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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산을 버린 남자...
Date : 2002-7-31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면 동네까지 갈 거 같다. 카고백 치우고 작은 배낭을 꾸렸다. 동결 비빔밥 4개넣고 침낭하고 매트리스만 달고나니 마음이 가뿐해진다.
고소포터들 ABC로 떠나고 여선생님들 바로 앞의 돌산으로 등산가고 바상셀퍼하고 연락관도 베이스 뒤에 있는 모레인 언덕으로 바람쐬러 나갔다.
만재하고 김숙임 선생님은 철수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제 마무리못한 C1 건설을 한다고 무전 연락이 왔다. 만재가 나보고 자기가 내려갈 때까지 하산말라고 그런다. 나도 그럴 마음이었는데 나혼자 베이스 있자니 이거 마음이 싱숭생숭...모레정도면 철수할거 같지만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고소포터 기다리고 혹은 바상셀퍼하고 연락관 고생시키기 보다는 나혼자 조용히 떠나는게 좋겠다는 결심을 했다.
대원들한테 쪽지 한장씩 쓰고 연락관이 좋아하는 나의 OR모자 선물로 그 사람 자리에 던져두고 바람처럼 베이스를 빠져 나오는데 꼭 누가 날 또 붙잡을 것 같은 마음이다.
하늘이 나한테 기회를 주는거 같다. 아침에 싸토판스호수에서 물에 빠져서 퍼덕이는 나비를 구해줬더니 그 나비가 나한테 보은을 하는가 보다. 나비가 살아날려고 퍼득거리듯이 나 또한 나한테 닥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퍼덕임이 아닐까?...
10시쯤 나와서 지금 시각 15시 17분.
Mana가 보이는 언덕에 있다. 혼자가면 위험하다고 난리치던 이곳을 비리비리한 몸으로 5시간 17분 걸려 물론 1시간정도 더 가야하겠지만 빠져 나왔다.
모레인 지대의 너덜언덕을 수십개는 지나왔다. 미끄러지고 숨을 헐떡이고 동결비빔밥도 먹고 쉬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한번도 사람을 만난적이 없다. 오히려 만나는게 더 부담 되었겠지. 결국 나는 넘어왔다. 기도도 하면서. 어쨌거나 대단한 권정철이었다.
16시 10분에 Mana도착 6시간 10분 걸렸다. 물론 짐이 적었지만 이걸 들어올땐 2박 3일 걸려서 왔던 곳이었다. 한 20여킬로가 될까?...
지난번 포터들 짐 내린데서 상황을 살폈더니 정기버스는 없는듯...그래서 삐죽삐죽 걸어나오다가 택시같은게 나오길래 손을 들었더니 섰다. 손님이 있었는데 바드리나스까지는 어떻게 왔는데 이 손님들 거기서 다 내리고 내가 목표로 한 조시마트는 안간다고 한다. 기사가 돈받을 생각을 안해서 나도 안줬다.
거기서 동네애들한테 내가 가지고 있던 비상식 과자를 줬다.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부모있고 집도 있는 애들같은데 거의 거지의 행색이다. 더 달라는 까만 얼굴에 번떡이는 하얀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공용터미날에 와서 알아봤더니 16시반에 버스가 끊긴다고 한다. Mana에서 혹시나 택시 안나오나해서 길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젊은애들 와서 잘려면 자기 호텔로 오라고 몇번이나 그런다. 알았다. 좀 더 기다려보고 그렇게 하겠다. 차가 있을 것이다. 그러는데 애들은 무조건 없단다. 나는 속으로 있어 임마!! 그랬다.
바람 차가운 길바닥에 있자니 한국말하는 여인네들 둘 버스에서 내려 내 뒤에 있는 호텔로 들어간다. 나도 숙소를 정해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결국 택시가 하나왔다. 합승.
날 어느 산골에 데려가서 홀라당 벗기지는 않겠지 그러면서 근 1시간 정도 절벽길을 쌩쌩 달려 조시마트에 도착. 일은 착착 진행이 되고 있는 셈이다. 40루피 달라는거 50루피 주었더니 좋아한다. 이 기사, 노래도 하고 산길에서 나무하고 돌아가는 아가씨들도 공짜로 태워주고...하하 간만에 마음에 드는 인도인이다.
바드리나스에서 게스트하우스 호객행위하던 불쌍한 애가 마음에 걸렸는데 다행히 이 차를 만나서 무사히 여기까지 오니 감개가 무량하다. 하나님은 역시 나를 버리지 않으시네...만세 나의 하나님...
배가 고파서 조시마트 중심가에 있는 식당에서 Vegitable Fried Rice 30루피나 하는거 시켜놓고 있는데 옆자리에 인도 머플런지 담요인지 파는 아저씨 둘이 들어와서 작은 감자 같은거 하나 시켜서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보고 하나 사라고 그런다.
이 사람들 보면 눈물이 난다. 슬픈 인도라더니 진짜 너무 슬프다. 난 이 사람들 눈빛만 보면 왜 자꾸 슬퍼지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머물던 닐칸트 호텔에 왔더니 수중에 치약이 없어 치약사러 나갔다. 콜라도 하나 사먹고 비누도 하나사고 사과, 바나나도 사왔다.
오랫만에 인간답게 샤워를 시원하게 하는데 여기가 고지인 만큼 추워진다. 마구마구 신나게 걸어와서 후끈후끈해진 나의 불쌍한 다리와 함께 엎어져 있다.
배가 부른데도 바나나를 3개나 해치웠다. 더해서 사과도 하나 먹을 작정이다. 거울로 얼굴을 보니 코가 햇볕에 많이 탔고 수염은 덥수룩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눈탱이는 쳐져서 10년은 더늙어 보이는 얼굴이 되어있다.
여유롭게 내일은 이 동네 머물면서 사진이나 찍어볼까 그러는 중이다. BC에서 다 죽어 갈때가 몇시간 전이었다는걸 생각하니 참 사람이란 간사한 동물이라는걸 느낀다.
Date : 2002-8-1
05시 11분 기상.
산에서의 습관대로 일찍 눈이 떴다. 그 불멸의 밤이 산을 내여오자 씻은듯이 사라졌다. 밖엔 개스가 가득하다. 뭘할까 망설이다가 산책이나 하자고 세수하고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갔다.
시장통을 지나 가서 어느곳에선가 앉아서 가만히 개스가 덮여있는 도로에서 나타나는 사람들 구경하고 있자니 술취한 셀퍼족 한사람 나한테 말을 건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뭔가 땡기는게 있다.
직업이 없단다. 새벽부터 아님 새벽까지 술에 취해있는 인도의 현실...
09시 30분에 첫차가 있다고 해서 맞추어 나갔다. 배낭은 버스 지붕에 싣고 나는 이제 달린다. 큰동네 나오면 서고 사람이 손을 들어도 기사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달린다.
내 뒤에 인도 젊은애들 3명이서 어딜 가는지 한참이나 떠들고 내 시계가 특이한지 구경도 하고 고도가 지금 얼마 나오는지 물어도 보고 그런다. 영어를 그다지 잘하진 못한다.
13시 33분. 달이라는 죽하고 자월이란 밥을 시켜서 먹었다. 버스에 탔던 인도 젊은애들이랑. 버스가 하루종일 달리니 군데군데 차도 먹고 밥도 먹고 그러는거 같다.
따가운 햇볕아래 기를 쓰고 차는 달리지만 그래받자 하루에 200km정도밖에 못간다. 도로사정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인도가 땅도 넓지만 사람또한 대단하다. 깊은 산중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또 할일없는 사람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할일이 없으니 맨날 잠만 잘수밖에...그래서 못사는 나라일수록 행복도가 높게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19시 10분쯤 리시케시에 도착.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가운데 무슨 축제가 있는지 사람들 차지붕까지 올라가서 밤거리를 달리고 소리지르고 그런다.
어느 아담한 식당에서 짜파티 4장에 달, 그리고 뜨거운 커피에 양파, 마늘, 오이까지 먹고나니 포만감이 마구 엄습한다. 아...이제 달과 짜파티에 매혹되었다고 할까?...
바같엔 오늘이 힌두축제인지 아직도트럭 꼭대기까지 사람들이 올라타고 시끄럽게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어슬렁 거리다가 길거리 아이스크림 불량식품을 사먹고 있자니 비옷파는 애들이 오길래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주니 그 큰 눈망울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래 말이 필요없다. 그런 얼굴표정만 지으면 된단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잠자리를 찾아서 간다.
아까 아이스크림 팔던 청년이 음료수 주문한 사람한테 음료수 만들다가 잔이 깨지니까 신경질적으로 자기뒤에 있는 시궁창에 홱 던져 버리는 그 적나라함에 질려 버렸다.
인도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유프라데시인지 유프라데스인지 지금 내가 있는 주 하나의 인구가 1억이 넘는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니 사람이 많을 수 밖에. 땅도 넓다지만 온갖 곳에 사람이다. 중국은 땅이라도 크지 여긴 그러지도 않으면서 인구는 무지 많다보니 어디가나 웬통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Rishikesh Shivlok Hotel 150루피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장 선풍기가 있는, 마치 전후 1950년대 한국상황같은 방을 잡고 밀린 빨래를 했다.
내일까진 마르겠지...
Date : 2002-8-2
04시 30분에 기상.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으면 첫차를 탈 수 있었는데. 어제 프론트에 알아봤더니 첫차가 04시 30분에 있다고 했다. 아침밥은 동결 비빔밥이다. 평지에선 이렇게 맛있는데 산에선 왜그리 먹기가 싫었는지 이해가 안간다. 진짜 맛있다.
호텔을 나와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 한참 헤맸는데 진짜 책에 나온대로 인도사람들 심했다. 델리가는 버스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저기 가라면 저기 가고 이리 오라면 이리오고 근 1시간을 왔다갔다 하다가 드디어 06시 4분 델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웃기는건 종점에서 이리저리 인도하는 차장 아저씨는 이 버스를 타라고 하는데 미심쩍은 내가 버스기사한테 가서 델리 가느냐고 물어봤더니 안간단다. 와~ 차장은 간다 그러고 기사는 안간다 그러고. 다시 차장한테 가서 재차 확인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버스를 탔다.
내 배낭을 차 지붕에 올리기 싫어서 기사 맞은편 자리 공간에 배낭을 두고 혹시 이 버스가 박치기 하더라도 덜 다치게 제일 앞자리는 앉지않고 두번째 자리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 차장이 와서 130루피를 받아간다. 어제는 젊은 차장이었고 오늘은 기사보다 나이도 많고 더 많이 아는듯한 얼굴의 차장이다. 버스값은 무지 싸다. 어제는 10시간을 달렸나 그랬는데 150루피였고 오늘도 그 정도는 달리는데 130루피다. 47루피가 1달러니 3달러 정도한다. 하루종일 가는데...
버스안에는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이 탔는데 외국인은 나 뿐이다. 버스의 구조는 옛날 내가 아주 어릴 때 탔던 기사옆에 엔진룸이 불쑥 튀어나온, 기어넣는게 마치 긴 작대기같은 그런 버스. 내가 앉은 곳만 운전수 옆얼굴을 보게되어있고 나머지는 모두 운전수 뒷통수를 보도록 되어있다. 한쪽은 3사람이 앉도록 되어있고 또한쪽은 2사람이 앉도록 되어있다.
07시 37분에 어느정도 큰 동네에 이러렀다. 차가 쉬길래 나가서 정류장 플랫폼에 있는 가게에서 빵하고 음료수를 사먹었다. 이젠 엉덩이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다. 어제 10시간을 덜컹거리며 달렸지, 오늘 또 그렇게 달릴 생각을 하니 전율 그 자체다.
09시 49분. 또 어느 도시. 나가서 빌빌거리다가 거지에게 2루피를 줬더니 돈에 입을 맞춘다. 여전히 구름이 덮힌 날씨. 불쌍한 인도, 넘치는 사람들...창밖에 손 내밀고 쉬고 있자니 나한테 이 버스 어디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 말로 물어보는데 이 사람들이 날 놀리나? 싶으다. 이젠 내 몰골이 인도내 살고있는 셀퍼족으로 보이나보다.
졸다가 내 모자가 차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고어텍스 OR모자는 연락관한테 넘어가고 내가 좋아하던 Fifty Five인지 Forty Five인지 야구모자는 지금 막 창밖으로 날아가고.... 어제 호텔에서 자기전에 깨끗하게 빨아서 밤새 천장선풍기 밑에 말려 놓은건데말야.
차가 새로운 마을에 들어갈 때 마다 쉬게 되면 여러 장사치들이 차안에 들어와 물건을 판다. 과일즙을 넣은 음료수를 팔길래 사먹었더니 맛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어제부터 무슨 행사가 있는지 울긋불긋한 치장을 한 장대에 작은 단지같은거 양쪽에 하나씩 든 분홍색 옷의 많은 사람들이 아스팔트길을 걸어걸어 가고 있다. 중간중간 쉼터도 만들어서 누워있기도 하면서.
인도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차가 쉴 때 주변에 지나가는 인도사람들을 살펴 보았다. 배가 나온 사람과 배가 나오지 않은 사람. 그래도 아직은 배가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거기에 말과 소, 릭샤와 소음, 장사꾼과 지저분함, 넘치는 빈곤과 오래된 자동차, 교복입은 학생들과 놀고 있는 택시들, 흰옷입은 사람들과 거리의 우중충함, 이상한 모자와 인도인들의 애원하는 눈빛, 수건으로 얼굴 덮은 사내와 터번 두른 남자, 남자 성인들의 덥수룩한 수염과 여자들의 삐어져 나온 허릿살...
12시 30분. 차가 가다가 어느 동네에 갑자기 섰다. 기사 아저씨 말도 없이 나간다. 점심시간이다. 우습다. 기사도 차장도 그 누구도 이야기를 안해도 모두들 우루루 기사가 들어간 식당으로 간다.
밥에다가 잘라놓은 작은 고추(맵다)를 넣고 소금하고 섞어서 점심을 먹었다. 15루피. 어제는 10루피였는데. 짜파티는 델리가서 먹어야겠다. 벗어놓은 썬토시계의 온도가 37도를 가르킨다. 여기는 인도다. 지금 바람도 없고 그냥 한증막이다. 난 그래도 반바지에 쿨맥스 티를 입고 있는데 얘네들은 긴바지, 긴팔을 거의가 입고 있는데 얼마나 더울까? 싶으다.
15시 10분에 꿈에 그리던 델리 도착. 가만히 보니 오늘은 9시간 버스를 탔다. 지금 오토릭샤 타고 시카르 여행사로 간다. 거기가서 비행기표 고쳤나 확인하고 서울갈 때 까지 잠자리 주선을 부탁해야 한다.
터미날에서 델리 시내 중심가인 이곳에 오는게 70루피이니 어제와 오늘 하루종일 달리는 버스값이 얼마나 싼지 실감이 난다. 다시 찾은 델리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소음과 사람들로 나를 맞이한다.
무굴이 있다가 나를 반긴다. BC에서 신선한 야채와 등반에 필요한 나이프하켄을 원하고 있다고 했더니 11일 들어갈 때 제공을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번에 내가 출국일자를 땡겨 달라고 맡긴 비행기표는 옵션에 걸려있는(아무래도 싼게 비지떡...) 비행기표여서 그냥 보관만 하고 있었다. 원래 출국날짜는 9월 6일인데 땡겨서 간다면 8월 12일과 8월 23일만 가능하다고 여행사에서 이야기한다. 오 마이 갓!...내가 빨리 나왔는데도 바로 가질 못하네...
출국전 숙박을 전에 지내던 IMF(인도산악협회)에 묵을 수 있는지 봐 달라고 했더니 이번에 한국원정팀이 새로 와서 자리가 없단다. 거기가 제일 싸고 만만한 곳인데 말야.
일단 시급한건 비행기 스케줄 조정이어서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하지 않겠냐했더니 Air India 본사로 가야된다고 한다. 웃기는게 여느 공항처럼 공항에 가서 대기명단에 올려놓고 기다리는게 아니라 여기는 회사에 가서 명단을 올리고 허가를 받아야 된단다.
여행사 소속 직원과 함께 그리 멀지 않은 에어 인디아를 찾아갔다. 일단 여기는 시원하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니. 한국처럼 번호표를 뽑아들고 의자에 앉아 있다가 담당자한테 가서 사정을 이야기 했다. 이거 통과하지 않으면 난 망한다. 한 열흘은 여기서 썩어야하니...
등반중에 연락이 왔다. 고국의 아버지가 병이 깊어서 급히 갈려고 한다. 이번 월요일 새벽 비행기가 안되면 다른 비행기라도 타야할 정도다. 부탁한다. 그러면서 앉은 자세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대기석에 앉아서 기다리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의아해 한다. 쪽은 순간이지만 그 짜릿한 맛은 영원하다를 뇌까리며 내일 와서 확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에어 인디아를 나왔다.
다시 시카르 와서 이번엔 값싼 호텔을 부탁했더니 650루피부터 시작한다. 월요일 새벽에 떠난다면 비싼 호텔도 가능하겠지만 아직 어찌될런지 알 수가 없으니 가장 싼걸로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들어온게 Ringo Guest House란 곳이다. 무굴이 신경을 많이 썼다면서 자기 여행사와 에어 인디아와 중간지점에 있는 숙소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내가 아무래도 여기저기 왔다리 갔다리 해야할거란 핵심을 이야기 한다. 역시 인도 애들은 말빨이 세다.
반지하방. 선풍기가 하나 있다. 라운지로 만든 2층 옥상에는 스카이티브이가 왕왕거리고. 싼거 찾아 온 서양애들이 눈에 뛴다. 독일애들 같다.
밖에 나와 저녁을 먹었다. 짜파티 4장과 난. 하도 맛있게 먹으니 나하고 같이 나온 여행사 직원이 이거 별종이구나라는 투로 본다.
이날 어찌나 더운지 지하에서 튀어나와 세멘트바닥에 매트리스 깔고 침낭을 요 삼아서 누웠는데 이번엔 모기가 난리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들어갔다.
아...이렇게까지 돈을 아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웨이팅 걸어놓은게 잘되면 하루밤만 더 자면 갈수가 있을텐데 Air India 상황을 보니 그런 복이 나한테 올것 같지가 않다. 그럼 기다렸다가 8월12일날 가야 하는데 그럴바에는 다른 비행기타고 가야겠다는 게 내 마음이다. 이래저래 환불이 안되는 비행기표니 이럴땐 무지 손해를 본다.
무슨놈의 비행기표를 이렇게 어려운걸 끊었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등반팀마다 돈아낀다고 가장 싸구려를 끊을테니 웨이팅도 어려운 나라에다가 환불도 안되니 난감난감...
일주일 기다리게 되면 어디 저렴한 인도전역을 도는 패키지관광이 없나 함 찾아봐야겠다. 그러다가도 아...난 갈거야 인도가 나한테 안맞아...그런다.
Date : 2002-8-3
06시 기상.
잠을 자는둥 마는둥. 동결 비빔밥으로 아침 때리고 길거리로 나왔더니 거머리같이 달라붙는 인도 사람들 땜에 기분을 잡쳐 버렸다. 이 사람들은 나의 참을성이 어디까지인가 시험하는 것 같다. 지독하다. 그러니 뉴질랜드에서도 인도사람들 평이 안좋지...
난 이제 어딜가도 네팔리(네팔사람, 셀퍼족)냐고 질문을 받는다. 시커멓고 수염이 덥수룩하니...이거 깎던지 해야겠다. 꼴에 존심은 있어서 일본사람이냐고 묻는 놈한테는 그래도 몇마디 대화를 한다. 흐흐...
티켓은 Air India이지만 비행기는 Asiana인 관계로 지푸래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Asian 사무실 갔더니 문이 잠겨있다. 아마 09시 30분에 업무를 시작하거나 토요일인 오늘은 근무를 안하거나 둘중에 하나일거다.
건물 담벼락에 앉아서 쉬고 있다가 거지아이가 하나 오길래 동전을 줬더니 다른 애들까지 자꾸와서 나한테 엉기니 옆에서 신문보던 인도 아저씨 막 화를 내면서 애들을 쫓아 버린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
Asiana가서 표를 내미니 예상대로 이건 Air India 가야한다고 그런다. 그러면서 웨이팅 확인을 해주는데 와!!! 웨이팅한게 Accept되었다고 착한 눈빛의 인디안 직원이 이야기해준다.
너무 기뻐서 난리를 칠려다가 얘한테 이메일 주소 적어주고 뉴질랜드 놀러오면 꼭 들리라고 했다. 세상이 내꺼란 표정으로 Air India가서 다시한번 확인 했는데 거기 직원 엄지손가락을 쑥 내밀며 축하해준다. 아무것도 아닌게 이 나라는 어렵다.
나의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아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인도를 떠나는구나 생각하니 옴 몸에 즐거움이 마구 솟아난다.
시카르 여행사에 큰 콜라펫 3개 사들고 가서 직원들한테 돌렸다. 내일 일요일을 어떻게 보내나 생각하다가 타지마할 가는 차편을 알아봐 달래서 보니 내일 밤 10시에 돌아오는데 내 비행기는 월요일 새벽 01시다.
너무 촉박한거 같아서 개인택시 관광으로 바꾸니 거기까지 100불인데 마찬가지 밤 10시 도착이어서 포기하고 시내 일일관광이나 알아봐 달랬는데 얘네들은 이야기가 진행이 되다가도 막히면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끝을 안낸다.
시카르 여행사를 나와서 어제 머문 링고 게스트하우스 200루피에서 YMCA 에어컨 없는 방이지만 그럴듯한 곳으로 630루피에 옮겼다. 지금 조용히 창문 열어놓고 빨래 말리면서 침대에서 배깔고 이 글을 쓴다.
여길 찾아 오는것도 보통이 아닌 일이었는데 마지막이라고 들어간 인터넷 카페에서 인도 노신사를 만났고 이 양반이 자기가 여기를 가르쳐주겠다고 해서 따라왔다. 웬만하면 인도사람 따라가질 않지만 이 시커먼 얼굴의 노인네는 뭔가 달라 보였다.
억수로 나쁜 발음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모르겠다. 왜 우릴보면 맨날 남이냐 북이냐로 시작하는지...미국이 한국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이야기 하네... 좀 틀리지만 맞는 말이다.
YMCA오기전 YWCA갔더니 손톱에 때 낀 여직원이 자기들이 훨씬 좋다고 YMCA가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YWCA가 200루피정도 더 비싸다. 물론 에어컨이 있어 그렇지만. 에어컨은 나한테 사치다 싶어서 여기로 왔다.
YMCA 오는 도중에 릭샤꾼이 와서 치근득 거린다. 200루피에 에어컨 나오는 호텔이 있단다. 안간다고 했는데 했던 말을 또하고 또한다. 나중엔 일본말까지 하면서 달라 붙는다.
YMCA왔더니 이번에는 프론트의 접수가 한참이나 까다롭다. 이 나라는 이런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지 않는한 후진국을 벗어 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마 사회주의의 체제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인듯...
700루피 주었더니 잔돈은 나갈 때 받는다나?...일하는 아저씨, 내 배낭을 받아들고 4층 객실로 안내를 하면서 이것저것 자랑이 많다. 자랑할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방에 와서는 나갈 생각을 않길래 10루피를 건냈더니 좀 적다는 표정으로 그제서야 나간다.
내가 거지를 주면 줬지, 주고나서 보니까 괜히 기분이 나쁘다. 아...인도 정말 되는것도 없고 안되는것도 없는, 인도라는 나라...
아까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준 새카만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나한테 물었다. 인도의 느낌을...
큰 나라, 또한 많은 인구, 놀고있는 남자들. 강력한 지도자가 나라를 계획적으로 산업화 시키는게 필요하다라고 했더니 며칠 있었느냐고 그런다.
2주가 좀 지났다고 그랬더니 뭐라뭐라 그런다. 그래...내가 너무 나섰다. 영국도 마음대로 못한 이 거대한 나라를 내가 감히...
일단 샤워부터 하고 밀린 빨래도 하고 그랬다. 아늑한 방이 정해지니 그래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뭐니뭐니해도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는 것...앞으로 잊지 말자.
신발까지 빨고 누워 있다가 맨발로 걸어나가 YMCA 정문앞에 앉아 있으니 이번엔 마음씨 좋아보이는 릭샤 아저씨가 와서 말을 건넨다. 이번엔 일본말...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맨발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안될거 같아 이 아저씨 릭샤를 타고 선물용품 사러갔다. 담요 450루피 짜리 200루피에 10장 하자니 아무래도 안되는가 보다. 첫 집은 실패. 다른 집 가서 350루피 부르는거 210루피에 10장 사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냥 나갈려다가 보석도 팔고 있어 이것저것 우리집 여자들 줄걸 샀다. 이렇게 선물까지 조목조목 사는건 이번이 처음이다. 남들은 BC에서 C1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난 여기 나와서 쇼핑이나 하고 있으니 나란놈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맨발로 더러운 델리 시내를 돌아 다녔는데도 어디 다친데는 없다. 재수없으면 파상풍으로 황천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저녁으로는 여기 식당에서 부페를 먹게 되어 있었는데 아까 체크인 할 때 보니 내일 아침 식사까지 제공으로 나와있다. 흐뭇…
오늘 여기서 무슨 모임이 있는지 로비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 에어컨이 있어 무지 시원하다.
부페식당에는 음식이 한 7-8가지가 있었고 이것저것 배불리 먹고 있자니 역시 여행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20시쯤 취침. 창문을 열어놓은 데다가 천장의 선풍기까지 돌아가니 시원하다. 뒷뜰에 수영장이 있어 문의를 했더니 저녁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수영복도 없었지만 앞으로는 어디를 가던 수영복을 챙기자 그랬다.
내일 밤에 여기를 뜬다는 생각을 하니 잠이 안온다. 어찌어찌해서 안되는 일을 난 여기까지 추진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가서 해야할 일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엄습한다.
Date : 2002-8-4
02시에 잠이 깼다.
바깥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천장에서 돌아가는 큰 선풍기를 껐다. 그랬는데 웬 비둘기가 한마리 날아와서 내가 열어놓은 창가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난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06시 기상.
목이 뻐근하다. 일어나 체조 좀 하고 가스라이터 불이 잘 안나오는걸 잘 나오게 한참이나 쪼물딱 거렸다. 고쳤다.
오전에는 여기서 빌빌거리다가 12시 이후엔 나가야 한다. 공항으로. 어제 그 릭샤 아저씨, 가만보니 릭샤꾼중에선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던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사람한테는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하지 않는 어떤 그만의 노우하우, 기술이 있는듯했다.
애들한테도 배운다고 했는데, 좋다...나는 너를 배운다. 그래서 나의 새나라 뉴질랜드에 가서 너를 능가하는 장사꾼이 되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제 그 아저씨의 릭샤에 내릴 때 오늘 차편을 부탁했더니 거기서 머물던 릭샤가 아닌 택시기사를 소개해 주어서 12시에 정문앞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아침먹고 왔다. 어제 저녁과는 다르게 토스터와 커피 뭐 이런 간단한 거...더워서 또 샤워하는데 때가 막 나와서 밀었다. 서울가면 목욕탕부터 들러야겠다.
이제 겨우 09신데 뭘하나 그런다. 배낭메고 돌아다니는것도 마땅찮고...그래서 YMCA안에 있는 인터넷을 60루피나 주고 했다. 시내 인터넷 했던 집보다 두배는 비싼가 보다. 체크아웃땜에 1시간도 못하고 비싼 돈 주고 나오니 속이 상해서 씩씩 거린다. 내가...
그때 쓴게 바로 밑에 있다(한글 안나옴).
This is YMCA hostel in Delhi.
After 30 minutes, I will going to Indira Gahndi Airport and be take up airplane to Seoul at 01:10 Monday.
It was so long & difficulty travel to me and I'll never forget this expedition which so much terrible and my bad condition, miss family...
I wish good luck for our remain members in Mt. Chaukamba. When I leave Mt. Chaucamba BC, they tried Camp I constructing.
Today's weather is clody but my mind is sunny...
I love Korea.
I love my family.
I love you who knows me.
Thanks for god.
12시경 숙소 프론트에 가니 내앞에 수속밟는 두 팀이 있었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 나가는 것도 얼마나 복잡한지 쓰잘데없는 이런 것들이 이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는게 아닌가 한다.
정문으로 나가니 어제 약속한 택시 기사가 날 알아보고 태운다. 공항으로 가면서도 내심 내가 무사히 인도를 빠져나가는건가?...이 사람들이(두명이 더 있었다) 날 어떻게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인도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길거리엔 아직도 물동이를 어깨에 걸치고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고 공항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300루피나 되는 택시요금을 계약했으니 멀기도 하겠구나 그랬었다.
여기 기사 아저씨 이것저것 물어 보는데 얼마나 발음이 이상한지, 무슨 말인지 못알아먹는게 태반이다. 카고를 카르고라고 발음하는, 인도영어는 R 발음을 소리나게 발음하는게 가장 큰 특징일듯...
드디어 공항에 왔다.
들어 갈려고 하니 웃기는게 총든 군인들이 출입구를 지키는데 출발 3시간전에야 들어 갈 수 있단다.
01시 몇분에 출발인데 지금 시간이 13시가 안되었으니 자그만치 12시간을 여기서 죽쳐야한다.
이렇게 시간되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여타 공항들처럼 탑승날짜를 바꾸기 위해서 공항으로 갈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공항건물 안으로 안들어가고 이 더운데 왜 밖에 나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건너편 에어컨 나오는 건물에서 대기할려고 갔더니 25루피를 내어야 들어갈 수 있단다. 들어가서 어제 사둔 땅콩을 한참이나 까먹고 거기서 나오는 스카이 티브이 구경하고 있다. 여기가 시원하니 공항 경비대 보초교대하는 군인들도 티브이 보고 쉬고 그러고 있다.
마침 권선징악이 주 소재인 인도영화가 하나 방영되고 있었는데 나도 재미있게 보고 군인들도 흥이 나는지 중요장면에선 감탄도 하고 그런다. 한 20년전의 영화 같은데 내가 보기엔 요새보다 그때가 더 배우도 잘생기고 사는 정도가 나아 보인다. 아마도다. 저때가 인도의 전성시대가 아니었나 싶으다.
에어컨이 너무 세게 나와서 파일자켓 꺼내 입었다. 지금 16시 36분이니 아직도 엄청 남았다. 적당한 시간에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 밥먹으로 가면서 이곳을 나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도 꼬마가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나한테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얘는 인도말로 묻는다. 나는 영어로 이야기하고...대충 애 이름하고 여기 매장에서 산다는 거 뭐 이런걸 알았다. 줄게 하나도 없어 뒤적이니 아람이가 나한테 준 설록차가 하나 있어 건네주고 종이 찢어서 오목을 하는데 얘가 이해를 못해서 재미가 없었다.
17시 40분에 밥먹으러 나왔다. 바로 옆 식당인데 인도인 아닌 사람이 많다. 짜파티 4장에 달과 양파 시켰더니 웨이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마지막으로 맛있게 먹고 가야지 그랬다.
지금 내 뒤에서 밀가루 반죽하는 소리가 들린다. 공항이어서 그런지 값이 무지 비싸다. 시내 같으면 2-30루피면 되는데 144루피를 달랜다. 인디아는 먹는게 비싸다. 로칼버스는 무지 싼편이고...
다시 내자리로 돌아가는데 입구에서 제지하길래 돈 낸 표를 보여줬다. 원칙은 뭐 6시간인가? 그 이상은 있을 수 없도록 되어있다.
20시 9분. 아직도 5시간 남았다. 오늘 낮 12시에 나왔으니 13시간 기다려야 하는것 중에 절반은 이제 지나갔다. 아~ 지겹다.
22시 51분. 짐 보내고 보딩끝내고 앉아 있다. 이 후진 인도 공항에 나 혼자 앉아 있자니 새삼 조국의 중요성과 가족의 소중함을 알수가 있다.
23시 43분. 탑승하기 직전 남은 돈으로 콜라 사먹으니 이젠 정말 끝났다. 결국 인도를 떠나긴 떠나는구나...이곳이 자유로운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이상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았고 까딱 잘못 풀리면 영영 떠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항상 머리속에 있었다.
앞으론 좀 더 자유로운 국가를 여행하는게 좋지 않을까? 를 생각하면서 나는 간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으로...
제4부 다시 서울 그리고...
Date : 2002-8-5
비행기가 날았다.
시계를 한국시간으로 고쳤다. 05시 15분. 여기 인도 시간으론 01시 45분. 01시 10분에 출발했으니 30분 지났다. 옆에는 슈가라는 이름의 인도사람이 탔는데 한국이 처음이라고 한다. 말이 없다. 물어보면 많이 가르쳐 줄텐데...
09시 19분 사람들 모두 자고 있다.
비행기의 이 많은 인도사람들이 서울로 왜 가는지 뭐하러 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좌석이 꽉 차 있는데 어떻게 나의 웨이팅이 승낙되었는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된다.
11시 55분쯤 도착예정이라더니 50분에 도착했다. 비가 온다고 하더니 비는 없고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그놈의 내 배낭은 제일 늦게 나오는 거 같다. 도착후 근 1시간이 지나서 공항을 빠져나왔다.
상계동 오월이네집 가서 지난번에 맡겨놓은 짐 찾아서 고속터미날로 갔다. 오월이는 학원가고 없었다. 내가 경비조로 가지고 나온 공금 500불을 맞추어놓고 나중에 내짐 부쳐달라고 10만원 남겨두고 나오는데 괜히 오월이 엄마한테 미안하다.
고속터미날와서 우등타고 간다.
Date : 2002-8-6
하루종일 먹고자고 그런다.
조카 오영이는 키가 나만해졌다. 소아당뇨로 2주간 입원까지 했다고 한다. 오태는 울산 작은 아버지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엔 비가 와서 난리가 난 가운데 이제 남부지방에도 비가 올거라고 하는데 아직 본격적인 비의 기미는 없다.
Date : 2002-8-7
시내 나가서 고속버스 표 예매했다.
오다가 삽겹살도 사고 수박도 사고해서 점심으로 또 엄청먹었다.
여기도 이제 비가 오락가락.
아침에 성배하고 통화했더니 부탁한거 진행중이란다. 토요일 오후엔 학교가서 그동안 날 만나고 싶어하던 우리반애들이랑 등산반
애들이랑 만날려고 한다.
또 바쁘게 생겼다.
민열이도 봐야하고 여행사쪽에도 가보고 해야하는데...
Date : 2002-8-8
동철이 잘 나가나보다. 에쿠우슨지 뭔지 현대에서 히딩크에게 준것과 같은 차에 기사까지 있는 차를 타고 다니나 보다. 나하고 한잔 한다고 집으로 차를 보내왔다. 비가 칙칙 오는데 신호대기 할 때 보니까 무지 조용한 게 유리창 와이퍼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더라...
신개발 주택단지에서 훈제 삼겹살집을 한다는 용순이 가게로 와서 한잔했다. 동철이 이 자식은 내가 이민 갈때는 아무소리 안하더니 이제는 빨리 들어오라고 난리다.
칼을 아직 빼지도 않았으니 기다려라...한번 휘둘러보고 안되면 들어갈거다 라고 이야기하는 내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내가 가는 앞길이 보이질 않는다. 이미 얘는 사업이 더 이상 발전이 없을 정도로 커진 상태...그래 큰소리 칠만도 하다.
용순이만 나의 의견에 동의를 해준다. 고맙다. 그래도 내편이 아직 있으니...아직도 속이 안좋아서 그 맛있는 훈제 삽겹살을 많이 먹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한잔 더 하자는 동철이의 마음도 알지만...
Date : 2002-8-9
고속버스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전 같으면 귀경이라고 할텐데...마침 집에 울산의 동생이 와서 어머니는 덜 섭섭한듯 하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으랴?...
수많은 불멸의 밤을 뉴질랜드에서 보낼 때 나의 공허함 속에는 한국의 그 모든것이 담겨져 있었다. 안 당해본 사람은 절대 이해못하는...형제 부모도 그립지만 한국의, 서울의, 중랑구의, 학교의, 묵동의, 봉화산의, 북한산의, 설악산의....
그 모든것이 나를 확 뒤집어 놓곤 했다. 한국같으면 소리도 지르고 뜀박질도 하고 산에도 가고 전화질도 하고 난리를 칠수 있지만 그곳은 그렇게 못하는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서울로 다시 왔다.
나의 모든것이 시작되고 종결된 서울로.
빡상집에 갔다. 둘이서 안방을 차지하고 있자니 제수씨한테 미안하기가 그지 없다. 빡상이 있기에 나는 영란이라는 학교를 또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Date : 2002-8-10
오전에 두루두루 다녔다.
산지회사에
민열이 사촌동생의 여행사에
옥선형의 여행사는 이사가서 땡~
인정이형님 만나서 점심 얻어먹고 바지 하나 얻어입고 그랬다. 언제 함 오실 거 같네.
원래 목적한 e-Mountain은 도저히 시간이 안되어서 못갔다.
학교가서 작년 우리 반애들 만나고...
등산반 애들 만나고...
그랬다.
고마운 우리 애들...
비오는 학교...
여기 있을 때가 그립다.
빡상, 한기홍, 손성배, 나 이렇게 모여서 맥주먹고 당구치고 국수먹고 그랬다. 순간순간 어떨땐 눈물이 났다.
서무실에서 강선생과 반가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집들이 한다는...민열이 집에서 이번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다기에 민열이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제는 비가 온다.
성겸이하고 대균이 그리고 처음 보는 두사람...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웃기는 이야기가 많다.
민열이는 거실에 자고 나는 애들 방에서 잤다. 간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졌는지 민열이는 추워서 혼났다나?...
Date : 2002-8-11
아침 일찍 민열이차로 인천 공항으로 갔다.
안개도 끼고 비도 오고...지금 전국엔 물난리다.
싱가폴 도착 1시간 전부터 비행기가 무지 흔들렸다. 내가 비행기 탄 이래 이렇게 오랫동안 심하게 흔들려본건 첨이다. 어지럽다. 겁도 나고...난 여기서 죽으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흔들리는지 컵에 있는 물을 못먹을 정도였다. 한번씩 비행기가 뚝뚝 떨어지는데 마치 바이킹을 타고 있는듯 하다.
싱가폴 창이공항에 내려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 7시간정도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땜시 이번 기회에 싱가폴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할겸...
여기는 Visa없이 잠깐 나갈 수가 있다. 비행기에서 본 싱가폴 에어라인의 공짜 투어버스를 탄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는데 내가 뭔가 잘못 묻고 있는지 여기 가면 저리 가보라 그러고 저기가면 여기 가보라는 투다. 인도도 아닌데...
그러다가 공항 밖에서 버스 안내하는 아저씨한테 물으니 이 버스는 시내에서 탈 수 있는거지 여기서는 못 탄다나?...어리벙...아까 내가 지나가는거 분명히 봤는데.
에이...그러면서 전철을 탈려고 갔더니 이번에는 동전이 없다. 동전은 개찰구 옆의 사무실에서 교환해 준단다. 전철은 주전철 하나에 몇개의 지선이 있는 상태...
집들이 단정하다. 구역정리를 잘해 놓았고 시내 곳곳에 나무가 많아서 마치 공원속으로 들어온듯한 느낌이다. 이 나라의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한참 높지만 그다지 잘산다는 느낌은 안들었다. 기울어져가는 부자집에 온듯한 느낌...
내가 목표로한 가든인지 뭔지는 갈아타기를 잘못해서 못가고, 포기하고 그냥 가장 번화가에서 내렸다. 아마 시청쯤 되었을거다. 사람들은 다양하다. 말레이계, 인도계, 중국계...
강인지 바단지 연결된 곳에는 관광객이 많았다. 백인 관광객이 특히...여기 뭘보러 오나 그러다가 우리 한국이 뭔가 잘못하고 있으니 시시한 이 나라보다 안오는게 아닌가? 그랬다.
밥먹고 가려다가 시간이 부족한듯해서 줄창 걸어서 다시 전철을 탔다. 창이 공항 가는걸 몇번이나 묻고 확인 했는데 아뿔사! 지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미치겠다. 거의 사람들이 인도수준이다.
정거장 하나쯤 벗어나서 이번에는 중국계 대학생쯤 되는 애한테 물었더니 아...요놈 똘똘하게 가르쳐 준다. 거기서 느낀게 있다. 싱가폴을 다스리는 수상이 중국계이듯이 이 나라는 중국계의 힘으로 운영된다는 느낌...
말레이나 인도계는 똑똑하질 못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공항의 중국식당에서 인도에서 많이 먹던 후라이드 라이스를 시켜서 배를 채우고 어슬렁거리다가 크라이스트처치가는 비행기를 탔다.
중국애들, 인도, 그리고 뉴질랜드 키위들. 내 옆엔 백인 아줌마가 앉잤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그러고 있다.
그런데 내 뒷좌석의 애기땜에 한잠도 못잤다. 울고, 웃고, 떠들고, 엄마도 고생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더 고생스럽다.
지금 시각 07시. 아직도 4시간 정도 더 날아 가야 한다. 어제 밤에 비행기 타자마자 준 저녁은 안먹었다. 배가 불러서...지금도 그렇게 식욕이 땡기질 않는다.
싱가폴 에어라인은 스큐어디스가 될려면 중국계가 아니면 어려운듯. 지금까지 4번의 싱가폴 에어라인을 탔는데 말레이계는 딱 한사람 본거 같다. 그래 너희들이 다 해먹는구나...그래도 싱가폴이 세계적으로 청렴도 1위국가로 나오니 할말이 없다.
Date : 2002-8-12
크라이스트처치 도착.
인도에서 왔다니까 꼬치고치 캐묻고 난리다. 담배 2볼사온거, 보니 한볼만 허용하는 것이어서 벌금을 NZ60불 달라는거 내가 그 담배를 포기하는걸로 무마했다.
음식물이 있는지 없는지 두번 세번 묻는거 두번 세번 없다고 해서 그런지 배낭검사는 다행히 면했다. 뭐 나만 빼고 뉴질랜드 사람이나 방문객이나 모두 짐검사 당하고 있다.
나왔더니 집사람하고 31일날 들어오신 장인어른이 반기고 있다. 아~ 드디어 왔구나...지난달 8일에 나갔으니 1달하고도 4일정도 지났나 보다.
집에 와서 잔디부터 깎고 타이어 못에 찔린거 고치러 갔더니 타이어를 교환해야 한다면서 내일 오라고 그런다. 일 끝나고 애들하고 만나서 친하게 지내는 데니네 집에 인사차 가고 그랬다.
모든게 어리비리하다. 원시사회에서 넘어온 사람 마냥 모든게 다시 시작하는 거 같다. 이제 날씨가 많이 풀려서 우리 집 정원에는 꽃이 많이 피어 있고 고양이 '까미'는 나를 낯선 사람 취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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