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릉과 노송
정적은 말하자면 산의 소리다. 그것은 산의 맛이다. 고요 속에 잠겨 있는 것이 갑자기 즐거운 느낌
이 된다. 날등에 올라선다. 넓은 전망이 펼쳐진다. 숨소리에 밀려났던 고요가 바닷물처럼 다시 밀
려들어서는 누리를 채운다. 마치도 조용함이 우주의 본체인 것처럼 보인다.
--- 진웅기(陳雄基), 「산의 소리」에서
▶ 산행일시 : 2010년 3월 6일(토), 산에는 눈 내림
▶ 산행인원 : 12명(스틸영, 숨비, 드류, 대간거사, 더산, 감악산, 상고대, 송주, 사계, 메아리,
신가이버, 해마)
▶ 산행시간 : 9시간 46분(휴식시간 포함, 점심과 이동시간은 제외)
▶ 산행거리 : 도상 17.0㎞(1부 11.1㎞, 2부 5.9㎞)
▶ 교 통 편 :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0 : 2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3 : 48 ~ 05 : 20 - 태백시 철암동 머리골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입구, 산행시작
06 : 52 - 휴양림 산책로, 샘터
07 : 24 - 1,064m봉
07 : 57 - 태백고원 망해루(望海樓), 낙동정맥 진입
08 : 25 - 1,080m봉(덕거리봉), 낙동정맥 벗어남
09 : 01 - △974.1m봉
10 : 15 - 595m봉
11 : 35 -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오저초등학교 풍곡분교, 1부 산행종료, 점심식사 후 이동
13 : 02 - 삼척시 가곡면 오목리 세곡천 삼거리, 2부 산행시작
14 : 29 - △780.3m봉
15 : 19 - 암릉
15 : 41 - 대형송전탑
15 : 52 - △630.6m봉
16 : 33 - 삼척시 가곡면 오저리 삼풍주유소, 산행종료
22 : 16 - 동서울 강변역 도착
▶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 태백고원 2층 정자, 낙동정맥 진입
春眠不覺曉(봄잠에 새벽이 온지도 몰랐는데). 맹호연(孟浩然)의 춘효(春曉)를 즐겨보련만 했는데
진작 글렀다. 태백 지나고 통리인가보다. 啼鳥(새 우는 소리) 아닌 차가 도로 과속방지턱 넘을 때마
다 털컹거려 잠 깬다. 또한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입구에서는 차도만 남겨두고 천지사방에 적설이
수북한 것을 언뜻 보았던 터라, 그나마 쪽잠마저 꿈속 러셀로 설치고 만다.
04시 50분. 차안 불 밝힌다. 갑자기 산행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휴양림 입구의 차량출입통제용 차
단기가 열려있어도 더 들어가지 않는다. 가급적 산을 길게 타고자하는 매우 바람직한 욕심에서다.
왼쪽 사면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자작나무가 제법 굵다. 가파른 사면을 오르려고
그 주간을 싸안고 돌아도 미동하지 않는다. 눈은 그다지 깊지 않다.
산기슭에서부터 펑퍼짐하던 사면이 차츰 통통하게 살 붙어 능선모양 갖추지만 가파름은 여전하
다. 발 디딜 곳 마련하느라 게걸음질 잦다. 15분쯤 올라서 지능선 모여드는 산등성이다. 날이 바람
없어 의외로 포근하다. 오늘 오지산행에 처음 나온 숨비 님의 행색은 웬만큼 산행이력을 지녔으리
라고 짐작케 한다. 아크테릭스 그레고리 캠프라인 레키 쌍장 등으로 미루어 그렇다.
다만 우리 산행에 있어서는 잘 닫는다고 대장님 뒤를 바짝 따르다가 개고생하기 일쑤요, 맨 뒤에
쳐졌다가는 어느 샌가 저절로 선두가 되어 버리는 수가 좀 많으니 아무쪼록 ‘중용(中庸)의 도’가 적
실(的實)하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그런 사례가 선행한다. 여명을 기대하며 868m을 올랐을 때다. 앞장선 상고대 님은 직진하여 골로
가고, 다른 이들은 모두 뚜렷한 길 따라 왼쪽으로 꺾여 내린다. 우리가 건너 산봉우리에서 뒤돌아
볼 때까지도 상고대 님은 868m봉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이 반딧불처럼 보였으니 아마 데미지가
무척 컸으리라.
길은 자연휴양림 산책로다. 봉봉을 산허리로 돌아 넘는다. 몇 구비든지 종내는 안부에 이른다. 연
속하여 봉우리 7개나 그런다. 길이 뚜렷하여 오히려 망설인다. 길이 없다면 주저없이 마루금 밟겠
는데 어느 지점에서 이 길을 버릴 것인지 갈등한다. 플라스틱 대롱에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샘터에
서 우선 목추기고, 길이 하향할 조짐이 보이기만하면 버릴 양으로 따라간다.
길은 다행히 산모롱이마다 비스듬히 올라간다. 울창한 낙엽송 숲을 지나기 한참이다. 주릉에 들자
참나무 숲은 온통 눈을 뒤집어썼다. 원근 보기 좋다. 1,064m봉 넘고 얕은 안부인 설원에서 소박한
술판 벌인다. 안주는 홍어회와 과메기, 고산에서 아주 맛 들렸다. 가루눈까지 흩날리니 겨울산행의
정취가 더욱 흥겹다.
3. 휴양림의 낙엽송 숲
4. 낙엽송 숲
5. 태백고원
6. 태백고원, 망해루 주변
7. 백병산 주변
8. 974.1m봉 전위봉
9. 소나무 숲길
10. 소나무 숲길
11. 소나무 숲길
▶ 오저초등학교 풍곡분교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에 첫 발자국 내는 즐거움을 사이좋게 분식(分食)한다. 망해루(望海樓)에 오
른다. 2층 누각이다. 고원에서 아담한 누각을 보니 기껏 동네 뒷산의 산책로나 헤적이는 것 같다.
편액은 일필(逸筆)인데 나무숲에 가려 바다는커녕 백병산조차도 온전히 감상하기 어렵다.
곧 낙동정맥에 진입한다. 종주하는 이들의 산행표지기가 나뭇가지마다 수두룩하여 어쩐지 소란스
럽다. 산 하나를 거저줍는다. 해발 1,080m 덕거리봉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오늘 산행에서도 지형
도로는 도상 17㎞에 이름 붙은 산이라곤 없다. 우회로 마다하고 1,102m봉을 직등하여 산죽 숲 무
찌른다.
┤자 갈림길. 직진은 낙동정맥 면산 가는 길. 우리는 낙동정맥 길 벗어나서 왼쪽 능선의 산죽 숲 뚫
는다. 오지본색인가, 키 큰 산죽 숲에서 자맥질한다. 잡목과 교대한 산죽 숲 벗어나고 △974.1m봉
전위봉인 980m봉. 정점 오르기 전에 Y자 갈림길이 나 있다. 풍곡리 쪽으로 실한 지능선이 4가닥
뻗어있어 선 그은 능선을 잡기가 쉽지 않다. 왼쪽으로 간다.
△974.1m봉은 암릉이라 직등하기 어렵다. 오른쪽 사면으로 돈다. 영화 ‘페세이지(The Passage)’의
한 장면 - 양치기인 안소니 퀸이 피레네 산맥의 설릉에서 뒤쫓아 오는 게슈타포인 말콤 맥도웰로
하여금 총을 쏘도록 유도하여 그 총소리로 눈사태가 일어나는 장면인데 압권이다. - 이 생각난다.
숨소리 죽이며 간다.
방금 넘어온 980m봉이 △974.1m봉 아닐까 의심하여 되돌아가다 다시 되돈다. 까마귀 떼는 그러는
우리를 놀리는지 까악까악 소리 지른다. 이제 내림이 대세지만 풍곡교까지 야트막한 봉우리 9개를
넘어야한다. 고도 낮추자 눈은 진눈깨비로 이슬비로 변한다. 등로는 적송인 금강송 숲길. 하나같이
아름드리로 쭉쭉 뻗어 오른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피톤치드 들먹이기 전에 솔향 그윽하고 눈으로
즐겁다. 아마 백만 대군 사열하는 기분이 이럴 것.
산봉우리마다 정수리에는 무덤이 자리 잡았다. 595m봉 내리는 사면은 그중 가파르다. 저 아래 송
골 계류의 괄괄한 물소리는 비발디의 봄의 선율을 연상케 한다. 천산을 두고 자연의 이치를 일깨우
는 중이리라. 가을 한철 송이 지키는 산막을 지나고 솔잎 낙엽을 양탄자로 깔아놓은 사면을 내려
풍곡리 빙동마을이다.
점심 먹을 마땅한 자리가 있을까 하고 오저초등학교 풍곡분교정으로 들어갔으나 비 가릴만한 데
찾지 못하고 수돗가에서 오들오들 떨며 서성인다. 김기사 님의 보이지 않는 후방지원 덕분이다. 연
락받고 달려온 김기사 님이 덕풍계곡 입구로 가자고 한다. 용소골 덕풍계곡 입구 매표소는 휴업 중
이다. 매표소 옆에 너른 빈방이 있다. 벽에 육개장, 감자전, 동동주 등 표지 붙은 것으로 보아 식당
이다.
12. 소나무 숲길
13. 동활계곡
14. 소나무 숲길
15. 소나무 숲길
16. 소나무 숲길
17. 가곡천 주변
▶ △780.3m봉
비 내려도 2부 산행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들머리로 이동한다. 몇몇 동네사람은 가곡중고등학교
뒤 능선을 오르려고 지도 보며 나침반 재는 우리를 별스럽다는 듯 구경한다. 암만해도 여기서
△780.3m봉을 오른다면 산중에서 비박을 감행해야할 것이다. 세곡천 삼거리로 이동한다. 오목리
세곡천 건너 생사면이 적당하다.
사실 오지산행의 묘미 내지 엑기스는 2부 산행에 있고, 여기까지 밤으로 달려 온 까닭인데 숨비 님
이 포기하겠다고 하니 퍽 아쉽다. 해마 님은 꾀병대 출신이라 하고, 더산 님은 일찍이 태극종주를
마쳤고 마라톤 풀코스 3시간대 완주기록도 보유하고 있어 더덕 없는 이런 산행에는 환멸을 느낄만
하지만 숨비 님은 초짜가 아닌가!
젖은 풀숲 헤치자 장갑은 바로 젖어 손이 시리다. 간벌하여 가시덤불만 웃자란 사면을 애면글면 잡
목 붙들고도 설설 긴다. 우리가 평소 진력(盡力)하는 경우란 좀처럼 드물다. 이런 때 진력하고, 여
기서 진력한다. 헛힘일망정.
△780.3m봉까지 능선은 조금도 멈칫하지 않고 오른다. 등고선 주곡선 28개. 고도 580m를 올려쳐
야한다. 이런 당찬 능선을 고르려면 어렵다.
능선에는 비위 상할 만큼 뚜렷한 등로가 앞서간다. 무덤 지나고 계절을 되돌아간다. 비가 산에서는
눈으로 내린다. 이따금 얼굴 들어 눈보라 맞아 열기 식힌다. 정상까지 불과 100m 남겨둔 지점. 앞
서가던 상고대 님과 감악산 님이 주저앉아 나도 그만 풀이 꺾인다. 무너져 널브러진다.
△780.3m봉 정상. 조망 변변찮아도 삼각점은 2등 삼각점(장성 22, 1995 재설)이다. 눈이 발목 덮는
다. 등로 주변의 눈 쌓인 적송은 묵화 걸작이다. 근년 소나무를 잘 그리기로는 이미 작고한 남농 허
건 화백이다. 한 그루 한 그루가 선생의 내놀만한 작품이다. 그 전시장에 들어선 기분이다.
800m봉에서 왼쪽으로 방향 튼다. 암릉지대가 나온다. 암벽 사이거나 트래버스 구간이라도 홀더
충분하여 잔재미 적지만 암릉과 어울린 설백송백 감상하는 큰 재미 본다. 화려하다 말을 다할까.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입 다물 밖에. 아래 사진은 수만 픽셀인 실경을 가로 800픽셀로
줄여 놓은 것이다! 16분간의 아이맥스다. 망막에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슬랩 내릴 때에는 어리
벙벙하여 자빠진다.
안부에는 대형 송전탑이 있다. 이 송전탑을 세우려고 임시로 낸 임도가 보이지만 우리는 간벌한 마
루금 유지한다. △630.6m봉(삼각점, 장성 431, 재설 2004) 넘자 능선 비킨 길이 나온다. 합의하여
자치암으로 내려도 좋다하고 길 따라간다. 그러나 산모롱이 돌고는 주능선으로 이어진다. 폐가 뒤
편 시누대숲 지나고 갈지자 산길 어지럽도록 돌아내리니 예고했던 삼풍주유소 앞이다. 뒤돌아보
는 산릉은 안개로 가렸다.
18. 소나무 숲길
19. 소나무 숲길
20. 소나무 숲길
21. 소나무 숲길
22. 암릉 주변 소나무
23. 암릉 주변 소나무
24. 암릉 주변 소나무
첫댓글 마치 함께 따라가서 산행하는 느낌이 들만큼 생생히 묘사해 주셨네요!
제가 이곳 카페에 머물러도 괜찮은지 조금 고민이 됩니다 ....
사진 정말 좋죠....특히 저 소나무 좀 보세요...마치 산행을 하면서 보는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고민하지 마세요...마음이 있는 곳에 몸도 있는 곳이니...편히 계시면 어떻게씁니까?
메모리님 조만간 함산하게 되길요.ㅎㅎ^^*
대간님,더산님,사계님,가이버님,순영님,등 무시 무시한 오지팀 간판 선수들과
함께한.. 숨비님! 비록 중포는 하였지만 대단하네여~^^
주~욱 뻗은 낙옆송과 금강송이 매우 인상적 입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요.ㅎ~
ㅎㅎ중포는 했지만
첫산행 잘 치룬 듯하여 전 만족합니다.^^
눈과 조화를 이룬 소나무가 보기 좋습니다... 내 안갈때만 눈오넹ㅠ 오지
긍게 오시여잉
진짜 멋지죠?
근데 저도 못봤네요.ㅋㅋ~~
와우~~
다시 가는 듯한 후기글 너무 멋집니다.
그리고 추억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ㅎ~
근데요~~
오지산 들숨에 마약이 들어 있는 듯~~
자꾸 생각이 나니 어쩌죠?^^*
맞습니다. 그거 마약입니다. 산행할 때는 힘들지만 하고나면 바로 또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홈피에 하루라도 안오면 입안에 가시가 돗는 듯합니다. 한번 중독되면 끝입니다. 여기에 있는 멤버들을 보시면 잘 아실 겁니다.
다만 중독되면 눈동자들이 초롱초롱해지고, 다리 힘이 좋아지고, 인간성이 좋아진다는 거, 그거이 차이라고나 할까요?
자주 오십시오. 항상 환영입니다.
표현좋고 역시 그림 멋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