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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4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구속하여 주시니 찬송
(찬송438장, 시편 34편)
2021-2-4, 목
맥락과 의미
34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여호와께 부르짖어서 구원을 얻음(1-6절)
2.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7-14절)
3. 악인에게서 구속해 주심(15-22절)
이 시편의 순서가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서 구원을 얻고 여호와 경외하는 도를 배웠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는 세상에 삽니다. 악과 악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혼돈의 세상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우리의 입에 이 시편을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제목: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여 그가 쫓아내자 떠나갈 때”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였으나 이방인 블레셋 땅에서 “행동을 변하고 그의 손에서 미친 체하고”(삼상 21:13) 위험을 모면하였습니다. 사용한 용어뿐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악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것이 34편을 이해하는 배경이 됩니다. 사무엘상 22:1 이하를 보면 가난하고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모여들었는데 다윗이 그들에게 이러한 시를 가르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여호와를 찬양하고 여호와께 간구함 (34:1-6)
1) 찬양하라 (1-3절)
1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다윗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여서 위기를 모면한 후 찬송했습니다. 그의 입에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으로 가득하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송축한다”는 “축복한다”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여호와께 돌려드리는 축복이요,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시작하는 이 시편은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구속하심으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복을 찬송하는 것이 이 시편을 감싸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 성도는 “곤고한 자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곤고한 자는 ‘가난한 자, 겸손한 자’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아가며 핍박을 당하고 가난해 겸손해 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의로운 자’와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합니다. 구원하신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괴우운 사람들이 함께 기뻐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다윗이 미친 체하고서 자기 생명을 구원한 (사무엘상 21장) 후에 가난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들었습니다(사무엘상 22:1) 처음에는 400명이다가 후에는 600명이 됩니다. 그들은 다윗이 구원을 얻은 이야기를 듣고서 함께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우리 함께 그분의 이름을 높입시다” 하면서 권합니다.
2)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찾는 사람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고서 기도하면 그분은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들어주시면 그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5절에서는 성도는 기도 가운데 그분을 영적으로 바라봅니다. 기쁨으로 빛나고 그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성도는 “곤고한 자들”을 기쁘게 하는 간증이 있는 찬양을 하기 위해 (3절), 자신을 “이 곤고한 자”라고 합니다. 곤고한 자기의 말을 들어 주신 하나님을 향해 듣는 이들의 관심을 돌립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는 복 (8-14절)
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맛보는 선함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의 도움만을 구하고 부르짖는 사람은 “주를 경외하는 자”(7절)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서 다 주님을 찾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그냥 구원을 받는 아닙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자기로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고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자가 진정으로 가난한 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주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진정으로 가난한 자,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위하여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서 구원해 주십니다.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귀하게 보시는 여호와께서는 그를 둘러서 진치고 보호하시며 악인에게서 구원해 주십니다.
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를 맛보고 알라고 합니다. 경험으로 알아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심정으로 기도한 그는 여호와께서 선하신 분임을 깨닫습니다. 단지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깨닫고서 기뻐하는 것입니다(참조. 시 100:5; 23:5).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좋은 분이심을 맛봅니다(8절). 여호와를 찾는 사람은 모든 좋은 것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10절). 젊은 사자라도 부족하여 굶주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부족을 인정하고 여호와를 찾는 사람은 좋은 것을 넉넉히 누릴 것입니다.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면서 목숨을 연명한 다윗은 어떤 점에서는 젊은 사자와 같습니다. 그에게는 백성의 신망도 있고 사울의 사위이고 무엇보다도 사무엘의 기름부음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군대와 싸워서 이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쫓긴 그는 블레셋 왕 앞에서 미친 체하면서 목숨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젊은 사자와 같은 힘이 있다 하여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어려운 형편에 놓이면 그것을 개인의 능력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능력이 있다고 하여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께 피하고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은 성도 개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합니다. 7절에서 여호와께서 어려움에서 구원하실 것을 말하고 8절에서 그 어려움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말합니다. 구원 이후에 맛보는 이 일은 화목제의 제사를 드리면서 그 고기를 함께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성도들과 함께 좋은 음식을 먹습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라는 말은 지혜가 하나님의 교훈이라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부르는 것과 비슷합니다(잠언 9:4-6). “지혜”라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 9:10)이라고 가르칩니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그 진리를 맛보면서 깨닫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2) 여호와 경외하는 것을 가르침
11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이제 11절은 34편의 중앙에 있는 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아들들아” 하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아들”은 잠언에서 자기가 낳은 아들 뿐 아니라 “배우는 자”를 가리킵니다(잠 4:1; 5:7; 7:24; 8:32 등). 평생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살았던 이 성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하여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좋은 것을 보려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자가 누구인가?” 생명, 장수와 선함을 원하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물질적이라고 하여서 경시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두려움”에서 구원을 얻는 것과 연결됩니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자기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13-14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행할 것을 혀와 입술로 악과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됨을 말합니다. 행동에서도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시기 때문에 말과 행위뿐 아니라 그의 속마음까지 그분 앞에 다 드러납니다.
3. 의인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여호와 (15-22)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가르친 후에 “의인”과 “악인”을 대비하여 말합니다. “의인(15절) - 악인(16절) - 의인(17-20절) - 악인(21절) - 의인(22절)”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과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악인이 대비됩니다. 의인은 간구하고 기도하지만, 악인은 멸망되는 것으로 기도시가 흐릅니다. 가난한 의인은 고난 중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자기의 악에 의하여 멸망 당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 부분에서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점은 입, 혀, 입술, 눈, 귀, 얼굴과 같은 신체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체적인 표현을 통하여 친밀한 교제를 나타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사람은 주님과 매우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1) 의인의 간구와 악인이 받는 심판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11-14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리에 관하여 가르친 후에 의로운 자의 기도를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여 의로운 일을 행하는 여호와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인이 부르짖는 이유는 이 세상에 악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이 악행하는 자를 대항하십니다(16절). 악인은 여호와의 얼굴 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눈과 귀가 의인을 향해 돌보고 있는데, 그 여호와의 얼굴 앞에서 악인은 의인에게 악을 행합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는 것입니다. 의인을 바라보던 여호와의 얼굴은 그 악인들에게 맞서시고, 그 악인들에 대한 기억을 땅에서 끊어 내실 것입니다(참조. 시폊 109:15). 악한 자와 그의 자녀를 끊으실 것입니다. 악인의 개인적 야망은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2) 의인의 간구와 여호와의 구원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건지십니다”(17절, 6절에도 세 개의 동사가 나옴). “의인이”부르짖다는 원문에는 없는 단어지만 우리 성경은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넣어 번역했습니다. “그들이” 부르짖으니까 그들을 구원하셨다고 하였는데 한글 개역은 “의인”이라고 첨가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지금은 악을 행하고 거세게 반역하는 사람도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에 가까이 하시고 “충심(영혼)으로 통회하는자”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 (“부서진/부러진” 심령)입니다(시 51:17; 147:3). “마음이 상한” 것(18절)은 뼈가 “꺽이지” 않는 것(20절)과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뼈를 지켜 주시니 그 중에 하나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악한 자는 성도의 뼈를 꺽으려고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게 보호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봅니다. 그래서 그는 상한 마음으로 즉, “부서진/꺽인 마음”으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철저히 자기를 낮추면서 기도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구원해 주십니다. 부서진 마음을 받으신 주님은 뼈가 부러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 의인은 선한 것을 보면서 살지만, 악한 일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의인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상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의를 주장하면서 스스로의 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그러한 고난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는 젊은 사자처럼 되려고 하거나, 힘이 못 미친다고 생각하면 원망하는 상태에 떨어지고 맙니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22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는 의인을 보호하시지만, 의인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 죗값을 치르게 하십니다. 악인이 행한 악이 그를 죽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악인이 자기가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지게 하십니다(시편 7:13-16).. 이것이 의로우신 여호와께서 심판을 행하시는 방식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종의 영혼을 속량해 주십니다. 자기 종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들이 윤리적인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피하였기 자기의 선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자기 안에 의가 없다고 슬퍼하면서 통회하는 마음, 부서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죗값을 받지 않고 구속함을 받게 됩니다.
34편은 참 지혜를 가르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호와께 피하여서 구속함을 받는 길을 가르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를 “자기 종”으로 인정해 주시고, 그러한 자에게 구속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4.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보호를 받음
시편 38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라”를 가운데 둡니다(9절), 그 앞과 뒤에는 의인이 간구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구하면서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악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호하셨고, 그리스도인을 보호하십니다.
1) 그리스도의 뼈가 꺽이지 않음(20절, 12-요한복음 19:36)
시편 34편은 신약에서 두 군데 인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요한복음 19:36입니다.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시편 34:20).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왔습니다. 안식일에는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것을 보고서 예수님의 다리는 꺾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라고 요구한 악인들은 예수님의 다리를 꺾기를 요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예수님을 악인의 손에서 구원해 주심을 확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을 때에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습니다(히 5:7).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드린 기도를 들으시고 다리가 꺾이지 않게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의 명백한 요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뼈가 꺾이지 않은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의 양으로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시려고 그분의 뼈는 꺾이지 않은 것입니다(출 12:46).
2) 그리스도인: 고난과 핍박가운데서 선을 행함(12-16절, 베드로전서 3:10-12)
시편 34:12-16은 베드로전서 3장에 인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말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벧전 3:10-12)
베드로전서 3장의 문맥은 고난과 핍박입니다. 3:9에서, 고난 중에서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그들을 위하여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하하였습니다. 3:13-14에서도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에 관하여 말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권면하시면서 시편 34편을 인용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인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1:1-2). 그들은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하여 자기의 목숨을 유지해보려고 시도한 것과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언어와 물리적인 폭력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사는 자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34편의 말을 인용하여 가르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면 수치를 당치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눈물로 기도하신 주님의 길을 따를 때에 그리스도의 뼈를 하나도 꺾이지 않게 보호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뼈도 온전히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어떠한 악이 조금이라도 임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자기를 낮춘 자에게 그러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시편 34편과 함께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가 간구할 때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어려움과 두려움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선을 행합시다. 이웃을 향해 악한 말과 행동을 하지 말고 유익을 끼치는 말을 합시다. 그렇게 사는 우리를 악하게 대하는 세상 가운데 우리는 계속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유지합니다.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때, 계속 우리를 그 악한 자들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선행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달려 가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우리들이 하나님께 달려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대신 고난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죄용서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성령님의 능력으로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따라 가는 우리에게 끝까지 하나님께 피하며 선을 행하게 해 주시는 삼위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참고> 제목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여 그가 쫓아내자 떠나갈 때”
사무엘상 21장에 의하면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지역으로 도망하였을 때의 왕은 아기스입니다. 시편 “아비멜렉”이라고 바꾸어 말합니다. 아비벨렉은 블레셋 왕을 부르는 일반적인 명칭이었습니다.
“행동을 변한다”(사무엘상 21:13) 는 말은 “판단력을 바꾼다” 혹은 “감각을 바꾼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34:8에서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본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참고> 시편의 후반부에 악과 악인의 문제를 다룸
34편의 전반부는 악한 자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고, 중간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후반부는 다시 악인의 문제를 다룹니다. “악한 것”은 13, 14, 16, 19, 21절에, 그리고 “의/의인”은 15, 19, 21절에 나옵니다. “선/좋은 것”은 고루 나오지만(8, 10, 12, 14절) 악과 악인, 그리고 의와 의인이 후반부에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의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신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그분께 부르짖어서 구원을 받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를 배운 다음에도 여전히 이 세상에서 악으로부터 고난받으며 기도하며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8절,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편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읊조리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32편에서는 자기의 죄가 용서함을 받은 사람이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34편에서는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피하는 사람이 복되다고 합니다.
시편 2:12에서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 즉 여호와께 피하는 사람이 복되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힘을 의지하면서 무엇을 이루는 것을 좋아하고 자랑하지만, 자기의 가난함을 인정하고 여호와께 구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입니다(참조. 잠 3:5-6).
<참고> 8절,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라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라”(8절)는 지혜가 지혜를 가르치는 음식을 준비하고 초대하는 음성과 비슷합니다. 잠언 9장은 말합니다.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잠 9:4-6)
지혜의 여인은 자기가 직접 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하는 도리를 가르치되,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그 진리를 맛보면서 깨닫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참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는 이 시편은 기도에 대해서 많이 말합니다. “이 가난한 자, 곤고한 자”(2, 6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7, 9절. 11절), “성도”(9절), “의로운 자”(15, 19, 21절), “하나님의 종”(22절), “여호와께 피하는 자/ 찾는 자”(8, 22절), “부르짖는 자”(6, 15, 17절), “마음이 상한 자와 통회하는 자”(18절), “고난에서 구원을 받은 자”(6, 17, 19절) 등과 같이 다양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말도 5차례나 나옵니다(4, 6, 10, 15, 17절). 그리고 그렇게 간구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말도 일곱 번 나옵니다(4, 6, 7, 17, 18, 19, 22절).
하나님이 가르치는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구원해 주십니다.
<참고> 좋은 것과 악한 것, 의와 경외.
좋은 것 - 8, 10, 12, 14절
악한 것 - 13, 14, 16, 19, 21절
의 - 15, 19, 21절
경외 - 7,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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