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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패밀리 세단? 연비 좋은 짐꾼 |
파사트는 유럽의 대표적인 패밀리 세단이다. 유럽에선 얼굴과 엔진을 바꾼 신형 모델인 8세대 파사트가 최근에 출시된 상황이고, 우리나라선 기존의 주력 판매 모델인 2.0 TDI 디젤에 지난 해 8월 1.8 TSI 가솔린 엔진을 적용한 파사트가 추가로 출시됐다.
사실 출시된 지 조금 지난 모델이기에 이번 시승기에선 파사트 1.8 TSI의 출력을 비롯한 성능 부문을 다루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다운사이징 모델로서 운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연비는 어느정도인지, 패밀리 세단으로서 공간은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방향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평소 패밀리 세단을 무엇으로 택할지 고민해 온 운전자라면 이번 시승기가 여러분께 도움이 될 것이다.
■ 연비? 국도에서 18~20 km/l, 고속도로는 15~17 km/l
▲ 파사트 1.8 TSI의 국도 및 고속도로 주행 시 연비를 확인해 보자 파사트 1.8 TSI에서 강점으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은 '연비'다. 크루즈 컨트롤을 건 상태서 계기판 클러스터에 표시된 연비를 확인해 보니, 80 km/h의 속도로 국도 주행 시 18~20 km/l, 100 km/h로 고속도로 주행 시엔 15~17 km/l가 나타났다. 가다 서다 하는 도로 정체 시엔 평균 연비가 9~10 km/l 수준이었다.
당시 외부 기온이 섭씨 2~5도로 낮은 상태였고, 연비 운전에 불리한 겨울용 퍼포먼스 타이어(한국타이어 윈터 아이셉트 에보, 규격은 235/45 R18 98V)가 장착된 상태였는데도, 170 마력에 25.4 kg.m의 성능을 내는 1.8 가솔린 세단으로 이 정도의 연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은 운전자로서 만족할 수 있는 수치다. 실제로 이 차를 3박 4일 간 서울에서 대구, 도심 주행 100 km, 대구에서 다시 서울로 도합 817 km를 넘길 즈음, 주행 가능 거리 80 km를 남기고서 연료 부족 경고등이 켜졌다. 이 때의 총 연비는 약 16 km/l를 가리켰다. 이는 상대적으로 고속 주행의 비중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연비다. 참고로 파사트의 연료 탱크 용량은 제원상으로 현대차 그랜저와 같은 수준인 70 리터며, 복합 연비는 11.6 km/l(도심 연비 : 10.1 km/l, 고속도로 연비 : 14.3 km/l)이다. 일정한 속도로 장거리 주행을 하는 조건이라면 항속 거리가 길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경유해 서울 부산을 왕복하는 정도로는 별다른 스트레스가 없다.
■ 뒷 좌석이 넓은 파사트, 대형 세단이 부럽지 않다
파사트는 겉보기엔 앞뒤 길이는 같고 전폭이 다소 좁은 쏘나타에 비유할 수 있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수치상으로 생각했던 선입견은 눈 녹듯 사라진다. 한마디로 보기보다 넓다는 얘기다. 물론 말로써 보기보다 공간이 넓다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 진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얼만큼의 거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줄자로 직접 측정했다. A필러 사이를 잰 너비는 1.29 m, 도어 트림을 마주한 대시보드의 너비는 1.43 m다. 시트에 엉덩이가 닿는 부분에서 개방형 썬루프까지의 수직 높이는 0.95 m, 시트에 편히 몸을 기대는 앉은 자세로는 1.01 m로 측정됐다. 키 180 cm인 성인 남자가 타기엔 충분한 너비와 높이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시트에 착석했을 때의 공간은 어느 정도라 할 수 있을까? 일단 앞 좌석 하단의 손잡이가 슬라이드 레일이 끝나는 지점 바로 앞까지만 당겨주고 각 위치에 따른 길이를 측정했다. 동승석 기준으로 시트 끝 지점에서 글로브 박스까지는 약 25 cm, 편하게 다리를 뻗고 앚은 자세로는 무릎과 글로브 박스 사이의 간격이 8.5 cm로 나왔다. 콘솔 암레스트는 확장하지 않았을 때 27.5 cm, 확장 시엔 34.5 cm까지 늘릴 수 있다.
뒷 좌석은 어떨까? 파사트의 뒷 좌석은 앞 좌석에 비하면 운동장 수준이다. 시트에 몸을 편히 기대는 상황에선 루프까지의 높이가 약 0.86 m로 앞 좌석보다 낮지만 뒷 좌석 시트 끝에서 앞 좌석까지의 간격은 약 37 cm로 환상적이다. 앞 좌석보다 12 cm가 더 넓다. 에어 벤트가 위치한 가운데 좌석도 26 cm가 나온다. 직접 앉아서 무릎과 앞 좌석까지의 간격을 재 봤다. 약 14.5 cm에 이르는 공간이 나왔다. 앞 좌석에 앉았을 때 보다 6 cm 가량 더 넓다고 판단할 수 있는 수치다. 앞 좌석을 뒤로 조금 밀더라도 뒷 좌석 승객에 민폐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이 상태면 다리를 꼬아 앉거나 쩍 벌려 앉아도 될 수준이다. 앞으로 파사트를 탈 때면 운전석 말고 뒷 좌석에 앉아 잠이나 자야 겠다.
■ 트렁크는 쏘나타보다 넓다, 소형 SUV 못지 않아
파사트의 공간 활용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트렁크를 열어 내부를 살피면 이 차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론 독일을 대표하는 패밀리 세단인데, 알고 보니 짐꾼이었나 싶을 정도로 넓다. 만질 일 없는 골프백 말고 대형 마트에서 테이프로 가조립한 포장용 감귤 박스에 온만 물건을 실어도 허전하다. 너비는 얼만큼 할까? 이 역시 줄자로 이곳 저곳을 쟀다. 먼저 뒷 좌석에서 트렁크 입구에 이르는 길이는 1.18 m, 깔판의 가로 너비는 1.07 m, 트렁크 입구에 걸친 양 쪽의 수납 칸까지 더한 폭은 약 1.48 m로 나타낼 수 있다. 높이는 단감 박스를 접지 않고 바로 세워 실은 상태로도 7~8 cm가 남는다. 실제 파사트 1.8 TSI의 트렁크 용량은 제원 수치상 529 리터로 현대차 쏘나타(463 리터)보다 넓다. 최근 소형 SUV로 출시된 쌍용차 티볼리(423 리터)나 기존의 르노삼성 QM3(377 리터)와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시트를 접었을 때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만약 기본 상태서 짐 싣기가 부족하다면 시트 폴딩 레버를 잡아 당겨 뒷 좌석을 접으면 된다. 우측 레버는 가운데 좌석까지(60 %), 좌측 레버는 운전석 뒷 좌석(40 %)만 접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차량 제조사들은 60 대 40 시트 폴드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파사트도 그렇다. 뒷 좌석을 접고 난 상태서 다시 줄자로 길이를 재 봤다. 뒷 좌석 헤드레스트 접합부에서 트렁크 입구까지 측정하니 길이는 약 1.79 m가 나왔다. 깔판 역할을 할 길아만 60 cm 정도 연장됐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라도 짐을 싣을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겨울 레포츠 대용으로 스키 장비를 싣고 다니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굳이 시트를 폴딩시킬 필요는 없다. 1.1~1.3 m 길이의 쇼트 카빙스키를 싣는다면 트렁크 입구의 칸막이를 분리해 가로 방향으로, 1.4~1.7 m 길이의 일반 스키류는 뒷 좌석 가운데의 스키 스루를 분리해 트렁크에서 차량 안으로 집어 넣기만 하면 된다.
■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어라운드 뷰는 지원하지 않아
지금의 파사트 1.8 TSI를 생각할 운전자 입장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속도 유지만 되는 크루즈 컨트롤과 주차 시 후방 감지 센서와 시야만 제공하는 후방 카메라(파크 파일럿 및 리어 어시스트) 기능일 것이다. 요즘 나온 동급의 국산 및 수입 세단엔 능동적으로 전방 차량을 감지해 속도를 줄이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량의 주변 상황을 4채널 카메라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 평행 주차 및 T자형 자동 주차까지 지원하는 기능도 추가돼 있다. 7세대 파사트의 모습을 한 이 차량에선 이런 첨단 기능을 선택할 수가 없다.
글쓴이가 시승한 차량은 파사트 1.8 TSI에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된 모델로, 리어 스포일러와 알루미늄 페달, 스포트 도어 실 플레이트, 카본 디자인, 앞 휀더 스포트 엠블럼 장식에 18 인치형 브리스톨 휠에 카본 인테리어 트림, 천연 가죽과 다이나미카 조합의 시트, 메모리 패키지가 적용된 게 전부다. 기본적인 앞 좌석 전동 시트와 열선 기능, 개방형 썬루프, ECM 룸미러, 하이패스, 10채널 펜더 오디오에 한국형 내비게이션인 지니가 적용돼 있다는 점 말고는 최근 출시된 동급 차량과 비교한다면 옵션 구성에선 다소 밀린다. 차량을 선택하는데 첨단 기능의 비중이 크다고 생각하는 운전자라면 조금 더 기다려서 8세대 파사트를 기다리던지, 다른 차량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 연비와 공간을 만족한다, 최신 기능은 8세대에
파사트 1.8 TSI는 7세대 파사트를 원형으로 한 패밀리 세단이다. 가솔린 세단의 부드러운 승차감을 위해 파사트 2.0 TDI의 6단 DSG 대신 6단 팁트로닉 자동 변속기를 넣고, 1.8 리터로 배기량을 줄인 대신 터보차저를 셋업해 일정량 이상의 출력과 토크를 확보했다. 표기상 국내 복합 연비는 11.6 km/l로 평범한 2.0 가솔린 세단에 준하는 수준이지만, 실제로 몰아 보고 확인한 연비는 그게 아니었다. 도로 정체 시에도 9 km/l 중후반은 바라볼 정도로 괜찮았고 고속 주행 시엔 표기된 것 이상의 연비가 나와 800 km 이상을 다녀오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공간은 파사트를 타기 전 입소문으로 생각보다 넓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는데, 이 정도로 넓을 줄은 몰랐다. 다시 타게 된다면 앞 좌석보다 뒷 좌석을 위주로 타고 싶을 정도다. 뒷 좌석에 열선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은 참고해야 겠지만 에어 벤트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트렁크다. 여태 본 동급 세단 중에선 가장 크다. 제원상 설명으론 골프백 세 개를 넣고도 남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럴 일은 흔하지 않다. 골프백보다 감귤 박스가 몇 개나 들어가는지 진정한 패밀리 세단이라면 이게 더 의미가 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 등 몇 가지 편의 기능들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한계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준비된 파사트 1.8 TSI의 기능들을 헤아리면 그렇게 나쁘다고 평가할 만한 구석은 없다. 이 정도의 옵션 구성을 감당할 운전자라면 어디까지나 말그대로 옵션일 뿐이지, 필수는 아니니 말이다. 글쓴이가 시승한 파사트 1.8 TSI 스포트의 차량 가격은 3,730만 원, 스포트 패키지를 뺀 기본 모델은 3,530만 원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 차의 경쟁 대상이라 한다면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캠리 XLE(3,390만 원), 현대차의 그랜저(3,546만 원, HG240 모던 풀 옵션 기준)을 지목할 수 있을 텐데, 앞서도 말했지만 편의 사양은 열세다. 그렇지만 공간과 트렁크 용량에선 파사트 1.8 TSI가 우위에 서 있다. 연비도 경쟁 모델보다 근소하게 앞선다. 캠리는 17 인치형으로 11.5 km/l, 그랜저 HG 240은 18 인치형 휠타이어로 11.1 km/l다. 이런 점에선 파사트 1.8 TSI를 구매할 가치가 있다. 물론 옵션을 위해 참을 수 있다면 8세대 파사트를 기다려도 나쁘진 않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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