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세영언(家世零言)이란 전주유씨 안동무실(水谷)종가댁에 보존되어 있는 책인데 영언(永言)은 시와 노래를 뜻하고 영언(零言)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길 뜻한다.
때문에 이 책은 전주유씨에 세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언제 누가 쓴 것인지는 확인할수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 한 편만 옮겨 본다.
전주유씨 기봉공의 장자 도헌(柳友)공은 덕이 심후하고 행실이 지극한데 하루는 공의 집 서쪽 숲속에 불빛이 있어서 기이하게 여겨 가보니 걸인 내외가 해산을 하는지라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리고 와 순산을 시키고 남자를 불러 어렵게된 사유를 물으니 서울 살다가 병자호란을 만나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고 있는 청풍김씨(淸風金氏)라고 해서 여러달 조리시켜 주었다.
그리고 청풍김씨는 서울로 올라가면서 불망서(不忘書)를 써주고 갔다.
그 후 5대손(五代孫)한 분이 살인 혐의를 받고 안동부사(安東府使)에게 잡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불망서를 써준 이의 현손이 청풍김씨 김종수(金鍾秀)정승이었다.
워낙 다급한지라 서울 김종수 대감 댁에 찾아가 불망서를 보였지만 그 내용을 모르는 김정승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리하여 하인 방으로 나와 한숨을 쉬며 묘안을 찾으려고 머리를 싸메고 있을 때 김정승은 그 때 90 노모가 살아 계신지라 노모에 방에 들어가서 하루 일을 이야기 하면서
“오늘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안동에 사는 유서방이 살인죄를 지었는데 살려달라면서 우리 집안과 무슨 세의(世誼)가 있다면서 불망서(不忘書)를 내어놓으나 우리 집이 어째서 안동 그 사람 집에 가서 태어날 까닭이 없을 듯하여 맹랑(孟浪)하게 생각했습니다.”고 하자 그 노모가 듣고는 벌떡 일어나
“대감 그래 그 사람 어찌 되었나?”
“예 하인 방으로 보냈습니다.” 하자 노마님이 크게 꾸짖어 가로되
“자손이 되어 조상의 은덕을 모르면 천하(天下)에 불효(不孝)니라.”하고는 자부 정경부인(貞敬夫人)을 불러
“얼른가서 대감의 새 옷 일습(한벌)을 가져 오너라.”이르고는 손자 대감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 옷을 가지고 가 그 사람을 목욕시키고 이 의관을 입힌 뒤에 네 방으로 불러드리고 너도 의관을 갖추고 같이 큰 사랑에 가서 괴짝을 열어보아라. 그러면 깨닫는 것이 있을찌니” 과연 열고 보니 그 안에 불망서(不忘書) 한 벌과 일기와 누더기가 있는데 모두 불망이라는 수가 있는지라 일기와 수를 보고 김정승은
“이러한 크나큰 은인(恩人)을 모르고 냉대하였으니 세상이 용납(容納)지 못할 것이라”면서 노모(老母)에게 죄를 청하니
“알았으면 어떻게 하던 유씨댁의 사람을 살리도록 해라.”고 엄명을 하신다.
살인 누명을 쓴 사람을 그냥 살려주라고 명을 내릴 수도 없고 밤새도록 고민한 김종수 정승은 입궐하여 안동부사와 경상감사를 교체해서 새로 부임한 부사와 감사로 하여금 살인의 누명을 벗게 했단다.
(성씨의고향 전주유씨 터잡아 살아온 이야기에서)
영조3(1727)년 김치만(金致萬)이 동몽교판(童蒙敎官)이 되었을 때 영조가 그 아우 연령군(延齡君)의 계자(繼子) 낙천군(洛川君) 온(縕)을 김치만의 딸과 혼인시키기 위하여 김치만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김치만은
"혼인은 인간의 대륜(大倫)이요, 신의는 인간의 근본이라. 이미 홍치중(洪致中)의 유복 손자와 혼인을 약속하였으니 이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하니 영조는 화가 나서 김치만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2년에 걸쳐 수십 차례 엄명을 내리니 김치만은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부인 홍씨와 함께 피신하던 중 무실마을 소나무 숲에서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때 이 마을에 사는 류씨가 이를 보고 부인과 아들을 자기 집에 데려다가 간호를 하였다.
이에 홍씨부인이 감동하여 신표로"불망(不忘)"이라는 두 글자를 써주고 떠났다.
그 후 정조원(1777)년에 무실의 전주류씨들이 안동부사 류의석(柳義錫)을 맞이하여 잔치를 열게 되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자 류의석이 갑자기
"백졸암(百拙腐) 류직(柳稷)의 자손이 있느냐?"하고 말하니 좌중들은 놀라 대답하기를
"백졸암으로 말하자면 우리 자손 들이나 일가들뿐만 아니라 영남일대에서 추앙받는 어른인데 어찌 그 같이 무례하나? 이런 사람과는 상대할 수 없다"하며 모두 돌아갔다.
류의석은 할 수 없이 봉변을 당하고 돌아와서 분을 참지 못하고 고민하던 끝에 몇 해 전에 임동에서 일어난 완결된 살인사건을 다시 들추어 류씨들에게 뒤집어 씌워 큰 옥사가 다시 벌어지게 되었다.
류씨들이 크게 놀라 상의하던 중에 한 사람이 집에 간수하던 홍씨부인의 신표가 생각나서 그것을 가지고 홍씨부인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갔다.
홍씨부인을 만난 류씨는 신표를 보여주고 그간의 일을 상세히 말하였는데 마침 그 때 숲에서 태어난 김치만의 아들 김종수(金鍾秀)가 정1품 재상이 된지라 홍씨부인이 아들에게 부탁해서 안동부사 류의석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여 그 일을 무사히 끝나게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