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3:16~17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지난 주일에 오직 은혜!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에 대해서 말씀 나누었습니다. 죄인의 구원은 어떤 행위나 공로로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믿음도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 즉 은혜입니다. 믿어지는 믿음 주셔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받은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태어나서 지금까지 산 것도, 나의 나 됨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수고했다면, 잘 나간다면, 쓰임 받았다면 이 또한, 은혜를 더 받았기 때문이라고 사도 바울은 겸손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받은 은혜에 늘 감사하고 보답하는 삶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오직 성경!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라는 제하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솔라(Sola)'는 라틴어로 '오직'이라는 뜻이고, '스크립투라'는 ‘성경’을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신앙과 삶의 기준이고 최종적인 권위라는 것입니다.
16세기 로마 가톨릭교회는 심각하게 타락해 있었습니다. 교황과 사제들은 면죄부를 팔아 돈을 벌었고, 성경보다 교회 전통을 더 높였으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성인들과 마리아를 중보자로 섬기게 했습니다. 성경대로 살지 않고 성경을 발아래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 츠빙글리 등 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개혁을 외쳤습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겐 "교회의 최종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교황에게 있을까, 공의회에 있을까, 교회의 전통에 있을까? 종교개혁자들의 대답은 오직 성경! (Sola Scriptura)이었습니다.
혹자는 오직 성경이라 하니까 목사도 필요 없고 교회도 필요 없고 신학도 필요 없다고 오해하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루터와 칼빈은 교회를 사랑했고, 목회자를 세웠으며, 교리를 정리했고, 신앙고백서를 작성했습니다. 교회는 필요합니다. 목회자도 필요합니다. 신학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성경 위에 있을 순 없다는 것입니다. 최종 권위는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베뢰아 사람들을 칭찬했습니다. 사도 바울이라는 뛰어난 사람이 말씀을 전했을 때도 베뢰아 사람들은 놀라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사실인가, 맞는가를 성경으로 확인했습니다. 바울이 사도였고, 훌륭하다고 무조건 믿지는 않았습니다. 바울보다 성경에 권위를 두었습니다. 이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설교, 음성, 환상, 꿈, 예언, 체험을 성경이라는 필터로 걸리지 않고 받아들여 믿으면 안 됩니다. 성경 말씀에 벗어나지는 않는지, 말씀과 충돌하지는 않는지, 성경을 상고하면서 확인,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의 신앙과 삶의 최종 권위는 오직 성경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어떤 것도 성경 아래에 두어야지 위에 두면 안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한 마을에 오래된 등대가 있었습니다. 바다가 거칠고 암초가 많아, 밤이 되면 등대의 불빛이 배들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등대가 너무 밝아 밤에 눈이 부시다며 불평했습니다. 등대지기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니 조금만 어둡게 할까.” 그는 등불의 밝기를 줄였습니다. 그날 밤, 바다는 평소보다 더 어두웠고, 한 배가 암초에 부딪혀 큰 사고가 났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은 울며 등대지기에게 외쳤습니다. “왜 불빛을 줄였습니까.” 등대지기는 떨며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눈이 부시다 하셔서요.” 그때 한 노인이 말했습니다.
“등대의 목적은 우리의 눈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배를 살리는 것입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나를 편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때론 칼이 되어 수술합니다. 방망이가 되어 바위 같은 사상, 고집, 잘못된 생각을 깨뜨립니다. 불이 되어 태우기도 합니다. 나를 바르고 살리고 성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구원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우리가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중생)은 썩지 아니할 씨,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믿을 때 성령께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어지고, 믿음이 자라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 성장을 위해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찬송가 202장
셋째,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을 온전케 합니다. 성숙하게 만들어 주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든든히 세워줍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우리 영혼을 살아나게 하고 지혜롭게, 기쁘게, 눈을 밝게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 19:7~8)
약속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대로 살면 평탄과 형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수 1:8)
말씀의 중요성을 믿음의 조상을 ➀아브라함을 통해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가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1-3)
지금 당장 주는 복이 아닙니다. 미래에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창 12:4)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무엇을 따라갔다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갔습니다. 떠나라 하니 말씀을 따라 떠나고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니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100세에 낳은 귀한 아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조카 롯은 달랐습니다. 말씀을 따라간 것이 아니고 아브람을 따라갔습니다. 말씀 따라 살아야 잘 사는 것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롯처럼 말씀 따라 사는 사람과 함께 하고 따라가는 지혜라도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롯은 후에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여 말씀을 따르는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므로 잘못되었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아 결국 다 잃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②베드로, 밤새 수고했지만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4)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 5:5)
참 귀한 고백입니다. 어부로서의 상식도, 경험도, 지혜도 다 내려놓고 주님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 말씀을 따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백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빈 배 인생이 고기 두 배, 갑절 인생으로, 역전 인생이 되었습니다.
빈 배와 두 배의 차이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나를 믿고 사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고 주님 말씀 듣고 믿고 사시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실패했을 때도 말씀이 살렸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 26:34)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 26:75)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 버리지 않겠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호언장담하였지만 결국은 세 번 부인, 맹세, 저주까지 했습니다. 닭도 베드로의 부인이 슬펐든지 부인하자 울었습니다. 그는 닭의 울음을 듣자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말씀이 생각나 회개했습니다. 기도할 때 말씀이 생각나면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말씀이 생각나면 붙잡고 이겨내야 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큰 힘과 위로가 되고 능력과 응답이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하늘비전 가족 여러분! 한 세기가 지나고 또 새로운 세기가 와도 성경은 여전히 인류 속에 생명의 말씀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국이 태어났다가 사라져도 성경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왕조가 태어났다가 무너져도 성경은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과거 불신자들이 그토록 성경을 없애려 해도 여전히 성경은 이 시대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나의 신앙과 삶의 절대 기준, 최종적 권위는 성경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경험하시길 축원합니다. 오직 성경!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54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