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헌 납치 탈주극,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FONT> |
사건개요
대낮의 탈주 올림픽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1988년 10월 8일, 대탈주 사건이 벌어진다. 서울 영등포 교도소에서 대전과 공주 교도소로 이송중이던 미결수 12명이 호송버스를 탈취한 것이다. 이들은 호송버스를 돌려 서울로 돌아왔고 낮 12시경 서초동 공무원교육원 앞에 버스를 버려두고 흩어진다.
이들 중 8일간 7명은 잡혔으나 나머지 5명은 잡히지 않은채 여러 은신처를 돌며 서울 시내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다(당시 언론에서는 이들을 흉악범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절도죄 등의 잡범이었다).
인질 15일 밤 9시경 지강헌, 한의철, 안광술, 강영일은 북가좌동에서 대문이 열린 ㄱ씨 집으로 들어간다. 집에는 ㄱ씨 부인과 1남 3녀가 있었는데 그들을 위협하여 안방으로 몰아넣는다. 지강헌에게는 권총이 있었기 때문에 위협이 용이했다. 잠시후 10시경 큰 딸이 돌아오고 새벽무렵 술에 취한 ㄱ씨가 귀가.
이들은 별다른 폭언이나 폭행이 없이 ㄱ씨 집에 있던 양주를 꺼내 마시며 1명씩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ㄱ씨 가족을 감시한다. 하지만 8일간의 도주가 힘들었던지 불침번이 잠이 들고, 그틈을 타 ㄱ씨는 인근에 있던 북암파출소에 신고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칼빈 총과 가스총으로 무장한채 출동, 기동타격대 1천여명이 ㄱ씨 집을 포위한다.
대치 16일 새벽 4시경 잠에서 깬 지강헌 일당은 경찰이 집을 포위한 것을 알고 경찰과 대치한다. 지강헌 일당이 인질을 붙잡고 있었기에 경찰은 협상을 위해 지강헌과 강영일 등의 가족을 부른다. 하지만 가족의 설득에도 지강헌은 자신에게 총이 있다며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 지강헌은 경찰의 철수와 봉고차 한대를 집앞에 대기할 것을 요구한다. 안광술은 둘째딸의 목에 식칼을 대고 장독대 위로 올라와 자신은 폭력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는데 강도범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 인질들의 말에 의하면 밖으로 나갈 때는 자신들의 목에 칼을 대거나 위협을 하긴 했으나 집 안에서는 오히려 조용조용하며 자신들을 안심시키려 했다고 한다. 경찰에게 신고했음에도 폭언이나 폭행은 없었다고 함.
생방송 중계 당시 이와같은 대치 상황이 TV에 방송되었는데 8일간이나 잡히지 않았기에 국민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더구나 16일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TV 앞에 있는 사람이 많았다(생방송되게 된 것은 지강헌의 요구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확하지가 않다).
몰려든 취재진과 포위하고 있는 경찰들
뉴스 등에서 탈주범들을 흉악범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당시 숨 죽이며 사건 전개를 바라보았는데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결말 결과적으로 경찰 3만명이 동원되었으나 8박 9일간이나 잡히지 않았던 탈주 사건은 결국 자살과 사살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경찰과 대치 중이던 당시 강영일이 지강헌에게 경찰에 투항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강헌은 경찰에게 요구했던 봉고차를 확인하기 위해 강영일을 밖으로 내보낸다. 강영일은 ㄱ씨의 셋째딸과 함께 포위망이 쳐진 마당을 서성이다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지강헌은 자신의 마지막 선물이라며 강영일의 발 앞에 총을 발포, 강영일을 제지한다.
이 때문에 한의철과 안광술은 지강헌에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하는게 아니냐'며 대들며 몸싸움을 벌인다. 이 과정에 총을 한의철이 뺏아 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잠시 후 총성이 울린다. 뒤이어 안광술도 방으로 들어갔으며 한의철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한 것을 보고 자신 역시 자살한다.
지강헌은 경찰들에게 한과 안이 자살했음을 말하고 경찰들에게 '홀리데이'가 든 테입을 요구한다. 이때 그가 요구한 것이 비지스의 홀리데이인지,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최근 영화화한 영화사의 조사에 따르면 경찰이 건네준 것은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라고 한다.
카세트에 홀리데이를 틀어놓고 권총이 든 오른손은 머리에 댄채 왼손으로 유리 조각을 들어 자신의 목을 찌른다. 이를 보던 첫째딸이 비명을 지르자 특공대원이 진입, 지강헌을 사살한다.
이 사건의 생존자는 강영일 뿐이며, 인질극과는 관계없이 홀로 탈출했던 마지막 탈주범 김길호는 사건 발생 1년 9개월만인 1990년 7월 1일 체포된다.
방 왼편에 자살하기 전 틀었던 것으로 보이는 카세트가 보인다.
탈주 계기
지강헌을 비롯한 탈주범의이 탈주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으나 지강헌의 말 가운데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돈 있으면 죄가 없고 돈 없으면 죄가 있다.
왜 이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지강헌은 상습절도범으로 그가 탈주하게 될 당시에는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받아 형기 17년을 살아야 했다. 보호감호법은 동일 범죄를 3회 이상 저지르게 된 이들을 감호한다는 목적하에 교도소에 더 오래 복역하게 하는, 5공시절에 만들어진 법이다. 이로 인해 지강헌은 돈 500여만원을 훔친 벌로 17년의 형기를 받은 것이다.
◀ 그런데 1988년 3월 3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해외재산도피 및 공금횡령으로 검찰에 소환되는데 그가 횡령한 금액은 600억원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받은 형량은 7년, 지강헌 자신에 비해 1만배가 넘는 금액을 도둑질한 사람은 돈과 힘이 있다는 이유로 가벼운 벌을 받는 다고 생각하게 된 듯 하다(더구나 전경환씨는 2년 10개월을 복역하고 1991년 노 전 대통령 취임 3주년 기념으로 특별감형된다. 2년 10개월 복역과 남은 형기의 반이 감형됨에 따라 가석방 요건을 갖춘 전경환씨는 가석방 된다).
전경환씨 소환 당시 한 시민이 뺨을 때리고 있다.
인질극에 나오는 전문용어
스톡홀름 증후군 73년 스톡홀름에서 일어난 인질사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질이 범인들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현상'을 말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에서 직원들을인질로 잡고 엿새동안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당시 인질들은 초기에는 범인들을 무서워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의 본질은 잊어버리고, '인연'을 맺은 인질범들을 옹호하고 이들에 대한 비난에 반감을 갖게 됐다. 당시 인질들은 강도에게 협조까지 하는 병리현상을 보였다. 인질범이 인간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이같은 심리변화를 유발한 것. 인질들은 사건종료후에도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아주 극한 상황에서는 약자가 강자의 논리나 주장에 동화돼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런 이상심리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구출작전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리마증후군 납치나 인질사건에서 인질범들이 인질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감정이입상태에까지 이르러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1996년 12월17일 페루 리마의 일본대사관 인질사건에서 유래된 용어. 당시 페루반군들이 일본대사관을 점거하고 400명을 억류하면서 시작돼 1997년 4월23일 장장 126일간 이어져 페루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인질들과 함께 지냈던 반군들은 점차 인질들에게 동화돼 가족과의 안부편지, 미사 개최, 의약품의류 반입 등을 허용하고 자신들의 신상을 털어놓는 현상을 보였다. 이후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리마 증후군이라 부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인질이 범인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증후군이 있다. 최근 국내 유명 연예인 납치 사건에서 검거된 범인이 인질과 인간적인 대화와 교감을 가졌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건의 시간을 따라가다.
그들 최후의 순간에 등장하는 노래가 영화 제목으로 낙점된 holyday라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가 나온 연유를 대부분이 이렇게들 알고 있더군요. '최후의 순간에 지강헌은 포위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줄 것을 요구하고 그런데 경찰이 틀어준 노래는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아니고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였다' 고 인터넷에서도 전부 이 내용으로 알고 있고 일부 신문에서도 영화평을 하며 위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더군요.
그 당시에 제가 알고 있던 바로는 그 테이프는 그 집 딸의 것이었습니다. 인질극의 와중에 인질범들의 요구로 가끔 녹음기로 음악을 틀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지강헌이 부탁한 신청곡이 비지스의 홀리데이였고 그 노래를 들으며 그들이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봤더니 전부 틀렸더군요, 비지스의 홀리데이인 것은 맞는데 상황이 달랐습니다, 아마도 저는 그저 옆사람들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 것 때문이고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각색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강헌 사건은 유명한 드라마 수사반장에서도 취급했었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는데 이계인이 지강헌역을 했다는 군요, 그리고 수없이 드라마로 각색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드라마로 지강헌을 만난 세대들이 드라마의 각본을 실화로 오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그 진실을 만나기 위하여 1988년 10월 사건이 벌어지던 그 날, 서울의 한 주택가 골목 그 때의 현장으로 떠나보겠습니다.
- 지강헌(35) 안광술(22) 강영일(21) 한의철(20) 4명은 15일 밤 9시 35분 4번째 은신처, 서대문구 창천동 손씨집에서 나와 버스를 탐. 강영일은 여장하여 지강헌과 아베크족으로 위장
- 9시 40분 :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하차, 열려있는 대문으로 고씨집 침입, 고씨부인(52)과 1남 3녀를 안방으로 몰아 넣음
- 10시 : 큰딸 ㄱ양(22) 귀가, 고씨부인 큰딸에게 '방송에 나오는 탈주한 어르신들이다' 큰딸 '무척이나 가난한 집에 찾아 오셨네요'라고 인사
- 16일 새벽 0시 20분 : 고씨(55) 술에 취해 귀가, 고씨 집에서 술과 양주를 꺼내 마시며 1명씩 교대로 불침번.
- 새벽 4시쯤 : 불침번 잠들자 고씨 150미터 떨어진 서부경찰서 북암파출소에 신고, 즉시 경찰 2명과 방범대원 2명 카빈총과 가스총으로 무장 출동
- 새벽 4시30분쯤 : 정사복 경찰관과 기동대 1천여명 고씨집 포위
- 4시 40분 : 잠에서 깨어 경찰과 대치
- 4시 50분 : 경찰 무전기소리에 지강헌 권총 1발 발사하며 '접근하면 인질을 해치겠다'고 협박.
- 5시 25분 : 서부경찰서 박래명 수사과장과 대화, 경찰을 철수시키고 최류탄을 쏘지 말 것, 강영일 안광술의 가족 연락처를 알려줄것, 행동통일 논의를 위해 오전 8시까지 시간을 줄것 요구.
- 6시30분 : 한의철 애인도착, 강영일 지강헌 어머니와 형등 도착 자수권유, 지강헌은 수사과장에게 형을 돌려보내라 요구, 강영일은 '어머니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지강헌은 총은 내게 있다 섣부른 행동을 말라며 강경한 태도
- 7시 : 안광술이 고씨 둘째딸 ㄴ(19)의 목에 식칼을 들이대고 장독대 위로 나옴. 나는 폭력으로 들어갔다가 강도범이 됐다고 주장, 경찰철수 요구, 5분후 안으로 들어감.
- 7시50분 : 수사본부장인 김종구 서울지검3차장이 전화로 자수 권유, 봉고차 1대를 보내달라, 인질을 두고 조용한 곳에 가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겠다고 끊음
(*인질범들은 인질극 내내 가족들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고 합니다. 가끔 경찰과 대화하다 흥분하여 집기를 부수고 난동을 부렸지만 인질들에게는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식구들도 이들에게 자유스러운 곳에 잘살라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 10시 46분 : 심장이 좋지않은 고씨부인과 막내아들(11)을 1차로 석방.
- 11시 47분 : 지강헌은 강영일을 내보냄, 밖에 나가 봉고차가 준비됐나 확인해봐라, 만약 없으면 너 혼자라도 순순히 경찰에 붙잡히라.
- 12시 2분 : 강영일이 세째딸을 데리고 15분 동안 경찰 포위망이 쳐진 마당을 서성이다 집으로 들어오려하자 지강헌은 영일아 네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내마음을 갖고 가라며 강영일의 발밑에 권총 1발 발사하며 강영일이 들어오는 것을 제지, 강은 이때부터 세째딸과 마당에서 배회.
- 낮 12시 5분 : 한의철과 안광술이 지강헌의 총질에 놀라 왜 형맘대로 하느냐, 같이 죽고 같이 살아야 할것 아니냐며 지에게 대들고 몸싸움 시작. 안광술이 지를 붙잡고 있는동안 한의철이 권총을 빼앗아 안방으로 들어간 뒤 총소리가 들리고 안광술이 큰딸 ㄱ에게 지를 붙잡고 있으라 한뒤 뒤따라 안방으로 뛰어간 뒤 다시 총소리. 둘은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함.
- 이때 안방에서 한과 안이 자살을 지켜봐야 했던 둘째딸과 네째딸이 겁에 질린채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옴. 안방에서 권총을 주워들고 건너방으로 나온 지는 한과 안이 자살했다고 외친뒤 자신이 좋아한다며 검거되기 전 경찰로부터 전달받은 2개의 테이프중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녹음기에 걸고 볼륨을 크게 높임. 피바다가 된 집안과 경찰 취재진 구경꾼으로 가득한 골목으로 노래 울려 퍼짐.
(*문제의 테이프가 경찰에서 지강헌에게 전달된 시점은 확인되지 않으나 2개의 테이프가 전달됐고 그중 하나가 비지스의 홀리데이였습니다, 나머지 테이프가 스콜피온스의 테이프인지도 확인 안되는군요, 최소한 홀리데이는 지강헌의 손에 의해 노래가 틀어졌습니다.
*상황으로 추측해보면 지강헌이 큰딸에게 노래를 신청했다는 것이나 이 급박한 와중에 경찰에게 노래를 틀어달라고 부탁하고 경찰이 스피커로 집안을 향해 노래를 트는 것이나 그리고 그 노래가 동명이곡이었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영화에나 나오는 코메디적 상황이고, 세월의 때가 눌어붙어 전설적으로 변형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강헌이 녹음기를 켤때쯤 고씨집 뒷담을 넘어 경찰특공요원 2명 진입,
- 12시 16분 :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창쪽에 발을 올리고 있던 지씨 오른손의 권총을 머리에 대고 왼손의 유리조각으로 목을 찌름. 그 때까지 인질로 잡혀있던 큰딸이 비명을 지르자 경찰들 일제히 담을 넘어 진입개시.
- 12시 18분 : 지가 피를 흘리며 방바닥에 쓰러진뒤 형사기동대 3~4명이 뛰어 들자 지가 몸을 일으켰고 뒤를 이어 4발의 총성과 함께 경찰의 쏜 총탄에 지의 대퇴부를 관통한뒤 국부위를 뚫고 들어가 지는 쓰러짐, 지가 쓰러질 때 쯤, 옆집 2층 계단 등을 오가며 서성이던 강영일 체포, 동시에 큰딸이 마지막으로 풀려나며 14시간에 걸친 인질극 종료.
지강헌은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고 유일한 생존자는 강영일이었다. 마지막까지 오리무중이었던 탈주범 김길호는 사건 발생 1년 9개월 만인 1990년 7월 1일, 공장 기숙사에서 체포되어 도피행각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프롤로그
사건 당시는 88올림픽으로 인해 한민족 역사상 가장 큰 경제발전의 호황기와 국운상승의 시대였습니다, 이들은 그 시대의 그늘이었고 아픔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막 20대를 넘어 세상을 향해 나가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지강헌과 강영일이 보여준 마지막 상황은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지가 강을 살리기 위해 밖으로 내보내고, 강은 밖으로 나갈려니 의리가 울고 안으로 가자니 지가 반대하고 어쩌면 마당을 어슬렁거려야 했던 그 몇분이 그에게는 한세월이었을 겁니다. 그들이 범죄자였다고는 하나 한창 꽃피어야 할 나이에 목숨을 버릴 정도의 중범죄는 아니었습니다. 저와 같이 한하늘에서 숨을 쉬었던 같은 또래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조의를 보내고 그 시대에 유감을 보냅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팝송중에는 holiday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가 대여섯개 있습니다. 그런데 이역시 세월의 이끼가 끼어서 기억이 잘나지 않습니다. 그 중에 스콜피온스의 노래는 하드락적이고 미셀 뽈라레프의 노래는 소프트합니다. 비지스의 노래는 가장 애련하고 비감적입니다.
출처 : 스크랩 홀릭
마지막 인질, 고모씨의 탄원서 공개
1988년 지강헌 탈주사건을 영화화한 <홀리데이>(감독 양윤호/제작 현진씨네마)의 마지막 인질이 탈주범을 위해 쓴 눈물의 탄원서가 18년만에 공개됐다. 지강헌 사건을 영화화한 <홀리데이> 측은 17일 영화제작 과정 중 발견한 고씨의 탄원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 탄원서는 사건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고씨가 서울지방경찰청에 보낸 것이다. <홀리데이>를 영화화환 현진시네마의 이순열 대표는 신문에 기고된 고 모씨의 수기를 본 후 ‘지강헌 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며 새롭게 정보를 수집한 후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그 과정에서 마지막 인질이었던 고모씨의 탄원서를 입수해 영화 제작의 기본으로 삼게 됐다.
탄원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기인은 1988년 10월 15일 탄원인 고00의 집에 들어와 다음날인 16일 오후 12시까지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비록 그가 인질범이며 탈주범이기는 하나 저희 집에 들어와 우리를 인질로 잡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탄원인의 아버지가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단 한 번의 폭언이나 폭행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분명 심성이 착한이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불안에 떠는 저희를 진정시키며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수시로 했습니다. 물론 그가 지은 죄는 사회적으로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아 마땅하나 저희 집에 들어와 취한 인간적인 면을 생각하여 정상 참작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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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슴아픈 옛사건이 생각납니다.
그 사건은 기억이 남니다. "holiday"는 나도 좋아하는데. 잘 읽고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