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협곡열차(철암~분천 구간)
올 여름 최고 더운 날 중 하루인 8월 11일(일) ‘우리문화답사’팀에 합류하여 영주와 봉
화에 있는 유적지를 답사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절정에 이른 더위 속이지만 출발하는 관광버스는 만원이었다. 답사는 영주 ‘가흥리마애삼존불상’을 시작으로 봉성초등학교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인 ‘봉성리삼층석탑’, 람화사가 폐사되면서 춘양중학교에 옮겨져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서동리삼층석탑’, ‘권진사 댁’, 억지 춘양의 고장인 춘양역 부근의 봉화 의양리 ‘석조여래입상, ‘청암정’을 차례로 답사했다.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이리저리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다가 다음 장소로 옮기고 또 옮겨 다니다보니 땀이 범범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느낌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답사에서 나는 두 가지를 느끼고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탑을 보면서 느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곳에 전해오는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 중 청춘남여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와 백두대간 협곡열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다니는 기찻길
을 환상선(環狀線)이라고 하는데, 환상선(環狀線)은 제천을 출발한 열차가 영월, 추전, 태백, 철암, 승부, 춘양, 분천, 영주, 풍기, 단양을 거치며 둥글게 원을(고리) 그리며 다시 체천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리 모양의 환상선 중 '철암과 분천역'을 오가는 구간을 백두대간 협곡열차라고 한다. 이 구간을 운행하는 관광열차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열차명이 O-train(오!트레인)이다. O는 ‘One’의 약자이며 순환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중부내륙 3도(강원, 충북, 경북도)를 하나(One)로 잇는 순환열차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V-train(브이트레인)인 백두대간 협곡열차이다. V는 Valley(협곡) 의 약자이며, 동시에 협곡의 모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열차가 낙동강 상류를 끼고 운행하기 때문에 이 열차를 타보면 이름을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구간을 지나는 역마다 V자를 표시해 두었으며, V-train(브이트레인)은 분천과 양원, 승부, 철암 구간 27.7km을 하루에 3차례 왕복 운행한다.
이들 역 중에서 인상적인 것이 승부역의 짧은 시(詩)인 “하늘
도 세평이요/ 땅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였다. 이 시는 이곳에 근무하던 역무원 김찬빈 씨가 지었다고 하는데 승부역 승강장에 큰 돌에 새겨진 시비가 서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역인 ‘양원역’이었다. 옆 사진의 제일 오른쪽 작은 건물이 역사이다. 왼쪽 건물은 나그네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간이주점이다. 처음에는 이곳에 기차가 정차하지 않을 정도로 오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다니는 기차만 바라보고 불편한 생활을 하던 주민들이 힘을 모아 자비로 역사(驛舍)를 지은 민자역이 양원역이다. 자비라고 해야 대부분 기본 자재 값이고 나머지 돌이나 모래는 강가에서 현지 조달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전부 마을 주민들이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운반하여 힘들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열차가 정차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힘들 줄 모르고 모두들 열심히 했을 것이다.
이전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았으므로 주민들이 장본 꾸러미를 열차가 이 주위를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던져 놓고 다음 역에서 내려 이것을 찾아갔다고 하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이런 불편이 없어졌던 날, 열차가 정차하는 날, 주민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얼싸안고 울기도 했을 것이다. 이후 이곳 사람들은 이 작은 역사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이 쉽게 이루어짐으로써 드디어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이 기찻길은 단선이다. 그래서 상, 하행 두 열차가 교행하는 역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봉성역이다. 봉성역이나 이 역 주위를 지나게 되면 꼭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주와 철암에 사는 두 청춘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이다.
이 청춘남여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환상선 눈꽃열차’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봉화에서 답사를 마치고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기 위해 철암역으로 가는 길에 봉성역을 지나면서 안내자가 이들 연인들의 이야기를 안내해 주어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도서관 등에 소장여부를 검색했지만 도서목록에 없어 읽지 못했다.
안내자가 전해준 이야기는 이렇다. 젊은 두 남녀가 철암역에서 영주역까지, 영주역에서 철암역까지 승차권을 각각 구입하여 열차가 교행하는 봉성역에 하차하여 사랑을 나누다 정차시간 1분이 지나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로 표를 교환하여 타고 온 반대방향의 열차를 타고 헤어졌다고 한다.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는 단 1분, 이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나 같은 범인의 생각으로는 통상적인 안부를 묻다보면 1분이 지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연인들은 만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또 봉성역으로 오고, 헤어져 돌아가면서 그들의 가슴속으로 나눈 무언의 대화에 의한 사랑이 더 크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만이 소통하는 압축된 언어를 사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처음에는 이 연인들의 사연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 역무원 한 사람, 두 사람 알게 되면서 아름답게 회자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이들의 모습을 기차로 통근하던 한 사람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분이 나중에 이들의 사연을 모티브로 소설을 쓴 소설가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타나야 할 청년이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당황한 아가씨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지도 가지도 못할 처지가 된 아가씨는 하염없이 남자친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후에도 청년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난 후에도 두 사람이 만났던 봉성역에는 청년은 보이지 않고 아가씨 혼자만 넋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고, 승강장을 오가며 서성이다 돌아가곤 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역무원들이 처녀에게 물었다.
처녀는 힘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청년이 일하는 광산의 갱도가 무너져 세상을 떠났다고...” 사랑했던 사람을 잊지 못해 그와 만났던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이 말을 할 때 처녀의 눈에서 이슬이 맺히지 않았을까? 이 상황을 상상해보니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엔 이 이야기가 승부역을 무대로 하는 새 버전으로 각색되었다. 코레일이 발간한 철도스토리텔링 수상작 모음집 ‘레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승부역, 사랑의 자물쇠>가 그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내용을 잠깐 보자.
"처녀는 영주 근처 풍기 인견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청년은 태백 근처에서 일하는 광부였다. 가난한 그들은 자주 만날 수가 없어 일요일만 되면 승부역에서 열차가 교행하는 짧은 5분 동안의 데이트를 즐긴 것이다. 너느 날부터인가 승부역엔 일 년이 넘도록 청년은 보이지 않고 처녀 혼자만 승강장을 걷거나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가곤 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승무원이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처녀는 갱도가 무너지면서 청년이 세상을 떠났고 그를 잊을 수가 없어서 이곳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얼마 후 처녀 역시 승부역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녀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철도스토리텔링, 레일이야기, <승부역, 사랑의 자물쇠>)"
여기서 소개하는 이 연인들의 이야기와 내가 안내 받은 이야기 중 봉송역과 승부역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치한다. 그런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조성하의 철도 힐링투어(동아일보, <조성하의 철도 힐링투어><2>중부내륙권 열차 ‘오트레인’을 따라, 기사입력 2013-04-05)>에서도 승부역이 아닌 봉송역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남여의 거주지가 영주와 철암을 바꾸어 소개하는 글이 많아 어느 것이 맞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들의 사연을 가없게 여긴 역무원이 역 구내에 단풍나무를 심었는데 한 미술가가 그 아래 ‘사랑의 자물쇠’를 채울 조형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봉성역이 아닌 승부역에 있으니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기억하고자 한 사람들의 마음이었을까. 그런데 내가 추측하기로는 이 조형물을 승부역에 설치하게 된 것은 아마 봉성역이 무정차역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전해오는 이들의 이야기는 실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없다”라고 전하기도 하고, 내가 안내 받은 것이나, 앞서본 <승부역, 사랑의 자물쇠>에서 본 것처럼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이들이 부부가 되어 이 길을 찾았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들이 만났던 봉성역은 이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슬퍼해서일까? 현재는 무정차역이며, 직원 3명이 3교대로 역사(驛舍)를 지키고 있는 쓸쓸한 역이라고 한다.
사회가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는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이런 ‘아날로그’적인 사랑을 상상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 친구, 저 친구 만나면서 그물을 쳐놓고 그 중 제일 괜찮은 친구를 선택하는 현대의 젊은이들은 이런 이야기는 전설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순수함은 이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백두대간 협곡열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한 번 쯤 듣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이면서 가슴을 무겁게 하는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는 여심(旅心)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그래서 청춘남여가 사랑을 나눈 이곳 산하가 더 아름답고, 협곡의 강물은 더 맑으며, 하늘이 더 푸른 것 같다.
이런 저런 사연을 담은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협곡을 끼고 오늘도 쉼 없이 달린다. 내일도 그렇게 달릴 것이다. 우리 인간이 만들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는 한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계속 달릴 것이다.
2013년 8월 12일
영주와 봉화를 거쳐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고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