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家難)한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야고보서 2:1-6)
얼마 전, 전라남도 목포시 연산동에서 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2급 청각장애인 김 씨는, 한 달에 23,500원 되는 4개월 치 전기료 93,860원을 내지 못하자, 오후 1시부터 한전에서 전기를 끊어버렸습니다. 12평짜리 친 형님 집을 빌려 생계보조금 66만원과 고물 수집으로 생계를 꾸려왔는데, 술을 못 끊어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전기료를 못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 되어 촛불을 켜놓았는데, 방에 촛불이 옮겨 붙어 불이 났습니다. 3급 정신지체 장애인 23세인 아들은, 뒤쳐 나와 화상을 입었으나, 목숨은 건졌습니다. 그런데 57세인 김 씨 부인 2급 정신지체 장애인은, 술에 취해 있는 남편 깨워 함께 피신하려다가 결국 두 내외는, 불에 타 죽은 것입니다. 김 씨는 가난 때문에,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 아픈 일을 당했습니다.
최근 북한인구 2,500만 가운데 먹을 식량이 없어서 70%가 식사량을 줄이고, 하루 두 끼니만 먹어, 만성 영양 부족상태에 빠졌습니다. 2,500만 가운데 절반 이상이, 옥수수에 풀을 섞어 불린 죽을 주식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WFP 평양사무소장이 얼마 전, 국제 학술회의에서 보고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강냉이 짐승사료만 보내줘도, 거기에다 콩깍지 20%와 풀을 넣으면, 주식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지금 끼니때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 가난(家難)이 무엇입니까?
(1) 경제적(經濟的)으로 소득이 없고 돈이 없어서 쪼들리는 것이 가난입니다.
수입이 없고 돈이 없어서, 살림살이가 딱하고 어렵고 힘들어 하는 것이 가난입니다.
(2) 신체적(身體的)으로 먹지 못해 몸이 허약하고 병든 것이 가난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너무 못 먹어서 평균키보다 18Cm 적고, 병들어도 제 때에 치료를 못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난입니다.
(3) 돈이 없어 이웃과 신용과 정보에 고립되어 있는 것이 가난입니다.
돈이 없으니 이웃이 알아주지 않고, 신용 잃어 돈도 빌릴 수 없어 고립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학사장교를 뽑을 때도 필기시험이 동점인데 가난한 집 학생을 탈락시키더랍니다. 그 이유는 가난한 집 자녀는, 입대해서 사고 칠 확률이 높다고 말입니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게 하는 것이 가난입니다. 그래서 가난이 원수요 죄라고, 가난 때문에 될 일도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4) 정신적(精神的)으로 미신과 우상에 짓눌려 있는 것이 가난입니다.
지구촌에서 3초마다 1명의 어린이가 가난과 질병으로 죽고, 하루에 3만 명, 1주일 이면 21만 명의 어린이가 굻어 죽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지난 10년간 굶어 죽은 사람이 300만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먹고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하루 평균 1만 3천 톤, 8톤 트럭으로 1,600대 분, 1년 치면 약 470만 톤,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1년에 중형차 100만대를 버리는 것과 같아, 20조원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고, 한쪽에서는 너무 잘 먹고 많이 먹어 비만이고 병 치료에 난리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가난한자 곁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2. 이 세상에 왜 가난이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1) 이 세상에 가난이 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죄짓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타락하자,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저주, 평생 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기고,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 이 가난을 확산시키고 영구화 시키는 것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사람이 부패하고 실패하여 타락하고 죄짓게 하고, 분쟁과 전쟁을 일으켜 가난에 허덕이게 합니다. 이 가난을 확산시키고 영구화 시키는 것은, 사탄입니다.
(3) 개인적으로는 게으르고 무능하며 실패하고 타락하여 우상에 빠졌을 때, 일시적으로 가난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게으르고 무능하며 실패하고 타락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일시적으로 가난하게 되었고, 역사적으로도, 우상에 빠졌을 때, 일시적으로 가난했습니다.
(4)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도, 일시적으로 가난 할 때가 있습니다.
예배생활 기도생활 교회봉사 잘하고 충성하는데, 가난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게 고생한 교우들이 더러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와 뜻이 있는 것으니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3. 그렇다면, 가난한 자에 대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세이어야 합니까?
(1)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를, 무시하거나 괄시(恝視)하거나 외면하면 안 됩니다.
알고 보면 가난한 자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요, 가난도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가난한 자를 괄시하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괄시하는 것이요, 가난한 자를 무시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자로 산다고 할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가난 해질 수 있는 것이니, 가난한 자를 행여나 무시하지 말고 품어야 합니다.
약 2:1~6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2)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의 현장을 찾아보고, 그 삶을 이해해야 합니다.
빈민촌, 고아원, 양로원, 정신병동, 복지시설, 가난에 찌든 자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3)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힘껏 도와야 합니다.
부불 3세(富不 三世) 라고, 부자가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1,600년대 초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무려 12대에 걸쳐 300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한 경주 최부자 집 가훈입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양반의 말단 계급인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 흉년 때는 땅을 사들이지 말고, 보리 고개 때는 은수저도 사용 말고 쌀밥도 먹지 말라.
넷째, 과부와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되, 1년 쌀 소비량 3천석 가운데, 천석은 가족 식량으로, 천석은 과부와 나그네 식량으로, 나머지 천석으로 경주에서 울산 포항 영천까지 구제 식량으로 사용하라.
다섯째, 주변 100리, 40㎞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 이제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 입니다.
65세 된 목사님은, 3남매 자녀들이 꼭 생일잔치를 하자고 하기에, 부모와 교인 대접한 것만큼 굶어 죽어가는 북한 사람들 한 끼니 대접해 보자고, 강냉이 2톤, 1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북한에 보냈다고 합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물으실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1960년 4월 19일, 1961년 5월 16일, 1980년 5월 18일, 그 역사의 현장에서 너는 뭘 했느냐? 네 주위에 가난한 사람을 보고 너는 뭘 했느냐?”고 말입니다.
4. 가난한 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1) 가난한 자는 얻어 먹고 도움 받을지라도, 도움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체질화 되면 안 됩니다.
고아원에서 얻어먹고 자라나면, 나이가 50, 60이 넘었는데도 누가 좀 안 도와주나? 라고 도움을 기다리기 쉽습니다. 장학금을 수백만 원 받았으면서도 나는 가난하니까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는 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되겠습니까? 어떤 이는 괜찮은 직장에 취직을 시켜 주었는데도, 생계보조금 끊길까봐 수일 다니다가 그냥 나와 버린 자도 있습니다. 가난과 저주의 맥을 끊기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자립하려고 하는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2) 가난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가난이 무슨 죄악입니까? 그렇다고 가난이 자랑할 것도 아닙니다. 가난을 인정하고, 부자 앞에서 위축당하거나 열등감을 갖지 말고 움츠러들지도 말고 당당해야 합니다. 비교의식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3) 가난한 자는 먼저 예수님 잘 믿고, 믿음의 부자부터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부자만 좋아하는 것 아닙니다. 가난한 자를 영접하시고, 가난한 자의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다고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가난해도 좋아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결국 가난의 맥을 끊고 믿음과 물질에 부자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 없는 게 저주이지 예수님 안에서 가난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통로입니다.
약 2:5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4) 가난한 자가 결국 부자 되는 것이니, 부자에 대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지지리 못살고 가난한 사람이 결국 부자 되는 것입니다. 부자에 대한 꿈을 꾸고 어떤 환경에서도 부자 되겠다는 꿈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실 이가 하나님입니다.(신 8:18) 가난해도 얼마든지 예수님 잘 믿을 수 있고, 얼마든지 봉사 충성 잘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노숙자 50명까지만 매일 식사를 대접하고, 교통비 2천 원을 드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50명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식사를 합니다. 한 번은 허름한 옷을 입은 노숙자 한분이 “나도 교회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빳빳한 새 돈 100만원을 헌금으로 내놓고는 그냥 나가버렸습니다. 노숙자가 담배 피우고 술 마실 돈은 있어도 헌금할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100만원을 광고하자 교인들이 앞 다퉈 헌금해서, 꿈꾸는 교회 새 예배당을 잘 지었습니다.
탈무드에 숨길 수 없는 것 세 가지가, 가난과 기침과 연애라고 하는데, 맞선 보러 나간 총각이 양복 한 벌이 없어, 남의 양복 빌려 입고 맞선자리에 나갔다가, 결국 퇴짜 맞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그가 열심히 예수님 믿고 충성했습니다. 부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석유 왕이 되었고, 당대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24개의 명문대학을 지어 사회에 환원했고, 4,928개의 예배당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미국 뉴욕 주 리치포드(Richford)에서 출생하여, 98세까지 장수한 록펠러(Rockefeller, John Davison. 1839~1937)입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첫댓글 k목사님 가난한 자를 멸시하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모든 교회에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