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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화수경 제8권
29. 역순품(逆順品)
[사리물의 서원]
그때에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희유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이 보살도는 미묘하고 매우 깊어서 스스로 장엄하고 깨끗하며 또한 중생도 깨끗하게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도리천(忉利天) 위에 있는 파리질다구비라(波利質多拘毘羅)나무 꽃이 피면 스스로 단정하고 장엄하여지며, 아울러 도리의 여러 하늘을 또한 장엄하게 꾸미는 것과 같나이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부처님의 법을 갖추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스스로 장엄 청정하고, 또한 한량없는 중생들의 돌아갈 바가 되나이다.
성문승을 이루면 유희(遊戱)ㆍ근(根)ㆍ역(力)ㆍ각(覺)ㆍ도(道)ㆍ배사(背捨)를 모두 얻어서 스스로 즐기나이다.
또한 저 나무에 꽃이 피면 도리의 여러 하늘 사람들이 즐기는 것과 같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지혜 있는 사람치고 누가 이 수레를 타지 않겠나이까?
다만 저희들은 본래 게을러서 남의 말만 따라 믿고, 들은 법에 안락한 마음을 내어 즐거움을 얻었다고 말하나이다.
이제는 스스로 힘이 없으므로 능히 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도 가운데 머무르게 한다는 것을 이에 알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후로 법을 설하게 되면 이 보살승을 먼저 꼭 설하고 나서 후에 여러 성문의 법을 말하겠나이다.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 하여서 혹시나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까 함이옵니다.
이른바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위없는 마음을 발하게 하여 정각에 빨리 이르게 함이옵니다.”
[오는 세상의 대승의 법]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좋고 좋다. 그대는 이제 이와 같은 마음을 능히 발하여 큰 법을 설하여 보살을 교화하고자 하는구나.
왜냐하면 오는 세상에 이 대승의 법을 가볍게 여기고 천하게 여기어 이와 같은 여러 경전을 사람들이 믿어 받들지 않으리라.
사리불아, 저 때 세상에서 혹 어느 선남자나 선여인이 선한 법을 구하려 하면 마땅히 스스로 바르게 생각하여 뜻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여 대중 가운데 처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저 때의 회중은 도를 행하는 이가 아니니라.
내 성문 대중은 도를 행하는 이로서 보살을 가볍게 보거나 대승을 헐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매우 깊은 경법을 어기고 거역하랴? 혹 어기고 거역함을 내면 이 행자의 업이 아닌 까닭이니라.
행자의 업이 아니므로 이것은 범부의 업이며 지혜 있는 이의 업이 아니다.
사리불아, 이런 까닭에 마땅히 배워서 지혜 있는 이의 업을 일으키고 범부의 행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어떤 비구가 나를 스승으로 삼으면 반드시 이 같이 행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장차 오는 세상 가운데서 불도를 구하는 이는 깊이 믿고 정진하여 한마음으로 부끄러워하며 선한 법을 기쁘게 구하여야 하느니라.
혹은 다른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고 허는 바가 되어 이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
‘이 게으른 이는 방편의 힘이 없어 현재의 세상에서 사문의 과보[沙門果]를 얻을 수 없다. 오욕을 받아 국왕이 되겠다.
현재 법문을 행하면 보살이라고 스스로 말하여 남의 공양과 칭찬을 받으리라.
이와 같은 대승의 경법은 부처님께서 이것을 이름 붙여 행자라고 설하지 않으신 것이다.’
사리불아, 이 어리석은 사람이 적은 인연으로 나를 훼방하는 것을 보아라.
나는 이 사람을 참다운 행을 하는 이라고 하지만, 저는 아니라 하리라.
여래가 가장 훌륭한 행자요, 훌륭함을 얻은 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이에 행자가 아니고, 아는 것을 얻은 이가 아니라고 하리라.
사리불아, 때에 백의(白衣)가 있어 저 사람의 제자가 되어 그의 말을 믿어 받았다 하자.
그는 여러 보살ㆍ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이와 같은 여러 경전을 읽고 외우고 믿어 익히는 것을 보면 원수나 도둑의 마음을 먹으리라.
사리불아, 이 어리석은 사람을 보아라, 어찌 계를 가지랴? 내가 경 가운데서 말하였느니라.
만일 말뚝 나무가 사람의 모양과 같은 것을 보고 오히려 화를 내어서는 안 되느니라.
하물며 유식(有識)한 이가 이와 같은 악한 사람의 진뇌(瞋惱)에 대해서랴.
사리불아, 그대는 또 저 때 세상의 여러 가지 뒤바뀜을 보라.
법과 법 아닌 생각[法非法想]은 법 아닌 법의 생각[非法法想]이며, 선과 선 아닌 생각[善非善想]은 선 아닐 선의 생각[善不善想]이니라.
행하는 이 가운데서는 행 아닌 생각을 내고, 행하지 않는 이 가운데서는 행하는 생각을 내느니라.
아는 것을 얻은 이에 있어서는 알지 못하는 생각을 내고, 아는 것을 얻지 못한 이는 아는 생각을 내느니라.
꼭 알아 두어라.
이 사람을 행하는 이라고도 이름하지 않고 아는 이라고도 이름하지 않느니라. 법도 모르고 선도 또한 모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대로 따라 순종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성내는 것에 가려 아끼고 탐내고 시기하고 교만함에 덮이었느니라.
자기 스스로 칭찬하여 높이고 자랑하면서 남은 헐어 내리며,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에 불타 여러 가지 악한 데에 들어가 선한 법[善法]을 여의었느니라.
사리불아, 내가 이 사람의 허물을 두루 말하자면 죄업만 계속되고 더해져서 구제하고 낫게 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마땅히 여의기를 마치 악한 소를 피하듯 하여라.
[스승과 스승 아님]
사리불아, 여래는 부끄러워하는 이를 위해서는 스승이지만 부끄럼 없는 이에게는 아니며,
믿어 받는 이를 위하여는 스승이지만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아니며,
법을 순종하는 이에게는 스승이지만 법을 허무는 이에게는 아니며,
행해서 정진하는 이에게는 스승이지만 게으른 이에게는 아니며,
생각을 거둬 잡는 이에게는 스승이지만 생각이 어지러운 이에게는 아니며,
지혜 있는 이에게는 스승이지만 어리석은 이에게는 아니니라.
사리불아, 이 어리석은 사람은 내 제자가 아니요, 나는 저의 스승이 아니니라.
그대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와 같은 불승(佛乘)은 여래의 바른 지혜로서 여래께서 오랜 옛적에 닦아 배우신 바이니라.
오래 닦아 배우고 나서 큰 지혜를 통달하여 위없는 보리를 이루시고, 곧 이 법으로써 보살을 위하여 설하시려는 생각을 하셨다.
만일 보살이 있으면, 이 법을 따라 배우게 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닦아 익히게 하고 위없는 보리를 능히 얻게 하여 중생을 구제하여 나고 죽음을 벗어나 부처의 씨앗을 끊이지 않게 하리라.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
여래도 또한 이 법을 스스로 존경하시건만, 이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벼이 여기고 헐어 믿지 않아 몹시 선하지 못함을 하는 것이 가장 착하지 못한 것이니,
이런 까닭에 너희들은 마땅히 법에 의지하여 행하고 사람에겐 의지하지 말라.
마땅히 자기를 의지하고 남에겐 의지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이것이 여래가 가르치신 법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비구가 법에 의지하여 행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인가?
마땅히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염처]
사리불아, 비구는 열반을 따라 여의고 순종하여 4념처(念處)를 닦아야 하느니라.
무엇을 염처라 이르는가?
몸과 마음과 받는 데에서 버리지 않을 것을 늘 생각하는 것이니라.
또 사리불아, 참되게 법을 보면 성(性)이 없느니라.
이 법 가운데서 바르게 생각하여 그르치지 않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염처라 하느니라.
이것이 비구가 법에 의지하여 행하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항상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능히 이와 같이 염처를 닦아 익히면 탐착을 모조리 끊으리니,
아라한(阿羅漢)이라 이름하고,
번뇌가 다한 이[漏盡者]라 이름하고,
번뇌가 없는 이라 이름하고,
세상의 복밭이라 이름하고,
자재한 이라 하며,
물들고 더러운 것이 없는 이라 이름하고,
지혜 있는 이가 되었다고 하며,
저 언덕에 이른 이라 이름하고,
도사(導師)와 바라문이 되었다고 이름하느니라.
[아라한]
사리불아, 아라한은 온갖 악과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어서 함이 있음[有爲]을 즐기지 않고,
여러 가지 업을 멸해 없애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느니라.
사리불아, 아라한으로서 죄와 복의 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왜냐하면 세 가지 구하는 것을 버린 때문이며,
아홉 가지 맺음[九結]을 변전(變轉)시킨 때문이니라.
온갖 법에 있어서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뛰어나 목마르고 사랑함이 없으며,
열(熱)이 없고 고뇌가 없어서 마음이 깨끗하기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을 아라한이라 이름하느니라.
사리불아, 누진(漏盡)을 채웠다고 이름 붙이는 이는 온갖 법에서 누를 다하여 남김없이 마지막 다함에 이르러 여러 가지 번뇌가 없는 이니라. 아라한의 마음은 본래부터 언제나 공하여 때나 깨끗한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물들고 더러움이 없는 이란 6진(塵) 가운데서 좋거나 나쁘거나 헐거나 칭찬하거나 간에 마음에 다름이 없고 희론을 끊었기 때문이니라.
세상의 복밭이란 이는 여러 가지 열과 고뇌를 끊어서 제일 청정한 법의 보시를 능히 주기 때문이니라.
자재라고 이름하는 이는 온갖 법을 보는데 공하여 있는 것이 없으며, 공한 법 가운데 저 언덕에 이르러서 허망한 논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자재 바라문이라고 이름함은 여러 악한 법을 막고 온갖 법을 떠나 물들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도사(導師)라 함은 능히 사람을 위하여 나고 죽음 없음을 설명하여 스승의 처소로 인도하기 때문이니라.
지혜 있는 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 사람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업(業)ㆍ연(緣)ㆍ과보를 모두 허망하게 분별하는 까닭에 일어나는 것을 능히 알아, 그 가운데서 해탈을 얻기 때문에 지혜 있는 이라 이름하느니라.
저 언덕에 이르는 이란 뭇 마군과 온갖 번뇌를 능히 깨뜨리고 온갖 여러 가지 법의 저 언덕에 능히 이르러서, 벌써 갯바닥[游氾]에서 벗어나 육지에 편안히 머무르는 까닭에 이름하여 저 언덕에 이른 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여러 복덕을 따라 더하고 덜함이 없는 것을 설명하셨다.
여러 아라한을 큰 복밭이라 하니, 더럽고 나쁜 것이 없으며, 싹이나 그루터기 및 여러 기와ㆍ조약돌도 또한 없느니라.
사리불아,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사람이 훼방하면 생각을 내지는 않지만, 이 사람은 나를 꾸짖는구나 하고,
사람이 칭찬하면 생각을 내지는 않지만, 이 사람이 나를 칭찬하는구나 하나니,
분별하는 생각 없고 의심하는 일 없이 6근(根)을 잘 거둬 잡아 필정지(必定地)에 머무르고 법에 의하여 행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으며, 능히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느니라.
이런 까닭에 사리불아, 이 같이 행하는 이는 끝내 여러 부처님의 보리를 어기거나 거역하지 않고 또한 행하지 않는 이의 업도 일으키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하면 범행(梵行)을 닦는 이에게서 꾸짖음 당하는 일도 없고, 또한 여러 부처님의 보리를 깊이 옹호하여 오래도록 머무르게 할 수 있느니라.
사리불아, 아라한은 여러 법 가운데서 마음에 의심하는 바 없고, 지은 바는 스스로 판단하여 바른 도[正道] 가운데 머물러 있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아라한은 불법에는 머무르지 않지만 마침내는 어기거나 거역하지 않나이까?
왜냐하면 만일 어기고 거역하면 범부가 하는 짓이요, 나한의 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리불아. 법을 어기고 거역하는 것은 범부가 하는 짓이요, 지혜 있는 이의 업은 아니니라.
여래는 다만 장차 오는 세상만을 위하심이니라.
나이 지긋한 비구가 있어서 아는 것이 많아 마음에 잠깐 머무름을 얻었다.
대중을 떠나 혼자 살면서 여색을 보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아라한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에 자기가 잘났다[貢高]는 생각을 내었다.
그때에 뭇 사람들이 믿는 이가 많아서 그를 아라한이라고 존경하고 공양하였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또한 명리(名利)를 탐내어 공양과 시봉함을 받으면서,
‘내게 아라한의 법이 있어 번뇌[結使]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분별없는 법은 알지 못하고 분별을 기쁘게 내었다.
번뇌가 조금 쉰 것으로써 도를 얻었다고 문득 말하였다.
만일 사람 사는 데에 들어가게 되면 의법(儀法)을 가지는 체하지만, 혼자 있게 되면 스스로 즐겨 놓고 대중 처소에 있으면 또한 다르니라.
이 사람은 많은 제자의 무리를 즐겨 기르며 아는 사람이 많다. 국왕과 대신에게서 공양과 시봉함을 크게 받으며,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여 공경한다.
여러 가지 번뇌가 꽉 찼으나 자기는 번뇌가 없다고 말한다.
이같이 깊은 경전의 공상응(空相應) 법을 얻어 들으면,
그의 착한 제자들은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어 뜻을 알려 하면서 구하여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 법을 닦아 행하지만,
이 어리석은 사람은 믿어 받기를 즐겨하지 않고 어기고 거역함을 품어, 이런 말을 지어낸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큰 스승의 가르치심이 아니다. 법도 아니요, 선(善)도 아니다.’
이 사람은 법에서 법 아닌 생각을 내며,
법 아닌 가운데서 법의 생각을 내고,
선 아닌 법 가운데서 선의 생각을 내며,
선한 법 가운데서 선 아닌 생각을 내느니라.
사리불아, 이 여러 어리석은 사람들은 얻은 바 법에 따라 스스로 칭찬하고 얻지 못한 법은 헐고 뜯고 가볍게 보고 천하에 여기며,
스스로 자기는 크고 높다고 하면서 남은 헐고 얕잡아 보느니라.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다만 지계(持戒)만이 있어서 한 곳에 생각을 잡아 두지만,
차츰 악한 마음을 조복하여 널리 듣고 읽고 외우고,
제자를 많이 길러서 사람에게서 떠받드는 바 되어 칭찬하고 예경함을 받으면 마음에 오만하고 아만스럽고 상만(上慢)한 생각이 들어,
이와 같은 여러 깊고 묘한 경을 들으면 중한 업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이 어리석은 사람은 그에게 죄가 있어서, 오만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더욱 더하게 하여 이 경전을 어기고 거역한 일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중한 죄를 일으킨 뒤로는 큰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