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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데 마음 간다는 그 말, 중생을 향한 보살의 마음으로
윤구병(尹九炳, 1943-), 호미, 2019, P. 228.
목차
책을 내면서 | 변산 지름박골에서 짓는 염불 4
탐욕과 건전한 욕망-불교의 욕망관 13
부처됨의 어려움 20
빗속에서 떠오른 생각 28
내가 꿈꾸는 공동체 34
자비慈悲에 대하여 40
‘관셈보살’을 그리며 47
유마의 방에서 벌어진 일 53
아누다라삼먁삼보리, 더할 나위 없이 바로 고른 바른 깨달음 61
한결같이 즐겁고 너나없이 좋은 부처님 나라 68
상구보리 하화중생, 좋은 말이지 76
여든 살 늙은이 조주의 하루살이 84
운수행각雲水行脚, 멋지다 93
개똥이 말똥이 말도 귀담아듣자 100
‘없는 놈’이 되는 공부 107
눈동냥과 귀동냥 115
도법과 성주 군민들을 믿는 까닭 122
거칠지만 아름다운 한 비구니의 손 129
반야의 공 137
만남과 맞섬 144
아름다운 부처 151
성철의 왕방울 눈 158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166
한마음 바로 먹으니 한맛이더라 173
불국토의 꿈,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 181
남전의 고양이와 조주의 개 189
하루 짓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마라 197
하하하 204
뭘 어떻게 해야 되지? - 시골 늙은이의 궁금증 211
쓰레기 없는 쓰레기 마을, 새로운 승가 공동체의 꿈 218
내가 며칠간 틈틈이 손가락을 놀려서 형님의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은 그의 본성이 자연과 더불어 있다는 점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원 시절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거의 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공부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희랍어 라틴어 독어 영어 불어 한자까지 읽어내는 것을 보면 진짜 공부하는 사람 같기도 하였다. 세상사에 깊숙이 이야기할 때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 저런 정보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또는 학적인 것(먹물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놓고 같이 듣는 이들이 썰렁하게 여기면 혼자서 껄껄껄 웃어넘기는데 요즘 말로 선배로서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느낀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날 웃어넘긴 이야기가 웃어넘길 이야기가 전혀 아니며, 세상은 그의 이야기를 마치 화두처럼 던진 것이 문제되어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앞 뒤 사정을 이리저리 엮어서 소상하게 세상사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문제제기에 답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에서 그가 가고 나면 또는 다른 날에도 윤구병(떡형님)의 이야기가 막걸리집에서 화두에 오르면 안주로서 시간가는 줄 몰랏다. 게다가 각자가 형님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맹인 코끼리 일부분 만지는 수준이었다. 지금도 ‘같잖은 생각(nothos logos)’에 대해 강연을 하지만 그렇게 오래 사귄 한철연 연구자들도 이미 제시된 강연제목으로 어떤 줄거리를 잡기 어려워, 그 옛날처럼 - 요즘은 형님 안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보고 선생님 하지만 – 형님을 안주 삼는 것은 여전하다. 철학에서 너무 멀리 나갔다고 우려 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그러면 철학의 본령이 무엇인데 그게 철학이지 하는 쪽도 있다. 변혁과 혁명은 구병형의 방식으로 되겠나 땅을 파고 있어서 라고 하면서 변산공동체가 주축 또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그러면 이시대의 토대를 마련하고 번져 나가는 힘에서 우리말 쓰기, 새로운 인간 형성으로 어린이에 대한 관점, 문턱없는 밥집과 같은 생활 공동체의 기반이 변산공동체, 민족의학, 공상적 공산주의, 게다가 요즘 계속 선동중인 “평화통일 영세중립 코리아” 등의 다양한 측면들 중에 각각들은 일측면만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제나 이제 또는 아제에도 그럴 것 같고, 또 안주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52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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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내면서: 변산 지름박골에서 짓는 염불 4-7
# 탐욕과 건전한 욕망: 불교의 욕망관. 13-19 [특집: 윤구병, 월간 해인 1987년 03월 61호.]
제 몫까지 남에게 빼앗겨 애당초 가진 것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이 무소유를 설법하실 까닭이 없다. 따라서 부처님의 무소유 사상은 계급 지배 사회에서 인간을 개나 돼지만큼으로도 여기지 않는 탐욕스러운 지배계급의 목덜미에 겨누어진 칼끝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18) [탐욕은 넘쳐난다. 욕망은 모자란다. 탐욕자는 꼴꽁, 온 세상 사람을 모두 부처로 만들려는 욕망자가 석가. (52QME)]
# 부처됨의 어려움 20-27
아무튼 석가는 ‘이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구나’하고 깨우침으로써, 부처를 이루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과정을 거친 끝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26) [설탕물이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 깨달음의 노력을 지속했더라면 지금 여기 가능하리라.]
# 빗속에서 떠오른 생각 28-33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사랑도 그에 따른 비극도 없는 세상보다는, 온통 비극의 수렁을 이루더라도 사랑이 있는 세상을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보은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은 것 같다. (33)
# 내가 꿈꾸는 공동체 34-39
‘만드는 문화[문명]’에 반대하여...
‘기르는 문화’는 달라. 기르는 문화의 숨은 주체는 자본이나 생산력이 아니라 자연이야. 자연에는 쓰레기가 없어. 버릴 게 없다는 말이지. 잡초? 해충? 그런 것 없어 사람의 비뚤어진 관념이 그렇게 보도록 하는 거지. 실제로 내가 농사지으면서 보니까 밭에 자라는 풀 가운데 먹을 수 있는 풀과 약초 아닌 것이 업더라고. 생명 공동체의 유기적 조화가 깨지니까 어떤 곤충이 해충으로 보이는 것뿐이야. (37)
올콩은 감꽃 필 때 뿌리고, 메주콩은 감꽃 떨어질 때 심는게 ... (38)
# 자비慈悲에 대하여 40-45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존(存) 존(尊, 높이다 우러러보다)
# ‘관셈보살’을 그리며 47-
내 어릴 적 우리 아버지는 새벽마다 천수경을 읊으셨다. 아버지가 베고 자던 하얀 베갯잇에 복사꽃 빛깔의 발그레한 무늬가 얼룩덜룩 묻어 있는 것도 여러 차례 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왜 아버지가 허구한 날 새벽 염불을 하는지도, 베겟잇을 물들이던 얼룩무늬가 왜 생겼는지도 몰랐다. 나중나중에 철이 들고서야 깨달았다. / 내 나이 여덟 살 때 육이오 전쟁이 일어났다. 칠월에서 구월에 이르는 두 달 남짓 사이에 아버지는 아홉 자식 가운데 여섯을 잃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그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앓다가 내 나이 열두 살 때 돌아가시고 일곱째 형은 어린 나이에 몹쓸 사람들 손에 주리를 틀리고 난 뒤에 마음에 병을 얻어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덟째 형은 열다섯 나이에 구두 통을 메고 우리 식구가 육이오를 맞았던 그 무서운 서울로 다시 살길을 찾아 떠났다. 학교라고는 초등학교 삼학년까지 다닌 그였다. (47-48) [나는 형님이 머리가 안돌아 가서 “뿌리깊은 나무”를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사실로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잡지는 전두환에 의해 폐간되었다는 것을 엉뚱한 이야기(호미 출판사)에서 보았다. (52QME)]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나는 ‘천수천안관세음’과 ‘대자대비’라는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어느 스님이 “천수천안이란 별개 아니다. 오백 사람만 모이면 손도 천개고 눈도 천개가 되니 관세음보살 노릇을 할 수 있다” 그 뜻풀이도 재미있다고 여긴 적이 있다. ... 움 그리스 완전 수 10이다. .. 중국과 우리나라는 백(온), 온누리로서 100인데, ... 오백을 모으면 천개의 손, 천개의 눈이 된다. 인도는 천(1000) 단위이다[10의 4승단위로 커 간다.] (49-50)
# 유마의 방에서 벌어진 일 53-61
유마힐거사와 문수사리의 대화 ... 대승경전의 기초이다. (52QME)
# 아누다라삼먁삼보리, 더할 나위 없이 바로 고른 바른 깨달음 61-75
[한참(일진一眞)) 비구니에게 쓴 편지 형식: 이 글을 읽으면서 형님도 전쟁의 그늘이 길게 늘여져 있다고 느낀다.]
사드배치, 개성공단 폐쇄, 키졸브 훈련 등, 전쟁의 먹구름이 다시 이 땅을 뒤덮고 있는 터에 무슨 경황으로 글 쓸 수 있었겠습니까? 글이 실리는 매체가 월간지가 아니었으면 저는 절필 선언이라고 하고 싶을 만큼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 드렸지요. 미래 세대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들만이 이 땅에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고요. 그리고 스님에게 이렇게 하소연했지요. (63) [전쟁의 공포, 절망... =이 글은 2016년에 쓴 글이다.]
# 한결같이 즐겁고 너나없이 좋은 부처님 나라 68
[또 다시 운문사 한참 스님을 사랑하여 편지를 쓰다.]
지난번에 스님께 사랑 글 보낼 적에 반야심경에 쓰인 것(색), 소리(성), 냄새(향), 맛(미), 닷기(닿기, 촉), 결(법), 그리고 그것에 짝을 이루는 눈(안), 귀(이), 코(비), 혀(설), 몸(신) 얼(의)을 들면서 제가 나름으로 의(意)를 ‘뜻’으로 옮기지 않고 ‘얼’로 바꾸고, 이 말과 짝짜꿍이 되는 법(法)을 함부로 ‘결’로 옮겼습니다. (68) [얼과 결이라, 얼의 확장 또는 확산은 결이 아니겠는가? 일단 톨은 아닐 것이고 선도 아닐 것이고 너비(면적)도 아닐 것이다(52QMF)]
말이 길어졌지만 몇 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용성스님(龍城 186-1940)이 우리말로 옮긴 불경이나 어록들을 눈여겨보십시오. ... 용성스님은 이미 이 나라를 식민화한 일본이 ‘내선일체’를 내세워 머지않아 우리말을 없애고 일본말을 나라말로 삼으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을 지키는 것이 독립운동의 한 가닥이라고 보아 밤을 새워 “화엄경”, “금강경”, “선문촬요”같은 책을 결고운 우리말로 옮기시느라 몸을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74)
#상구보리 하화중생, 좋은 말이지 76-83
[벩송을 빌어 상구보리는 허구(소설)이다. 하화중생이란 삶이다.]
중학교 삼학년 겨울에 첫 출가를 시도했다. 공주 갑사를 찾아 갔다. 누굴 만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대웅전에 들어갔다가 부처님이 등 떠미는 것 같아서 하릴없이 내려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엽스님(一葉, 1896-1971) 의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을 읽고 예산 수덕사를 찾았다. 머리를 깎겠다고 하는 내말을 듣고, 노장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시 스님 찾아가 보라고 이르신다. 주지 스님은 단칼에 내치셨다. 부모 승낙을 받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오면, 그때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시겠단다. 또 하릴없이 터벅터벅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 마지막 다시 마음을 냈다. 이미 한 여자와 짝을 맺고 딸 하나를 낳은 뒤였다. 둘째 애는 아내의 뱃속에서 자리고 있었다. 송광사에 들어가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미안하다고, 더는 부부인연을 이어갈 힘이 없다고, 죄값은 부처님에게 치르겠다고 했다. .. 마당도 쓸고, 부엌일도 돕고, 노장 스님 방도 닦고 요강도 비우고, 구산 스님(九山, 1908-1983) 따라 텃밭에 나가 돗벌레도 잡고, 법정스님(法頂, 1932-2010이 계시는 불일암에 공양도 날라드리고… 오늘일까 내일일까 머리 깎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불쑥 뿌리깊은 나무 대표 한창기(韓彰璂, 1936-1997) 사장님이 내 앞에 나타났다. ... 세 번째도 실패. (76-77)
... 내가 우러르는 보살은 소선 보살, 제 몸을 불태운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李小仙, 1929-2011)이고, 진숙 보살, 한진 중공업 까마득하게 높은 쇄해오라기(타워크레인)에 삼백하고도 아흐레 동안이나 매달려 있던 소금꽃나무 김진숙(1960-)이다. (79)
육조 혜능이 가난뱅이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글을 익히지 못한 까막눈이었다는 것도 안다. 귀를 눈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81)
혜능은 싹수가 없다고 쫓겨났다. 아마 한 겨울이었을 게다. 오조 홍인(弘忍, 601-674)이 혜능의 헐벗은 꼴을 보고 가엾게 여겨 제가 입던 옷가지와 동냥할 때 쓰라고 밥그릇을 넌지시 주어 보냈을 것이다. (82)
# 여든 살 늙은이 조주의 하루살이 84-91
[그(조주趙州, 778-897)는 그야 말로 길손이고 나그네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 노마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손발과 몸을 놀리고 있어야 뙤를 트는 먹물도 마찬가지이다. 똥짝데기 설화는 조주의 것이라 한다.]
일과 놀이는 둘이 아니다. 손발 놀리고 몸 놀린다는 말을 손발과 몸을 놀게 한다는 말이다. (87) .. 입싸름도 놀이다. 씨름판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모인다. (89)
# 운수행각(雲水行脚), 멋지다 93-99
중들이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 한다. 구름처럼 떠다니다 물처럼 흐르는 발걸음. .. (93) [길들이지 말고(습관화), 길 나서야.]
혜초(慧(惠)超, 704-787)
청운당 일휴스님(193??? -2013) 비구니, 울진 불영사
춘성(春城, 1891-1977)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 개똥이 말똥이 말도 귀담아듣자 100-105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80)가 김수온의 맏형으로서 세속 이름이 김수성이고 1403년에 태어났다. .. 이렇게 알려지게 된 데에는 누구보다 박해진 씨의 공이 더 크다. (100)
‘마음은 맨 먼저 아픈 데에 간다’는 말은 도법(道法 1949-) 스님이 일깨워 준 말이다. 두고두고 마음에 새길 말이다. (108) [마음은 아픈데(고통, 고뇌)를 풀러 간다. 목마른 자 샘 판다. (52QMH)]
# ‘없는 놈’이 되는 공부 107-114
마음하나 잘 먹으면 개돼지가 부처되기도 하고, 마음 한번 잘 못 쓰면 부처가 개돼지 되기도 한다. ... 원효(元曉, 617-686)가 말한 한 마음(일심 一心), 한맛(일미, 一味)이다. (107)
누나인 메리 램과 함께 아이들 눈에 맞추어 세익스피어이야기를 쓴 찰스 램(Charles Lamb, 1775-1834)은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인종만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있는 놈’과 ‘없는 놈’. (112-113)
# 눈동냥과 귀동냥 115-121
홍인(弘忍, 601-674)과 혜능(慧能, 638-713)
[귀동냥으로 들었던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主 而生其心: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말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내는 것)로, 출가하게 된다.]
일본 불교가 조동((曹洞)을 우두머리로 내세우고, 조선불교가 임제(臨濟)를 우두머리로 내운다고, 임제종이 어떻고 조동종이 어떻고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픈 식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때 조동종이 ‘있는 놈’ 쪽에 서서 ‘없는 놈’ 가운데 없는 놈이었던 조선불교를 짓밟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120)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당나라의 선승(禪僧), 임제종(臨濟宗)의 시조(始祖). / 산양개 (洞山良价 807-869) 중국 당(唐)나라 선승(禪僧). 조계사 법을 동산이 이어서 조동종(曹洞宗)이라 한다. ]
혜능은 까막눈이다.. [신수의 글을 보다가 답 말이 있다., 홍인 이야기를 듣고 발우(鉢盂, 바리때)를 주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어여 내빼거라.”] 이렇게 해서 눈동냥을 으뜸으로 치던 깨달음의 길을 벗어나 귀동냥으로도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는 지름길을 따로 낸 사람이 육조 혜능이다. (119-120)
# 도법과 성주 군민들을 믿는 까닭 122-128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불씨잡변(佛氏雜辨)(19장, 불교 이론 및 선종 비판)
- 선조(宣祖) [선조(宣祖, 1552-1608) 조선의 제14대 임금 (재위 1567-1608년)] .
1501 이황(李滉, 1501-1570) 퇴계(退溪).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1520 휴정(休靜, 1520-1604)호 청허(淸虛)․서산(西山). 조선 중기의 승려, 승군장(僧軍將).
1536 이이(李珥, 1536-1584) 율곡(栗谷)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1537 권율(權慄, 1537-1599)은 조선 중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다.
1542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서애(西厓)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1544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호는 사명당(四溟堂). 조선 중기의 고승.
154? 영규(靈圭, 생년 미상-1592)는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서산대사 제자.
1545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1552 선조(宣祖, 1552-1608) 조선의 제14대 임금 (재위 1567-1608년)
1556 이항복(李恒福, 1556-1618) 백사(白沙),필운(弼雲), 조선 문신·정치가·시인·작가.
1561 이덕형(李德馨, 1561-1613) 한음(漢陰)·쌍송(雙松),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 1949 도법(道法 1949-) 제주, 1남원 실상사 불교귀농학교(교장 도법스님, 실상사 주지)
# 거칠지만 아름다운 한 비구니의 손 129-135 [2016년 12월 불광]
일진(一眞, 1951?-) 운문사
도법(道法 1949-)
남지심(1944-) 명성: 구름 속의 큰 별(2016)
[명성(1930-)은 대한민국의 불교 비구니. 운문사.]
명성(2016)에서 본 글 한 구절 ‘벼룩 서 말을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중 셋은 데리고 가기 어렵다.’ (130)
여기에 남지심의 평전 소설 한 대목 .../ “명성스님의 외모는 늘 단정하고 반듯하다. .. 한국 최고의 서예가 일중 선생과 여초 선생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한 ...그리고 글씨 연습을 한 종이가 아까워서 그 종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틈만 나면 꼬아서 둔다. 지승 공예를 위해서다. ... 뜨개질도 잘 한다. ...”(133-134)
# 반야의 공 137-143 [2017년 1월 불광]
‘오온’이 저마다 흩어지려는 톨의 움직임이라면,
‘공(空)’은 이것들을 꼬아서 잇는 결의 흐름이다. (137)
.. 영세 중립은 대한 제국의 황제였던 고종 임금도 바랐고, 그 뒤로 조선의 김일성도 대한의 김대중도 입에 올렸다. 구한말에 고종의 말을 귀담아들었던 나라는 러시아뿐이었다. 그 때에 이름이 ‘청’이었던 중국은 속구인 주제에 시건방을 떤다고 콧방귀를 뀌었고, ‘필리핀은 우리가 먹고 조선은 니네가 먹고’하는 귀속말을 일본과 주고받던 아메리카 합중국은 어느 집 개가 짖느냐고 코웃음 쳤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중국까지 넘볼 욕심이 가득했던 일본은 두말할 것 없이 손사래를 쳤다. (138-139)
조선 불교는 원효(元曉, 617-686, 사복: 우리말 ‘새벽’의 한자 표기)에서 동터서 보조(知訥, 1158-1210 普照國師)에서 한 낮을 맞았다가 서선(西山, 休靜, 1520-1604)에서 저물었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럴싸한 말이다. 그러나 그 소리가 빈말임을 경허(鏡虛, 1849-1912)가 몸보이고 만공(滿空, 1871-1946)이 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141-142)
남북 분단은 우리 뜻이 아니었고, 지금도 우리 뜻이 아니다. 핵무기 개발도 미군 주둔도 우리 뜻이 아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는 전쟁광들과 죽음 상인들이 사이에 들어 벌이는 ‘죽임 잔치’에 맞서는 말은 ‘살림’이다. 살림은 누구 몫인가. 누가 살림을 잘 하는가. ‘여자’로서 사람 사이에 드러나는 ‘암[여성되기]’의 힘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현빈(玄牝)’이다. ‘검은 암의 열림, 이를 일러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현빈지문 시위천지지근玄牝之門 是謂天地之根).’ (142-143)
# 만남과 맞섬 144-150 [2017년 2월 불광]
월간 불광 편집을 맡은 김성동(金聖東, 1947-) 님으로부터 전자 편지를 받았다. ... “최근 불광에 실린 윤구병 씨의 기고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2017년 1월에 ‘반야의 공’이란 제목으로 별로 보잘 것 없는 내용(북녘의 핵무기, 주한 미군, 김일성, 김대중 등등)을 기술했으며, 2016년 12월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한 비구니의 손’의 내용 중에는 한일순사정보공유, 한반도 사드 배치하고자 하는 사람은 ‘전쟁광’이라 하고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평화 세력’이라는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세우는 척하며 자기들의 정치 이념을 선전 선동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내용을 전파하는 것이 불광 발행의 이념입니까? 참으로 암담합니다. 원의 불광 발행 이념이 퇴색하여 정치이념의 선동 선전의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없는 종교지, 부처님 말씀의 전법과 선행지로서 월간 불광으로 발견하기를 기원합니다.” (144-145) [내가 이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일상에서 전쟁광(꼴꽁)이 전개하는 이야기에 한마디라도 끼어들면, 그들의 소리는 (대들보를 보지 못하고 티눈을 보며) 왜 일상에 정치색을 섞느 냐든지, 왜 대책없는 반대를 하는지, 반대의 반대가 무슨 소용이냐는 등으로 모임 사람들이 한 사람을 빨갱이, 종북좌파로 몰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남측의 일상이 꼴꽁이 느끼지 못하지만 극우의 정치색으로 사는 게 일상이다. (이 정치색이란 초등 운동회가 홍군 청군이 아니라 청군 백군 이라는 점도 정치색이다) 그걸 정치색이라고 말해 주면 펄펄 띤다. 마치 빨갱이라는 말을 해야 파랭이가 되기나 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은 요강공주같은 꼴꽁들이다. -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다음 문장이다. (52QMJ)]
이 글을 불광지에 보내신 분에게 마음속으로 ‘성불하십시오’하고 절을 올린다. / 처름에 이 사연을 전해듣고, 내 글에 상처 받은 이들이 있구나. 다 늙어 죽음을 앞둔 터에 남의 마음을 어루만지지는 못할망정 어지럽혀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잡지 연재를 그만두려고 마음먹었으나, 내가 하는 말이 아직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 더 써달라는 편집자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145)
성철(性徹 1911-1993, 이영주) (147) [해인 총림]...
엘렝코스(ἔλγχος) (149) [증거, 비난, 증명 preuve; reproche; blâme; démonstration]
공자의 삶을 추스른 이른바 ‘자서전’은 한자 서른 여덟 자로 이루어져 있다(이십유오이지우학 ...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노자(李耳, 전571-전471)의 철학을 담은 「도덕경」도 아주 짧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 선불교의 조사들이 든 화두도 외마디이거나 몇 마디 안된다. (149)
우격다짐(150) [꼴꽁은 수직관계라 명령어를 쓰고 우격다짐한다. 그런데 수평(매끈한 공간)은 우격다짐하면 수용하기보다 미끄러져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다. (52QMJ)
# 아름다운 부처 151-157. - [2017년 3월 불광에서 「윤구병의 평화모니」]
[행지합일: 몸만들기 마음빚기. 철학하는 것은 빚어진 ᄆᆞᆷ을 실행하는 것이고 그리고 입으로 말을 하면서 귀동냥으로 너울지어 결로 퍼진다. ᄆᆞᆷ은 경계가 없는 점이며, 무한정자이며, 벩송이 말하는 기억을 끌고 미래를 예참하는 현재(소자아, moi)이다. (52QMJ)]
석가는 집을 나선다. 출가(出家) 또는 가출(家出)이다. 처자식도 버리고 아비 어미 뜻도 저버리고, 먼 속으로 달아나 한 해 줄곧 흰 눈이 쌓인 봉우리가 보이는 나무 아래 똬리를 틀고 앉아 여섯 해를 버친다. 그 사이에 남의 피와 땀으로 오른 살과 기름기를 조금씩 조금씩 몸에서 빠져나간다.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던 앗는 버릇(약탈자 근성)도 부리는 버릇(지배논리)도 함께 떨어져 나간다. ‘설산수행(雪山修行)은 새로운 몸만들기와 마음 빚기로 이어진다. (152)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존(尊)이라 쓰고 존(存)이라고 읽는다. ‘온 누리에 나만 있구나, 나 아닌 것이 없구.’ 이게 부처의 ‘미학(美學)’이다. (155) [세상이 모두 부처이고 우주생성론(우주론이 아니다)은 부처를 만드는 과정이다.]
「스님의 첫 마음」(박원자 씀)을 읽었다. 우리 곁에 머물다 사긴 스님이나 아직 머물고 있는 분들의 초발심을 듣고 옮긴 글을 읽으면서, ‘카톨힉교의 영성(靈性)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막의 수도원에서 나온다는 어느 분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158) [유럽 공동체(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는 교황청에 연관없는 수도원 또는 프랑마송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격 소공동체는 자연주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 생활의 이적, 기적은 신의 뜻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합일(entase, 몰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 성철의 왕방울 눈 158-165
성철은 가까운 이들에게 모진 스님이었다. (153) [모진 행위를 이해 또는 정통한 이는 그의 옆을 떠났을 것이다.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면, 탁발을 나가거나, 불경을 번역하러 방콕했거나 선방에서 용맹정진하지, 스님 곁에 얼쩡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166-172
달마(達磨, Bodhidharma, ?-528)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서쪽에서 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 왜 그랬을까? 그 때 이미 인도에서는 불교가 승려들이 왕권과 결탁해서 글을 ‘모시는’ 유식한 특권층 종교로 탈바꿈해 있었다. 경전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중노릇도 할 수 없었다. 까막눈이 절집 언저리에 기웃거린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166)
양 고조 무제(梁 高祖 武帝, 464-549)라는 사람도 겉으로는 불제자 행세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부처 팔아 전쟁을 일삼는 전쟁광이었다. (167-168)
한겨울에 혜가(慧可, 487-593)가 찾아왔다. 외팔이였다. 싸우다 쫓져왔겠지. “팔 하나로 무얼 하겠노? 여기서 함께 살자.” 달마의 ‘법통’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168)
그래서 선불교 다섯 번째 할아버지인 홍인(弘忍, 601-674)에 이르러서는 ‘북종’이라는 종파 불교가 자리를 잡는다. 홍인 다음으로 예약된 우두머리가 신수(神秀: 606-706)다. (169)
남영신(1948-) [호는 높세울]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 우리 말글 바로 쓰는 길잡이(남영신, 보리, 2017) (170)
# 한마음 바로 먹으니 한맛이더라 173-180
원효(元曉, 617-686) 스님의 「대승기신론소」에 아래와 같은 알쏭달쏭한 말이 있다. “참같은(眞如진여)은 그 몸(体체)이 한결같아(平等, 평등) 모든 꼴(相상)을 여의었다고 말했는데, 어째서 다시 참같음 몸에 이런 여러 품너름(功德, 공덕)이 있다고 하는가?” / “대답하기를, 이런 모든 품너름에 뜻이 있는 건 맞지만 따로 나뉜 꼴이 없어서 똑 같은 한맛(一味일미)이고 하나 뿐인 참같음 이다.” / ‘한맛’이라. 뒤이어 이 ‘한맛’은 ‘한마음(一心일심)’으로 드러난다. (173-174) .
그런데 원효는 왜 한마음(一心일심)이 빚어내는 한맛(一味일미)을 온갖 다른 맛 다 제쳐놓고 짠맛이라고 했을까? 얼핏 생각해도 단삼이 가장 좋은 맛 아닌가. (175) [사회의 교정에는, 상상이 너무 나가는 것을 교정하는데, 교정제가 소금이라고 한다. - 벩송 (52QMJ)]
은정희(殷貞姬 1939-)는 또 이렇게 적어 놓고 있다. / “원효는 염정무이(染淨無二), 진속일여(眞俗一如)라는 그의 학문적 이론을 당시의 신라 사회에서 대중과 함께 몸소 실행에 옮겼던 드문 실천가였다. 당시 신라 사회는 원광과 자장의 교화에 큰 영향을 입었으나, 불교의 수용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층과 서민층 사이에는 아직도 괴리가 있었다. 이러한 때에 혜공, 혜숙, 대안 등이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대중들에게까지 불교를 일상 생활화시킴으로써 유익한 의지처가 되게 하였다. (177) [대중불교, 하화중생, 미륵불 등은 전쟁 다음에 오는 인간의 삶에 대해 위무일 수 있다. 허무주의 극복은 이상사회를 그리는 것과 이상사회로 나가는 새로운 인간형을 만드는 길은 다를 것이다. (52QMJ)]
“전쟁반대! 조국통일! 영세중립! (180)
# 불국토의 꿈,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 181-187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 주문이 정암학당에서는 ‘평화통일 영세중립 코리아’라고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염불이다. 모두 보태면 열한 자이다. 이 땅에서 오랫동안 가장 ‘영험한’ 염불이었다. 지금까지 천년이 넘게 읊어왔다.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 이것도 염불이다. 마찬가지로 열한 자이다. (181)
용수는 중론(中論)이란 글을 썼다. 중도(中道)를 밝힌다고 쓴 글인데, 이 글 잘못 읽으면 샛길로 빠진다. ... / 누가 조주에게 찾아가 “개한테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없다’고 말했다는데, 앞뒤 다 떼어내고 ‘무(無)’ 화두만 붙들고 매달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샛길로 빠진다]. (182-183)
불교에서 ‘알음알이’로 치는 생각 생각은 모두 지난날에 겪어서 머리속에 차곡차곡 간직해온 이른 바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 능엄경 언해에는 기억을 뜻하는 ‘억(億)’이라는 말을 ‘생각’으로 옮겨져 있다. ... 능엄경 언해를 보면 ‘사(思)’를 ‘사랑’으로 옮겼다. (186) [벩송의 기억론에서 기억(la mémoire] 차곡차곡이 아니지만 경험적 총체로서 자아에 선험적(먼저 경험한 것)으로 있다.]
# 남전의 고양이와 조주의 개 189-196 [남전참묘(南泉斬猫)와 조주두대초혁(趙州頭戴草鞋)]
{* 주제 : 인도철학에서 ‘같잖은 생각을 한 사람들’: <반야심경>, <중론>등
- 일시 : 2019년 06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 [[이날 이병창이 “남전의 고양이와 조주의 개”를 읽어내려 갔다. 이런 선승의 예를 쓴 이유가 무엇일까? 남전의 제자들이 양편으로 갈라서, 서로 말로 싸울 줄을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 즉 그 논쟁자들은 중생에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이다. (52QME)]
.. 남전은 눈에 띄는 새끼 고양이와 식칼을 들고 뛰어 나간다. / 남전이 손에 든 것은 빈말(공론)이 아니다. 칼과 고양기라는 ‘구체적 데이터’이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불 수 있는 ‘주어진 것들(data)’이다. / “자, 봐라. 이 새끼 고양이와 식칼은 너희들이 마구잡이로 주둥이에서 쏟아내는 헛소리들이 아니다. 그 주둥이에서 나오는 어떤 말로도 이놈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다. 살릴 놈이 있으면 당장 나서라.” / 선뜻 나서는 놈이 아무도 없다. (192) [전승 설화이지만, 퀴니코스 학파의 이야기와 닮았다. 몸이 먼저나 사고(思考)는 다음이다. 소크라테스의 직계는 퀴니코스의 안티스테네스일 것이다. 박홍규의 직계는 윤구병이듯이.]
사랑 받을 길 없는 생명체는 살아 있어도 죽은 목슴이다. 남전은 그 새끼 고양이 목을 베면서 마음속으로 제 앞에 선 그 모든 패거리들의 목을 벴다. (193)
나라꼴이 이 꼴인데,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는 한가한 물음에 “없다”라고 대답했더니, 앞 뒤 싹 자르고 ‘무’자만 내세워 ‘화두’를 삼는다? 그 놈이 먹는 밤, 그년이 입는 옷, 그 연놈이 사는 집은 누가 마련해 준 것인데? / .. 조주는 나이 여든이 넘어서야 다 쓰러져 가는 움막 같은 암자에 자리를 잡는다. .. 여기서 시작이다 .살아야 한다. 살려야 한다. 혼자 살면 삶이고, 다른 사람도 함께 살리면 살림이다. (195)
“우리는 대한 국민도 아니고, 조선 인민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다음에 뒤따라야 할 염불은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이다. (196)
# 하루 짓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마라 197-203
‘하루 짓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는 뜻의 ‘일일부작 일일불식( 一日不作 一日不食)’은 백장청규(百丈淸規)에 적힌 말이다. .. 백장/보짱(百丈 720-814)은 중국 선불교 역사에서 이름난 분이다. (197)
“사람들은 몇 안되는 이들이 받드는 종교를 ‘미신’이라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미신을 ‘종교’라 이른다.” (라로슈푸꼬, 1613-1680) (203)
# 하하하 204-210
김태완이 우리말로 옮기고 토를 단 백장어록(김태완 역주, 침묵의 향기, 2016, 364쪽)에 ... 어느 스님이 호미들고 일하다가 밥먹으로 가자니 “하하하!..” 백장도 하하하.. // 조당집(祖堂集)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204-205)
# 뭘 어떻게 해야 되지? - 시골 늙은이의 궁금증 211-217
[시골쥐와 도시쥐의 현대판 이야기]
가장 기름진 땅임에도 뒤이어 농사지을 젊은이들이 없어서 그 땅값 똥값이 되고,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도시 한복판 땅이 금값보다 더 높이 치솟는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죽을 날 코앞에 둔 이 늙은이에게 부처님은 뭐라고 하실까? (217)
# 쓰레기 없는 쓰레기 마을, 새로운 승가 공동체의 꿈 218-225 [불광 2018.01.03 10:51호수 518호]
개구즉착開口卽錯 - 입 닥쳐. / 염화시중拈花示衆 - 꽃 따 보임. / 빈자일등貧者一燈 - 없는 할미 불씨 하나. (218)
이제 ‘사람 쓰레기’다. 도시 문명의 잘못된 교육 정책으로 머리만 키우다가 쓸모없다고 버림받아 살길이 없는, 그래서 하릴없이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되어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피말리는 경쟁 대신에 상생과 공존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소비만 일삼는 ‘부랑자’에서 생산하는 ‘일꾼’으로 거듭날 수 있다. 지난 스무 해 가까운 내 경험에 따르면, 도시 학교에서 내침당한 아이들이 변산 공동체 학교에서 핸드폰 없이도, 텔레비전 보지 않고도, 게임에 코를 박지 않고도, 머리 굴리는 시간에 손발 놀리면서도, 어른들 일손 도우면서, 제가 쓸 용돈 달라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으면서도 저희들끼리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23)
‘평화 마을 만들기’ 제안서 .. 한참(일진一眞)을 만나려고 한다. (223) [이글이 18년 1월에 쓰여진 것인데, 그해 말 정암학당에서 “평화통일 영세중립 코리아”를 위한 강연에서 이 비구니 스님 만난 이야기를 했었다.] - [제안서 내용은 여기 실려 있다. 「<영세중립통일연방코리아>를 앞당기기 위한 “평화마을만들기” 제안서 초안」, in 1+1=하나,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변택주외 여덟, 누리살림, 2018, P.199.), pp. 64-83.]
(12:22, 52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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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노자 / 李耳(前571年-前471年),名耳,字伯陽、外字聃,世人尊称为 “老子”. (572년 석비 이 비석은 도교의 창시자인 노자에게 헌납된 석비)
552 공자(孔子, 전552-전479) 성인(聖人) 유가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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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 양 고조 무황제 소연(梁 高祖 武皇帝 蕭衍, 464-549)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초대 황제. 무제(武帝)는 불교 신앙을 갖고 수많은 주석서를 집필하였고, 황제보살(皇帝菩薩)로 불린다. / 북송의 역사가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양 고조(무제)가 마지막 자리를 보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드는 조식(소식)을 성덕으로 하면서 군주로서의 도가 이미 갖춰지니 더 이상 더해질 것이 없어 군신의 간언은 어떤 것도 들을 필요 없다고 하였다.(…) 이름을 더럽히고 몸은 위험에 빠졌으며 나라는 뒤집히고 종묘의 제사가 끊어지니 길이 후세의 놀림거리만 되고 말았도다. 슬픈 일이다.”
4?? 달마, 보디다르마(達磨, 菩提达摩 Bodhidharma, ?-528?) 중국 남북조시대의 선승(禪僧).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 범어(梵語)로는 보디다르마이며 보리달마(菩提達磨)로 음사(音寫)하는데, 달마는 그 약칭이다.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의 뤄양[洛陽]에 이르러 동쪽의 쑹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하였다.
487 혜가 대사(慧可大師, 487-593) 팔을 끊어 믿음을 바친 혜가(慧可).
601 홍인(弘忍, 601-674) 당(唐)의 선승(禪僧). 대만선사(大滿禪師). 선종(禪宗)의 제5대조. 홍인문하에 신수의 계통 북종선(北宗禪), 혜능의 계통을 남종선(南宗禪)의 양 갈래가 있다. 7세 때 후베이 성[湖北省] 동산사(東山寺)에서 제4대조 도신(道信)의 밑으로 출가했다.
606 신수(神秀: 606-706)는 당나라(618~907)의 선승이며 북종선(北宗禪)의 시조이다. 선종(禪宗)의 제5조인 홍인(弘忍: 601-674)의 제자이다. 대통선사(大通禪師).
617 원효(元曉, 617-686) 신라 때의 승려. 「대승기신론소」.
625 의상(義湘(相), 625-702) 신라의 승려. 화엄종(華嚴宗)의 개조.
638 혜능(慧能, 638-713) 중국 당(唐)나라의 승려(달마 이래 6조). 신수(神秀)와 더불어 홍인(弘忍) 문하의 2대 선사로서, 후세에 신수의 계통을 받은 사람을 북종선(北宗禪), 혜능의 계통을 남종선(南宗禪)이라고 한다. 설법집『육조단경(六祖壇經)』
704 혜초(慧(惠)超, 704-787) 신라의 고승. 주요저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720 백장(百丈 720-814) 회해(懷海)는 당나라의 선승이다. 백장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백장이라고 부르고 이름은 회해이다. 육조혜능, 남악회양(南嶽懷讓, 7조), 마조도일(馬祖道一 8조)에 이어 제9대 조사이다. 백장어록(김태완 역주, 침묵의 향기, 2016, 364쪽)/ 당대에는 마조 도일의 또 다른 제자인 대주 혜해(大株 慧海, s.d.)[[조당집(祖堂集)]가 더 유명했다.
748 남전 보원(南泉 普願 748-834)선사. / 스님의 법명은, 보원(普願)이며 정주(鄭州) 사람으로 속성은 왕씨(王氏)다. 처음 마조스님을 뵙고 깨친 뒤, [왜 남천(南泉)을 남전으로 읽는지?] 제자가 조주스님이다.
778 조주(趙州從諗, 778-897) 선사 / 조주 선사는 당(唐) 왕조 중기의 걸출한 선승으로서 무려 12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남전의 제자.
807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중국 唐나라 때 禪僧. 청원행사(靑原行思)하의 四世인 운암담성(雲巖曇晟)의 법통을 이어받은 후계자. 俗性은 兪氏. 저장성(浙江省) 會稽 출생. 조동종의 시조: 선종(禪宗) 오가(五家)의 하나. 중국에서 선종의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조계(曹溪)에서 법(法)을 전하여 그의 법손(法孫)인 양개(良价)가 동산(洞山)에서 이를 널리 폈으므로 조동종(曹洞宗)이라고 함.
867 唐나라 고승 임제 의현(臨濟 義玄, ?˜867)의 종지를 근본으로 하여 일어난 宗派. 임제의현은 황벽희운의 법을 이었다. 그의 禪風은 6대 법손 석상초원 아래에 황룡혜남((黃龍 慧南, 1002-1069, 황룡파)과 양기방회(楊岐 方會, 992-1049, 양기파) 2파로 나뉘었고, 송나라 대혜종고에 의해 절정에 이르렀다.
1158 지눌(知訥, 1158-1210) 고려 승려. 속성이 정(鄭), 자호가 목우자(牧牛子)이며,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며, 탑호는 감로(甘露)이다. 동주(洞州: 서흥) 출생이다.
1342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삼봉(三峯),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유학자, 혁명가(革命家). 《불씨잡변》(佛氏雜辨)(19장, 불교 이론 및 선종 비판)
1403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80)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월인석보』, 함허당의 『금강경오가해설의』·『현정론』,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찾아냈다. 신미와 동생 김수온이 명문장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이두(吏讀)와 구결(口訣)에 정통했고, 삼재(三才)의 대가인 외할아버지 이행의 훈습에 힘입었다.
1501 이황(李滉, 1501-1570) 퇴계(退溪).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1520 휴정(休靜, 1520-1604)조선 중기의 승려, 승군장(僧軍將). 본관 완산(完山). 속성 최(崔). 자 현응(玄應). 호 청허(淸虛)․서산(西山). 아명 여신(汝信). 안주(安州) 출생.
1536 이이(李珥, 1536-1584) 율곡(栗谷)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동호문답(東湖問答)』『만언봉사(萬言封事』『성학집요(聖學輯要)』/ 이이(1536 -1584) 강원도 강릉, 경력: 별시에 장원,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 1547년 진사시에 합격
1537 권율(權慄, 1537-1599)은 조선 중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字)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
1542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서애(西厓)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서애집』,『징비록(懲毖錄)』
1544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조선 중기의 고승. 풍천 임씨.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경상남도 밀양 출신.
154? 영규(靈圭, 생년 미상-1592)는 조선 중기의 승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활약하였다. 본관은 밀양, 호는 기허, 속성은 박으로 충남 공주 출신이다. 계룡산 갑사에 출가하여 서산대사의 고제로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하였고 선장으로 무예를 익혔다.
1545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1552 선조(宣祖, 1552-1608) 조선의 제14대 임금 (재위 1567-1608년)
1556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조선 중기의 문신·정치가·시인·작가. 본관은 경주,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필운(弼雲)·청화진인(靑華眞人)·동강(東岡)·소운(素雲),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561 이덕형(李德馨, 1561-1613)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정치인으로 동인(東人)과 남인(南人)의 일원이다. 같은 동인이었다가 북인이 된 이이첨은 그와 10촌 형제간이었다.
[1582년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리마두 1552-1610)가 명나라를 방문하여 서양 과학을 전해왔고, 서광계(徐光啓, 1562-1633)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1849 경허(鏡虛, 1849-1912)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 전주 자동리,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속명은 송동욱(宋東旭)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 9세 때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 경허 선사의 수제자로 흔히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1861-1937), 수월(水月, 1855-1928), 만공(滿空, 1871- 1946).
1864 용성(龍城 1864(고종1)-1940) 선승이다. 백상규(白相奎) 전북 장수 출생. 특히 사원 경제의 자립을 위해서는 농사를 짓고 경작을 하면서 수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스스로도 호미 등의 연장을 들고 노동을 하였다. 불경 한글화.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871 만공(萬空, 1871-1946), 송만공 스님의 문하에는 보월(寶月)․용음(龍吟)․고봉(高峰)․서경(西耕)․혜암(惠庵)․전강(田岡)․금오(金烏)․춘성(春城)․벽초(碧超)․원담(圓潭)․법희(法喜)․만성(萬性)․일엽(一葉) 등 당대의 고승들이 있다. 덕숭문중이라고 하는 근대 한국불교의 큰 법맥이 형성된 것이다. 본명은 도암(道巖), 법명은 월면(月面)이며 만공은 법호
1891 도봉산 망월사 큰스님 춘성(春城, 1891-1977) 이창림(李昌林). [일본] 순경이 물으니, “내 본적은 우리아버지 신(腎)두(頭)이지”... “내 고향이야 우리 어머니 보지 속이지”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육영수를 보고 한마디 “입 맞추자” 했는데, 나중에 육보살의 생일 초대로 청와대로 갔는데.. 법문을 안하고 10여분 만에 “오늘은 육영수 보살이 지 에미 뱃속에 들었다가 ‘응아’하고 보지에서 나온 날이다
1896 일엽(一葉, 1896-1971) 평남 용강군 출생. 부친은 개신교 목사였다. 본명은 원주(元周), 아호 일엽(一葉), 불명 하엽(荷葉), 도호 백련도엽(白蓮道葉). 가족을 모두 잃고 17세에 혼자 남았다. 외할머니 뒷바라지로 이화전문 졸업. 1919년 일본 도쿄의 영화학교에서 유학했다. 귀국해 시인·수필가·평론가로 활동하다 1933년께 출가했다.
1903 구산(九山, 1908-1983)[일흔다섯], 九山秀蓮. 수행자들의 정신적 귀의처이자 지주적 좌표로 널리 추앙받는 선지식이다. 속명은 호(鎬 )법명은 수련(秀蓮) 법호는 구산(九山)이다. 1937년 29세때 부처님 오신 날에 효봉스님(曉峰, 1888-1966)을 은사로 축발한 스님은 청암사 수도암의 정각토굴에서 생사를 건 정진에 들어갔다.
1925 이오덕(1925-2003), 경북 청송, 소설가. 우리말연구소 대표
1929 이소선(李小仙, 1929-2011)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이다. 1970년 11월 13일 아들인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 조건 향상을 위해 활동하다 분신하자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노동운동가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대해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1930 명성(1930-)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 비구니인 그녀는 1930년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나, 1952년에 해인사에서 출가하였다. 1977년에 운문사 주지 및 학장을 역임하였다. 남지심(1944- )의 평전 명성 / 관응스님 제자, 관응 스님은 유식학의 대가로 당대 최고의 강백이었고, 최초로 무문관서 6년간 수행을 마친 선승으로 존경받았다.
1932 법정(法頂, 1932-2010 본명: 박재철, 朴在喆) 해인사 강원 대교과, 동국대 역경원 역경위원, 1954년 송광사에서 득도(은사 효봉), 1994년 1월-2003년 11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회주, 수상: 2004년 제2회 대원상 대상
193? 청운당 일휴스님(193??? -2013) 비구니, 울진 불영사 천축선원 선원장 청운당 일휴 스님. 천축선원을 개설하며 전국에서 손꼽히는 비구니 수행도량을 열다. 1966년 불영사 주지를 맡은 뒤 퇴락된 사찰을 재정비하고, 1978년 비구니선원으로서 천축선원을 개설하며 전국에서 손꼽히는 비구니 수행도량을 이끄는 등으로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2013년 10월 18입 입적에 들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1936 한창기(韓彰璂, 1936-1997) 1936년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 1997년 2월 3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출판언론인이다. 1954년 순천중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광주고를 마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196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1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한국지사인 한국브리태니커회사를 설립했다.
1939 은정희(殷貞姬 1939-) 고려대에서 박사, 서울교육대학 교수.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역주)(1991, 일지사).
1943 윤구병(尹九炳, 1943-) 전남 함평, 변산 공동체 충북대 교수, 서양고대철학 전공, 벩송에도 관심. 불교 공(空)사상에 관심.
1944 남지심1944년 4월 15일 강원 강릉시, 소설가,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1980년 소설 '솔바람 물결소리' 1990~2002 '우리는 선우' 공동대표, 남지심(1944-) 명성: 구름 속의 큰 별(2016)
1946 이외수(李外秀, 1946- )는 대한민국의 작가
1947 김성동(金聖東, 1947-) 충남 보령, 소설가. 불교 승려 시절 법명은 정각(正覺). 1965년 불교 승려로 입산 출가
1948 남영신(1948-)은 대한민국의 한글학자이다. 사단법인 국어문화운동본부 이사장이다. 국어단체연합국어문화원 원장이며, 호는 높세울.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 :우리 말글 바로 쓰는 길잡이(남영신, 보리, 2017)
1949 도법(道法 1949-) 제주, 1995년부터 전북 남원 실상사 불교귀농학교(교장 도법스님, 실상사 주지)실상사 주지로 있으면서 작은학교, 귀농학교, 환경운동 등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4년: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단장/국가보안법 폐지 기자회견, 2014년: 이석기 무죄석방 탄원, 백년대계본부장.
1951 일진(一眞, 1951?-) 스님은 1970년 용인 화운사서 재석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살. 운문사승가대학장, 원운 일진(圓云一眞) 스님, 『한국근대불교에 있어서 일본의 영향』『불교와 여성』『불교임상심리학(譯書)』『승만경을 읽는 즐거움』(민족사) 2014.
1960 김진숙(1960-)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현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다. 2011년 1월 6일부터는 한진중공업 내의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2011년 11월 10일, 노사 합의에 따라 309일간의 고공 농성을 마치고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196K 박해진(196kk-) 강원도 태백, 국문과 졸업, 1984년 시로 등단, 『훈민정음의 길: 혜각존자 신미 평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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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홍현숙(1955-2019), 2019년 1월 29일, 호미 출판사 대표, 1977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을 앞둔 4학년 여학생, 1980년 8월 군부에의해 폐간된 <뿌리 깊은 나무> 편집팀, 최만수(1955-2017)와 동갑내기.
1956k 김영옥(1956?-), 호미 출판사 편집위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 편집부근무
1957 박원자(1957k-), 스님의 첫 마음(박원자, 뜨란, 2016, 348쪽): 혜인에 실린 48분 스님의 초발심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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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 라로슈푸코(La Rochefoucauld 1613-1680) 프랑스의 귀족 출신 작가이자 모랄리스트이다. 대귀족의 장남으로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16세에 이탈리아 전쟁에 참가한 후부터 사랑과 야심에 찬 모험의 시대를 보낸다.
1775 찰스 램(Charles Lamb, 1775-1834) 영국의 수필가, 시인. 런던에서 출생한 그는 정신병 발작으로 어머니를 죽인 누나인 메리 램의 보호자로서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아동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20편을 뽑아 누이 메리가 희극을 맡고 그는 비극을 맡아서 쉽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쓴 것이다. 1863년에 발표된 《엘리아 수필집》은 영국 수필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1877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1962)는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시인, 소설가, 화가이다.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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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경전의 주인공인 유마힐(維摩詰)은 석가모니 부처 당대 바이살리라는 도시에 살고 있던 부호였다. 중인도 갠지스강 지류인 간다아크강의 연안에 발전된 상업도시 바이살리는 화폐경제가 발달하였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이 넘쳤던 곳이었다. 유마힐거사는 이 시대의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비판적인 정신을 대표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유마힐거사[Vimalakīrti]는 거사(居士) 즉 불교의 재가신자(在家信者)로써 불교의 진수(眞髓)를 체득하고 청정(淸淨)한 행위를 실천하며 가난한 자에게는 도움을 주고 불량한 자에게는 훈계를 주어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던 인물로 전하고 있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대승의 보살도를 성취하여 출가자와 동일한 종교 이상을 실현하며 살고 있었던 그는 재가신자의 이상상(理想像)이며, 이 유마힐을 모델로 하여 《반야경》에 서술된 공(空)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체득하려는 대승보살(大乘菩薩)의 실천도(實踐道)를 강조하고, 세속에 있어서 불도를 실천하고 완성하게 됨을 설법해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이 이 경의 내용이다 첫째, 현실의 국토가 불국토이다. 둘째, 자비정신의 실천이다. 셋째 평등의 불이사상(不二思想)의 실천이다. 넷째, 중생들에게 모두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유마경》은 반야부 계통에 속하는 경전으로 반야경 다음으로 출현한 초기 대승경전 가운데서도 성립이 오랜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대체로 기원전후에서 서기 300년경 사이에 반야경을 계승한 초기 대승경전으로 보이며, 인도에서는 이미 용수(나가르주나)의 《대지도론》을 비롯한 여러 논서에서 늘 본 경전을 인용하고 있을 정도로 성행하고 있었다.
첫댓글 애먼 새끼 고양이만 죽었다. ... 그 자리에 조주가 끼지 않았다. 일 보러 나갔다가 뒤늦게 돌아온 조주에게 남전은 그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털어놓았다. ... 이 말을 들은 조주는 아무 말 없이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돌아섰다. 띠풀이나 볏짚으로 삼은 미투리나 짚신이겠지. 그 모습을 본 남전이 중얼중얼 “그 자리에 자네가 있었더라면 그 새끼 고양이는 살았을 텐데 ‥… (19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