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대화를 할 때, 그 말들의 전제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할이의 전제는 어떤 말을 하거나 들었을 때 말할이가 참이라고 믿고 또 들을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떤 일을 말한다. 예컨대 ''누가 해운대에 갔어?''라는 말을 하거나 들었을 때, 말할이나 들을이는 일정한 범위의 사람들 가운데 '해운대에 간 사람이 있다'는 일이 참임을 안다.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는 보통의 경우에는 전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만일 서로 간에 전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에는 오해가 발생하거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이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서로 간에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는지를 확인하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
2.
어떤 유형의 말이든지 간에 모든 말에는 전제가 있다. 그런데 특히 논쟁에서는 논재의 주체들이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명획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논쟁은 어떤 일에 대한 주장들과 그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1가)의 주장에 대하여 (1나)로 그것을 부정하는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것' 대신에 예컨대 '피' 등과 같은 다른 사물의 이름들을 치환해 볼 수 있다.]
(1가) 그것은 물이다.
(1나) 그것은 물이 아니다.
(1가)와 (1나)를 말하는 이는 '물이 있다'는 것과 '무엇이 물이다'[어떠어떠한 성질을 가진 것을 물이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1가)와 (1나)를 듣는 이도 그러한 전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불경에서는 한편으로는 그러한 전제를 가진 언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언어의 전제마저도 다 깨뜨려 부셔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불경의 언어는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주장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사실과의 일치 여부를 검증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물'이란 것이 무엇인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보통의 경우에는, (1가)와 (1나)의 말할 수가 없다. 물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무엇이 물이라 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것이 물이니 물이 아니니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1가)와 (1나)를 말하는 것은 마치 프랑스에 왕이 없는데도 (2)의 논쟁을 펼친다든지, 달에 토끼가 살지 않는데 (3)의 논쟁을 펼치는 것과 같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2)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 아니다, 대머리가 아니다.
(3) 달에 사는 토끼는 뿔이 한 개다, 아니다, 뿔이 두 개다.
3.
그런데 는쟁 상황에서 긍정의 주장과 부정의 주장은 전제의 해석에서 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만일 (1가)의 주장에 대하여 다른 이가 (4나)의 긍정으로 동의를 표시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1가) 그것은 물이다.
(4나) 그렇다. 그것은 물이다.
설사 (1가)나 (4나)의 말할이가 물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다 하더라도 관계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1가)가 참이니 거짓인지 하는 것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1가)의 주장에 대하여 (5나)와 같이 부정하는 주장을 펼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가) 그것은 물이다.
(5나) 아니다, 그것은 물이 아니다.
(1가)에 대한 (5나)의 말할이의 판단은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1가)의 말할이가 물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이 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
둘째는 (1가)와 (5나)의 말할이가 생각하는 물이라는 것의 성질이 서로 다르다고 판단한 경우.
셋째는 (1가)의 말할이가 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판단한 경우.
[이 경우들은 엄밀이 말하자면 말할이와 들을이의 전제의 동일성에 대한 판단에서 비롯되는 함축이라 할 수 있다.]
첫째의 경우는 사실과의 일치 여부를 검정하면 확인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둘째의 경우는 객관적 지식을 통해서 물의 성질에 대한 서로의 지식을 함께 점검해 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물에 성질에 관한 권위자가 해결해 주지 않으면 당장은 해결할 수 없다. 어런 상황에서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에는 셋째의 경우에 이르게 되기 쉽다.
샛째의 경우는 (1가)의 말할이가 물에 대한 잘못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1가)의 말할이는 (5나)의 말할이가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격렬하게 반을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4.
위에서 둘째와 셋째의 경우의 문제는 (5나)의 말할이가 (1가)의 말의 전제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1가)의 말할이의 전제와 (5나)의 말할이의 전제가 서로 어그러져 있는 상태에서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다.
그리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먼저 전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자면 서로 간에 다름과 같이 질문하고, 그 대답을 확인해야 한다.
(6) 무엇을 물이라 하는가? 물은 무엇인가?
대답의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또 어느 대답이 참인지를 땨져야 한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은 '물이다, 물이 아니다'와는 다른 성질의 문제이다.
(1가)와 (5나)의 말할이가 만일 '그것은 물이다, 물이 아니다'에 관한 논쟁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면, 먼저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지 간에 (6)의 질문에 대하여 동일한 대답을 공유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논쟁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무러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논쟁은 모든 이에게 해만 끼칠 뿐, 이로움은 없다.
5.
사실 논쟁의 주제나 성질에 따라 서로 간에 동일하거나 거의 같은 전제를 공유하기가 매우 어려운 논쟁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어떤 논쟁에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전제를 공유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하먼, 그런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논쟁을 끝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