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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실버 愛’란 잡지에 2010년 6개월 간 연재한 ilman 성철용의 “십장생 이야기”의 작품입니다.
동양인들은 학(천연기념물 제202호)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도교에서 장수하는 신선들이 타고 다닌다는 학을 ‘선학(仙鶴)’, ‘선금(仙禽)’이라 말한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서 더욱 그런 것도 같다.
예로부터 한국인이 숭상하는 선비의 이상적 성품을 학에 비유하여 말하기도 하였다.
몸을 닦고 마음을 실천하는 선비를 학명지사(鶴鳴志士), 선비가 은거하며 도를 닦지 못함을 탄식하는 것을 학명지탄(鶴鳴之歎)이라 하고, 그런 선비들의 외롭고 쓸쓸함을 학고(鶴孤)라 하는 것이 그 예다. 조선 시대 지체 높은 선비들이나 벼슬아치가 즐겨 입던 옷에 학창의가 있다.
학의 모습을 본떠 소매가 넓고 뒤 솔기가 학의 날개처럼 갈라진 흰 창의(氅衣) 가를 돌아가며 검은 헝겊으로 넓게 꾸민 웃옷이 학창의(鶴氅衣)다.
조선시대에는 문무관의 관복에 흉배(胸背)를 달았다.
문관은 학, 무관은 호랑이를 품계(品階)에 따라 그 수를 각각 달리하여 붙였다. 이때 문관들을 학반(鶴班)이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도자기, 그릇, 문갑이나 함, 필통, 베갯모 등에 학 무늬를 즐겨 그렸다.
학은 장수와 행복과 풍요의 상징하기 때문이다.
장수를 축하하는 말에 학수(鶴壽)라는 말이 있다. 머리는 학의 깃처럼 하얀 백발이지만 얼굴은 아이들 같이 붉고 윤기가 도는 노인을 학발동안(鶴髮童顔)이라 하면서 장수를 축하여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천년을 산다고 믿고 있는 학의 실제 수명은 몇 년이나 될까?
조류서적을 살펴보면 학은 야생 상태에서는 약 30년을, 미국의 동물원에서는 최고 85년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계인의 평균수명이 66세라니 학은 인간보다 단명한 새다.
십장생(十長生)은 ‘해· 달· 산· 내·대나무· 소나무· 거북· 학· 사슴· 불로초’로 말하기도 하지만 ‘해· 돌· 물· 구름·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거 북·학· 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중에 생명이 있는 동식물로는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여섯뿐이다. ‘불로초(=영지 2년), 대나무(60년), 학(30~40년), 사슴(15~17년)‘’은 사람보다 단명한 동식물이라니 십장생 중 ’소나무와 거북‘만이 사람보다 장수할 뿐이다. 창덕궁 소장 ‘십장생도(十長生圖)’를 자세히 살펴보면 장수의 상징인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는 학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도 잘못된 것이다. 학은 늪지에서 사는 새요, 소나무에 둥우리를 틀고 사는 새는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나 백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논밭이나 강가에서 흔히 보는 자그마한 흰 새는 학이 아니라 백로(白鷺)다.
백로는 학보다는 1/3 정도로 작은 새로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를 상징하는 새다. 그래서 시문이나 화조화(花鳥畵)에 자주 등장한다.
학을 두루미라고 하는데 학은 한자어요, 두루미는 순 우리말이다.
두루미라고 하는 것은 수놈이 ‘두-’하고 선창하면 암놈이 ‘두루, 두루-’하며 따라 운다 해서생긴 말이라고 문헌에 전한다.
그러나 황새는 두루미와 달리 명관(鳴官)이 없어 울지를 못한다. 부리를 부딪쳐서 ‘고록 고록, 가락가락’ 둔탁한 소리를 낼 뿐이다.
-학 이야기 1편
*. 일산 호수공원의 홀아비 단정학(丹頂鶴)/ 인터뷰 기사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자연학습장에는 단정학(丹頂鶴) 홀아비가 외롭게 살고 있다.
이 학은 1997년 고양시 호수공원에서 열린 제1회 꽃박람회 축하로 고양시와 자매결연한 중국 흥룡강성 치치하얼(齊齊哈爾) 시로부터 시민의 장수와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는 뜻으로 기증받은 한 쌍의 학 중 수컷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암컷이 10여 년 전 다리 염증을 치료하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필자는 오랫동안 이 외로운 홀아비 단정학을 살피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위로하곤 하였다. 십장생(十長生) 홀아비 학(鶴)이
짝을 잃고 혼자 산다.
청아한 목소리로 때때로 울부짖으며-.
우리 집
여보, 당신도
저리 살다 가겠지-.
-홀아비 단정학(丹頂鶴)
오늘은 호수공원관리소 자연학습원을 찾아 학 관리원 이상영씨(43세)에게 몇 마디를 물어보았다. 학을 장가보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곳을 찾는 고양 시민들이 외롭게 사는 이 단정학의 짝을 구해 줄 수 없는가를 묻는 이가 많습니다. 작년인가요. 세계 단정학의 1/4이 산다는 이 새를 기증한 치치하얼(齊齊哈爾) 시와 교섭을 하였더니 학은 함부로 사고 팔 수 없는 국제보호조인데다가 마침 조류독감이 성하던 때라 무산되고 말았데요.
게다가 두루미와 황새는 철저한 일부일처(一夫一妻)를 하는 새라서, 낯선 암놈을 울안에 넣었다가는 부리로 쪼아 죽일지도 몰라서 함부로 짝을 지어 줄 수도 없답니다.
-저는 이 단정학을 5년째 관리하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1년 5개월이나 걸려 겨우 친해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학을 만져 보는 것은 고사하고 30cm이상 접근할 수가 없을 정도로 경계심이 깊은 새입니다. 자기가 아주 기분이 좋을 때 부리로 툭 치는 경우는 있었지만 흔한 일은 아니지요.
-학이 기분 좋아 할 때는요. 하루 세 번 먹이 줄 때와 수족관을 깨끗이 청소해 줄 때에요. 그러면 들어가서 온 몸을 물에 담으며 씻고 부르르 털며 수족관 한 바퀴를 돌며 너울너울 한바탕 학춤을 출 때랍니다. 수족관이 지저분하면 일부러 자갈 같은 것을 수족관에 물어넣으며 심통을 부리기도 하지요.
-먹이요? 곡식이나, 부드러운 잎, 물고기, 곤충, 조개를 좋아 한다지만 여기서는 주로 미꾸라지를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2kg씩 20마리 가량 먹이지요.
성질이 어찌나 깔끔한지 상한 것은 물론 죽은 것이나 싱싱하지 않은 것은 귀신 같이 알아차리고 절대로 먹지 않아요. 사람이 던져 주는 먹이를 먹으면 십중팔구 병에 걸린다는 것을 관람객들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학의 울타리 관리상의 애로는요. 이 귀한 새 앞에서 사람들이 너무 소란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한다는 소리가 저 새는 화투의 ‘5광 중 1광이다.’ 하든지, 옆 울의 금계 등을 ‘골든 치킨’이라고 농담하며 떠드는 것을 보면 가슴 아파요.
그보다 더 한 것은 건너편 새장에 아이들이 장난감 총 비비탄을 겨냥하여 쏘아대는 바람에 이를 머리와 다리에 맞은 두 마리의 귀한 새가 신경을 다쳐서 병들어 외롭게 앓고 있는 것이랍니다.
거북 이야기(3)
십장생(十長生)이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거나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는 열 가지 물건, 곧 ‘해, 산,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말한다. ‘
이 열 가지 중에 인간 삶에 필요불가결한 자연물인 ‘해, 산, 물, 돌’과 동식물인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필자는 십장생 중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동식물로는 ‘소나무와 거북’뿐이라는 말을 ‘실버 愛’ 7월호에서 언급한 바 있다.
북’ 4가지다.
남생이는 냇가나 연못 등 민물에 사는 거북과 비슷한 동물로, 거북보다는 작고 네발에는 물갈퀴가 있는 다섯 개의 발가락이 있는 수귀(水龜)라고 하는 파충류다.
자라도 민물인 하천에 살지만 거북과 달리 주로 물속에서 살고 등껍질이 물렁물렁한 누런 갈색으로 몸길이가 30cm 정도로 발에 3개의 발톱이 있다.
사람들은 자라를 보강제로 먹는다. 자고로 자라탕은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까지 최고급의 강장식품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자라의 피는 정력제로 인기가 높다.
옛 문헌을 찾아보면 거북이나 남생이는 한자로 ‘龜(귀)’, 자라는 ‘鼈(별)’이라 하고, 거북의 다른 이름으로는 현의독우(玄衣督郵), 청강사자(淸江使者)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김수로왕의 탄생설화에서 나오는 ‘구지가(龜旨歌)’나, 고대소설 ‘별주부전(鼈主簿傳)’, 이규보가 거북을 의인화해서 쓴 가전제 소설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이 그 예다.
거북은 대개 비공격적인 온순한 동물로 그 모양은 납작한 타원이형이다.
얼굴 눈 주위에는 사람처럼 눈꺼풀이 있고, 입에는 이빨이 없는 대신 위아래 턱에 톱 모양의 용골돌기가 있어 이빨을 대신한다. 다리는 기본적으로 오지형(五指型)이고, 한대(寒帶) 아닌 육상과 민물이나 바다에서 살지만 산란할 때는 뭍에 올라와 모래를 파고 100개 이상의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나 바다에 이르기 전에 대다수가 포식자인 새와 인간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알을 많이 낳는다.
거북의 암수를 구별하려면 몸을 뒤집어 항문의 위치를 살필 일이다.
꼬리 끝 쪽에 항문이 있은 것이 수놈이요, 꼬리가 붙어 있는 몸체 부분에 항문이 있는 것이 암놈이다.
거북이는 머리, 꼬리 및 네발을 한꺼번에 감출 수 있으므로 ‘장륙(藏六)’이라고도 하였다.
우리가 애완용으로 어항에서 키우는 붉은귀거북은 20년 전 북미에서 수입한 놈들이다.
이들을 키우다가 방류하여 준 놈들이 우리 토종 물고기와 개구리, 곤충은 물론 과일과 채소까지 먹어치우며 우리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바람에 당국에서는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붉은거북의 수명이 20~40년이나 되어 더욱 큰 문제였다.
그런데도 이를 모르고 석가탄신일인 초파일이 되면 불자(佛者)들이 강에 방생을 하고 있으니 삼가해야할 일이다. 방생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최대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거북은 껍질인 상갑(上甲)은 둥근 하늘을 상징하고, 아래 껍질 하갑(下甲)의 정방형(正方形)은 지상을 암시한다 하여 거북의 모양은 우주를 상징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양 사람들은 거북을 숭상하여 집의 장식품으로 박재하여 두기도 한다.
아름다운 등을 가진 이런 거북을 대모(玳瑁)라 하는데 그래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나이지리아 흑인들은 거북을 여성의 성기를 암시한다고 믿으며 음란(淫亂)의 표상으로 간주하여 부정적인 동물로 취급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도 좋아하겠지 생각하는 한국 기업인이 중국 사업가에게 금거북을 선물을 하였더니 싫어하더란다. 거북은 남녀노소나, 부모 자식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난교(亂交)하는 동물이기 때문이었다.
가락국 수로왕 전설에 나오는 구지가(龜旨歌)가 있다.
그 노래에서 '머리'는 거북이 머리요, 그 모양을 남성의 남근(男根)과 관계하여 해석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음경(陰莖)의 끝부분을 귀두(龜頭)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동양인들에게는 거북은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동물로 받아온 동물이었다.
거북 꿈은 복권을 사게 하는 재복(再覆)을 주는 꿈이요, 거북은 용왕의 사신인가 하면, 동화 속에서는 보은을 하는 지혜로운 동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귀령(龜齡)이란 말이 있다. 거북 같이 장수하는 인간의 긴 수명을 비유하여 하는 말이다.
그러나 거북이라고 해서 다 오래 사는 것만은 아니다.
보통 거북은 20~ 30여년, 바다거북은 40~ 50여년, 그중 코끼리거북은 150여년, 천년 거북이라는 장수거북은 수령이 200~300여년 이상으로 보통1.5m정도나 큰 것은 2.5m까지로 몸무게가 650∼800kg까지 나간다.
그래서 거북은 문방사우(文房四友)의 벼루 문양이나, 비석의 받침돌은 거의가 다 거북모양의 귀부(龜趺)다.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때문이다.
나라님의 도장인 옥새(玉璽)에도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 인꼭지인 귀뉴(龜紐)로 만들곤 했다. 거북 같이 그 왕조가 오랫동안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다.
거북은 십장생(十長生) 중에 하나이기도 하지만 사령(四靈)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령(四靈)이란 전설상 장수한다는 신령스런 네 가지 동물인 기린 , 봉황 , 거북, 용을 말한다.
고분 벽화의 사신도(四神圖)에서도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에서 북방의 방위를 맡은 신이 거북이다.
이렇게 거북을 신성시 하는 나라는 주로 한국, 일본, 대만, 중국이지만, 이솝우화에 나오는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 이야기를 보면 서양 사람들도 거북을 상서로운 동물로 보는 모양이다. 이솝(Aesop)이 고대 그리스 사람이기에 하는 말이다.
생명학자들이 지금까지 발견한 장수의 비결은 한 마디로 '소식(小食)'이다. 그것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물이 거북이라고 한다.
다음은 KBS에서 방영된 '에니멀 사이언스'를 참고한 거북 이야기다.
거북이의 먹는 량을 맹수들과 비교하여 보았더니 거북이의 먹는 양이 생각 이상으로 적었다. 거북: 940g/ 호랑이: 8kg/ 곰: 8kg
거북이에게 그가 좋아하는 오징어를 먹이로 주었더니 호랑이나 곰과 달리 일주일에 2번 주는 것으로 족했다. 거북이는 먹이를 아주 천천히 소화시키고 있었고 평소에도 그랬듯이 식사 후에 다른 동물과 달리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장수거북은 한번만의 호흡으로 바다에서 1,280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심장박동수를 재보았더니 아주 낮았다.
거북: 1분에 33회/ 토끼: 1분에 222회/ 사람: 1분에 97회
소식과 함께 거북이 장수하는 비결은 슬로모숀이라는 것이다.
운동을 하려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산소를 태워야 하는데 그때 불필요한 활성화산소가 많이 생겨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것이 생명학자들의 말이다. 거북의 슬로모션은 활성화산소를 적게 하고 노화를 느리게 한다는 것이다.
활성화산소란 자동차가 움직일 때 배기가스 같이, 인체에 백해무익한 것이다.
동물세계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성질이 급한 놈들의 수명이 짧다.
먹이를 공격하여 얻기 위해서나, 이를 피해 재빨리 도망가야 하는 동물세계에서 스트레스는 수명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밴댕이는 밴댕이를 잡는 사람조차 밴댕이가 살아있는 것을 못 보았다던지, 맹수의 수명이 짧은 것이 그 예다. 그러한 맹수도 동물원에서 사육하면 야생보다는 더 오래 사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는 장수의 적인 것을 실감하게 된다.
거북은 인간에게 생포되어도 먹이를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막걸리를 주면 꿀꺽꿀꺽 낼름낼름 잘도 받아먹는다. 이렇게 비공격적이고 그만큼 유유자적해서 오래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솝우화에 나오는 것 같이 거북이 그렇게 느리기만 한 동물은 아니다.
물속에서는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재빠르고, 육지 아닌 물에서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박태환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다.
짠 것을 적게 먹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흔히 말한다.
바다거북은 바닷물보다 두 배나 짠 눈물을 눈 위 구멍을 통해 내보내어 체내에서 과다한 염분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이상 거북에 대한 이야기는 거북에게서 장수를 배우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장수하는 것일까?
거북은 집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머리, 꼬리와 네 발을 움츠리면 딱딱한 갑옷 같은 집이 천적으로부터 자기를 지켜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북처럼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거북처럼 소식(小食)하고, 거북처럼 슬로모션으로 여유작작하게 살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환경과 주위를 포용하는 생활을 실천할 일이다.
소나무 이야기(4)
소나무보다 오래 사는 나무로는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도 있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朱木)이 있다.
그러나 주목(朱木)은 평지가 아닌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악지대에서만 자라는 나무여서 인간과 가까이 사는 나무가 아니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도 큰키나무에 하나이지만 소나무보다 그 쓰임새가 많지 않다.
지중해(地中海) 문화를 올리브문화라 하고, 영국의 문화를 장미문화라 하듯이 우리나라의 문화는 ‘소나무문화’라고 한다.
우리는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 속에서 함께 살다가, 죽을 때는 소나무 관 속에 누워 솔밭에 묻히는 민족이라 하여 생긴 말이다.
‘소나무 속에서 산다.’ 함은 소나무와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다. 우리민족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자라면서 소나무 장작으로 취사를 하여왔다. 그 온돌 난방에서 겨울을 보내고, 소나무로 각종 요리를 해 먹었다.
솔잎으로 송죽(松粥), 송편이나 송엽주(松葉酒)를 만들어 먹는다. 술 중에는 솔방울주, 소나무 옹이[松節]로 담근 송절주(松節酒)도 있다.
송진 또한 어떠한가. 송진이 땅에 들어가 천년을 묵으면 호박(琥珀)이란 보석으로 변하고, 그 관솔가지는 조명으로도 썼다.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먹은 소나무를 태운 그읆에다 아교를 녹여서 만든 것이다.
소나무가 특히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한국 건축자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재목이라는 점이다.
나라님이 사는 궁궐도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다. 소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뒤틀림이 적고 그 송진은 비나 습기에 잘 견디게 하기 때문이었다.
소나무를 왜 ‘소나무’라고 한 것일까?
우리말 합성어에서 ‘버들나무>버드나무, 불삽>부삽, 불나비>부나비’인 것처럼 앞의 말에 ‘ㄹ‘이 탈락되는 현상이 있다.
‘솔’ +‘나무’의 합성어(合成語)가 소나무다.
솔은 한자의 거느릴 ‘率’(솔) 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率’은 ‘상(上)’, ‘고(高)’,‘ 원(元)’의 뜻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 가운데에서 우두머리가 되니 ‘수리’라 하였고 그 ‘수리’가 ‘술’ > ‘솔’로 변했다는 것이다.
소나무는 한자로는 ‘松’(송)으로 쓴다. 그래서 ‘송’+‘나무’가 소나무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松’(송) 자를 破字(파자)하면 ‘木’ + ‘公’인데 ‘公’은 소나무가 모든 나무의 윗자리에 서는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 李時珍 저)에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長)이다"라 쓰고 있는 것이
그 예다.
‘松’ 자는 고대 중국의 황제 시절 그의 신하 창힐(蒼頡)이 만든 글자라는 말도 있지만, 세조 전설이 어린 속리산의 ‘정이품소나무’처럼 진시황(秦始皇)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진시황이 길을 가다가 들판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마침 큰 소나무가 있어 그 아래에서 비를 긋게 되어서 그 보답으로 오작(五爵)의 으뜸인 공작(公爵)이란 벼슬을 주어 ‘목공(木公)'이라 하였다. 이 두 글자가 한 글자로 합쳐져서 '松'자가 되었다.
소나무의 세계적인 학명은 피누스(Pinus densiflora)다.
피누수(Pinus)는 켈트어(기원 전 1000여 년경 유럽 대륙에서 사용되던 말)로 ‘산에 사는 나무’란 뜻이고, 덴시플로라(densiflora)란 라틴어로 ‘꽃이 빽빽이 모여 난다’는 뜻이다.
소나무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자라는 나무다. 그 두 나라에서는 국토의 일부분에서만 자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토 전역에 자라는 나무가 소나무이다. 그래서 소나무의 종주국(宗主國)은 한국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나무는 영어로 '자파니스 래드 파인(Japanese Read Pine; 일본붉은소나무)이란 학명으로 통용되고 있다. 과거 문화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인 학자가 먼저 소나무를 세계 학계에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흔히 솔나무․ 송목(松木)․ 적송(赤松)․ 육송(陸松)이라고 부르지만 여송(女松)․ 청송(靑松)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적송(赤松)’이란 소나무 껍질이 위로 갈수록 검붉은 비늘 꼴이라서 생긴 말이요, 껍질이 흰빛을 띄는 중국이 원산지인 ‘백송(白松)’이나 검은 빛을 띠는 ‘곰솔[해송]’에 상대하여 부르는 말이다.
이 적송은 내륙(內陸) 지방에 주로 난다고 해서 ‘육송(陸松)’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닷가에서 주로 나는 ‘해송(海松=곰솔’)과 상대하여 부르는 말이다.
해송의 억센 잎과 비교하여 유연한 잎 때문에 육송은 ‘여송(女松)’이란 이름도 갖는다.
‘금강송(金剛松)’은 강원도와 경북 북부 태백산맥 높은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라서, 나이테의 너비가 좁고 고르다. 재질이 단단하고 결이 곱고 광택이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줄기가 굽지 않고 곧게 쭉쭉 뻗은 나무였다. 그래서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송(金剛松)을 으뜸으로 치는 것이다.
금강송을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하는 것은, 경북의 춘양역(春陽驛)으로 금강송을 모아서 기차로 실어 날랐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불탄 국보제1호 숭례문도 삼척 준경묘의 금강송으로 복원할 모양이다.
준경묘란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穆祖)의 부친 이양무(李陽茂) 장군의 묘다.
‘일본 소나무는 곧은데 우리나라 소나무는 굽었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말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우매한 민초들은 일본인들과 달리 내일을 생각지 않고 곧고 좋은 나무만을 우선하여 마구 베어다가 함부로 쓰는 바람에 생긴 말이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모양으로 ‘반송(盤松)’과 ‘처진소나무’로도 나누기도 한다.
반송(盤松)은 키가 작고 모양이 부채꼴 모양이어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 나무다.
처진소나무는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아래로 칙칙 늘어진 나무이어서 ‘유송(柳松)’이라고도 하는 나무다.
사람을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나누듯이 소나무에도 육송, 해송, 잣나무 등 종류가 많다.
그 종류를 겉으로만 보아서는 잘 구별이 안 된다. 이럴 경우엔 잎으로 구별할 일이다.
소나무 잎은 2개이기 때문에 이엽송(二葉松), 이침송(二針松)이라고 한다. 이 두 개 솔잎의 아랫부분의 하나의 입자루에서 함께 솟아나 2~3년 정도 함께 하다가 떨어지므로 백년해로(百年偕老)의 부부를 상징한다하여 소나무는 음양수(陰陽樹)란 애칭을 갖는다.
‘歲寒然後 松柏之後凋也’(세한연후 송백지후조야)라는 말이 논어에 나온다.
한겨울의 추위가 지난 연후에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변치 않는 굳굳한 절개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세한삼우(歲寒三友)에는 송죽매(松竹梅)가 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철에도 청청한 푸름을 잃지 않고 굳건한 송죽매(松竹梅)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 하여 동양화의 화제(畵題)가 되어왔는데 그중 우두머리가 소나무였다.
그림으로 그 대표적인 예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 단원 김홍도의 ‘선인송하취생도(仙人松下吹笙圖)’, 혜원 신윤복의 ‘송정아회(松亭雅會)’다.
이들 그림들은 눈[雪]과, 신선과 어울려 부는 생황(笙篁), 시(詩)가 정자에서 소나무와 어울려 풍류를 이루어 한 바탕의 아름다움을 꾸미고 있다.
소나무의 붉은 몸은 자고로 사악(邪惡)한 기운을 제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단청(丹靑)과 함께 선비의 충절을 상징하고 있다.
소나무는 중국에서도 기려오던 나무로 시문(詩文)에서도 소나무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하루의 계획으로는 파초를/ 한 해의 계획으로는 대나무를 심고,
십년 계획이면 버드나무를/ 백년 계획이라면 소나무를 심어야 한다.
-淸 유몽영(幽夢影)
登山卽思學其高 산에 오르거든 그 높이를 배우고, ,
臨水卽思學其淸 물가에 임하거든 그 맑음을 배우고,
座石卽思學其堅 돌에 앉게 되면 그 견고함을 배우고,
看松卽思學其貞 소나무를 보거든 그 곧음을 배워야 하며
帶月卽思學其明 달을 쳐다보거든 그 밝음을 배울 것을 생각하라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김시습의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십장생 중 산․ 물․ 돌․소나무․ 달을 노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주)- 십장생 중에 ‘달’이 들어가도 함
소나무의 수령(樹齡)은 얼마나 될까?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속리산의 ’정2품소나무’는 수령이 800년으로 소개 되고 있다.
그러나 버팀목으로 지탱하고 있고, 링거 주사로 극진히 보호 받고 있는 나무로서의 중환자 신세인 것을 보면 100세 이상의 인간 보살핌 이상이다. 그렇다면 소나무의 수명은 인간 수명의 10배가 되는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황금 시절이 청춘시절(靑春時節)이듯이, 소나무가 늘 푸른 나무로 이렇게 정정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솔잎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나무 잎은 푸름을 간직한 채 나무에 달려 있다. 그 솔잎이 2~3년으로 잎의 수명이 다하여 떨어질 무렵이면 새잎이 그 뒤를 이어 사시사철 푸른빛을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保護樹(1972년 내무부 간)’ 지에 의하면 한국에는 수령 100년 이상 되는 노거수가 약 1,400여 주나 된다는데 그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老去樹) 중에 제일 많은 것이 백송, 곰솔, 같은 소나무 30점으로 은행나무 ·18점보다 많다.
잎이 살아있는 나무는 고사목(枯死木)이 아니다. 소나무가 늘 푸른 나무인 것도 푸른 솔잎 때문이다. 솔잎은 줄기에 태어나서 해마다 줄기를 비대(肥大)시키며 최선을 다하여 일하다가 나이테를 더하며 가며 윤회를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잎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일까?
젊었을 때 보던 영화 유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잔이 선인(善人)으로 탄생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장발 잔이 감옥에서 출소하고 공원에 앉아 있을 때 어느 아이가 동전을 던지며 놀다가 떨어뜨린 것을 발로 밟아 가지려 했다.
그 후 죄인 장발 잔은 선량한 시장(市長)으로 변신한다. 그때의 내레이션이 다음과 같았다.
‘바다보다 넓은 것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
그렇다. 나무에게 매년 돋아나는 잎이 있다면, 사람을 새롭게 소생하게 하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은 장수하는 동식물의 세계에서도 크게 좌우되는 화두(話頭)다.
대나무 이야기 (5)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윤선도
위 고시조는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의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 중 ‘대나무’를 노래한 것이다. 이 오우(五友)는 모두가 십장생(十長生)의 하나하나다.
그런데 대를 보고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라’고 한 고산(孤山)의 탁견(卓見)에 우리는 감탄하게 된다. 현대 식물학자들에게도 대나무가 풀인가 나무인가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植物)은 크게 나무와 풀 2 가지로 나뉜다.
겨울을 당하면 지상부(地上部)의 줄기가 죽어 버리는 것이 ‘풀’이요,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면서 지상부에 있는 줄기에 나이테를 더하며 점점 몸집을 굵게 하는 것이 ‘나무’다. 한 마디로 나이테가 없는 것이 풀이요, 있는 것이 나무다.
그런데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그래서 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라 하고, 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나무’라고 한다.
건축에 쓰는 나무를 목재(木材)라고 하지만, 대나무만은 구별하여 죽재(竹材)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예다.
대나무는 참으로 신비로운 나무다.
모든 산천초목(山川草木)은 봄에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자란다.
그러나 대나무는 5월 중순서 6월 중순이 되서야 죽순(竹筍)이 돋기 시작하는데 처음의 죽순 굵기로 1년만에 쑥쑥 다 커버리고 해마다 겉만 단단하게 할 뿐이다.
그러다가 꽃이 피면 주위의 모든 대나무와 함께 일시에 모두 죽어버리는 나무가 대나무다.
대나무는 1,000여 종(種)이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대나무라고는 부르고 있는 것은 10m 이상 크게 자라는 왕대[王竹]다.
여기서는 왕대와 산에서 자주 보는 산죽(山竹, 조릿대)만으로 제한하여 이야기 하려 한다.
대나무는 양지(陽地) 식물이어서 충남 이남에서는 1년에 10~20m 자라지만 그 위의 추운지방에서는 5m안팎까지만 자라다가 성장을 멈춘다. 그러나 조릿대는 우리나라 전국 어디서나
생장하는 나무다.
대나무[왕대]는 죽순으로 돋아나서 하루 평균 30cm 이상 자라서 불과 50일 이내에 키가 15m에서 20m까지도 자란다. 그 후로는 해가 지나도 자라거나 굵어 지지 않고 굳어지기만 한다. 죽순이 하루에 1m 이상 자랐다는 기록도 보인다.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라는 대나무는 얼마나 살까.
꽃이 피면 죽는 것이 대나무이니까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대나무 수명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대나무 꽃이 피는 것은 나라의 불길할 징조라고 걱정하기도 하고, 살아생전 대나무꽃을 보는 것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상서로운 일로 말하기도 한다.
그 꽃이 피는 시기는 대나무 종류에 따라 그 간격이 다르다.
조릿대는 5년, 왕대와 솜대는 60년 주기로 핀다. 잎이 나야할 자리에 꽃이 피는 것이어서, 대 꽃이 피면 모죽(母竹)은 말라죽게 되고 대밭은 망한다.
그동안 부지런히 땅 속 줄기에 저장한 양분이 개화로 인하여 양분을 다 소모하는 바람에 다음 해에 돋아나야할 죽아(竹芽)의 싹이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나무 수령(樹齡)은 보통 60년이지만 길게는 120년을 사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대나무의 생명줄은 땅속줄기인 지하경(地下莖)이다. 그 마디에 있는 곁눈이 죽순(竹筍)으로 돋아나는 것이다.
땅속줄기가 왕대의 경우 300평당 총 연장 6km 이상 빈틈없이 엉켜 있어 지진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지진(地震)이 나면 대숲으로 피할 정도라 한다.
대나무가 자기보다 오래 사는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등을 제치고 십장생(十長生)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나무처럼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는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나무 밭을 ‘생금(生金) 밭’이라 하여 대나무를 소중히 키워왔다.
대나무는 죽순일 때는 식용이나 차 원료로도 쓰이지만 약재로도 많이 쓰인다.
각종 죽세공품(竹細工品)은 물론 조리 ·부채 ·발 ·담뱃대 ·낚싯대 ·광주리 ·죽부인 ·지팡이 등 생활용품들은 다 죽재(竹材)로 만들어졌다.
피리로는 대금(大笒), 중금(中笒), 소금(小芩), 퉁소나 단소(短簫) 같은 악기도 대로 만든 것이다.
그 대나무 악기에 달군 인두로 지져서 여러 가지 모양을 그리는 낙죽(烙竹)으로 악기를 예술적인 공예품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한편 대의 늘 푸른 속성과 구부러질망정 꺾이지 않는 성질을 ‘대쪽 같다.’ 한다. 그래서 대는 충절과 절개를 상징한다 하여 선비들에게 사군자[四君子:매·난·국·죽], 세한삼우[歲寒三友:송·죽·매]의 하나로 꼽히면서 사랑을 받아왔다.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도 대나무를 아주 좋아하였다.
“고기 없는 식사는 할 수 있어도 대나무 없는 생활은 할 수 없다. 고기가 없으면 몸만 수척해지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저속해 진다.”
그런데 대나무는 왜 속이 빈 것일까?
대나무는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처럼 성장 속도가 다른 나무에 비해 100배나 빨리 크는 나무다.
1년도 안되어 줄기가 15m 이상 자랄 때 가장 경계하여야 할 대상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람일 것이다.
그 바람에 휘긴 하지만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안전장치로서 대나무는 속을 비운 것이다. 휘되 꺾이지 않기 위해서 마디도 여럿 만든 것이다.
이 대나무의 마디가 절도를 갖춘 군자(君子)와도 같다고 하여 대나무 같은 사람을 ‘포절군(抱節君)’라고도 하였다.
대나무 마디 사이는 진공(眞空)이다. 그래서 불에 넣으면 ‘뻥-’하고 터진다.
그래서 폭죽(爆竹)이 탄생한 것이다. 영어로 대나무를 ‘bamboo’라고 하는데 이는 폭죽과 관계되는 의성어(擬聲語)다.
대나무를 한자로는 ‘竹’이라 쓰는 것은 죽순의 모양을 딴 상형문자(象形文字)이다.
초순, 중순, 하순 할 때의 ‘旬(순)’이 10인 것도 ‘竹筍’(죽순)의 ‘筍’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죽순(竹筍)은 10일이 지나면 대나무가 되어서 먹을 수 없어서라는 것이다. 그 ‘筍’이 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불로초 이야기(6)
-옛날 중국 초(楚)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백성이 내시(內侍)에게 ‘이 약은 불사약(不死藥)이니 임금님께 바쳐 달라.’ 하였다.
내시가 불사약을 가지고 궁궐에 막 들어가려는데 궁궐 수비병이 내시에게 물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이냐?’ 내시가 그렇다고 하자 재빨리 그것을 빼앗아 먹어버렸다.
이 말을 들은 왕이 펄펄 뛰면서 크게 노하여 수비병을 잡아 들여 죽여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수비병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저는 먹을 수 있는 것이라 해서 불사약이 진짜인지 먼저 먹어 보았을 뿐입니다. 이 일로 저를 죽이신다며 그 약은 불사약(不死藥)이 아니라 사약(死藥)이 될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소서.’ 그래서 경비병은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 무렵의 사람들은 속세를 떠나 선계에 살면서 젊음을 유지하며 불로장생(不老長生)할 수 있다는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믿고 있었다.
신선사상이란 주술·복서(卜筮)·점술 등에 의해 신선이 되어 늙지 않고 영원히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상이다.
신선(神仙)이란 선도(仙道)를 닦아 인간 세상을 떠나 자연과 벗하며 늙지 않고 불로 연연익수(不老延年益壽)하는 사람이다. 늙지 않고 남보다 더욱 더 수명을 늘려가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세속적인 상식에 구애 받지 않고, 고통이나 질병도 없으며 죽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때 신선들이 먹는 것이 늙지 않는다는 불로초란 식물이다.
진시황 시절에는 그런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 먹어야 불로장생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한(漢)나라 시대에 들어오면 인간이 직접 신선(神仙)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신선이 만들어 먹는다는 선단(仙丹)이라는 단약(丹藥)을 먹고 선술(仙術)을 쌓으면 몸에 날개가 생기고 그러면 우화등선(羽化登仙)하여 하게 되어 제왕(帝王)이 있는 상천(上天)에 올라서서 살게 된다는 도교사상(道敎思想)이다.
이런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포박자(抱朴子)’란 책이 있다.
포박자(抱朴子)란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이 지었다는 신선방약(神仙方藥)과 불로장수의 비법을 서술한 도교서적이다.
이런 사상을 그 후 불교가 수용하여 선종(禪宗)으로 발전되게 되었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것이 아니라 불로초를 먹어 장생불사하는 것이니 불로초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우리나라에는 불로초(不老草)란 이름의 마을이 전주(全州)에도, 인천(仁川)에도 있다.
인천 서구 불로동에 불로초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그 예다.
돈 구 5,000원권과 1,000원권을 자세히 살펴보면 불로초 그림이 있었다.
어즈버 깨달으니 진시황(秦始皇)의 탓이로다.
배 비록 있다 하나 왜(倭)를 아니 삼기던들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로 빈 배 절로 나올런가.
뉘 말을 믿어 듣고, 동남동녀(童男童女)를 그대도록 드려다가
해중(海中) 모든 섬에 난당적(難當賊)을 끼쳐 두고
통분(痛憤)한 수욕(羞辱)이 화하(華夏)에 다 미치는가.
장생(長生) 불사약(不死藥)을 얼마나 얻어 내여
만리장성 높이 쌓고 몇 만 년을 살았는가,
남처럼 죽어가니 유익한 줄 모라로다.
선상탄(船上嘆)이란 임진왜란 때 통주사(統舟師)로 종군하던 노계 박인로(朴仁老)가 부산에서 일장검을 짚고 대마도(對馬島)를 굽어보며 지은 가사(歌辭)다.
여기서 노계는 왜놈들의 배를 보고, 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황제(黃帝)와, 진시황(秦始皇)의 명령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고 일본에 정착한 서불(徐市)을 원망하고 있다. 그 진시황은 49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불사약(不死藥)이 바로 불로초(不老草)다.
불로초란 선경(仙境)에 있으며 사람이 먹으면 늙지 아니한다는 상상적인 풀이다.
중국 전한시대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의하면, 발해만 동쪽에 삼신산(三神山)이 있는데 당시 각국의 왕들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서 삼신산을 많이 찾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가장 유명하였다.
방사(方士) 서불(徐市, 일명 徐福)이 동남동녀(童男童女) 수백 명을 거느리고 배에 올랐는데 결국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건은 특히 유명한 일화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자고로 삼신산(三神山)이라 하는데 그 중 한라산을 영주산(瀛州山)이라서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 제주도에 왔던 것이다.
제주도에 서귀포(西歸浦)란 지명이 그 흔적이다.
서불 ‘徐[西]’, 돌아갈 ‘歸(귀)’이니 ‘서불이 불로초를 찾아왔다가 돌아갔다 해서 서귀포(西歸浦)(서귀포)’란 지명이 생겼고, 정방폭포 암벽에 ‘徐市過此’(서불과차)란 글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런지 서귀포 정방폭포 근처에 ‘서불박물관’이 서 있다.
지난 2008년에는 중국 河北省(허베이성)의 진황도시(秦皇島市)는 제주도 서귀포시에 ‘서복동도상(徐福東渡像) 조각작품’을 기증하였다. 서복의 비석 복제품 2점과 서복 판석 6장이었다.
진시황이 서복(일명 서불)에게 동남동녀(童男童女) 600명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건너가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명하는 장면을 표현한 작품으로, 길이 4.4m, 높이 2.5m, 두께 30m 규모로 제작된 것이다.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서복의 유적이 있다.
서복이 처음 일본에 상륙했다는 사가현(諸富町)에는 서복상륙기념비, 서복묘, 서복궁, 서복공원 등 유적이 많다.
긴슈진쟈(神社)에서는 2,200년 전부터 서복을 신으로 모시고 그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매년 벌이고 있다.
서복은 당시 몽매한 일본인을 일깨워 농경, 학문, 의학 등 선진 문물을 전수해주어 경제와 사회 발전을 시켜 준 은인이어서 “사농신(司農神”, “사약신(司藥神)” 등과 같이 신적 위치로 모시는 분이다.
제주도를 영실(靈室)에서 오르다 보면 윗세오름 대피소 이르기 직전에 ‘시로미를 아시나요?’란 입간판이 있다. 시로미는 일본의 북해도,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한반도에서는 한라산과 백두산에서만 자라는 불로초로 알려져 있는 식물이다.
일본에서 불로초로 알려진 식물엔 긴류산에 있는 후로후키를 불로초(不老草)라 하고 있다.
학자들은 불로초(不老草)가 영지(靈芝)일 것이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영지버섯이란 산과 숲의 나무뿌리가 썩은 곳에서 자라는데, 옛날에는 복초라 하여 상서로운 버섯으로 여겼다.
중국 명나라의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영지버섯은 산삼과 더불어 가장 좋은 약으로 소개하고 있다.
영지버섯 중에 갈색 계통의 영지는 다른 것보다 약효가 높다고 한다. 구멍장이버섯류의 대다수가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구름버섯(또는 운지버섯)에서도 항암제가 개발되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질이 좋은 것이 중국도 일본도 아닌 제주도의 영지버섯이라고 알려져 왔다.
영지버섯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은 영지(靈芝)가 신비로운 불로초임을 알게 하여 준다.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곤륜산(崑崙山)에 산다는 신녀(神女) 서왕모(西王母)가 생일잔치를 벌였을 때였다. 신선과 선녀들이 선과(仙果)와 선초(仙草)들을 바치며 축하 하였다. 그러나 영지선녀(靈芝仙女)는 늦게야 도착하여 이름 모를 영지(靈芝)버섯을 바치는 것이었다.
이에 화가 난 서왕모는 영지선녀를 천봉산으로 쫓아 버렸다.
인간 세상에 내려온 영지선녀는 강원이라는 가난한 청년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강원에게 몸에 좋은 영지를 자주 먹게 하였다. 이에 화가 난 서왕모가 영지선녀를 잡아오게 하자 선녀는 잡혀가기 전에 강원에게 병을 치료하는데 쓰라며 영지균을 전해 주었다. 이로부터 인간이 영지(靈芝)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영지는 일본에서는 ‘만년버섯’ 중국에서는 ‘신초’ ‘선초’ ‘불사초’ ‘황제의약’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불로초’로 불린다.
그래서 그런가. 영지버섯은 먹으면 장수를 누릴 수 있고, 죽은 사람의 얼굴에 올려놓으면 생명이 소생한다는 ‘영험한 버섯’이라 전하여 온다.
중국의 4대미인 중 하나라는 양귀비의 아름다운 비결이 이 영지버섯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하여 온다.
‘신농본초경’에서는 영지버섯을 선인들이 노니는 곳에서만 나는 신선초(神仙草)라고 했다.
‘본초강목‘에서 이르기를 영지는 약 중에 상약(上藥)으로 영지를 먹으면 눈이 맑아지고, 장을 보호하며 주며,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비장을 보호한다 하였다.
진시황(BC 259~BC 210)은 기원전 사람으로 우리나라로는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중국에서 살던 황제다.
기록 이전의 시대 사람이어서 이를 언급한 사서인 ‘사기(史記)’도 100년 후에 쓴 글이니 진시황과 불로초 이야기도 신화 속의 이야기 같은 일이다.
모든 동물은 사고(四苦)라 하여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반드시 차례로 겪어야 한다.
나서 자라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이 생명체의 삶의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 중 인간만이 늙거나 병들지 않고 장생불사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늙기 전에 병이나 사고로 죽는다면 몰라도 자고로 불로장생(不老長生)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불로초’는 ‘불사조(不死鳥)’와 같이 도달할 수 없는 신화의 세계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환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불로초(不老草)’보다는 ‘장생초(長生草)’라는 말이 더 나은 표현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인간의 불로나 장생을 도와주는 것이 ‘고기[肉]’가 아니고 불로초란 ‘풀[草]’이었다는 관점이다. 식물이나 채소가 불로나 장생을 위해 좋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래서 가수 현철은 ‘사랑이 불로초’라고 노래하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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