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관계이론’과 더불어 ‘자기심리학’을 접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가장 먼저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통찰이 오면서 나의 가족, 특히 배우자, 자녀, 그리고 내 부모가 속해 있던 원가족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때로는 죽도록 미워하던 대상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왜일까? 그건 겉으로 들어나는 행동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평가하고 판단하다가, 그 대상이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원인이 어쩌면 나에게 투사된 대상의 원가족(예를 들면, 남편의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통찰하는 순간, 그토록 미웠던 대상이 오히려 긍휼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 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을까를 이해하게 되면 때로는 소름이 끼치면서 이번에 나, 그리고 나에게 의미있는 대상, 나의 원가족을 톺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 평생, 나를 따라다니던 어렵던 대인관계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뿅‘하고 바뀌는 건 없다. 다만 조금씩 조금씩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스스로에게 조급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도 예전의 나와 같은 사고와 정서, 행동은 계속 반복된다. 그러면 정신분석을 받거나 공부하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역기능적이 대인관계 패턴은 반복될지언정, 이미 반복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책이 줄어든다. 또 예전처럼 나를 지배하던 핵심정서에 압도되지 않는다. 그러면 촉발사건을 통해 휘청거리다가도 회복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책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니, 다시 이론으로 돌아와보자.....
대상관계이론이 어려운 이유는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각자의 용어를 쓰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이론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토컨버그처럼 통합하려고 시도한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통일된 용어나 이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어려운 이유는 기본지식(개념의 정의)의 부재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관계 이론을 공부하려면, 프로이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는 흔한 교양과목처럼 자리잡은 ‘고전적 정신분석(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지만 사실 제대로 프로이드를 이해하고 대상관계를 접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프로이트를 어설프게 알면 ‘자아심리학’에 대해서도, 이후 전개되는 ‘멜라니 클라인, 페어베언, 위니컷’은 물론 ‘비온, 보울비, 오토 컨버그’ 등 가장 기본이 되는 거장들의 이론을 이해할 때 혼란이 오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추천하는 가장 기본서는 최영민 선생님의 『대상관계이론을 중심으로,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란 책이다. 내가 본 책 중에는 그나마 쉽게 쓰여진 책이다. 이 책에 나온 내용정도는 이해해야, 향후 전문적인 대상관계 이론 전공서적을 읽을 수 있다. 정신분석에 관한 책은 대부분이 번역서이고, 대학원 교재에서 사용하는 책도 번역서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번역서는 번역서 특유의 문체가 있고 문화적 이질감 또한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입문서는 한국인 저자가 쓴 책을 추천하지만, 그중에서 신뢰할 만한 저자가 ‘최영민’ 선생님이다. 현직 정신과의사이며 정신분석에 관한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다. 논문 역시 초보자들이 접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잘 쓰여진 편이다. 특히 이 책의 사례는 외국의 사례와 달리 우리에게 익숙한 점이 이해를 돕는다. 또 풍부한 도식과 삽화가 이해에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