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겸면 목화공원
목화꽃 피고 추억 흐르네
작은 정성에 눈물을 그렁거리는 경우가 있다. 거창하게 계획하고 준비해서 떠난 여행길이 아니라 그냥 길을 가는 도중 문득 눈에 띄는 안내판 따라 무심코 들렀다가 예기치 않은 풍광이나 장면을 마주하곤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도 많다. 어찌 보면 하찮은 것을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간직한 그 작은 대상에게서 받는 감동의 울림은 더욱 크다. 황홀하기까지 하다.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꽃밭이 딱 그랬다. 곡성 옥과를 지나 겸면 쪽으로 가다가 만난 그 꽃밭은 우리 부부를 단숨에 어린 시절로 데려다 주었고, 결이에게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을 마련해 주었다.
호남고속도로를 따르다가 ‘옥과 IC’로 들어서, 우회도로를 타고 가다 순창방면과 곡성방면으로 갈라지는 평장 삼거리를 50m쯤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자 갖가지 꽃들과 흔치 않은 농작물이 우릴 반겼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목화꽃. ⓒ 김태성 기자
‘미영다래’기억에 가슴 찡한 목화길
아치를 타고 주렁주렁 매달린 조롱박과 수세미가 앞길을 장식하더니 키가 훌쩍 큰 옥수수와 수수, 조, 기장, 귀리, 메밀 등 귀한 곡식을 머리 가득 매단 농작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도라지, 구절초, 쑥부쟁이 같은 우리 풀꽃이 나지막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오랫동안 발길을 붙잡았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꽃들과 농작물이 눈을 즐겁게 했다.
그 길에서 눈부시도록 하얀 솜을 피워 낸 목화를 마주 대하자 잠시 눈앞이 침침해졌다. 어릴 적 초등학생 시절을 끝으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던 목화밭이 펼쳐지자 황홀하기까지 했다. 이제는 일부러 만들어 놓은 식물원이나 아니면 목화시배지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목화꽃을 마주 대하는 순간, 우리 부부는 바로 그 시절의 어린 아이가 되었다.
당시의 나와 비슷한 또래인 결이와 함께 그 길을 걸으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미영다래’를 슬쩍 따서 아들놈의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설탕으로 범벅이 된 과자에 입맛이 맞춰져 버린 녀석은 한번 깨물더니 그냥 퉤퉤 뱉어 버리고 말았다.
아들이 한 입 베어 낸 그 다래를 입에 넣고 씹으니, 떨떠름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물이 입안에 가득 고였다. 군것질거리가 거의 없었던 어린 시절, 그 때의 그 맛은 나지 않을지라도 난 충분히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어려웠던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우리 부부에게 이 뚝방길은 ‘추억의 길’로 되살아 난 것이다.
눈부시도록 하얀 솜을 피워낸 목화. ⓒ 김태성 기자
박노해의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라는 시도 아울러 떠올랐다. <…꽃잎 떨군 자리에/ 아프게 익어 다시 피는/ 목화는/ 한 생에 두 번 꽃이 핀다네// 봄날 피는 꽃만이 꽃이랴/ 눈부신 꽃만이 꽃이랴…> 열매를 맺기 전의 꽃보다도 늙어가면서 피는 그 꽃의 따스함과 포근함, 그리고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
수수, 조, 기장, 귀리, 메밀…온갖 가지 전통 농작물
결이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우리 풀꽃과 농작물을 만나는 ‘자연공부’가 되었다. 수세미, 목화는 물론이고 채송화, 봉숭아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한결이는 생전 처음보는 수수, 조, 귀리 등에도 호기심을 나타냈다.
중간중간 마련해 놓은 원두막에 앉아 막 고개를 숙이는 나락들을 바라보면서 ‘참 고맙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다. 돈도 되지 않을 이러한 풀꽃을 심는다고, 되레 돈을 들인다고 언짢아 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명물로 가꿔놓은 면 관계자들과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더욱 고마웠다.
종일 하릴없이 왔다갔다 해도 결코 지치지 않을 것만 같은 겸면천변 목화공원,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은 넉넉하고 포근한 아름다움으로 추억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내년 가을에도 꼭 찾아가 만나야지.
<목화꽃 지고 난 9월 하순부터 피어날 희디 흰 솜꽃은 11월까지도 볼 수 있으며, 수확한 솜은 매년 열리게 될 ‘명장목화제’의 기금으로 쓰고 있다. 문의 :겸면사무소 061-362-1031(면장실061-362-1050)>
막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는 기장.
▶가는길=호남고속도로 옥과 IC 우회전~곡성 IC방면 1.5km 진행, 겸면사무소~면사무소 맞은편 1km 겸면 목화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