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MBC 대학농구대회에서 창단 47년 만에 성균관대를 우승시킨 박성근 감독. 박 감독은 이듬해 2002년 국내 프로 농구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로 한 대학에서 세 명이나 5순위 지명을 이끌어내 국내 농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박 감독이 그 동안 키운 제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다. 홍대부고, 명지고, 낙생고 감독을 역임하면서 조성원(전주 KCC)과 이상민(전주 KCC), 이정래(대구 동양)와 김기만(부산 KTF) 및 김동우(울산 모비스)와 전형수(창원 LG) 그리고 낙생고 3인방인 정훈(TG 삼보), 진경석(부산 KTF), 이한권(서울 SK) 등의 제자들이 현재 프로농구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선수시절을 철저히 무명으로 지내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실업팀의 스카우트도 받지 못했던 그가 어떻게 지도자로서 승승장구하게 되었는지 기자는 인터뷰 전부터 궁금했다. 그러나 기자는 박성근 감독과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련과 인내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박성근 감독은 농구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홍대부고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홍대부고에서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그에게는 농구선수로서 치명적인 무릎 관절염이 발생했다. 당시 재정적인 여유도 없던 그에게 무릎 관절염이란 병은 좌절 그 자체였다.
그러나 독일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던 차범근 선수(현 프로 축구 수원 삼성 감독)가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다쳤던 무릎이 치유되었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 홍대부고 근처의 교회를 무작정 찾아갔다.
기도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던 그는 토요일 주말이면 홍대부고 근처의 교회를 찾아가 객지생활의 어려움과 부상으로 인해 좌절했던 모든 아픔과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주셨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은 그는 농구부 합숙 생활을 하면서도 매일 새벽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고그의 인생을 가로막고 농구선수로서의 생명을 끝나게 할 것만 같은 무릎 관절염도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균관대 농구부 재창단 멤버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서 무릎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졸업할 즈음 어떤 실업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한 것이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현재의 상무와 같은 군인 농구팀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군인 농구팀에 들어가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대에 입대하려는 순간 예기치 못한 입대거절 통보를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그는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현역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선수 생활을 포기하면서 현역으로 입대한 그는 제대 후 농구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으로 살아갈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농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 감독은 그때부터 지도자로서의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결국 삼천포 초등학교에서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당시 유명 스타플레이어 출신 선수들은 최소한 고교 감독이나 대학 감독을 맡는 것이 관례였지만 저에게는 초등학교 코치 자리조차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만약 제가 초등학교 코치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고 저의 한계와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중·고교 지도자가 아닌 초등학교 지도자를 시작하게 하심으로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정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죠.
그 후 그는 1989년 과거 은사의 추천으로 홍대부고의 코치로 부임했다. 그곳에서 조성원과 이상민 같은 훌륭한 선수들을 길러내면서 1990년에는 전국 대회 4관왕을 차지하였고 마침내 이듬해인 1991년 홍익대학교 최연소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믿음의 시발점 홍익대학교]
그가 홍대부고를 전국 대회 4관왕으로 이끌자 홍익대학교는 박 감독에게 대학교 농구부 감독직을 제의한 것이다.
참으로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였습니다. 비록 대학 농구부 감독이 더 빨리 출세하는 길일수도 있지만 그만큼 대학 감독이라는 자리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자리입니다. 따라서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홍대부고 교사와 농구부 감독 자리를 버리고 대학 감독으로 간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마침내 홍익대학교 농구부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저는 하나님께 약속을 했습니다. 믿지 않는 선수들을 스카웃해서 하나님께 인도하며 선수들을 주일마다 예배 드릴 수 있는 교회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겠다고 말이죠.
비록 홍익대 감독 시절 홍익대가 대학 농구에서 하위권을 맴돌아 결국 팀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홍익대 감독을 맡으면서 선수들을 주일마다 교회에 데려가기 시작했고 지도자로서의 사명과 비전도 그 때부터 보여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홍대부고를 전국 대회 4관왕으로 이끌면서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되고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교사직에 안주하게 될까봐 하나님께서 저를 홍익대 감독으로 인도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팀이 해체되고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처소를 준비하시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여호와 닛시의 승리 깃발을 높이 들며
홍익대학교 농구팀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은 그는 바로 명지고등학교 감독으로 1993년 여름 부임한다.
명지고등학교는 기독교 재단이고 교장 선생님이 장로님이라 농구팀을 위해 많은 기도와 물질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선수를 교회로 인도하는 저의 사명은 명지고등학교에서도 계속됐고 명지고등학교에서는 숙소에서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새벽기도 할 수 있는 축복까지 하나님께서 더해주시더군요.
선수들과 새벽기도하면서 팀이 하나가 되고 선수들도 의욕이 넘치고 저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하니까 당대 최고의 선수인 이정래와 김기만 그리고 전형수와 김동우 같은 선수들이 배출되고 그 선수들이 고교 대회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승승장구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기 싫어 명지고 감독을 박차고 나와 성남의 신흥 농구 명문인 낙생고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재단의 학교와 장로님이신 교장 선생님의 든든한 후원을 받는데 익숙했던 저에게 낙생고는 또 다른 도전의 장이었습니다.
비록 불교에 심취하신 교장 선생님과 종교적 마찰을 겪었지만 1997년에 낙생고를 전국대회 3관왕으로 이끈 후 교장 선생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선수들과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저의 모교이자 유교 학교인 성균관대 농구부 감독으로 저를 부르셨고 낙생고 3인방이라 불리웠던 정훈, 진경석, 이한권 선수가 4학년이던 2001년 당시 김주성이 버티던 중앙대와 김태완이 있던 한양대 그리고 전통의 명문 연세대와 고려대를 차례로 꺾으면서 MBC 대학농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우승은 성균관대 농구부가 창단된 지 47년 만에 거둔 첫 우승이었으니 그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고 이듬해 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낙생고 3인방이 모두 5순위에 들었는데 선수를 지도한 감독으로서 정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비전은 행복한 농구 전도사
제가 대학 농구 감독으로서 겪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 선수 스카웃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선수들을 스카웃을 할 때 하나님의 생각과 세상의 기준을 분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선수들을 스카웃해서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선수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좋은 선수를 스카웃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감독으로서 중요합니다. 때문에 스카웃 시즌이 되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선수들을 스카웃해서 교회로 인도하고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도 이렇게 기쁜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물론 선수들이 속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은 진리이고 나를 구원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주일날 선수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스포츠 환경 상 주일에도 경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 저는 새벽 기도를 드리고 선수들은 오전 예배 혹은 경기 끝나고 오후 예배에 참석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믿지 않는 지도자 밑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너무 쉽게 자신의 믿음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선수들이 졸업하고 프로에 진출해서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는 것 이외에 성경에 나온 멋진 믿음의 선배들처럼 세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신실함과 탁월함을 갖춘 훌륭한 신앙인들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을 통해서 농구장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제 자신이 농구를 통해 어디에서든지 예수님을 전하는 행복한 농구 전도사가 되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박성근 감독의 기도제목]
1. 성균관대 농구부가 대한민국에서 신앙의 모범이 되고 그들을 통해 농구장에서 예수의 향기가 흘러나기를 소망합니다.
2. 항상 선수들을 사랑으로 지도하고 양육하며 예수 닮은 겸손한 인격을 가진 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예수 믿지 않는 선수를 스카웃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며 올바른 스카웃 문화가 농구계에 정착되기를 소망합니다.
4.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5. 선수들의 예배를 인도하거나 찬양 혹은 성경 공부 모임을 인도하면서 선수들을 섬겨줄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첫댓글 너무나 은혜롭고 감동적인 간증예배였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예전의 기사가 있어서 올려봅니다.. 기도해 주세요~ 몽골에서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 농구팀을 이끌어가시는 박성근 집사님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