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詩聖) 두보(杜甫)와 시선(詩仙) 이백(李白)
당나라(노란 부분) / 시성(詩聖) 두보(杜甫) / 시선(詩仙) 이백(李白) / 사면십방보현보살좌상(四面十方普賢普薩坐像)
시성(詩聖) 두보(杜甫:712~770년(향년 58세)는 당(唐)나라 허난성(河南省) 정저우부(郑州府) 궁이현(巩义县)에서 출생.
字는 子美, 號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별칭(別稱)은 시성(詩聖), 두릉포의(杜陵布衣)라고도 했다.
중국 역사상 이백(李伯)과 함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두보(杜甫)이다.
이백과 두보는 동시대 인물이며 이백이 두보보다 11살 연상이었는데 두보가 이백의 재능에 크게 탄복하면서 그와 더불어 허난성(河南省), 산뚱성(山東省) 일대를 유람하면서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우연의 일치였을지 몰라도 이백과 두보는 둘 다 상당히 유력한 가문의 후예였다.
이백은 전국시대부터 나름 중견 가문인 농서 이씨의 후예였고, 두보 역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 몇몇을 배출한 가문이었다. 삼국지 끝물에 나오는 위(衛)·진(晉)의 두예(杜預)의 직계 후손이라고 두보(杜甫) 스스로 인증한 적이 있다.
흔히 이백을 시선(詩仙)이라고 하고 두보는 시성(詩聖)이라고 한다.
이것은 누가 더 우월한가에 따라 붙인 명칭이 아니고 각자의 스타일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강산과 함께 풍류를 즐기는 이백의 시에서는 도교적인 정취가 짙게 묻어나고, 사회풍자와 교훈적인 주제를 담아낸 두보의 시에서는 유교적인 색깔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백에게는 도교 신선의 이미지를, 두보에게는 유교 성인의 이미지를 빗댄 것이다.
당대(唐代)의 대시인 이백(李白 701~762/61세)은 촉(蜀)나라 태생으로 모친이 꿈에 태백성(太白星:金星)을 보고 출산했다고 하는데 시선(詩仙)으로 일컬어진다. 이백(李白)의 자(字)는 태백(太白), 호(號)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며, 후대 사람들은 두보(杜甫)를 시성(詩聖), 이백(李白)을 시선(詩仙)으로 칭송했다.(출생지에 대해서 다른 의견도 있다.)
중국의 시인들은 대체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술에 관한 시(酒興詩)를 많이 남겼는데 특히 이백(李白)은 시(詩), 술(酒)과 더불어 특히 달(月)을 너무나 사랑했던 시인으로 유명했다.
이백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안휘성(安徽省) 추포(秋浦)로 가서 말년(末年)을 보내는데 양자강(揚子江) 강변 우저기(牛渚磯:采石江)에서 뱃놀이를 즐기다 술에 취하여 강물에 비친 달을 끌어안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다. 이때 남긴 추포가(秋浦歌) 17首가 전하는데 그중 제15수의 ‘白髮三千長(백발삼천장)’이라는 싯귀가 사람들 입에 자주 회자(膾炙)되곤 한다.
술 한 잔에 시 한수(一首), 술 한 말에 시 백수(100首), 주태백(酒太白) 등은 이백을 가리키는 말들이고, 적선(謫仙)이라고도 했는데 이른바 하늘에서 땅으로 귀양 온 신선(神仙)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2010년 장강삼협(長江三峽) 크루즈 여행을 했을 때 충칭(重慶)에서 버스를 타고 장강(揚子江) 강변 마을인 만주(万州)에 와서 승선했는데 이곳에 시선이백지향(詩仙李白之鄕)이라는 입간판을 보았던 기억도 난다.
竹溪六逸(죽계육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중국의 명승지 죽계(竹溪)에서 시를 지으며 벗으로 지내던 여섯 명의 현인(賢人)으로, 이백(李白), 공소보(孔巢父), 한준(韓準), 배정(裵政), 장숙명(張叔明), 도면(陶沔)을 말한다. 이백은 모든 장르의 시를 골고루 잘 지었지만, 특히 악부시(樂府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악부시(樂府詩)란 인정(人情), 풍속(風俗)을 읊은 시를 말하는데 글귀에 장단(長短)이 있는 시를 말하고 그가 남긴 시는 1.100首 정도가 전하는데 그가 평생 쓴 시의 1/10 정도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유실되었다고 하니 안타깝다.
중국 한시(漢詩)는 오언절구(五言絶句)와 칠언율시(七言律詩)로 글자 수에 따라 분류된다.
나는 한학(漢學)에 관심이 많아 중국 대부분 지역을 여행하였고, 한문 급수 1급 자격증도 있으니 한시에도 관심이 많아 두 시성(詩聖)의 한시를 모아 설명문을 덧붙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