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스님의 금강경 강설 - 36
청담스님이 함께 정화운동에 참여할 것을
간절히 권유했지만 성철스님은 산중 수행승으로 남았다.
그것은 이 땅에 선풍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청담스님이 그릇을 제조했다면
성철스님은 그 내용물을 만들었음이었다.
정화운동 기간에 두문불출했던
성철스님을 두고 여기저기서 시비를 걸어올 때
이를 막아준 이도 청담스님이었다.”
출처::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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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信希有分 第六
須菩提-白佛言(수보리-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頗有衆生(파유중생)이
得聞如是言說章句(득문여시언설장구)하고
生實信不(생실신부)이까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하사대
莫作是說(막작시설)하라
如來滅後-後五百歲(여래멸후-후오백세)에
有持戒修福者(유지계수복자)하야
於此章句(어차장구)에 能生信心(능생신심)하야
以此爲實(이차위실)하리니 當知是人(당지시인)은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에
而種善根(이종선근)이요
已於無量千萬佛所(이어무량천만불소)에
種諸善根(종제선근)이니 聞是章句(문시장구)하고
乃至一念(내지일념)이라도
生淨信者(생정신자)니라
須菩提(수보리)야
如來-悉知悉見是諸衆生(여래-실지실견시제중생)이
得如是無量福德(득여시무량복덕)이니
何以故(하이고)오 是諸衆生(시제중생)이
無不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무부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며
無法相(무법상)이며 亦無非法相(역무비법상)일새니
何以故(하이고)오 是諸衆生(시제중생)이
若心取相(약심취상)하면
卽爲着我人衆生壽者(즉위착아인중생수자)니
何以故(하이고)오
若取法相(약취법상)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즉착아인중생수자)며
若取非法相(약취비법상)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즉착아인중생수자)니라
是故(시고)로 不應取法(불응취법)이며
不應取非法(불응취비법)이니 以是義故(이시의고)로
如來常設 汝等比丘(여래상설 여등비구)하되
知我說法(지아설법)을 如筏喩者(여벌유자)니
法尙應捨(법상응사)어든 何況非法(하황비법)가하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어, 자못 어떤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실다운 신심을 낼 수 있겠사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부처님이 가신 뒤 후 오백세에 계를 받아 지니고
복을 닦는 수행자가 있어서 이 같은 말과 글귀에
신심을 내어 이것을 진실하게 여기리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이나 셋 . 넷 . 다섯 부처님에게만
착한 마음의 바탕을 튼튼히 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 없는 천 만 부처님 계신 곳에서
착한 마음의 바탕을 튼튼히 한 사람이니,
이 글귀를 듣고 한 생각에 거룩한 믿음을 내느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이
한량 없는 복덕 짓는 것을 다 아시고 보시느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들은
다시는 <나라는 생각> . <남이라는 생각> .
<중생살이라는 생각> . <오래산다는 생각>이 없으며
<법이라는 생각> . <그릇된 법이란 생각>도 없기 때문이니라.
왜냐 하면, 이 모든 중생이 만일 마음에 지키는 것이 있으면
곧 <나라는 생각> . <남이라는 생각> . <중생살이라는 생각> .
<오래산다는 생각>에 걸리기 때문이며,
만일 <법이란 생각>을 지켜도 <나라는 생각> .
<남이라는 생각> . <중생살이라는 생각> .
<오래산다는 생각>에 걸리며 <그릇된 법>이라는
생각을 지켜도 곧 <나라는 생각> . <남이라는 생각> .
<중생살이라는 생각> . <오래산다는 생각>에 걸리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정법을 지키지도 말고 그릇된 법을 지키지도 말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항상 말하기를 「너희들 비구는 알라.
내가 말한 바 법은 뗏목과 같으니 정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그릇된 법이야 말할 게 있겠느냐. 」하였느니라.』
第六 正信希有分---말세에도 바른 신심 있다
[科解]
우리가 만일 육신의 오관세계(五官世界), 물질세계만을
본위로 하여 삼차원세계에서만 산다면
사차원세계의 현실을 설명할 수 없게 되고
불법과는 거리가 먼 생활에 떨어집니다.
예컨대 육신 가지고는
장래를 예언할수 있는 관능(官能)은 없지만,
정신이 무아지경(無我地境)에 들어서면
온갖 것이 다 보이고 자유입니다.
전에 말했듯이 문을 닫아 걸었는데
육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든지,
큰 종 속에 집어 넣었는데도
쇠종을 뚫고 육안으로는
지나간 줄도 모르는 새 어느 틈에 나가는 등입니다.
이런 것은 다 사차원세계에 들어서면 허다하게 많습니다.
현실세계란 이것이 근본적으로 꿈이고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가상(假相)으로 있는 것이니
법당은 불에 타면 재만 남는다는 생각 .
인식 . 그 관념 때문에 불이 붙는 것입니다.
삼차원의 세계는 환상이고 그것은
다 생각하는 대로 될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각 없는데 들어서면
거기서 사차원세계가 벌어지는데
여기서 더욱 더 들어가면 육신으로 살 때
오관에만 의지했던 인간 능력을 초월하여
무한대한 절대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사차원세계 정도는
초학자(初學者)의 체험입니다.
나는 불교의 내용을 사의상학(思議上學) .
사의하학(思議下學)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생각하기 이전, 마음이 생각을 내기 전은 <사의상학>입니다.
곧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말합니다.
<사의하학>은 세상에서 말하는 형이상학(形而上學) .
형이하학(形而下學)이 다 포함되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다 생각 밑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의상학(思議上學)에서부터는 불교 냄새가 조금 납니다만
그러나 그것도 아직 마음의 본바탕은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사차원의 세계가 있다고 하여 전혀 없었던 것,
새로 발명한 것 처럼 야단입니다.
사차원세계에 들어서서 시골에 있는 집이 보인다,
친구들이 지금 앉아서 밥먹고 얘기하는 것이 보이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지만
이것은 아직 불교의 초입(初入)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천차원(千次元), 만차원(萬次元)의 무아경에 들어가서
생각의 주체인 마음의 본연자세(本然姿勢)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을 깨달으면 주객(主客)을 초월하게 되어
<나라는 생각>(我相) . <남이라는 생각>(人相) .
<중생살이라는 생각>(衆生相) .
<오래산다는 생각>(壽者相)을 여의게 되는데,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 육체가 <나>가
아니라는 진리를 믿는 것이 바른 신심(正信)입니다.
불멸후(佛滅後) 이천 오백년의 말세에도
다생으로 부처님을 따라 배운 이들이 있어서
이와 같은 바른 신심(正信)으로 계를 지키고
큰 복을 닦으며 금강경의 진리를 읽고
거룩한 신심을 내어 무량한 복덕을 짓는 일은
심히 희유(希有)하다는 뜻에서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이라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