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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옥천읍에는 향수100리 길의 마지막 장소인 육영수 생가가 있다. 육영수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 허물어진 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해 2011년 5월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이 집은 1600년대 정승을 지낸 김씨가 처음 지어 살았고, 이후 송 정승, 민 정승 등 3명의 정승이
살았던 집이라 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렸다. 조선후기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가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99칸 집이었다는 이야기처럼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건넌채, 안채, 뒤채, 행랑, 별당, 후원, 정자, 연못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과사전에서.... |
입구에 들어서니 양반집의 상징인 행랑채보다 기둥을 더 높게 세워 지은 솟을대문이다.
후손들이 이 집터를 옥천군에 기증을 했고, 이어서 38억이 넘는 예산을 들여서 복원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넓은 택지이며,
이 주변 일대 앞.뒤 모두가 육씨들의 소유라고 들었다.
육영수(陸英修, 1925년 11월 29일 ~ 1974년 8월 15일)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정희의 부인이다.
박정희의 두 번째 아내이며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사업가 박지만, 박근령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옥천이며 충청북도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서 교사로 1년여 간 재직한 바 있고.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의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이 쏜 총에 맞고 사망하였다.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에서 대지주였던 육종관과 이경령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육종관은 대지주이자 지역 유지로서 본처 이외에도 3명의 첩을 더 거느리고 있었다.
육영수는 본처인 이경령의 차녀로서 여러 친남매 및 이복 남매들을 포함하여 총 22명(12남 10녀)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생활했다.
할아버지 육용필의 동생은 육용정으로 육용정은 조선 말기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개화파 사상가였다.
1938년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배화고등여학교에 입학하였다.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5년 21세 때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 부임,
가사 과목 교사로 1년 3개월간 재직했다( 위키백 자료에서....
1950년 소개로 당시 육군 소령이던 박정희를 만났으며 6·25전쟁 중인 1950년 12월 박정희와 결혼했다. 당시 박정희는 첫 부인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재혼하였다. 아버지 육종관은 이 결혼을 반대하였으나, 육영수는 가출하여 박정희의 임지였던 대구에서 하숙하였다. 당시 육영수의 어머니 이경령 역시 남편 육종관의 축첩에 반발하던 중 딸 육영수의 결혼을 계기로 충북 옥천집을 나와 딸과 함께 살았다. 남편 박정희와의 사이에 근혜, 근령, 지만 등 1남 2녀를 두었다. 1963년 부군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영부인으로 청와대로 이주하였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공관에 있을 시절 육영수의 주된 관심은 민원 처리였다. 제자이며 6년 동안 영부인실 비서관으로 근무한 정재훈씨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거리의 여론을 수집하고, 하루 수십통의 민원은 일일이 처리지침을 남겼으며, 특히 억울한 민원현장에는 비서들이 늘 발로 달려가도록 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히 남편 박정희의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청와대 안의 제1야당'이라는 별명으로 일컬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대해 박정희는 육영수와 함께 참모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내 옆에 지독한 야당 총재께서 앉아 계시니 알아서 조심들 합시다."라는 식의 농담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육영수는 남편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에 군정 5년 연장을 미국 대사에게 선언하자 이동원 대사를 불러 남편이 군정 연장을 취소할 것을 설득하도록 도움을 청했다고 전해진다.[1] 또한 육영수는 박정희가 자신과 만나기 전에 이미 결혼 후 이혼한 적이 있음을 알면서도 박정희와 결혼했으며 또한 육영수는 한때 박정희가 자신을 만나기 이전에 얻은 딸인 박재옥을 키워주기도 했다 . |
'삼정승집'이라 불리었던 옥천 육영수 생가(충북기념물 123호) 군은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매년 10월 이곳에서 전통무용과 전통 차(茶), 판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공연을 마련하고 있다. 문화해설사 2명(주말은 3명)과 교통안내원 등도 배치해 관람을 돕고 있다. 그러나 방문객이 눈에 띄게 줄면서 평일의 경우 수 십명만 입장하는 날도 많아. 군은 2017년까지 81억원을 투입해 이 집 앞에 전통문화체험관을 지어 주변을 역사문화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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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녹음이 짙은 여름날에 다시 한번 들려보리라!!!!!
그래 육영수는 누가 쏜 총에 맞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