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야기 41.
불란서와 프랑스
‘프랑스(France)’를 흔히 ‘불란서(佛蘭西)’라고들 하는데, '佛蘭西'는 중국말로는 ‘France’에 아주 가깝게 발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말로 읽으면 '불란서', 별로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불란서’라는 말은, 중국 사람들이 ‘France’를 자기네 말에 가깝게 옮긴 한자를 다시 우리 식으로 읽은, 기형적인 발음인 셈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그냥 우리말로 ‘프랑스’라고 쓰고 그대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구라파(歐羅巴;Europe)’, ‘희랍(希臘;Greece)’, ‘나전(羅甸;Latin)’, ‘서전(瑞典;Sweden)’, ‘서반아(西班牙;Spain)’, ‘정말(丁抹;Denmark)’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유럽’, ‘그리스’, ‘라틴’, ‘스웨덴’, ‘스페인’, ‘덴마크’라고 써야 옳겠지요. 어떤 나라, 어떤 종족의 말이든 본래 발음에 비교적 가깝게 적을 수 있는 것이 우리말의 특별히 빼어난 점 아니겠습니까?
다만,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thern Ireland’를 ‘영국(英國)’으로, ‘United States of America(USA)’를 ‘미국(美國, 또는 米國)’으로 쓰는 것은 원래 이름이 너무 긴 만큼 줄여 쓰는 편리함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달러(dollar)’를 뜻하는 ‘$'를 ‘불(弗)’로 적는 것은 발음이 아니라 모양을 따온 것으로, 애교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기로 든 것들은 한자 표기를 써야 할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France'의 ‘f’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한글이 서양말 등 외국어를 완벽하게 옮기지 못하는 불완전한 표기 수단이라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흔히 ‘f’를 소리 낼 때 ‘프’와 ‘후’ 중간쯤으로 소리 내려고 애쓰는데,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f'건 'p'건 ’ㅍ‘으로 표기되었다면, 우리말로 쓰인 그대로 ‘ㅍ’으로 발음하면 됩니다.
물론 세종임금 당시의 훈민정음 표기에는 ‘f' 소리에 해당하는 'ㆄ’도 있었고, 'v' 발음과 거의 같았을 ‘ㅸ’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들로서는 그런 발음을 할 까닭이 없어졌기에 자연스레 쓰지 않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아쉽다면 차라리 ‘고어(古語) 표기 되살려 쓰기’ 운동이라도 벌인다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다양한 우리말 고어 표기들을 되살린다면, 한글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발음이든 그야말로 거의 완벽하게 적을 수 있는 최상의 문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하긴 지금 현재의 24자만으로도 세계 어느 문자도 흉내내기 어려운 훌륭한 표기 체계입니다.
김효곤(둔촌고등학교 교사, ccamy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