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의 고도(古都) 강화(江華)
고려궁지(高麗宮址) / 광성보(廣城堡) 안해루(按海樓) / 연미정(燕尾亭)
⑦고려궁지(高麗宮址)<사적 제133호> : 고려궁궐지(高麗宮闕址)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강화읍에 있는데 고려가 몽골(蒙古)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開京/松都/開城)에서 강화로 천도한 시기인 1232년에 지어진 궁궐(宮闕)이 있던 자리이다.
이 고려궁지(高麗宮址)는 1270년(원종 11)에 고려가 개경으로 환도할 때 모두 허물어졌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1631년(인조 9)에 고려궁지에 행궁(行宮)을 다시 지었는데 병인양요(丙寅洋擾/프랑스군과의 전투) 때 다시 모두 소실(燒失)되고 지금은 극히 일부만 보존되어 있다.
⑧광성보(廣城堡)<사적 제227호> : 강화 불은면(佛恩面)에 있는 광성보(廣城堡)는 1656년에 설치했는데 1745년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개축되었으며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염하(鹽河) 쪽으로 내려가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용두(龍頭)돈대가 있는데 지형이 흡사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이곳은 신미양요(辛未洋擾/1871년 4월) 때 미국(美國)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이며, 용두돈대 인근에는 손돌노인과 손돌바람 이야기가 얽혀있는 손돌목(孫乭項)도 있는데 김포 대곶(大串)에서 이곳 광성보 쪽으로 건너오는 뱃길이다.
⑨연미정(燕尾亭)<시군(市郡)유형문화재 제24호> : 강화읍 월곶리(月串里)에 있는 수려한 정자각으로,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인데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 쪽으로 흐른다. 그 강 모양이 갈라진 제비 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燕尾亭)이라 붙였다고 한다.
이곳은 강화십경(江華十景)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연미정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북한(北韓) 땅인 개풍군(開豊郡)과 경기도 파주시(波州市)가 보이고, 동쪽으로 김포시(金浦市)가 한눈에 들어온다.
온수리(溫水里) 성공회(聖公會) 성당 / 용흥궁(龍興宮) / 전등사(傳燈寺)
⑩온수리성당(溫水里聖堂)<시군(市郡)유형문화재 제52호> : 강화 길상면(吉祥面) 온수리(溫水里)에도 성공회(聖公會) 성당이 있는데 1906년에 건립된 순 한옥식(韓屋式) 건물이다.
⑪강화읍 용흥궁(龍興宮)<시군(市郡)유형문화재 제20호> :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강화읍에 있는데 원래는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⑫전등사(傳燈寺) < 대웅전(大雄殿, 보물 178호), 약사전(藥師殿, 보물 179호), 범종(梵鐘, 보물 제393호) > : 강화 길상면 정족산(鼎足山) 골짜기에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하는 유서(由緖) 깊은 사찰(寺刹)인데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절(寺刹)로 수많은 유물,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보물급 유물·유적을 비롯해 국가사적, 인천시 지정(指定) 유형문화재 등이 수두룩하다.
창건(創建)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 했는데 훗날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중국에서 옥등(玉燈)을 가져오게 하여 시주(施主)한 후 전등사(傳燈寺)로 사찰명(寺刹名)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