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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밍(naming : 이름 짓기) 마케팅과 전통시장. 왠지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지만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은 딱 들어맞았다. 예전의 삼천포수산시장에서 현재의 시장으로 재단장한 지 4년째를 맞은 이곳은 온통 '용궁'이라는 테마로 전국의 관광객과 손님들을 불러 모으면서 문화관광형시장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삼천포 청정수산물에 '용궁' 테마 접목
옛 삼천포항이 있는 사천시 어시장길에 위치한 삼천포용궁수산시장에 다가가면 전설 속의 용궁과 관련된 캐릭터들이 반갑게 맞는다. 시장 안팎의 벽면은 물론 각 출입구, 옥상 주차장 진입로 아래, 쉼터 등 시장 곳곳에 다양한 캐릭터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시장 옆 우리은행 앞에 설치된 '히스토리 월'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삼천포용궁이야기'라는 주제로 시장의 역사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방문객들이 설치물을 책자처럼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아 눈길을 끈다.
책자처럼 넘기면 '용왕할배', '거북도령', '토실낭자'가 연이어 등장하며수산시장의 연혁, 용궁송과 용궁체조, 12해신, 비토섬 전설 등을 차례로 소개한다. 전통시장에 주제가가 있는 것도 이채롭다.
'우우우 우우우 용궁수산시장 / … / 그대는 멋져요 바다 굴처럼 부드럽고 / 천하장사 장어처럼 힘도 좋아요 아잉 아잉 아잉 / 그대는 멋져요 영리한 문어처럼 나를 잘 알고 / 뼈 튼튼 멸치처럼 나를 안아주죠 / 아잉아잉 아잉 앙앙앙앙앙앙 / 토끼 토끼 토끼 토끼 예 싱싱해 용궁수산시장 / 거북 거북 거북 거북이 오래 오래 용궁수산시장 / … / 여기는 용궁수산시장 언제나 좋은 사람 기다리는 곳 / 여기는 용궁수산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선정 … 스토리텔링 주력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이 이처럼 용궁을 테마로 모습을 탈바꿈한 것은 지난 3년간(2013~2015년) 중소기업청의 문화관광형시장 사업에 선정된데 힘입었다. 이를 통해 사업단이 꾸려지고 해마다 18~19개의 다양한 사업을 펼치면서 스토리텔링에 주력한 결과 방문객과 매출이 크게 늘어나는 등 전통시장의 활력을 되찾고 있다.
현재와 같은 시장 활력의 출발점은 용궁이라는 네이밍부터 시작됐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 상인회(회장 이규철)에 따르면 2013년 당시 임형태 문화관광형시장 사업단장이 처음으로 '용궁'을 시장 명칭에 넣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상인들의 반응이 마땅찮았고, 인근 서포면 주민과 그 지역시의원의 반발도 있었다. 별주부전의 전설이 있는 인근 서포면 비토섬의 용궁마을 주민과 시의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사업단은 설명회를 열어 이들을 설득하고, 결국 시의회의 승인을 받아 용궁 네이밍에 성공했다.
당시 용궁은 바다의 상징이며, 별주부전의 이야기와 시장 가까이에 용이 누운 형상인 와룡산이 있다는 점 등은 지역의 수산시장 네이밍에 적절하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또한 수산시장 활성화에 따른 지역 경제의 시너지 효과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 점도 설득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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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몰리며 인근 서부전통시장도 활기
사업단과 상인회는 용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로봇인형 설치, 상인이 직접 참여한 용궁테마 타일월, 소원그물제작 등을 비롯해 용궁창작 마당극, 용궁체조 개발 보급 등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해왔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은 세심하지만 눈에 띄는 콘텐츠들도 여럿 있다.
그중 매일 오전 11시쯤 상인회 김도철(64) 상무이사가 진행하는 '오늘의 명언' 방송. 김 상무는 상인회의 소식과 정보를 전한 뒤 동서양 고전과 인터넷 등에서 수집한 명언을 들려 준다. 상인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준비했다는 김 상무는 "많은 방문객들이 다른 전통시장에서 볼 수 없다며 신선하게 느끼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또 상인회 사무실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용궁을 주제로 한 아이들의 그림과 함께 지역 출신 박재삼 시인의 작품이 여럿 걸려있다. 인근 노산 공원에 박재삼 문학관이 있는 점을 착안해 시장과 문화공간을 접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예전부터 선어, 활어, 패류, 건어물 시장으로 유명했던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이 이처럼 문화콘텐츠까지 갖추자 시장이 관광지가 되고, 관광객들이 시장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현상까지 있을 정도다. 시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서부전통시장도 덩달아 활기를 띤다고 한다.
5월 27~28일 '전통시장 잔치한마당' 펼쳐
상인회는 시장 옥상주차장과 인근주차장의 주차대수를 근거로 지난해 대형버스를 포함해 약 30만 대의 차량에 110만명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시장 전체 매출액도 재개장한 지난 2013년 6월 29일 이전에 비해 불과 2년 만에 두 배 정도 늘어난 1450억원(2015년 기준)에 달했다고 추정한다.
상인회는 2015년 전국우수시장 박람회에 참가해 그동안의 노하우를 전달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국 각 지역의 전통시장 관계자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중구 상인회장단, 광주 운암시장상인회, 전남 강진 놀토시장과 광주 기아자동차 직원가족 방문 등 견학과 벤치마킹이 빈번해지고 있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의 미래는 더욱 밝은 편이다. 특히 올해 경남도가 펼치는 '전통시장 잔치한마당 사업'에 선정되어 5월 27~28일 '제4회 용궁축원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해마다 시기를 달리해왔던 축원제를 5월 말경으로 고정화해 축제의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프로그램을 보고, 먹고, 즐기고, 느끼면서 관광객과 상인들이 어울릴 수 있는 내용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상인회와 시장 상인들은 용궁축원제에 건어물 낚시, 맨손 장어잡기, 미스 용궁선발대회, 용궁체조경연대회, 풍물패 공연 등 체험과 도전, 어울림 마당 등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 가까이 대형버스 주차장 내년 완공
지난해부터 추진되고 있는 주차환경개선사업 역시 시장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100억여원의 사업비로 추진되는 이 사업이 내년에 완료되면 대형버스 40대를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시장 가까이에 마련된다. 상인회 권정모(65) 관리실장은 "평소 주말이면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차로 일대가 마비될 정도인데 내년이면 시장의 옥상 주차장과 함께 주차난 해소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천 바다케이블카 운행 계획은 상인회와 지역민들의 장밋빛 기대치를 한층 높이고 있다. 시장 뒤편의 각산에서 삼천포대교와 연결되는 초양섬까지 2.43km의 케이블카 공사가 지난 3월 착공, 2017년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사천시는 2018년부터 운행에 들어가면 연간 75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다 바다 속 용궁을 테마로 한 시장에 '하늘손님'이 찾는 것도 시장의 비전을 밝게 한다. 경남도가 경남미래 50년 사업으로 역점 추진하는 사천진주항공국가산단이 내년부터 본격 조성에 들어간다. 조성 공사 1단계 완료 시점도 오는 2020년까지로 멀지 않다. 사천시 인구가 늘어나고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함께 삼천포용궁수산시장에도 밝은 소식이다.
김현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