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흑역사 을사오적이 판사출신[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8] 우연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공통점이 있었을까
22.10.21 15:26l최종 업데이트 22.10.21 15:26l
김삼웅(solwar)
우리 국민에게 판사ㆍ검사ㆍ변호사의 이른바 '사(士)' 자 돌림의 감투는
많은 사람이 원하면서도 다수는 멀리하고자 한다. 왜 일까.
서구의 근대적 사법정신이 '정의의 저울'로 상징된다면 우리의 경우는 부끄럽게도 을사5적에서 기억된다. 1905년 을사늑약에 서명한 매국노 5적이 모두 판사출신이었다. 학부대신 이완용은 평남과 전북재판소 판사, 외부대신 박제순은 평리원 재판장서리, 군부대신 이근택은 평리원 재판장, 내부대신 이지용은 평리원 재판장과 법부대신,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평리원 재판장 서리를 각각 역임했다.
우연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공통점이 있었을까, 어째서 애국심과 공정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조선왕조 말기의 판사와 재판장 출신들이 하나같이 일제에 주권을 넘기는 을사늑약에 도장을 찍은 매국행위를 자행했을까, 평리원(平理院)은 고종이 의금부를 고등재판소로 개칭했다가 바뀐 사법기관이다. 을사늑약 뒤 순종이 다시 공소원과 대심원으로 나누어 같은 명칭을 붙였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사법기관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을사오적은 병탄 뒤 일제로부터 높은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고 그들의 후예와 추종자들은 일제강점기 기득권층이 되었다. 해방 후 사법부 수장을 비롯 판검사ㆍ변호사 중에는 친일부역자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청산과 반성의 과정없이 오롯이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졌다.
앞에서 소개한대로 이승만의 조봉암 사법살인, 박정희의 인혁당관련자 처형,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날조사건 등은 모두 판사(대법관)들이 하수인 역할을 하였다. 우리 사법부는 독재정권에서는 칼잡이가 되고 부패정권과는 유착했다. 한승헌이 지적한 이른바 '정찰제' 판결을 비롯 검사 논고와 판사 판결문이 복사판이 되는 '자판기판결' 사례도 수없이 많았다. 양심수들이 정보기관과 검찰에서 당한 고문을 법정에서 호소할 때 판사의 외면이 가장 가슴아팠다는 증언이 수두룩하다. 마침내 박근혜 정부에서 사법농단이 폭로되고 촛불혁명을 불러왔다. 재판이 아닌 '거래'가 횡행했었다.
촛불혁명 이후에도 국민의 법감정이나 상식에 동떨어진 판결이 물결친다. 사법부는 여전히 국민의 신뢰와는 동떨어진 상태다. 법관 중에는 정의롭고 양심적인 분들도 많다. 예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침묵하거나 외면하면서 사법부는 바뀌지 않았다. 민주주의 근간인 사법부의 제도적 독립은 오래 전에 이루어졌는데 독립의 생명인 공정성이 부족하기에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 된다. 어디까지나 공정성은 내부구성원들의 몫이다.
판사는 임관할 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 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한다. 법관과 검사들이 초임 때의 순정한 마음으로 다짐했던 '선서'대로만 직무를 수행하면 공정사회가 가까워질 것이다. 그래서 사법권은 독립에 못지 않게 공정이 생명이다. 판사들이 법조귀족(과 신성가족)이 아닌 정의와 신뢰의 상징이 되는 사법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다. 자율개혁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