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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대비
상비군 장기 강화훈련
상비군 구성, 장기강화훈련 돌입 - 쾌음(快音) 속 깊은 재패(再覇)의 꿈
“팀을 창단한 이상 우승을 해야 한다는 욕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그러한 야심 없이 팀을 발전시킬 수도 없다. 다만 나는 우승하고 난 뒤의 불안의 싫다. 쫓기는 것보다는 항상 쫓은 입장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어는 전통의 탁구명문 학교장이 사석에서 한 이야기다. 일단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뒤에는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불안감과 괴로움, 이에 따른 처절한 노력만이 남게 됨을 두고 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우리 탁구종목도 예외는 아니었다. 73년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의 경기종목 대부분은 쫓아야 하는 입장일 뿐, 쫓기는 처지에 놓인 종목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세계정상의 꿈을 이루어낸 우리 탁구 종목은 급격하게 성장하는 세계의 강호들을 떨쳐내고 정상을 유지해야 하는, 쫓기는 입장이 된 것이다. 권력을 잡으면 권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불안도 커지는 것처럼, 한국탁구도 세계제패 이후의 유지책을 두고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는 지난 회에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선수단이 김종필 국무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김 총리가 온 국민의 염원을 담아 우승의 환희를 전 세계에 마음껏 뽐내고 드높일 것과, 오는 75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를 포함한 최소 6년(3연패) 동안의 타이틀 방어를 당부한 것에서 연유한 것이기도 했다.
하여 이에 부응하는 협회의 행보 또한 참으로 신속할 따름으로 고작 4개월이 지난 73년 8월 25일, 여전히 생생한 세계제패의 환희를 떨쳐내고 지리한 장기강화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71년 나고야 세계대회가 끝나자마자 강화훈련을 펼쳐 그 결실로 사라예보 세계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우승을 거둔 우리 탁구는 4개월 만에, 다음 대회인 74년의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와 75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 대비한 3단계에 걸친 장기 강화훈련을 마련, 신진공고체육관에서 1단계 훈련에 돌입했다.
1단계 훈련인 대표 급 선수의 체력 및 정신배양과 상비군, A, B팀 간의 실력 격차를 줄이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또 2단계 훈련은 74년 1월부터 8월까지 실시토록 하고,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여자 전 종목 제패와 남자단체전의 상위권 입상을 목표로 전술훈련을 중점적으로 실시하는 것이었고, 3단계 훈련은 인도 뉴델리의 세계선수권대회의 중점을 둔 유럽 전지훈련과 유고, 스위스, 서독 등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에 참가, 세계정상급 선수들과 대전 경험을 쌓도록 마련되었다.
아울러 코칭스텝은 세계선수권대회 당시의 최정상 컨디션을 오는 10월까지 회복시키기 위해 선수들이 강화훈련에만 시달려 지루해 할 것을 고려. 극기와 함께 자율을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발표했다. 매년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당하는 것보다는 힘들게 얻은 우승을 지켜가는 것이 더 험난하고 외로운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에리사 선수를 포함한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린 정책의 일환이었다. 마음과 기술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심정을 토로, 그 동안 겪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피로가 얼마나 길고 깊었는지를 설명한 바 있는 이에리사는 세계대회 단식 1회전에서 비록 탈락하고 말았지만 자신이 이미 세계탁구의 여왕으로 성장했다는 사실과, 자신에게 걸린 기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선수에게 지고이기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나, 이에리사 자신만은 이겨야한다는 온 타구인, 국민들의 믿음이 또한 이에리사 자신을 더욱 성장시켜갈 것임을 의심치 않았기에 이에리사를 포함한 선수들에게 주어진 자율은 또한 그 책임이 막중한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의 계획을 수립한 협회는 평가전을 거쳐 본격적으로 강화훈련에 들어가게 된다. 상비군 선수들은 국가대표급의 A군과 2진급의 B군으로 나뉘어 일주일씩 교대로 훈련을 실시토록 했는데, 여자 A군의 이에리사를 비롯한 정현숙, 박미라, 나인숙, 김순옥을 포함한 전 국가대표 선수들 외에도 성낙소(신탁은행), 김진희(산업은행), 심경옥(외환은행)을 선발했고, 남자 A군도 전 국가대표 최승국, 홍종현, 강문수, 이상국과 신예 이재철, 김영식(이상 시온합섬), 이길영(대한통운), 강문수(경기대)를 선발, 남녀 각 8명으로 상비군 구성을 마쳤다.
이들은 아침 9시부터 일과를 시작, 15분간의 런닝과 10분간의 유연체조로 몸을 풀고 12시까지 실전훈련을 실시, 점심식사 후 2시부터 단전 보강훈련과 실전연습에 병행행해 6시 반까지 체력훈련을 실시했다. 특히 역점을 두고 실시된 체력훈련은 1시간 동아 서킷트, 장거리 런닝, 웨이트 등으로 나뉘어 일주일에 2번씩 교대로 실시되었다.
상비군 총감독에는 그 동안 세계제패까지의 사령탑 역할을 했던 이경호를 선임하고, 신탁은행의 손병수와 외환은행의 박종호를 여자부 코치로, 대한통운의 유진규, 서울은행의 김지화 코치를 남자부 코치로 선임하는 것으로 코칭스텝의 구성을 완료했다. 이 같은 코칭스텝의 개편을 세계제패 당시까지 6년간 여자대표팀을 지도했던 천영석 씨가 싱가포르대표팀 지도 차, 해외에 나가 있었고 남자대표팀을 지도했던 김창제 씨 또한 청주 충북은행에 내려가 있어 불가피한 상황으로 개편된 것이었다.
이밖에도 협회는 선수들의 훈련 상황과 총 관리의 체재를 강화하기 위한 선수강화위원회를 새로 구성하였다. 위원장에는 강재량 부회장을, 부위원장에는 이경호 총감독을, 위원에는 오상영, 천영석, 김국배, 박성인, 백송빈 씨를 선임해 수시 회의를 소집, 훈련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특히 예전에 없던 자문위원 10명을 추천하였는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원기(산업은행 총재), 김진흥(신탁은행장), 옥만호(공군참모총장), 심병식(서울은행장), 최원석(대한통운 사장), 한홍수(한일은행장), 조중훈(대한항공 사장), 김우근(외환은행장), 조충훈(전매청장), 박태선(시온합섬 회장)>
위 자문위원은 제33회 인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시까지 훈련 상황과 수시 실시되는 평가전에 항상 초청되어 선수들의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자문하고 격려케 되었다.
서독 국제오픈대회, 여자 단체.단식 우승으로 건재함 입증
74년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독 뮌헨시에서 개최되는 제27회 서독 국제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제패 이후 처음으로 우리 선수단이 2월 17일 CPA기편으로 장도에 올랐다.
선수단은 천영석 총감독과 유진규 남자코치, 박종호 여자코치와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김순옥 여자선수 4명과 최승국, 강문수, 소영인, 이상국, 이재철 남자선수로 구성도이 총 12명이었다.
선수단이 현지에 도착한 2월 19일 밤, 뮌헨 공항에는 세계 챔피언국가 선수들이 온다하고 서독탁구협회 임원들과 많은 기자단이 기다고 있어, 우리 선수단을 트랩을 내려서자마자 인터뷰 공세에 진땀을 빼야 했다. 다음날 서독의 각 일간지는 세계 챔피언국인 한국팀을 대서특필하기에 바빴고, 거리에 나가면 서독 청소년들의 사인 공세에 시달려야 하는 등 우리 탁구선수들의 인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지난해 세계제패 이후, 국제연맹에서 발표한 세계랭킹에 이에리사 2위, 박미라 5위, 정현숙이 8위를 마크하는 등 , 톱 랭커 10위권 내에 한국선수들의 3명이나 포함되어 참가했으니 그만한 대접을 받을 법도 했다. 그러나 한편, 1년 전 무명의 팀으로 제32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을 때 유고대회 조직위원회로부터 받은 푸대접을 새삼 회상케도 했는데, 스포츠계는 역시 실력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선수들 각자는 대회에 임하기 전 새로운 각오를 다질 있었다.
남녀단체전에 들어가 2월 22일, 1번 시드를 받은 한국여자팀은 2회전에서 나이지리아를 3:0으로 완승, 쾌조의 스타트를 보이며, 준준결승전에서도 프랑스를 3:0으로 이기고 준결승에서 소련과 대전케 되었다. 이 준결승에서 서전에 이에리사 선수가 소련의 신인 안토니오 선수에게 2:1로 져 버려 사뭇 불안과 초조감에 젖기도 했으나, 정현숙 선수의 분전으로 3:1로 승, 예상대로 결승에서 숙적의 일본과 대전케 되었다.
이튿날 치러진 대일전 결승. 이에리사 선수는 다까하시 선수를 맞아 2:0 첫 세트를 따냈으나 2번째 게임에서 정현숙 선수가 하마다 선수에게 2:1로 패해 1:1 타이가 되었다. 그러나 복식에서 이에리사.박미라 조가 2:1로 이기고 네 번째 경기 역시 이에리사 선수가 하마다를 2:1로 꺾음으로써 한국은 3:1로 여자단체전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리사 선수는 출발하기 전부터 기관지염과 임파선 염으로 최악의 컨디션 상태에 있어 대회 참가가 불투명한 상태였으나, 강한 사명감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동 대회에 참가, 한국 단체전 우승에 또 한 번의 수훈을 세웠다. 그러나 이에리사 선수는 여자단체전에서 우승을 거둔 후 건강이 악화, 2월 24일부터 치러진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이에리사를 제외한 정현숙 선수 등 나머지 선수만이 출전했다.
단체전의 우승을 차지한 이후의 홀가분함 때문인지 개인전에 임해 한층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정현숙 선수는 셰이크핸드 수비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예선 통과를 무사히 넘기고 준준결승에서 헝가리의 베아트릭스키 선수를 3:0으로 가볍게 물리친 것 외에도 준결승전에서 루마니아의 알레산드루 선수를 3:2로 물리치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 임한 정현숙 선수는 또한 서독의 에디트 베첼 선수를 맞아 손에 땀을 쥐는 접전으로 3:2(13,20, -20, -16, 18)로 승리, 한국여자탁구의 건재함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3시간 이상의 풀세트 접전에서 정현숙 선수는 상대방의 예리한 스매싱을 끈덕지게 방어하면서 끈질기게 버티며 완전무결한 수비수의 모습을 보였을 뿐 아니라, 상대선수의 허점을 빠른 센스로 포착, 날카로운 반격으로 바꾸는 기지와 인내를 발휘, 많은 관중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이에리사 선수의 그늘에 가려 각광을 받지 못했던 정현숙 선수는 동 대회를 계기로 셰이크핸드 전형의 세계적인 선수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한국여자탁구팀은 드라이브 공격의 일인자 이에리사 선수와 함께 커트 수비의 강자 정현숙 선수를 나란히 보유, 다양한 전형의 선수들로 팀을 구성한 강팀으로 세계 탁구인들의 관심과 격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한편 남자부는 단체 2회전에서 프랑스를 3:2로 물리쳤으나, 준준결승에서 스웨덴에 3:1로 패하여 입상권에 들지 못했으며 개인전에서도 부진하여 준준결승 이전에서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금번대회 종목별 우승을 종합하면 남자단체전은 헝가리, 여자단체전은 한국, 남자단식에는 스웨덴의 엘트 요한슨 이었으며 여자 단식에는 한국의 정형숙, 남자복식에는 아담스르베크. 안톤 스티펜치(유고) 조, 여자 복식에는 알렉산드루(루마니아). 하마다(일본) 조가 각각 차지했다.
당시 서독오픈대회에 한국팀이 참가한 것은 지난해 세계제패 이후 매너리즘에 빠진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는 한편, 세계 탁구계에 한국의 건재함을 알리고 그 동안 변모된 세계탁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것에 주된 목적이 있었다. 하여 선수단은 동 대회 참가를 통해 맞부딪친 유럽탁구가 한국탁구 1년 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에 반해 비약적인 수준향상을 거듭하고 있음을 파악, 보다 정진해야함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었다. 또한 비록 중국이 불참하고 세계일부 베스트 선수들이 불참하기는 했으나 일본, 소련, 헝가리, 루마니아 등 세계의 강호 21개국이 참가한 동 대회에서 한국여자탁구가 3개 종목 중 2개 종목 우승을 차지한 바, 당분간을 세계 탁구계에서 한국여자탁구가 상위 유지가 가능함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서독 국제오픈대회를 마친 이후에도 선수단을 프랑스 전지훈련 외에도 인도를 방문, 인도대표팀과 4차례에 걸친 친선경기를 가졌으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5개국 참가)에도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올리고 1개월만인 3월 23일 귀국, 개선했다.
김포공항 개선 환영식이 끝난 후, 많은 탁구인과 보도진들이 참석한 기자회건에서 우리 선수단은 우승하지 못할 경우 빚어질 실망을 생각하니 불안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나 지난해 사라예보 세계제패에서 얻은 자신감이 서독오픈대회의 우승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75년 인도 뉴델리 제33회 세계대회의 전망에 대한 질문에 답한 천영석 감독은 그해 4월 2일부터 일본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탁구연합(ATTU) 주최 제2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 중국 등의 전력을 탐색하고 유럽탁구 변모의 자료 등을 종합하여 새로운 계획으로 대비케 될 것이며, 앞으로 획일적인 훈련을 지양하고 선수 개개인의 원형에 따른 시스템 훈련을 적용,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사라예보 신화를 세운 선수단 스스로의 신념과 정상에 도전하는 자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는 서두에 언급한 어는 학교장의 말처럼, 정상에서 도전을 받고 쫓기는 자의 외로움을 짐작케 하는 대목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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