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레이스교회의 담임목사이자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존 맥아더'는 개혁주의 전통을 따라 기적중지론을 주장하면서, 종말론은 사회구원과는 상관없는 세대주의 종말론을 신봉해서인지 신자와 교회의 정치참여를 반대한다.
맥아더는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며 이것이 크리스천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일이다’고 주장한다.
맥아더는 『왜 정부는 당신을 구원하지 못하는가?』에서, 우리는 때때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그런 관심은 우리의 영적 생활이나 의로운 간증이나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도덕이나 의로움은 구원과 성화의 결과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정치에 참여하여 복음 전파와 가르침의 우선순위를 대체해서는 안된다. . . .좋은정부도 결국은 복음 전파에 도움을 주지 않고 나쁜 정부도 복음 전파를 방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웨인 그루뎀은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정치』(Politics According to the Bible)에서 존 맥아더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첫째,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맥아더의 견해는 너무나 협소하다.
신약이 말하는 복음은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아 거룩해지고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다. 복음은 삶의 전반에 관한 좋은 소식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9-20).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은 개인 영혼 구원 이상의 것이다. 복음 전파는 영혼 구원은 물론 정부에 대해 기록된 성경의 모든 말씀도 포함한다.
그러면서 그루뎀은 독재정치 하의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정치 하의 남한을 비교한다. 독재정치 하의 북한은 백성들을 억압하면서 복음전파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했고 선교사를 한 명도 파송하지 못했지만 자유민주주의 정치 하의 남한은 교회가 흥왕하고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처럼 정부 형태가 복음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백성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해 좋은정부와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디모데전서 2:1-2).
둘째, 온전한 복음은 사회변혁을 포함한다.
개인의 죄사함만이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변화된 삶과 이를 통한 변화된 사회를 추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한일서 3:8). 복음은 개인과 가족은 물론 학교, 직장, 사회 및 나라가 변하는 것을 포함한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구분하는 것은 정신과 물질,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분리하는 플라톤의 이원론이지 성경적 견해가 아니다.
셋째, 성경 어디에 교회가 설교하지 말아야 할 분야가 있다고 기록하는가?
맥아더는 ‘교회는 전도만 하고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는가? 그렇다면 정부에 대해 기록한 로마서 13장 1-7나 베드로전서 2:13-14에 대해서는 설교하지 말아야 하는가?
구약에 기록된 왕들의 선행과 악행에 대해서는 설교하지 말아야 하는가? 존 맥아더 당신은 바벨론 왕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 다니엘이나 열방의 심판을 경고한 이사야 13-23장, 아모스 1-2장에 대해서는 설교하지 않을 것인가?
넷째, 하나님은 신자들이 이 땅에 살면서 복음도 전하고 선행도 하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았으면 왜 하나님이 그들을 하늘로 부르시지 않고 이 땅에 살게 하시는가? 단지 불신자에게 복음만을 전하기를 원하시는가? 아니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원하시는가(마태복음 22:39 참조).
내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좋은 법을 제정해서 성경이 금지하는 낙태를 방지하는 법, 동성 결혼을 억제하고 성경적인 남녀 간의 결혼만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다섯째, 하나님은 교회와 정부를 통해 악을 억제하신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를 믿고 사람들의 변화된 마음을 통해 악을 억제하신다(고린도후서 5:17 참조). 그러나 이것 만이 악을 억제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정부도 악을 억제한다.
정부가 음주 운전을 금지하고, 살인과 폭행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을 통해 악을 억제한다.
바울은 악을 억제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것을 정부의 주요 기능으로 언급한다(로마서 13:1-7; 베드로전서 2:13-14),
여섯째, 역사적으로 볼 때, 크리스천은 정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쳐왔다.
역사학자인 앨빈 슈미트는 기독교가 정부에 영향을 끼쳐서 악법들을 철폐했는가를 기록한다. 기독교는 로마 정부에 영향을 끼쳐서 유아살해 허용법, 자녀 방치법 및 낙태허용법을 철폐하게 했다(A.D. 374). 로마 검투사들이 사활을 건 결투를 허용하는 법을 불법화했다(A.D. 315). 교도소에 남녀를 분리 수용하는 법을 제정했다(A.D. 361). 아일랜드나 프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인신 제물을 불법화했다.
인도에서는 과부를 화형시키는 행위(1829), 중공에서 여자의 발을 묶는 것을 불법화하고(1912), 여러 나라에서 의무교육 제도를 입법화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는 1830년대에 노예폐지론자의 3분지2가 목사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맥아더의 주장은 성경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는 편향된 주장에 불과하다.
일곱째, 성경은 박해의 때가 오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왜 우리가 정부를 개선하려고 하는가? 성경은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큰 박해가 온다고 기록하지 않는가? 이것은 정부가 점점 더 반 기독교적인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마태복음 24:9-12, 21-22; 디모데후서3:1-5).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시며 그 이전의 대박해가 언재 임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마태복음 24:26 참조).
우리가 아는 것은 기회가 있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지혜’를 전파하고(사도행전 20:27),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고(에베소서 2:10),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해야 한다(마태복음 22:39)는 사실이다. 즉 내일 세상이 종말을 고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핍박이 임박하고 정부는 더 사악해지므로 우리가 할 일은 없다’는 자세는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의 잘못된 영향이다.
이들은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과 신자의 휴거를 강조하여 세상에 무관심한 결과 지금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막시스트들이 정치 공산주의(중공, 북한, 쿠바 및 한국의 주체사상파 등), 경제 공산주의(정부 주도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및 문화 공산주의(동성애, 동성결혼 허용, 페미니즘, 젠더리즘)를 통해 특히 기독교 국가들을 초토화 한 현실에 대해 무기력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여덟째이자 마지막으로, 정치에 관여하면 우리의 주된 사역인 복음 전파에 관심이 소홀해지지 않을까?
존 맥아더는 ‘교회가 정치 활동과 사회 도덕화를 강조하면, 교회는 항상 복음 전파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에서 멀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잘못되었다. ‘정치 영향력이 교회의 자원을 빼앗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치적 영향력을 원하시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복음 전파만을 위해 자원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하나님은 은사에 따라 각 신자를 여러 다른 분야로 부르시며(고린도전서 12:4), 신자는 한 몸의 여러 지체이다(12절). 그러므로 어떤 신자는 찬양에, 어떤 신자는 가르침에, 어떤 신자는 전도에, 그리고 또 어떤 신자는 사회봉사나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전도자로 부르셨고, 제임스 답슨을 상담자로 부르신 것처럼, 영국에서 노예제도 철폐 제도화를 주도한 윌리엄 윌버포스처럼 특별히 정치활동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있다.
하나님의 복음전파 사역은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파와 사회구원을 위한 복음전파 모두를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