산>또는<인경산>이 진짜 이름이내요!!!!!!
성곽의 나무 1 나무는 무심하고..... 성곽과 나무 2 성곽과 나무 3 성곽과 나무 4
남산 봉수대 태종 6년(1406)12월 부터 갑오개혁때 까지 500년간 국방의 중요한 시설이었던 봉수대....
17:46분..... 남산 팔갈정에서 케블카 방향으로 내려가는 남산 산책길로 성책이 따라 간다. 팔각정에 앉아 거피를 마시며 조금씩 어둠이 내리는 서울을 바라 보았다. 대략 8사간의 종주가 끝을 보이고 있다. 한양 500년 왕조의 영화가 돌틈에 서린 18km 성곽에는 어디선가 그 때의 함성이 들리는듯 했다.
18:40분..... 남산 안중근 의사 동상앞에 ....... 함께 오던 성곽은 어느새 없어지고 짙은 나무숲이 가득했다. ※ 백범광장은 성곽 보수 공사 관계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내요......
숭례문 방향으로....
남산의 성곽공사가 한창이고....
SK 빌딩 뒷길에 남은 서울 성곽의 흔적........
19:00분...... 복원공사 중인 숭례문의 가림벽에 붙은 옛 <숭례문>의 사진
아....숭례문!!!!! 숭례문.......
숭례문에서 길을 건너 ....... 신한은행 앞의 조각상..... 이 쯤에 성곽은 지나가지 않았을까.........
19:15분 ... 지하철 1호선 시청역 1번 출구 앞에서 오늘의 답사를 마감한다 무려 10시간의 답사길이다. 한북정맥 북한산 보현봉에서 북악에 이르는 산줄기는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는 웅봉과 낙산을 이루며 동대문에 이르고, 서쪽은 우백호 인왕산을 거쳐 남대문의 낮은 구릉을 지나 남산을 솟구치며 동대문쪽으로 나아간다. 그 둘래길이 18km가 넘은 역사의 길이다. . 이 서울 성곽을 축성하고 3차례의 보수에 연 인원 약 40만명 가량이 동원되었다고한다. 그 당시 서울의 인구가 10만명 미만이었으며, 사망자만도 872명이었다니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음을 알수 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의 이야기로만 남을 것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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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emseel의 백두대간 원문보기 글쓴이: co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