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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금산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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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탐방 스크랩 애월읍 어음2리 빌레못 올레 Trail
제주금산펜션 추천 0 조회 380 15.10.16 21: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애월읍 어음2리 빌레못 올레 Trail

 

어음2리 설 촌유래

어음2리는 1,504년 甲子士禍 당시 홍문관 교리였던 박후신이 노복 30여명을

거느리고 유배되었는데, 어음리 일대에 비옥한 황무지를 개척하여 자기 호를 따라

정자촌(正字村)이라 칭하고 거주한 것이 오늘의 어음2리의 시초라고 한다.

정자촌(正子村)의 설촌 113년 후인 1616년 조선 광해군 당시 강씨 선조가 정착하였고,

그 후 안씨, 양씨, 김씨 등의 선조가 정착하면서 마을 이름을 어음비리(於音非里)라 칭하였는데,

어음비리란 국가에서 부여한 조세를 감면코자 마을(里)에 속하지 아니하였다하여 아닐비(非)자를

썼다는 설과 '파선국지형'이라 하여 고기 잡는 어부가 배가 파손되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옹비리(於翁非里')라 칭하였다는 설 등이 있으며,

그 후 발음하기 쉽게 음운이 변하여 '어옴비' 또는 '어름비'라 불리고 있다는 설과

 빌레가 많은 지역이라 어림빌레?어린빌레?어림비?어음이라 하는 설이 있다고 한다.

 

빌레못 올레길 안내도

빌레못 올레길 경로 : 돔배물 → 마을포제단 200m 빌레못 옛날길 1.2km → 빌레못 퐁낭길 280m →

빌레못동굴 50m → 빌레못 350m → 삼나무숲 길 1.2km → 신시국궁장 300m → 지현목장 1.7km →

커다란 팽나무 280m → 어음분교터 650m 어음리 답대(동탑) 350m → 답대(서탑) 230m

 

돔배물 전경(돔배 → 도마의 제주어)

 

돔배물 뒤로 보이는 개법사와 포제동산

돔배물은 지금으로부터 300여년전 고응삼(高應三)이라는 풍수지리사를 마을에서

초청하여 물이 잘 고이고 생수라도 나올 곳을 답사하던 중 이곳을 택하여

3질 이상(사람의 키 3배)을 파고 도마를 크게 만들어 상(床)으로 이용, 제물을 올리고

정성으로 제사를 올리자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도마상도 철거하지 못하고 이튼날 가보니

그 급수장에는 물은 가득차 있고 물위에 떠올라 있어야 할 도마와 제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후 물밑에서 수량이 풍부한 생수가 솟아 아무리 가물어도 언제나 급수장에는

물이 가득차서 급수에는 지경이 없었고, 100여년 후에야 제사를 지냈던 도마가

물위에 떠올라 그 물은 '돔배물'이라 칭하고 그 전설은 현재까지도 전하여지고 있다.

 

어음2리 리민관 동측 400m 지점에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어름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100여평의 연못이 있었고, 그 옆으로 200여평의 우마 급수용 못들이 있었으나

도로확장 등으로 규모는 작아졌지만 문화유산으로 보존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돔배물 유래 안내문

 

마을 포제단(?祭壇)

비멘이(어음리의 옛지명) 포제단은 돔배물과 접해있는 개법사 남쪽언덕에 위치하며

어음리 마을은 설촌 이후 리민의 안녕과 질병퇴치 및 풍년을 기원하고 재앙과 화마를 막고자

포젯동산에 제단을 만들고 제청을 건축하여 일 년 중 봄과 가을에 포신, 토신, 경내

토신제를 지내오던 중 일제강점말기 일본군들이 주둔할 때 화약을 묻어 두었는데 해방이 되자

폭파하는 과정에서 제청은 파괴됐지만 재건이후 판석으로 3개의 제단을 다시 만들고

 매년 정월 初 丁日에 마을포제를 봉행하고 있다.

어음리 포제는 특이하게 회생을 분육하여 제단에 올리는데, 정면 제단의 포신(?神)에게는

돼지머리를 올리고, 왼쪽 제단의 토신(土神)과 오른쪽 제단의 경내토신(境內土神)에게는 각각

앞다리 하나씩을 올린다. 경내토신은 어음리 경내의 무사안녕을 맡는 신이라고 한다.

 

빌레못 옛길 이정표

천연기념물 제342호인 빌레못 동굴은 4.3사건 당시 비극이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빌레못 올레길에서 본 잣길

 

빌레못 올레길에서 본 지름자갈밭

흙이 없어 척박해 보이지만 작은 자갈들이 아침저녁 심한 일교차로 인해 자갈에 이슬이 머금어

식물들에게 수분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해서 지름자갈이라 불린다.

 

빌레못 올레길에서 본 댕길이왓 올레

 

빌레못 옛길

빌레못 옛길은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30여 년 동안 사람들이 통행하지 않아 폐쇄되었다가

정비한 농로로 빌레못 올레길로 활용되고 있다.

 

빌레못 동굴로 가는 길

 

빌레못 동굴로 가는 길에는 팽나무 30여그루가 가로수 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4.3사건이 비극이 현장 빌레못동굴 입구

 

빌레못동굴 4.3유적지 안내문

안내문을 읽다보니 한숨과 두눈에 이슬이 맺힌다.

 

빌레못동굴 입구

한라산과 인접한 중산간 마을 어음리는 1948년 4.3사건이 발생하자 '낮에는 토벌대 세상,

밤엔 무장대 세상'에서 시달려야 했던 마을 주민 29명은 소개령을 피해 빌레못굴로 숨어든다.

그러나 1949년 1월16일 굴이 발각됐고 숨어 있던 사람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학살당한다.

당시 빌레못굴에서의 학살은 바위에 머리를 메쳐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그 잔인함 때문에 지금도 처절함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다.

빌레못굴에서 66년전 4·3의 흔적은 차가운 철판에 안내판에 글씨만이 남아있고동굴 입구는 굳게 닫힌

철문에는 커다란 열쇠가 채워져 있다.

 

빌레못동굴 천연기념물 제 342호(1984.08.10 지정)

구석기 시대를 연구하는 데 소중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는 빌레못동굴은 한림에서는 동남쪽으로 약 7.5㎞,

곽지리에서는 남쪽으로 약 6.5㎞ 떨어진 지점엔 제주도의 북사면의 용암평원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빌레못굴은 한라산 기슭에 발달한 용암동굴로 몇 차례의 화산 활동에 의해 2∼3층의 구조로

형성되었으며 총길이 11,749m로 단일계통의 용암동굴로서는 세계에서 긴 굴에 속한다고 한다.

이곳 2층 굴에서 1977년 황곰뼈의 화석, 순록의 이빨, 석기편 등이 발견되어

지금으로부터 9∼8만년전의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굴 내부 사진 : 제주동굴연구소 자료

 

빌레못 동굴 서남쪽에 위치한 방사탑

 

빌레못으로 가는 길

 

어음리 빌레못

 

어음리 빌레못

빌레못은 평평한 암반을 뜻하는 ‘빌레’라는 제주어와 연못의 ‘못’이 합쳐져 ‘빌레못’이라 불리며,

이 못이 이름을 따 빌레못동굴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삼나무 숲길로 가는 길

 

삼나무 숲길

 

삼나무 숲길

방풍림으로 심은 삼나무가 숲길을 만들었다.

 

삼나무와 각종 활엽수가 어우러진 숲 빌레못 숲길

 

신시국궁장 앞 홍익인간 탑

 

무병장수테마파크 단군상

 

무병장수테마파크 일지기가든 입구

 

제주 최초로 HACCP 인증을 받은 지헌목장 낙동체험장

 

빌레못 올레길(어림비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는 수령 350년이 넘는 팽나무

 

양배추 밭

어음2리 마을은 애월읍 남동쪽 8km, 평화로 북쪽 4km 떨어진 해발 200고지의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로

동남쪽은 상가리, 서남쪽은 봉성리, 북동쪽은 어음1리와 인접하며 애월읍 마을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주요 농산물로 감귤과 여름에는 수박을 겨울에는 양배추가 주민의 소득원이며

마을이 고지대에 위치하다보니 타 지역보다 농작물을 늦게 출하된다.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이지만 평화로와 인접하여 있어 요즘은 육지부 사람들이 찾아와

새로 주택들을 짓거나 소규모 팬션들이 들어 서고 있다.

마을정자 앞 연자방아 돌

 

봉성초등학교 어음분교 배움이 옛터 표석

 

봉성초등학교 어음분교는 1963년 5월 20일 어도초등학교 어음분교로 개교하여 199년 3월까지

36년 동안 292명이 졸업생을 배출하고 이 마을이 꿈과 희망을 심어주던 곳이었으나

인구가 감소하여 폐교되었다.

  

어음리 동답대(陰塔)

이곳 동답대는 지금부터 300여 년 전 저명한 풍수지리사가 이 마을을 둘러보고 동북방이 空虛하여

사악한 기운이 들어와 災殃이 발생하고 肆惡한 기운이 들어와 빈곤을 면치 못하니 그 방향에

돌탑을 쌓을 것을 권하여 탑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이곳에 음탑(陰塔)의 의미로 쌓고 서남쪽 230m 지점에 양탑(陽塔)을 쌓았다.

세월이 흘러 많이 훼손되자 마을주민들의 뜻을 모아 2010년 애월읍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일환으로 복원하였다.

이곳 방사탑은 답대라 불리며 단순하게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아니라

마을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생존의 의지가 담겨 있다.

 

어음리 답대 안내문

 

어음리 서답대(陰塔)

 

어음2리 알성 흔적들

어음2리에는 虛한곳을 막고자 虛한곳을 막고자 마을을 보호하는 塔과 城을 쌓았다.

어음2리 마을 지명을 보면 알성?묵은성?북성?성알질 등이 아직도 남아있다.

 

알성이 흔적들

 

어음2리 알성 터

2012년 말까지만 해도 알성이 남아 있었는데 제안로가 개설되면서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도로개설을 하더라도 성을 복원하도록 요구 하여야 함에도 지역주민들이 무관심인지 안타깝게도

그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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