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교수의 ‘人間과 神’ · 1 - 15 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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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축제날(레모라 랍비), 1914 | |
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15 回 용서 가장 위대한 신의 명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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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가장 위대한 신의 명령
용서, 가장 위대한 신의 명령
헨리 나우웬(1932-1996)이란 가톨릭 사제의 삶은 나를 고양시키는 지성인 중 한 명이다.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 남미 페루 빈민가에서 봉사를 하고, 다시 하버드대학에서 종교학 교수로 재직 중 다시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정신박약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를 떠났다. 그는 자기를 넘어선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용서’ 를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용서는 사랑을 잘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용서인 ‘인간 가족’ 이라는 연약한 공동체에서 행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나우웬이 지적한 것처럼 자기희생적이며 이타적인 삶을 살진 못하지만, 우리가 용기를 내어 일상생활에서 연습해야 하는 가장 큰 덕목이 ‘용서’ 가 아닐까?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 받을 만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방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인 것 같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기원전 6세기에 잃고 1948년 독립할 때까지 거의 2500년 동안 소위 ‘디아스포라’ (Diaspora) 생활을 했다. 이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심지어는 중국에서 유대인들만의 집단촌인 게토(ghetto)를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차별받으며 살아왔다. 자신들의 민족성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처럼 종교의식과 절기를 지켰다. 안식일 준수와 유대절기 준수, 그리고 그들만의 음식법인 코셔(Kosher)는 이들이 생존을 담보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여기 19세기말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던 가난한 유대인 부부 이야기가 있다. 이 부부는 자기 집 마당에 가건물로 집을 지어 7일 동안 머무는 ‘장막절’ 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가건물을 ‘수카’(Sukkah)라고 부른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하며 새로운 땅에 들어갈 것을 기원한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그들은 10월 말 ‘장막절’이 되면 수카 안에서 음식을 먹고 일부 신실한 유대인들은 그 안에서 자기도 한다. 과거 이스라엘인들이 사막에서 40년 동안 지낸 후 가나안으로 들어가 나라를 세운 것처럼, 이들도 언젠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나라를 독립할 것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례이다.
유대인들을 다음 네 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한다. ‘룰라브’(대추야자나무) ‘하닷사’(도금양나무) ‘아라바’(버드나무) 그리고 ‘에트록’(시트론)을 들고 기도한다. 이 네 가지 식물은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대인들의 4가지 유형이기도 하다.
우선 ‘룰라브’(대추야자나무)는 맛은 있으나 향기가 없는 식물이다. ‘룰라브’는 경전연구와 오랜 묵상을 통해 박식한 사람이나 선행으로 옮기지 못한 사람을 상징한다. 아무리 공부하면 뭐하나? 공자(孔子)도 <논어> 에서 “시경 300편을 외우고도 정치를 맡아서 민심을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전문적으로 잘 대처하지 못하면, 비록 많이 외우고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룰라브’는 선행이 없는 믿음은 소용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두 번째, ‘하닷사’(도금양나무)는 향기는 있으나 맛이 없는 식물이다. 이 식물은 천성적으로 착하긴 하나 토라를 공부하지 못해 그 선행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경전연구와 마음의 훈련을 통해 항상 영감을 받고 선행이 습관이 되지 못한 사람의 유형이다. 세 번째, ‘아라바’(버드나무)는 맛도 없고 향기가 없는 식물로 토라를 연구하지도 않고, 천성적으로 선행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에트록’ 은 시트론(유자)이다. 에트록의 특징은 향기도 좋고 맛도 있어 토라를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가장 모범적인 유대인의 상징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Diaspora)은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토라연구과 그 실천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성을 발견하고 언젠가 나라를 재건할 원대한 꿈을 키웠다. ‘에트록’ 의 본질에 관한 동유럽 유대인들을 통해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8세기 말 동유럽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는 유대인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가난한 살림이지만 다가오는 장막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는 10월 말. 이 부부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르샤바 집 마당에 수카를 짓고 있었다. 나무판자로 대강 기둥을 만들고 지붕은 큰 나뭇잎으로 덮어 지내는 자기정화 의식이다. 남편은 골칫거리가 생겼다. 장막절을 위한 4가지 식물이 필요한데, 에트록은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희귀 과실이기 때문이다. 이 식물들을 준비하고 의례에 사용하는 행위는 신의 명령이었다. 이 명령을 지킴으로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에서 꿈에 그리는 조국으로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부인에게 에트록을 준비하지 않으면 수카를 짓나 마나하다고 하소연 한다. 그러자 부인은 “신이 준비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장막절 식사 준비를 위해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편은 부인의 말에 힘을 얻고 열심히 수카를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카를 짓는 동안 아주 오래된 친구가 찾아와 안부를 묻고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에트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 친구는 자신도 사용해야 하는 소중한 물건이지만 이 유대인에게 에트록을 팔기로 결정한다. 친구 역시 장막절기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10루불을 주면 팔겠다고 말한다. 10루불은 당시 거의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거금이었지만, 이 신실한 유대인은 신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에트록을 구입한다. 너무 신이 난 이 유대인은 에트록을 부엌에 놓고 부인이 시장에서 돌아오면 다른 식물들과 함께 수카를 장식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남편이 밖에서 수카를 마무리하고 있는 동안 시장에서 돌아온 부인은 부엌에 놓인 에트록을 비슷하게 생긴 레몬이라고 착각하고, 저녁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만다. 수카를 완성하고 돌아온 남편은 저녁 식사를 준비한 부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예루살렘에서 찾아온 친구가 에트록을 가져와 자신이 거금을 주고 그것을 구입했다고 말한다. 이 유대인 부부는 “신께서 모든 일을 준비하셨다!” 라고 말하면서 눈물이 글썽해 신에게 기도 했다. 부인은 그 귀한 에트록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남편은 부엌 식탁에 두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부인은 그 유자를 시장에서 사온 레몬으로 착각해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울면서 말했다. 남편은 잠시 얼굴색이 변하더니 깊은 한숨을 쉰다. 그는 잠시 후 말없이 아내를 와락 껴안는다. 부인은 당황하며 “왜 당신은 나를 책망하고 혼내지 않고 껴안습니까? 제가 신의 명령을 어기게 만들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더욱더 사랑스럽고 다정한 눈길로 아내를 보며 말한다. “에트록은 내일까지 준비하면 되지 않소. 지금 이 순간 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명령은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 이요.” 에트록의 진정한 의미는 ‘용서’ 다. 종교의 위대한 교리나 가르침보다 내 이웃과 원수까지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가장 위대한 명령이다.
… 매일경제 Luxmen 제31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3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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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자
여기 실의에 찬 두 청년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12km정도 떨어진 엠마오로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3년 전 예루살렘에 나타난 한 청년을 만난 후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예수였다. 예수는 ‘아낌없이 주는 희생적인 사랑의 실천’ 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고 심지어는 신적으로 만든다고 설교하였다.
예수와의 만남은 이들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로 3년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았다. 이 청년은 신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선포하고, 그 이웃은 심지어는 원수까지 포함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에게 예수는 깨달음을 주는 랍비일 뿐만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시켜 독립을 가져다 줄 정치적인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지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예수가 십자가형이라는 로마형벌의 가장 극악무도한 형태로 죽자, 자신들이 바라던 꿈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힘없이 자신의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성공해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했다.
복음서에 의하면 이들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사흘 후에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때, 한 낯선 자와 동행하게 된다. 이 낯선 자는 수심이 가득한 두 제자에게 말을 건다. 두 제자가 절망에 늪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는데, 이 낯선 자는 주제넘게 말을 건넨다. “당신 얼굴빛이 안 좋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들은 처음 보는 사람과 말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이들이 추종한 예수라는 청년과 그의 십자가 처형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말한다.
이들은 특히 예수가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린 메시아였다고 그 낯선 자에게 말한다. 사실 예수는 그 당시 기성종교인 유대교에서는 이단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였다는 그들의 시인은 그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제자는 이 낯선 자에게 자신들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 낯선 자는 두 제자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 이들의 슬픔을 공감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토라(유대인의 경전)>의 핵심과 메시아와의 상관관계를 두 제자에게 설명한다. 그는 <토라>에 등장하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을 설명하고 메시아는 이 세상에서 반드시 고통을 당할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 낯선 자의 <토라> 해석은 획기적이다. 유대인의 <토라>에는 메시아가 고통을 당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토라>를 이 두 제자의 상황에 맞추어 오늘 여기의 삶이 의미가 있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런 해석을 ‘미드라쉬적 해석’ 이라 한다.
두 제자는 거리의 철학자 같은 이 낯선 자의 해석을 무식의 소치라고 반박할 수 있었으나, 그의 지혜와 해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두 제자의 위대한 점은 낯선 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과는 ‘다른’ 해석과 견해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세계관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두 제자가 고향 엠마오에 도착했을 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두 제자는 정처도 없이 어두운 길을 갈 낯선 자에게 말을 건다.
“날이 저물었으니 오늘 밤은 우리 집에 가서 식사도 하고 주무시고 내일 가시면 어떨지요?” 그 낯선 자는 자신은 급히 가야만 한다면서 한사코 거절하였지만 그들은 그 낯선 자를 만류하여 집으로 데려간다. 이들이 집에 도착하여 정성스럽게 낯선 자를 대접하였더니, 그제 서야 그들의 눈이 열렸다.
바로 이 낯선 자가 예수가 아닌가! 그러나 그 순간에 예수는 그들의 눈에서 사라진다. 이 공상과학과 같은 이야기는 무슨 의미인가? 두 제자는 3년 동안 따라 다녔던 예수를 인식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보려고 하는 메시아의 틀 안에서 그를 보려고만 했다. 그것은 한순간의 깨달음이었다. 낯선 자와 공감하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호의를 베풀었을 때, 그 낯선 자가 바로 ‘예수’ 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 앞에서 예수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사라지지 않았다면 두 제자는 자신들이 만난 예수만 유일한 메시아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가 그들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기록함으로 예수는 바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매일 매일 만나는 ‘낯선 자’ 라고 증언한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낯선 자를 회피하거나 차별하고 우리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신을 만날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의 ‘자아’ 라는 무식에서 벗어나 ‘무아(無我)’ 로 신(神)을 대면하기 위해 ‘다름’ 을 수용하여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어떤 존재를 우리는 신(神)이라 부른다. 신의 특징은 바로 ‘낯설음’ 과 ‘다름’ 이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속한 소위 ‘아브라함 종교 전통’ 에서 ‘거룩’ 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코데쉬’ 와 아랍어 ‘쿠드쉬’ 는 모두 ‘구별, 다름’ 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파편적이고 편견적인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자신과는 완벽하게 다른 존재와의 만남이 종교이다.
루돌프 오토라는 독일 신학자이자 종교학자는 신(神)을 독일어로 ‘다스 간쯔 안데레(Das ganz Andere)’, 번역하자면 ‘완전히 다른 존재, 절대 타자(他者)’ 라고 정의하였다. 우리는 우리와는 다른 이데올로기, 종교, 세계관을 가진 자들로부터 경청하고, 그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개벽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신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 낯설음과 다름을 수용하고 그 다름을 단순히 참아주는 똘레상스가 아니라 다름을 소중히 여기고 대접할 때, 신(神)은 우리에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 매일경제 Luxmen 제30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3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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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13 回 “감 쩨 야아보르”(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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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쩨 야아보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감 쩨 야아보르’ 는 고전 히브리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의미다. 순간을 사는 인간들이 자신이 소유한 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욕심을 내고, 그 욕심으로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죽는다. 그런 순간을 사는 인간에게 깨우침을 주는 강력한 문장이 바로 ‘감 쩨 야아보르’ 이다. 이 문장은 아주 오래된 유대인 이야기를 통해 전해졌다. 고대 이스라엘의 최고 부와 권력을 지녔던 솔로몬왕은 베나이아 벤 에호야다를 자신의 최측근으로 임행했다.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베나이아에게 의지했고 그 결과 베나이아는 권력의 맛으로 항상 우쭐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솔로몬이 자신을 신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니면 이스라엘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은 “베나이아가 맛이 갔군!” 하며 수군거렸다.
이 사실을 안 솔로몬은 베나이아를 곤경에 빠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대교 최대명절인 유월절 잔치자리에 대신들과 함께 앉은 솔로몬은 베나이아에게 말했다. “베나이아. 너는 나의 가장 충직한 종이다. 부탁이 하나있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앉은 모든 대신들이 귀를 기울였다. 솔로몬은 세상의 부귀영화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자인데,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하니 다들 놀란 것이다. 베나이아는 재빠르게 말했다. “제게 말씀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에 있다면 꼭 찾아와 폐하께 드리겠습니다.”
솔로몬이 말하기를 “세상에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마술 반지가 있다고 들었다. 그 반지는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기쁜 사람을 슬프게 하기도 하는 반지라고 알고 있다.” 베나이아는 “만일 그런 반지가 있다면 당장 찾아 오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솔로몬은 “그런 반지가 있다더라. 앞으로 가을 추수할 때 지키는 장막절 전까지 구해 오너라. 지금부터 6개월 남았으니 찾아오도록 하여라.” 베나이아는 예루살렘의 시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그 반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예루살렘 시장에 있는 모든 금세공, 은세공 가구에 들렀다. 그는 세공장이들과 보석상들에게 “내가 솔로몬왕의 부탁을 받고 왔다. 마술 반지가 필요한데, 그 반지는 행복한 사람은 슬프게 하고 슬픈 사람은 행복하게 하는 반지다” 라고 말했다. 그 어느 세공장이나 보석상도 그런 반지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베나이아도 실의에 빠졌다. 그러나 솔로몬왕이 그런 반지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것을 찾는 것은 베나이아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스라엘의 다른 도시로 내려갔다. 이스라엘의 모든 상인들에게 물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반지를 본적이 있다는 사람은 없었다.
베나이아는 이제 항구에 들어오는 배에 올라 외국에서 오는 선원들에게 물었다. 그가 인도, 중국, 이집트에서 온 대상들에게 물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반지는 들어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마술 반지를 찾으려 많은 날을 보내고 이제 6개월이 지난 장막절이 다가왔다. 그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자괴감이 들었다.
장막절이 시작하는 날 아침, 그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아침 일찍 상인들이 물건을 진열하기 전에 예루살렘 시장으로 갔다. 상인들이 가게 문을 열고 있을 때 마술 반지에 대해 다시 묻기 시작한다. 아무도 그런 반지를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때 베나이아는 카펫 위에 반지를 진열하고 있는 한 소년과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값은 상관없어요. 솔로몬왕이 슬픈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행복한 사람을 슬프게도 하는 반지를 찾고 있는데. 그런 반지를 본적 있습니까?” 라고 묻자 이 가난한 할아버지가 카펫 안에서 아주 평범한 금반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반지 안에 새기기 시작했다. 그 노인은 “이 반지를 솔로몬왕에게 가져가시오” 하고 말했다. 놀란 베나이아는 그 반지를 받아들고, 노인이 새겨 넣은 문구를 읽었다. 그의 얼굴은 맨 처음 당혹감에 휩싸이더니, 조금 있다 얼굴이 밝아져 환하게 웃었다. 그날 밤 예루살렘에서는 장막절 축제가 시작됐다.
솔로몬왕과 약속한 날에 베나이아는 왕이 원한 반지를 가지고 궁궐로 들어갔다. 솔로몬왕은 대신들과 함께 장막절 축제를 시작할 셈이었다. 솔로몬은 대신들 앞에서 베나이아를 공개적으로 비하할 작정으로 “나의 충실한 신하, 베나이아여! 그대는 내가 말한 그 반지, 그 마술 반지를 가지고 왔는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대신들이 크게 웃었다. 그러자 베나이아는 자랑스럽게 조그만 금반지를 하나 높이 들고 외쳤다. “폐하, 이것이 마술 반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 솔로몬왕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베나이아는 그 반지를 왕에게 바쳤다. 솔로몬은 반지 안에 새겨진 명문을 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거기에 히브리어 알파벳 g(gam), z(zeh), 그리고 y(yod)가 새겨져 있었다. 이 세 글자는 ‘gam zeh ya’avor’ 란 히브리 문장의 첫 글자들인데, 그 의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의미이다.
… 매일경제 Luxmen 제29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3년 2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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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12 回 ‘세상의 세 기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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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세 기둥’
기원후 2세기 유대교 랍비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경전인 ‘토라’(Torah)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전(經典)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6세기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됐을 때 일련의 책들을 경전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15년 예루살렘 성전이 페르시아 제국의 도움으로 재건됐지만,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은 천상의 예루살렘을 ‘토라’(Torah) 라는 이름으로 수집하기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경전을 읽기 시작하고, 기원후 60년경 일련의 책들은 ‘타낙’ 이란 이름으로 유대교 회당의 예배에 사용됐다. ‘타낙(Tanak)’ 이란 ‘토라(모세오경)’ ‘느비임(예언서)’ 그리고 ‘케투빔(성문서)’ 의 첫 글자를 사용해 만든 이름이다. 타낙은 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에 해당한다.
이들은 ‘타낙’ 을 통해 유대국가를 회복하려 시도했으나 기원후 70년 로마제국은 소요와 반란이 잦은 유대를 침공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파괴한다. 유대인들은 ‘타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담긴 경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랍비들은 135년에서 160년 사이 ‘타낙’ 과는 다른 새로운 경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미쉬나’ 이다. 히브리어로 ‘미쉬나’는 ‘반복학습으로 배우기’ 라는 의미다. 그래서 미쉬나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탄나임’ 즉 ‘반복하는 자들’ 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비록 문헌형태이지만 이 새로운 경전은 구전작품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암기하며 공부했다. 200년경 랍비 유다가 마침내 미쉬나를 완성시켰는데, 이것이 랍비들에게는 ‘신약’ 이 됐다. 미쉬나는 역사도 아니고 이야기도 아니며 신학도 아니었다. 유대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내용이었다. 미쉬나는 여섯 ‘세다림(Sedarim, 순서)’ 에 의해 정리된 방대한 율법적 결정사항들이었는데, 이 여섯 세다림은 다음과 같다. 제라임(Zeraim, 씨앗) 모에드(Moed, 축제) 나쉼(Nashim, 여성) 네지킨(nezikin, 손해) 코데쉼(Qodeshim, 성스러운 것들) 토호롯(Tohoroth, 정결규칙). 이들은 다시 63개의 소주제로 나뉜다.
미쉬나는 ‘타낙’ 으로부터 자랑스럽게 거리를 두며, 경전을 인용하지도 않았고 그 가르침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미쉬나는 유대인이 무엇을 믿었느냐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일생생활에서 어떻게 ‘차별된 거룩한 행위’를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사실 시대의 필요에 맞춰 재해석될 수 없는 경전은 죽은 것이다. 미쉬나는 단순한 지적 추구가 아니며, 그 연구가 목적이 아니다. 미쉬나는 실제 행동을 유도하도록 영감을 줘야 한다. 경전을 읽는 자는 토라를 실제 상황에 적용시키고, 이것이 공동체의 모든 이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할 의무를 지닌다. 목표는 불명확한 구절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화급한 문제에 응답하는 것이다. 실제 적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경전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랍비들은 경전을 ‘미끄라(Miqra)’, 즉 ‘부름’ 이라고 불렀다. 경전은 유대인들을 행동으로 인도하는 요구이다. 미쉬나는 실생활에 적용할 법률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미쉬나의 ‘네지킨’ 편에 등장하는 ‘선조들의 어록’ 이란 부분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잠언집이다. ‘선조들의 어록’ 의 핵심은 1장 2절에 등장한다.
“의로운 시몬은 ‘위대한 회중’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세상은 다음 세 가지에 달려 있다. 토라, 아보다 그리고 헤세드 베풀기.”
기원전 3세기에 생존했던 ‘의로운 시몬’ 은 유대인 전통에서 가장 존경받은 지도자 120명으로 구성된 ‘위대한 회중’ 가운데 한 명이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입법부에 해당하는 크네셋의 정수도 이 전통에 따라 120명이다. 시몬은 나라를 잃고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고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을 세 가지로 규정했다.
첫째는 ‘토라’ 다. ‘토라’(Torah)는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의 경전을 총칭하는 용어다. 토라의 축자적인 의미는 ‘명중’ 이란 의미이다. 궁수가 자신이 당긴 활이 명중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정(靜)과 동(動)의 균형’ 에 따라 유연하게 몸의 흩어짐이 없이 발사해야 한다. 토라는 단순히 훌륭한 내용이 기록된 경전이 아니라, 토라를 읽는 사람의 정결한 마음가짐이며 삶이다. 평상시 삶이 흩어짐이 없고 반듯할 때, 화살이 과녁으로 달려갈 수 있다. 더욱이 토라는 ‘과녁’ 이 아니라, 궁수가 활을 방사했을 때부터 결정되는 활이 날아가는 ‘길’ 이다. 토라의 내용이 일상생활의 삶을 인도하는 ‘길’이 되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토라는 완성된다. 히브리어로 ‘하타’ 라는 단어는 ‘활이 과녁에 빗겨나가다’ 와 ‘죄를 짓다’ 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유대인들에게 ‘죄’ 란 십계명을 어기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더 근본적으로 ‘인간이 매일 매일 걸어야 할 길을 알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것’ 이다. 시편 1편은 그 길을 찾아 묵상하고 걷는 자가 행복하다고 전한다.
둘째는 ‘아보다’ 이다. 히브리어 아보다는 현대어로 해석하기 난해한 단어이다. 아보다는 ‘예배/신을 섬기기’ 와 ‘노동하기’ 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국왕 제임스 1세가 영국 성공회의 예배에 사용할 수 있는 표준 성경을 번역하라고 명령했다. 학자들은 ‘아보다’라는 단어를 Service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Service는 영어 용례에서 ‘예배’ 와 ‘노동’ 모두를 뜻한다. 5세기 이탈리아의 베네딕투스는 베네딕토수도회의를 창설했고 그 수도회의 모토를 ‘노동은 기도다(Labore est orare)’로 정했다. 신을 섬기는 것은 일상생활의 직업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드러나야 하며, 자신이 하는 직업은 신에게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세 번째는 ‘헤세드를 베풀기’ 이다. 탈무드에서 랍비 심라이는 “토라는 헤세드로 시작해 헤세드로 마친다” 라고 말했다. 헤세드는 원래 ‘충성’ 이란 의미였으나 기원후 1세기부터 의미를 확장해 ‘자기희생적인 행위’ 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헤세드는 자기에게 부과된 의무를 넘어 자신에겐 손해가 되더라고 상대방이나 모두를 위한 ‘행위’이다. 신약성서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종교지도자와 학자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산속에서 다친 사람을 보고도 모른 채 지나갔지만, 한 사마리아인은 ‘필요 이상’으로 그를 데리고 여관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여관 주인에게 돈까지 주면서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라고 여기는 ‘공감’ 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비’ 의 용기도 가진 자이다. 헤세드는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무아’ 의 실천이다. 나는 2013년이 우리 모두가 자신이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 을 발견해 ‘매일 매일 정진’ 하고 주위를 돌아보고 이웃을 위해 ‘자비’ 를 베푸는 ‘니르바나’ 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매일경제 Luxmen 제28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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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11 回 ‘경전(經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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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經典)’
경전(經典)은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와 각각 종교전통 안에서 기록된 인류의 지혜 총체이다. 고대 힌두교인들은 경전들을 말린 잎사귀에 쓰고 그것을 하나로 묶는 ‘실 (糸)’은 ‘수트라(Sutra)’ 라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묶어 보존한 것이다. 그래서 ‘수트라’ 라는 산스크리트어에는 ‘묶다’ 라는 의미를 지난 ‘seu’ 어근이 들어가 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고대 중국인들은 ‘수트라’ 를 경전(經典)이라고 번역하였다. 경전(經典)이란 한자에서도 ‘실’을 의미하는 ‘糸’ 가 들어가 있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중요하기 때문에 실로 꿰매 제사상에 올려놓을 만큼 소중한 책이라 하여 경전(經典)이라 불렀다. 이 전통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전은 ‘서로 엮어진’ 무한한 개체들로 이루어진 조직인 직물(Textus)이다. ‘문헌(Text)’ 이란 개념이 바로 이 ‘직물’ 에서 유래했다. 경전을 읽는 사람은 거대한 수수께끼 같은 조각들을 맞추듯이 모든 단서들을 서로 연결하여 그 심오한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
수많은 베스트 셀러들 중에 고전(古典)이라 불리는 책들은 극히 드물다. ‘고전’ 의 반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경전은 그 고전들 중에 고전으로 수많은 고전들 중 경전이라 불리는 책은 몇 권밖에 없다. 경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마술적인 힘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숨겨진 의미가 새록새록 드러나기 때문이다. 경전은 그것을 아끼고 삶의 안내자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글자 뒤에 숨겨진 행간과 공간이 서서히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이 경전들 중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성서(聖書)다. 유대인의 토라(Torah)이자 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결은 바로 이 경전이 가진 ‘창조적인 유연성’ 이다. 신과 창조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신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반응이 담겨있는 ‘성서’ 는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인들이 바빌론으로 포로생활을 하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제들과 서기관들은 유배생활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聖殿)을 대치할 성전(聖典)을 모으기 시작하여 ‘경전’ 으로 삼았고 이 경전에 ‘울타리’ 를 쳐서 다른 책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책으로 여겼다. 토라 학자들은 성서내용을 숙지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주석을 통해 토라의 의미를 밝히고 그들 자신들이 토라에 등장하는 예언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스도교인들이 토라를 이용하여 경전에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할 때 유대인들의 주석전통을 이어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교 토라를 그리스도교 경험과 초기 신앙공동체 경험을 통해 새롭게 해석하였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이 허물어진 기원후 70년 그리스도교인들을 자극하여 <신약성서>라는 새로운 책들을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모든 구절들을 통해 예수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기원후 2세기부터 시작한 랍비 유대교는 미드라쉬라는 주석을 통해 토라를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다. 미드라쉬 해석의 원칙은 ‘자비의 행위’ 이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토라’는 글이 아니라 행동이며, 신앙생활을 통해 완성된다고 생각하였다. 경전은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열려진 책’ 이다. 랍비들은 신의 말씀은 무한하며 경전을 연구할 때 신의 영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믿었다. 랍비들은 특히 토라의 모든 구절들이 신의 ‘자비’를 내포하고 있다고 여겼고, 심지어는 토라 원문의 내용을 수정하면서까지 이 ‘자비’를 드러내려 노력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성서를 연구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이 성서 해석의 네 가지 원칙을 ‘콰드리가’ 라고 불렀다. 성서의 표면적인 ‘축자적인 의미’ 에 감추어진 비유적인, 도덕적인, 그리고 종말론적인 의미를 축출하였다. 유대 랍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주석가들에게 성서의 원래의 의미보다는 자신들이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해석한 창의적이며 신학적인 해석이 더 중요했다. 중세 유럽학자들은 성서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은 성서의 신화적이거나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위한 상식적인 설명을 찾으려 했고, 이 과정을 통해 신비적인 요소를 제거하였다. 이 시도에 대한 반격으로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에서 신비주의가 강하게 부각되었다.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성서를 원전으로 읽으려고 시도하였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성서를 라틴어로 읽었지만, 유럽으로 유입된 그리스어로 기록된 성서를 읽으면서 중세 교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성서 해석의 지평을 열었다. 칼뱅이나 츠빙글리는 성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신이 역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으며 성서는 그 증언이라고 생각하였다.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과학의 발견은 종교와 과학과의 관계와 성서를 읽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미국을 건립한 청교도들은 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이라는 민족주의적 해석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세기에 등장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고고학과 고전문헌학의 발달로 성서를 상식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진화론과 성서 비평학의 발달로 기존 성서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성서에 대한 견해를 방어하기 시작하였고 자유주의 신앙인들과 무신론자들과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이 보수주의자들의 일부가 성서를 축자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축자영감설’ 만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근본주의자들이라 한다.
정치와 지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증거 문헌들을 인용하는 현대인들의 습관은 성서 해석 전통과 맞지 않는다. 성서는 교리와 신념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성서의 주된 기능은 아니었다.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강조하는 근본주의자들의 해석은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지만 성서전통에서 벗어난 일이다. 성서 전통은 상징적이거나 혁신적인 해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서를 축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19세기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다. 특히 근본주의자들의 축자적인 해석은 유대-그리스도교의 창조적이며 자유로운 해석에 대한 모독이다. 성서는 문헌이 아니라 자비의 행동을 촉구하는 안내자이며 자비활동 그 자체이다.
성서를 통해 우리가 오늘날 해야 할 자비의 행동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서를 잘못 읽은 것이다. 성서를 깊이 읽는 행위는 이기심이 판치는 세계에서 이타적이며 초월적 세계로 가기 위한 영적인 운동인 것이다.
… 매일경제 Luxmen 제27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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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
모든 종교들을 관통하는 강력하면서도 흠모할 만한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황금률’이다. 이들은 모두 ‘당신이 당하기 싫은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말라’ 혹은 긍정적인 방식으로는 ‘당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라’이다.
동서양의 주요 종교들은 이 핵심을 나름대로 시대에 알맞게 터득하고 발전시켜왔다. 만일 당신의 선행을 당신이 속한 집단에만 국한시킨다면 그 집단은 서로 간의 이익이 상충해 분쟁만 남게 될 것이다. 우리의 선행이 우리의 이익집단으로 나가게 하는 노력, 우리 자신의 ‘에고’에서 벗어나 ‘무아(無我)’의 상태로 진입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共感)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마음가짐은 매일매일 연습을 통해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들 간의 갈등의 원인은 보통 인간의 욕심, 질투, 야망이지만 이것들을 위장하기 위해 종종 종교적인 어법을 사용한다.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극악무도한 테러를 행하면서도 자신들의 종교를 도용하며 미움을 조장한다. 유대 근본주의자들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이 유프라테스 강까지 주겠다’는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에서 지난 3000년 동안 거주했던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려고 하고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하던 자신들의 수상 이츠하크 라빈마저 암살한다.
스스로를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자로 지칭한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노르웨이에서 100명가량을 무참히 사살하면서 유럽에서 무슬림을 몰아내겠다는 ‘유럽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코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국제적인 테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이 조직한 알카에다의 막강한 자금으로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와 9·11 미국대폭발테러를 감행한다. 이들은 모두 신의 이름을 빌려 살인, 폭력, 미움을 조장한다.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들과 주교들은 자신들 관할 아래 있는 성직자들이 저지른 성 학대 스캔들을 못 본 채함으로써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의 고통을 무시해왔다. 몇몇 종교 지도자들은 마치 세속적 정치가들처럼 자신들의 종파를 찬양하고 상대 종교에 대해 험담과 비하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이 근본주의 종교집단의 공개적인 신앙고백에서 ‘자비’를 찾아 볼 수도 없으며, 대신 성직자의 성적 취향, 여성 사제/목사 안수 혹은 난해한 교리적 규정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 종교에 속한 신앙인들을 종교공동체로부터 발을 돌리게 만들다.
이들은 황금률보다는 이 부차적인 문제에 대한 구차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기준이라고 착각한다. 심지어 한국의 몇몇 대형 개신교회들은 자신들의 세습이 성서에 근거한 것이라며 북한이나 재벌처럼 세습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버티고 있다.
오늘날처럼 종교의 핵심인 황금률이 이토록 간절히 요구되는 시대는 없었다. 세상은 점점 위태롭게 양극화되어 있고 사람들은 남녀노소 모두 몇몇 거대 이익집단의 전자기계와 게임이 정해주는 가상세계의 늪에 서서히 빠져들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권력과 돈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소수에게 편중되어 있고 그 결과 분노, 불안, 소외, 굴욕이 점점 커져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외자들의 정신분열적인 무차별적 폭력과 미움이 분출되어 모두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끝낼 수도 이길 수도 없어 보이는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을 하고 있다.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분쟁이다. 그러나 이들이 각각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근본주의로 무장해 ‘종교적인 문제’로 변질되어 신성시되면 이들의 왜곡된 신념은 고착화되어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은 사라지게 된다. 신문이나 미디어를 통해 사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도를 하기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주장들은 한 순간에 고착화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한 순간에 지구 저편 아프리카의 고통과 빈곤을 공감할 수 있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바로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며 한 나라의 주식이 폭락할 때 전 세계의 주식 시장에서 도미노 효과가 일어난다. 북경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늘 일어나는 일이 이제 내일 서울이나 뉴욕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환경 재앙의 무서운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소수의 권력들이 과거에는 국가단위에 부여된 절대 권력을 점점 더 갖게 되어 전능한 존재가 됐다. 우리 시대만큼 황금률이 필요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종교와 도덕적 전통은 이 난제를 풀어야 하는 어려운 시험에 직면해 있다.
기원후 70년 유대인들은 다시 한 번 국가적인 재난에 직면했다. 기원전 586년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 2세는 예루살렘을 부수고, 유대인들을 포로도 잡아간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소위 디아스포라(Diaspora) 를 시작한다. 성전이 기원전 515년에 재건됐다. 그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의 유대 점령에 대항한 유대인 봉기는 기원후 70년 로마 군대의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로 이어졌다. 유대인들은 신이 거주한다고 믿었던 예루살렘이 두 번째 파괴되자 망연자실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유대인들에게 창의적인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유대교 랍비들은 자신들이 간직해온 경전연구를 통해 다시는 파괴할 수 없는 ‘마음의 예루살렘’을 짓기 시작했다. 기원후 200년경 등장한 유대교 경전 <미쉬나>, 그리고 5-6세기 등장한 <탈무드>가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경전들을 공부하는 행위가 천상의 예루살렘을 위한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것이라 생각했다.
예수와 동시대인인 위대한 랍비 힐렐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힐렐에게 한 이교도가 다가와 “당신이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 토라 전체를 암송할 수 있다면, 나는 유대교로 개종할 것이요” 라고 말했다. 힐렐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 스스로에게 혐오스러운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마시오. 이것이 토라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그저 각주일 뿐이니, 가서 이것을 공부하시오” 라고. 그는 여기에서 신의 유일성, 천지창조, 출애굽 혹은 613 계명과 같은 교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힐렐에게 그저 황금률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 다른 유일신 전통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헌신의 행위와 믿음 체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들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기심 없는 배려이다. 그리고 배려를 장려하지 않는 종교는 가짜라는 주장이다. 남을 배려하는 행위가 바로 종교다.
… 매일경제 Luxmen 제26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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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시리스와 이시스 (Osiris and Is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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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a’
‘피에타’(Pieta)는 이탈리어어로 ‘동정 · 연민 · 슬픔’이란 의미이다. 어머니가 아픈 자식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아이가 아프면 어머니도 아프고 아이가 기쁘면 어머니도 기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처음 만나는 존재인 어머니는 바로 ‘피에타’ 의 화신이다. ‘피에타’는 인간이 접하는 최고의 감정이며 이 감정을 통해 어린아이는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집트 신화 <오시리스와 이시스 (Osiris and Isis)>는 우리에게 알려진 ‘피에타’ 의 원형이다. 이집트 이시스 여신(이집트어로는 아세트)은 처음에는 중요한 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집트 왕좌를 보호하는 여신으로 ‘왕권’의 화신이다. 이시스는 항상 머리 위에 왕좌를 이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집트가 기원전 27세기 고왕국시대에 진입하면서 이집트 종교가 혁신적으로 변한다. ‘영생’이 이전에는 파라오만의 특권이었다가 정교한 의례를 행하는 자에 대한 신으로부터의 선물이 됐다. 이시스 여신은 바로 이 이집트 종교의 혁신적인 변화에 가장 중요한 신으로 자리 잡는다.
로마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화에 의하면 이집트의 첫 번째 신이자 왕인 오시리스가 인간에게 법률과 농업을 소개했다.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오시리스를 시기하는 그의 동생인 혼돈의 신 세트는 잔치를 열어 신들을 초대했다. 세트는 모든 신들이 소유하기를 가장 흠모하는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만든 관을 하나 준비했다. 이 관은 세트가 자신의 형 오시리스 몰래 그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해 만든 것이었다. 세트는 이 백향나무 관과 정확히 몸의 크기가 일치하는 신에게 선물하겠다고 말한다. 여러 신들이 그 목관에 들어가 보았지만 크기가 맞지 않았다. 마침내 오시리스가 들어가니 꼭 맞았다. 그 순간 세트의 부하들이 관 뚜껑을 닫고 못질을 해 나일 강에 띄워 보냈다.
오시리스를 실은 관이 흘러 지중해로 진입해 레바논의 비블로스 항구에 떠밀려 도착했다. 오시리스의 시신이 담긴 관 주위에 커다란 백향목이 자랐다. 비블로스의 왕은 그 나무를 잘라 자신의 궁궐을 만드는 기둥으로 삼았다. 이시스는 마술의 신 토트의 도움을 받아 오시리스의 시신이 있는 관을 백향나무 안에서 꺼냈다. 시기에 불타는 세트는 다시 오시리스의 시신을 훔쳐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 그 후 이시스는 다시 기적적으로 오시리스의 시신을 찾아 부활시켰다. 이시스는 마술적으로 죽은 오시리스의 시신을 통해 임신한다. 임신한 이시스는 세트를 피해 이집트 삼각주의 갈대밭에서 태양신인 호루스를 잉태해 키운다. 마술의 여신 이시스는 오시리스를 부활시키고 호루스를 처녀 잉태한 이집트 최고의 신으로 등극한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가 등장하면서 이시스 숭배가 이집트 전역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문화와 그리스 헬레니즘을 하나로 엮을 종교제의를 찾았다. 프톨레미 소테르왕은 이시스 신앙을 그리스-로마사회에 접목시킨다. 오시리스는 ‘세라피스’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어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와 하데스로, 이시스는 그리스의 데메테르와 아프로디테로 동일시됐다. 이시스, 오시리스, 그리고 호루스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 명의 거룩한 세 신들’ ㆍ Holy Trinity로 신앙의 대상이 됐다.
이 세 명의 신들 중 가장 중요한 신은 바로 이시스이다. 이시스는 재생의 신이자 가난하고 병든 자의 신으로 자리 잡는다. 이시스가 처녀 잉태한 호루스를 젖 먹이는 동상은 이시스 신앙이 로마제국 안에 퍼지면서 가장 익숙한 종교 아이콘이 됐다. 특히 기원후 4세기 이후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오시리스-이시스-호루스의 관계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형성에, 이시스의 호루스 처녀 잉태는 예수의 탄생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피에타’는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에 대한 세 가지 예술적인 표현들 중 하나였다. 다른 두 가지 표현은 ‘마테르 돌로로사 (슬픔의 어머니)’ 와 ‘스타바트 마테르 (어머니가 여기 서있다)’ 이다. ‘피에타’는 독일에서 1300년경부터 ‘베스페르빌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베스페르빌트’란 저녁 예배시간에 사용되는 그림이나 조각을 의미한다. 이 예술품을 보면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리아는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의 찢겨진 몸을 자신의 무릎 위에 놓고 애도한다. 이전의 유사한 이집트 이시스-호루스 동상이나 초기 그리스도교 마리아-아기예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들이 있다. 이전의 조각들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지만 ‘피에타’의 예수는 죽은 모습으로 절망과 슬픔을 묘사한다.
‘피에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승화시킨 최고의 조각가는 미켈란젤로이다. 이탈리아 카프레세에서 1475년 행정관의 아들로 태어나 12세에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으나 1년 후 회화를 그만두고 조각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는 예술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였던 메디치가의 로렌조 집안에서 기거하면서 르네상스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가 23세가 되던 해 로마에 파견된 프랑스 추기경이었던 장 빌에르 드 라그롤라는 그의 무덤에 배치할 조각품을 미켈란젤로에게 주문한다. 그는 거의 2년 동안 커다란 대리석판을 자르고, 갈고, 광을 내 이전 북유럽 스타일과 다른 ‘피에타’를 조각한다. 북유럽 조각가들은 과장된 몸짓, 상처, 표현으로 슬픔을 표현하려 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죽음 후의 영원한 세계를 표현하고자 시도했다.
마리아는 순결한 여인으로 똑바로 앉아 예수를 그녀의 무릎 위에 안고 있다. 여기에는 과장이 없고 예수의 상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수의 몸에서는 죽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탄력이 있다. 예수는 죽은 것이 아니라 깨우면 금방 일어날 것 같은 모습이다. 마리아의 평온한 얼굴과 몸짓은 영광스러운 자기희생의 미션을 마친 아들을 위로한다. 미켈란젤로는 마리아가 동정녀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젊은 여인으로 묘사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인 ‘피에타’ 는 동서고금을 통해 창조적으로 재생산된 인간이 갈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 매일경제 Luxmen 제25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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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8 回 ‘恕 (恕=心+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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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恕 (恕=心+如)’
영화 <트로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뽑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트로이 성벽 앞에서 펼쳐진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전투장면을 떠오를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갑옷을 입고 몰래 전쟁에 나가 트로이 왕자인 헥토르에게 살해를 당한 자신의 애인이자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기 위해 트로이 성벽 앞에 서서 목청껏 소리 지른다. “헥토르, 헥토르!” 헥토르는 트로이 프리아모스 왕의 효심이 많은 맏아들이었고 아내 안드로마케에겐 자상한 남편이었다. 이 세상에서 아킬레우스와 대적해 이길 자가 없다는 것을 안 헥토르는 눈물 짓는 아버지와 아내와 작별인사를 하고 아킬레우스와 결투를 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였고 그의 시체를 전차 뒤에 매달아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로 끌고 다니며 시체를 험하게 훼손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최고의 장면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전투가 아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시체를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에게 달려온 헥토르의 아버지와 아킬레우스와의 조우(遭遇)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적절한 장례절차가 없이는 다음 세계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프리아모스는 변장해 아킬레우스의 진영에 잠입한다. 늙은 프리아모스는 굴욕적으로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간청한다. “오, 아킬레우스여. 나처럼 나이가 들어 생명이 거의 다해 몸을 떠는 당신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혹시 어떤 이웃이 그를 억압하고 그의 고통을 덜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는 아킬레우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분명히 기뻐하며 언젠가 그가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볼 것이라는 생각에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죽은 내게는 어떤 위안도 없습니다. 마치 때늦은 일리움의 꽃처럼 모든 것이 떨어졌습니다. 내게도 하나가 있긴 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운 이 세상 모든 것보다 귀한 아들입니다. 나는 지금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시체를 가지러 왔습니다. 오, 아킬레우스여! 신들을 생각하고 당신의 아버지를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 내게 은총을 내리십시오!”
프리아모스의 간청이 아킬레우스를 움직였다. 아킬레우스 안에 있던 자기의 죽은 아버지에 대한 깊은 슬픔을 일깨웠다. 그도 ‘지금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울기 시작한다. 그는 자기 발 앞에 무릎 꿇은 프리아모스의 백발을 보고 그를 일으켜 세워 말한다.
“프리아모스여! 당신은 여기까지 신의 도움이 아니면 올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감히 내 앞에 설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간청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당신의 헥토르에 대한 사랑에 감동받았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이 말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곧 시신이 너무 무거워 프리아모스가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해 두 명의 건장한 용사를 불러 헥토르 시신을 전차에 싣고 무사히 트로이로 옮길 것을 명령한다. 그는 헥토르 장례의식이 마칠 때까지 12일 동안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의 마음은 하나였다.
그리스 문명은 바로 이 정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서(恕)의 정신으로 시작됐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페니키아인으로부터 알파벳을 처음 받아들인 후 지난 300년 동안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리스 정신을 전하기 위해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기록했다. 그는 앞으로 펼쳐질 서양문명의 기둥은 아킬레우스의 영웅성이 아니라 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서(恕)의 정신’ 이라고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서의 정신’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 당시 창조적인 두 집단이 등장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경전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한집단의 대표는 ‘힐렐’ (기원전 110년-기원후 10년)이고 다른 집단의 대표는 ‘예수’ (기원전 4년-기원후 30년)이다. 힐렐의 어록은 후대 미쉬나와 탈무드의 기초가 됐다.
한 이교도가 위대한 랍비인 힐렐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시험할 목적으로 찾아왔다. 그는 “한쪽 다리로 서있는 동안 (짧은 시간 안에) 유대인의 경전인 토라 전체를 암송할 수 있다면 자신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 고 선언한다.
… 매일경제 Luxmen 제24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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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7 回 ‘테오리아’ 자신 바라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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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리아’ 자신 바라보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가는 곳이 있었다. 보스턴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리면 한적한 도시 콩코드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월든’이란 호수가 있다. 이 호수가 유명한 이유는 미국작가이자 철학자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이곳에 거주하며 <월든, 숲속에서의 삶>이라는 책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소로는 1845년 여름부터 2년 동안 이 호수 북쪽에 기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다. 이곳은 사실 그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이 그에게 빌려준 땅이었다. 그가 살던 조그만 오두막에 가면 다음과 같은 푯말이 등장한다.
“나는 숲에 갑니다. 나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사실을 대면해 신중하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이 가르쳐야 만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혹은 내가 죽을 때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소로는 월든 호수에서 인생의 겉모습을 버리고 그 본질들을 대면해 최선의 삶이 무엇인가를 모색했다. 우리의 문제점은 인생의 겉모습에 집착해 인생의 순간들을 생각 없이 흘러 보낸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최선의 삶은 무엇인가?
소로는 인생의 핵심을 자신만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로움’ 은 상대방의 부재를 절감하는 상태와 심지어는 남들과 같이 있어도 심리적으로 혼자인 상태다. 반면에 상대방의 부재를 느끼지 않고 혼자 스스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상태를 ‘고독’이라고 한다. 영어에서도 전자를 ‘Loneliness’ 라고 하고 후자를 ‘Solitude’ 라고 한다.
세상은 점점 빨라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순간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오는 정보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의도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혼자만의 ‘고독’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외로움’과 ‘고독’이 모두 혼자 있는 시간이지만 고독은 명상, 내적인 탐구와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고독을 통해서만 심오한 독서와 예술에 심취할 수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고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유’다. 자유는 창조력과 직결된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창조성을 꺼낼 수 없다. ‘자아의 발견’은 고독의 또 다른 선물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자아 발견’을 위한 ‘고독’을 ‘테오리아(Theoria)’라고 불렀다. 영어단어 ‘Theory’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테오리아는 중세교회에서 ‘콘템플라티오’ 즉 ‘내면 보기’ ‘내면 관조하기’로 번역됐다. 터키 카파도키아는 동방 그리스도교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테오리아를 위한 수많은 동굴들이 있다. 수도사들은 이 동굴에서 3년 동안 수련을 한다.
터키를 중심으로 기원후 4세기 이후에 등장한 동방교회는 ‘신과 합일 되는 깨달음을 위한 단계’ 인 테오리아를 그리스도 교인들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테오리아를 통해 삼라만상 특히 마음의 움직임을 의식하는 ‘넵시스(Nepsis)’ 를 의도적으로 인식한다. 신과 대면할 수 있는 테오리아 수행을 통해 신을 관조하게 되면 신과 합일되는 ‘테오시스(Theosis)’의 경지에 도달한다. 우리는 테오리아를 정결한 삶, 절제와 경전의 명령 준수, 그리고 신과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 얻을 수 있다. 동방그리스도교의 수행전통의 세 가지 단계는 첫째는 ‘카타르시스’ 로 즉 더러운 생각, 말, 행동을 정화하고 둘째는 ‘테오리아’ 로 명상과 깨달음을 통해 셋째는 ‘테오시스’ 신과 합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테오리아를 실천한 가장 위대한 인물 중에 한명이 무함마드(기원후 570~623년)다. 무함마드는 570년에 유복자로 태어나 6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됐다. 가난한 삶을 타파하고자 당시 다른 아랍소년들처럼 대상무역상으로 출발한 무함마드는 어려서부터 ‘알-아민’ 즉 ‘믿을 수 있는 자’ 라는 별명을 지닌다. 그는 25세에 자기보다 15살 많은 미망인이자 자신의 고용주였던 카디자와 결혼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난다. 무함마드의 대상무역업은 날로 발전해 메카에서 존경받는 상인이 된다. 만일 무함마드가 자신의 삶을 아무런 자기발견의 노력 없이 지나갔다면 오늘날 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다른 성공한 대상무역인과는 달리 1300년이 지난 오늘날 17억 인구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이슬람의 창시자가 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테오리아였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위해 매해 메카 외곽의 히라 동굴로 퇴거했다. 당시 아랍사회는 부족중심이었다. 부족들 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의였으며 그 정의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와 같은 복수였다.
아랍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아무도 모르는 영적인 병에 걸려있었다. 무함마드는 이 영적인 병을 히라 동굴에서 명상하기 시작한다. 이 명상을 아랍어로 ‘타한누스(Tahannuth)’라고 한다. 그는 해결책을 골똘히 궁리하는 동시에 금식하며 영적 훈련을 수행했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타한누스란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자아를 발견하고 대면하는 일이다. 무함마드는 타한누스를 통해 그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다간 수많은 무명의 인물이 아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무지’의 사회를 신에게 승복한 ‘이슬람’ 공동체의 창시가가 됐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하루에 식구들 밥을 먹이는 상인이 아니라 타한누스를 통해 아랍인 전체를 위해 삶의 기준을 전달할 예언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7억 인구의 정신세계를 마련할 무함마드에게 타한누스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종교에서는 ‘자신을 모르는 것’ 또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모르는 것’을 죄라고 불렀다. 종교지도자들은 모두 ‘명상’을 통해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
명상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 경전과 고전을 깊이 읽는 시간, 자신의 삶의 원대한 계획과 이 순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까지도 제어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전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마술이다. 종교는 우리에게 산 정상에 올라가라고 촉구한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 한 걸음 물러서서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영적인 정상으로 가는 길이 바로 테오리아다. 하루에 30분 정도 자신을 위한 분리된 시간과 장소에서 명상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자유 창의성 그리고 카리스마를 선물해 줄 것이다.
… 매일경제 Luxmen 제23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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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6 回 일상이 거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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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거룩이다!
기원전 2000년부터 중동지방에는 본격적인 사막화가 시작되면서 겨우 자리 잡은 도시문화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24세기 메소포타미아의 중부 ‘아가데’라는 곳에 인류 첫 번째 제국인 아카드가 세워졌지만 기원전 2000년경 이란에서 몰려온 구티인에 의해 파괴됐다.
강력한 도시국가인 아카드가 자그로스 산맥에 거주하던 구티인들에게 전복된 실제적 이유는 심각한 가뭄 때문이었다. 심각한 가뭄은 고대 이집트도 강타했다.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한 인류문명의 첫 개화기인 이집트 고왕국시대도 강우량의 감소로 이집트의 젓줄인 나일강이 점점 말랐다. 나일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해 강 주위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농사를 할 수 있었다.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 한 파피루스는 기근이 심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이집트인들 원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기록한다. 최근 기후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65m 깊이의 카이로 남쪽에 위치한 파이윰 호수가 완전히 말라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거주하던 유목민이었다. 그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이집트에서 거주 지역의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항상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는 나그네였다. 이런 나그네를 고대 셈족어로 ‘이브리’, 즉 ‘경계와 장소를 넘나드는 사람들’ 이라 불렀다. ‘이브리’가 바로 영어로는 ‘히브리(Hebrew)’ 다.
십계명을 받은 모세도 떠돌이 ‘히브리인’이었다. 기원전 13세기경 이집트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성서에 의하면 당시 이집트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이들의 자녀, 특히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성서 <출애굽기>에 의하면 모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나일강가에 숨겼고 파라오 공주가 그를 발견해 입양했다고 전한다. 이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은 없으나 기원전 13~14세기 고대 근동의 불완전한 사회상황을 반영해주는 글이다. 파라오의 궁에서 자란 모세(모세라는 이름도 이집트어로 ‘태어나다’ 라는 의미다)는 자신의 동포인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인들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이집트인들을 살해하고 도망친다. 도망친 곳은 시내반도의 미디안인데 사막과 화산으로 형성된 돌산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기원전 13세기는 이전에 도시중심의 지역이기주의를 벗어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대였다. 이 시기를 통해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하는 ‘축의 시대 (the Axial Age, 기원전 9~2세기)’ 의 씨를 뿌렸다. 기원전 12세기 인도에서는 힌두교로, 이란에서는 마즈다이즘(혹은 조로아스터교)으로, 소아시아에서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 정신으로,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유일신정신세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등장했다. 유일신정신이란 다른 신들을 배척하고 한 신만을 섬기자는 ‘일신우상주의’가 아니다. 유일신정신은 ‘고아,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위한 신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대변하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주장이다.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40년(?) 아주 오랜 기간 양치기로 세월을 보낸다. 한 사람이 한 일을 40년 동안 그것도 요즘같이 복잡한 사회가 아니라 지금부터 3000년 전 중동사막 지역에서 목동으로 40년이나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양떼를 몰고 가던 그 똑같은 길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사막의 가시덤불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나무가 연소되지 않았다. 그는 이 초월적인 현상을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려하자 이상한 소리가 그 나무가운데서 나왔다. 그 소리가 천둥소리와 같은 소리인지 아니면 마음의 소리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모세, 모세! 여기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모세는 이성을 뛰어넘는 이 현상 앞에서 머리를 땅에 대고 떨고 있었다. 모세는 ‘거룩’을 경험한 것이다. 스위스 종교학자 R. 오토는 <거룩의 개념>이란 책에서 거룩의 세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신비(Mysterium), 인간의 오감을 넘어서는 경험 2) 전율(Tremendum), 타자와의 만남으로 떨리는 경험 3) 매혹(Fascinosum), 나와 너무 달라 끌리는 경험.
‘거룩’을 경험하고 있는 모세에게 신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샌들을 벗어라! 네가 서있는 그 장소는 ‘거룩한 땅’ 이다.”
거룩한 공간과 세속의 공간을 표식은 바로 ‘신을 벗는 행위’ 이다. 유목민들의 자기 재산목록 1호는 바로 ‘샌들’ 이다. 우리는 중동지역에서 항의의 표시로 ‘신발’ 을 던지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미디아를 통해 종종 듣는다. 자신의 모든 것, 즉 ‘신발’ 을 내버릴 정도로 상대방을 혐오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샌들을 버려야한다. 이 ‘샌들’ 의 의미는 나 중심의 이기심이다. 우리가 이기심을 스스로 포기할 때 신은 우리에게 최고의 깨달음을 준다. 그것은 바로 ‘내가 서 있는 이 장소(場所)가 바로 거룩한 땅’ 이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인간의 문명은 공간의 정복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오지를 탐험하고 외계를 탐험해 우주선을 띄웠다. 인간은 신을 모시기 위한 혹은 신을 감금하기 위한 화려한 공간을 마련해왔다. 인간들은 이 공간들만이 거룩한 공간이며 이곳에서만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현혹한다.
모세에게 준 최고의 가르침은 ‘바로 네가 서있는 그 장소, 네가 지난 40년 동안 지겹도록 다녔던 그 먼지 나고 더러운 그 장소가 바로 천국’ 이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기원전 13세기 모세를 통해 ‘신과 만나는 곳’ 은 특별한 장소, 특히 종교인들의 말하는 그런 장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삶의 현장이 ‘천국’ 이라고 가르쳤다. ‘거룩한 장소’ 를 인위적으로 만든 종교는 소멸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그것을 조절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일상’이 ‘거룩’이라는 가르침으로 적어도 중동지방에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등장시켰지만 인간들은 다시 신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데 혈안이다. 유대교에서 신이 계신 공간이란 단어가 ‘마콤(Maqom)’ 인데 ‘네가 지금 서있는 그 곳’ 이란 의미다. 오늘, 일상에서 ‘거룩’을 찾아봐야겠다.
… 매일경제 Luxmen 제22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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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5 回 Time and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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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and Art
인간은 아마도 자신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인간은 유한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흔적이 사후에도 기억되길 바라면서 ‘문명(文明)’을 이루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시간과 공간은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과거를 회상해보자. 우리의 과거가 아무리 화려하고 멋지다 할지라도 혹은 아무리 불행하다 할지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찰나(刹那)이다. 우리가 수십 년 후,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한다 할지라도 그 기간은 여전히 찰나(刹那)일 것이다. 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기원전 11세기 고대 이스라엘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솔로몬 왕은 자신의 생을 마감하면서 최고의 삶에 대한 단상(斷想)을 남겼다. 그것이 구약성서에 실려 있는 <전도서> (傳道書)다. 전도서의 원래 이름은 코헬렛(Qoheleth)으로 ‘외치는 자’ 라는 의미다. 솔로몬 왕은 이 전도사를 통해 우리에게 최선(最善)의 삶이 무엇인지 갈급하게 외친다. 전도서 3장 1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모든 일에는 다 그것을 행해야 할 알맞은 때(zeman)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우주의 순환에 적당한 때(eth)가 있다.”
솔로몬은 인간의 유한한 시간을 두 가지로 표현한다. 고대 히브리어 ‘제만’(zeman) 과 ‘에트’(eth) 가 그것이다. 이 두 단어는 유사하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 다르다. ‘제만’은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일을 시도하고 달성해야 할 시간을 의미하고, ‘에트’는 사계절의 흐름과 같이 우주와 자연의 순환주기의 시간을 의미한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일상적이며 수량적인’ 의미를 지닌 시간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만’과 ‘에트’ 모두 신이 인간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시간이란 신이 마련한 우주와 시대의 흐름을 적은 달력이다. 고대 히브리인들과는 달리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로 구분했다. 영화 <트로이>에서 영웅 아킬레스는 트로이 출정을 망설였다. 그는 어머니인 테티스를 찾아 조언을 구한다. 그녀는 아킬레스에게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날이 올 것이란 걸 알았다고 말한다. 테티스는 만일 아킬레스가 트로이로 가지 않는다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긴 하겠지만 그가 죽은 후 ‘아킬레스’라는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그가 트로이로 간다면 그는 전쟁을 통해 영광을 얻고 후대인들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길 바라는 아킬레스는 전쟁에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는 흐르는 시간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역사로 만들기 위해 참전한다. 아킬레스에게 이 결정적인 순간은 다른 보통 시간과는 다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상적인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신이 이미 예정한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꿀 수 있을까? 필자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네이틱(Natick)’이란 도시에서 목회한 경험이 있다. 백인 할머니만 60명 정도 모인 전형적인 미국교회에 취임하면서 교적부를 보니 1898년생 할머니가 계셨다. 이름은 에벌린 젠넬. 나이는 95세. 에벌린은 수요일이면 동네 할머니를 모아 포커를 치고, 핑크색 정장을 즐겨 입는 멋쟁이 할머니였다. 그 당시 필자는 미국대학에서 과목을 맡아 학부와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목요일이면 에벌린과 함께 양로원에서 요양 중인 교인들을 심방(尋訪)하곤 했다. 심방이라야 자식들도 잘 찾아오지 않는 노인들의 쌓인 이야기를 2~3시간 동안 듣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에 3명 정도, 6~9시간 동안 이들 삶의 이야기를 들은 게 내가 받은 최고의 교육이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매세추세츠 주 1월, 한밤중에 네이틱 시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에벌린이 응급실에서 날 찾는다는 전화였다. 병원으로 가니 가족들이 많이 와있었다. 거의 100년 동안 사용한 심장이 멈출 때가 된 것이다. 에벌린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심장박동기를 넣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에벌린은 가족을 다 내보낸 후, 나에게 난처한 부탁을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신의 은총으로 건강하게 살았고 직계가족만으로도 3번 결혼을 통해 100명 가까이 된다며, 수술을 받지 않을 예정이니 이대로 하늘나라에 갈수 있도록 가족을 설득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에벌린에게 무엇을 조언할 수 있을까? 나는 다음날 에벌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벌린, 당신의 삶은 양로원에서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삶을 당신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 후 에벌린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필자가 그 교회를 떠난 후에도 100세까지 심방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이런 에벌린의 결정과 삶을 ‘예술’ 이라 부르고 싶다.
일상적인 순간이 특별한 순간, 신이 개입하는 순간으로 만드는 솜씨를 ‘예술’ 이라고 한다. ‘예술’ 을 뜻하는 영어단어 ‘Art’는 아주 오래된 유럽어 어근 ‘르타(*rta-)’에서 유래했다. 서양문헌 중 가장 오래된 문헌 중에 하나인 힌두교의 베다(Veda)에 등장하는 르타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작동을 지배하고 조절하는 자연 질서의 원칙’ 이다. 르타는 자연과 사회의 도덕, 그리고 의례가 바르게 작동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의례, 예배’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ritual(라틴어 ritus)’는 ‘일정한 생각, 말, 행동을 통해 우주의 원칙을 회복하는 시도’이다.
르타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의 명령들을 ‘다르마(Dharma)’ 라고 하며, 개인에 주어진 명령을 ‘카르마(Karma)’ 라고 한다. ‘아트’ 란 시공간에 갇혀있는 유한한 인간에게 그것을 초월해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最善)을 선택하고 추구해 ‘영원’ 을 만들려는 솜씨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자를 ‘아티스트’ 라고 한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삶의 최선을 알려고 노력하고, 보통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서슴지 않고 행하기에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가 그런 삶을 살도록 유도하고 전염시킨다.
기원전 4세기, 서양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겼다. “Vita brevis, ars longa, occasio praeceps experimentum periculosum, iudicium difficile.” 이 라틴어의 문장을 번역하면,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금방 사라지고 경험은 위험이며, 판단은 어렵다.”
우리가 걸어온 지난날을 잠시 생각해보자. 히포크라테스의 말대로 그것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순간을 영원으로 멋있게 만든 예술가들을 성인(聖人)이라고 부른다. 성인들은 모두 우주의 소리를 ‘귀(耳)’로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입(口)’으로 전하고,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壬)’ 사람들이다. 오늘 나만의 시간을 내서 우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겠다.
… 매일경제 Luxmen 제21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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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4 回 HOMO CARIT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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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O CARITAS
우리는 좀처럼 감동받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전쟁의 참상을 보고도 남의 일로 여기고 쉽게 넘어가기 십상이다. 나의 메마른 삶에 충격을 주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서 삶의 방향계를 새로 설정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2005년 어느 날, 신문에서 ‘벽안의 신문기사를 읽었다. 필자하고 전혀 상관없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수녀 이야기인데, 글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 신문기사의 제목은 ‘올 때 소리 없이 왔으니, 갈 때도 말없이 떠납니다’ 였다. 제목을 봐선 그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70세가 넘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란 수녀가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에 온 것은 1962년. 당시 대한민국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보다 못사는 후진국이었다. 20대 중반의 금발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늘씬한 두 수녀가 한국인들도 금기시하는 ‘문둥병 환자들의 섬’ 소록도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왜 자신들이 살던 편안한 오스트리아에서 전혀 듣지 못한 한국, 그것도 소록도에 온 것일까? 한국에 찾아온 이유는 단순하다. 언젠가 신문지상을 통해 한센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우들이 한국이란 땅에서 집단수용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사람과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두 수녀는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낀 것이다. 한센병 환우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컴패션(Compassion)’ 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최고의 지도자와 경영자는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고통을 인문학적인 소양을 통해서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그들의 삶 전체를 온몸으로 느끼는 ‘컴패션’ 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음 바로 이 마음은 자신으로부터 한걸음 밖으로 나가는 엑스타시(ek-stasis)의 단계이며 자신을 남으로 채우는 무아(無我)의 경지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우리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내가 더 강해져 남을 쉽게 이기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지나 않은지 다시 한 번 뒤돌아 봐야 한다. 우리는 일생 동안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배운다.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배우는 이유는 내 자신을 벗어나 남의 입장에 서보는 연습을 하여, 인간 마음에 내재한 ‘컴패션’을 ‘밖으로 꺼내기(e-ducation)’ 위함이다. 최고의 인문학적 소양이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암기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을 없애고 남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는 ‘컴패션’(Compassion) 이다.
몇 년 전 필자는 인세반(스티브 린튼) 유진벨 재단 회장의 강연을 들었다. 린튼가(家) 선교사 집안의 3대 자손으로, 그의 아버지 인휴(휴 린턴) 목사는 “성공이란 많은 사람을, 특히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라는 가르침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라 말했다. 우리에게 성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두 수녀에게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이었을까? 소록도에 도착한 두 수녀는 당시 한국에는 이들을 치료할 의료시설조차 없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 의료품과 지원금을 신청하여, 한국의 한센인을 자신의 자녀로 품은 것이다. 이들은 한센병이 전염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정성껏 43년을 하루같이 보냈다. 상상해 보라! 우리의 자녀가 43년 동안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모든 사람들이 버린 이들과 생활한다면 우리는 찬성할 수 있는가? 도대체 이들은 여기까지 와서 이런 캠패션의 행위를 할 마음을 어떻게 가졌을까?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선행이 외부에 알려지는 일을 극히 꺼려서 수백 개의 감사장과 공로패는 돌아가야만 했다. 일일 봉사랍시고 공개적으로 사진 찍은 연예인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이들에게 명예란 무엇인가?
더욱더 충격적인 것은 두 수녀가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기 하루 전 소록도 병원 측에 이별 통보를 했다. 소록도 주민들은 20대 처녀에서 70대 할머니가 된 금발 수녀들을 ‘할매’ 라고 불렀다. 이들은 이미 전라도 할매가 되었다. 두 수녀는 주민들에게 아픔을 준다며 편지 한 장을 남겼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인해 아프게 해드린 일을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라며 말문을 흐렸다.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이 수녀들의 짐이라곤 43년 전에 가져온 다 해진 검은색 가방 하나뿐! 이 낡은 가방은 세상의 어떤 명품보다 훨씬 더 명품이다. 그 안에 기막힌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감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감동은 전염성이 있어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명품의 조건으로, ‘영적인 감동’ 으로 ‘전염성’ 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아는 최고의 명품은 이 할머니들의 가방이다. 이들이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봉사하면서 “성당에 나오세요” 라고 권유하거나 전도했을까? 필자는 그런 말을 낯간지러워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센병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모마리아였기 때문이다. 사지가 녹아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였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예수도, 너희가 평상시 만나는 불쌍한 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상정한 신을 자신들이 만든 종교시설에 가두어 놓고 가끔 보러 간다. ‘장소’ 의 종교가 역사를 통해 얼마나 타락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진화론자 E O 윌슨은 ‘이타주의자는 스스로 그리고 가장 가까운 동족에게 보답을 기대하며 그의 선한 행위는 종종 완전히 의식적이며 계산적이고, 그의 술책은 사회의 복잡한 승인과 요구에 따라 세밀히 조직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만일 이 수녀들의 행위를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 라고 억지 주장한다면, 인간의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시시하게 보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서 주위로 밀어내고 이웃을 내 삶의 중심에 위치하게 될 때 가장 인간답지 않을까? ‘톨레랑스’ 나 ‘호모 심비우스’ 라는 개념도 그 중심이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컴패션’ 으로 자신을 승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강, 그 죽음의 강을 건널 때, 우리는 어떤 가방을 가져가야 할까? 두 오스트리아 두 할머니처럼 인생을 ‘호모 카리타스(Homo Caritas)’, 즉 이웃의 희로애락을 내 희로애락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컴패션’이라 보기에는 보잘것없지만, 감동이 있는 ‘검은 가방’을 가지고 가고 싶다.
… 매일경제 Luxmen 제20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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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3 回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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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
최선의 길을 지향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최선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을 바로 ‘도(道)’ 라 한다. ‘도’ 는 노력과 과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이 최선을 향한 ‘도’ 를 고대 이집트인들은 ‘마아트’ 라고 불렀다.
필자가 1988년에 유학을 갔을 때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다. 종교를 공부해야 하는데, 종교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도무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하버드대 고대근동학과에는 존 휴너가르드 교수(현재 텍사스 대학 근동학과 교수)가 있었다. 그는 셈족어와 인도-유럽어 등 거의 100개 정도의 언어를 판독하고, 자유자재로 읽고, 말까지 하는 세계 최고의 고전문헌학자였다. 필자는 그가 고전문헌을 원전으로 읽고 해석하는 모습에 매료되고 말았다. 막연히 나는 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필자는 용기를 내서, 그가 가르치는 ‘고전 에티오피아어’를 수강 신청하였다. 고전 에티오피아어는 ‘게에즈’라고도 불리는데, 초기 그리스도교 경전들이 이 언어로 기록되어 성서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어이다. 첫 수업시간에 들어가니, 단 세 명만이 수강 신청했다. 두 명은 셈족어를 전공하는 박사 과정 학생이었고, 나는 한국에서 갓 온, 영어도 떠듬거리는 유학생이라, 이 수업을 따라가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필자는 수강 신청을 철회할 목적으로 휴너가르드 교수에게 면담을 신청하였다.
휴너가르드 교수는 필자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였다. 나는 얼떨결에 “종교 경전을 해석하는 훌륭한 고전문헌학자가 되고 싶다” 라고 대답했다. 종교 경전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특히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고고학자처럼 깨내야 하기 때문에, 고전어에 정통해야 한다. 독일어, 프랑스어와 같은 현대어뿐만 아니라, 고전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본격적으로 경전들을 연구할 수 있다. 필자는 영어 몇 마디 하고 미국에 갔는데, 이 언어들을 어떻게 공부하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학생들과 경쟁하여 박사 과정에 입학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면담을 마치기 전, 휴너가르드 교수는 “Mr. Bae, Show Yourself!” 라고 말했다. 나는 며칠 동안 “Show Yourself” 라는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뭘 보여줄 수 있는가? 휴너가르드 교수는 현재 필자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최선(最善)을 보길 원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어떤 실마리도 없었던 최선을 찾기 위해, 하버드 도서관들 중에 하나인 ‘힐레스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언젠가 나의 최선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서관 문을 닫으면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들 중 하나는 인간만이 최선을 상정하고 그것을 지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삶’ 이란 무엇인가? 고대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아담’ 이라고 했다. ‘아담’ 이란 히브리 단어는 ‘흙’을 의미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흙’ 이었다, 잠시 ‘숨’을 쉬는 생명체가 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다소 비관적인 정의에 반기를 들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앤스로포스’라고 정의하였다. ‘앤스로포스’란 ‘두 발로 땅을 디디고,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두 팔을 하늘로 향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동물 중 유일하게 땅을 보지 않고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다. 하늘을 보고 최선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 최선의 길을 지향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최선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을 바로 ‘도(道)’라 한다. ‘도’는 노력과 과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이 최선을 향한 ‘도’를 고대 이집트인들은 ‘마아트’ 라고 불렀다. 마아트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3000년 동안 지탱시킨 매트릭스이다.
기원전 27세기 이집트 파라오 조세르는 당시 총리이자 수학자, 건축가였던 임호텝에게 자신의 무덤 건축을 부탁한다. 조세르 이전 무덤은 직사각형 육면체였다. 임호텝은 처음으로 피라미드식 무덤을 도입한 건축가이다. 그가 만든 최초의 피라미드를 ‘계단식 피라미드’라고 하는데, 후대에 등장하는 이집트 피라미드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피라미드, 메소아메리카 피라미드의 원조이다. 임호텝은 직사각형 육면체를 점점 작은 규모로 6개 올려 소위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임호텝이 이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전 정교한 의례를 행했다. 그 의례는 2t이 넘는 정사각형으로 다듬을 돌을 200만개 정도 올리기 위해 지면에 전체 구조의 중심을 찾는 일이었다. 고대 이집트는 남쪽 누비아와 수단에서 몰려와 기원전 3100년 처음으로 왕조를 이루었기에, 오래된 아프리카 의식이 이집트 문화에 흡수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건물의 중심, 신전의 중심, 우주의 중심을 ‘타조의 깃털’로 표시하였다. 바로 이 타조의 깃털을 마아트라 불렀다. 마아트가 그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수백만개의 돌들이 곧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마아트가 중심을 잡았기 때문에, 4700년이 지난 오늘날도 피라미드는 건재하여 우리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아트는 ‘진리’, ‘정의’, ‘조화’, ‘균형’, ‘우주의 원칙’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집트 문명과 종교의 핵심이다. 마아트는 후대에 여인 머리 위에 타조 깃털을 꽂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하늘의 별들과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조절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어 마아트는 ‘마아’라는 형용사의 여성명사형이다. ‘마아’의 의미는 ‘적절한’, ‘최선을 다하는’, ‘올바른’이다. 마아트는 우주의 균형이자 원칙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조화이며, 심지어는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일생 동안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개인의 최선이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개인의 최선은 우주와 자연의 원칙과 일치하려는 노력에서 온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장례문헌인 <사자의 서>에서 마아트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관원이었던 ‘휴네페르’는 죽은 자는 자칼 가면을 쓴 시체방부처리신인 ‘아누비스’를 따라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그 중앙에는 시장에서 보는 천칭이 있어 한 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다른 쪽엔 타조 깃털인 마아트를 올려놓는다. 이 천칭은 사람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평등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 평가는 시장의 천칭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그 옆에 웅크린 괴물 ‘암무트’는 죽은 자가 생전에 한 생각, 말, 행동을 낱낱이 기록한 생명의 책을 들고 있는 토트신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천칭이 평형을 이루면 그는 영원한 세계로 이동할 수 있지만, 천칭이 기울어진다면 그 옆에 있는 암무트가 그를 잡아 먹는다. 여기서 마아트는 휴네페르가 살아 있으면서 반드시 해야 할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해야 할 마아트가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내 자신의 마아트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삶, 그 과정이 바로 도(道)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구원이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우주적인 명령을 깨닫고, 자신에게만 맡겨진 그 마아트를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
… 매일경제 Luxmen 제19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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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2 回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 |
| ▲ Michelangelo. 'Pieta', c. 1498-1500, marble, 174 x 195 cm, Basilica of St Peter, Vatic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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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
셈족 언어에서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과 행동’, 즉 ‘컴패션(compassion, 憐憫)’을 ‘라흐민’(rahmin)이라고 한다. ‘라흐민’은 어원적으로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레헴’(rehem)에서 유래했다.
특히 이슬람 경전인 꾸란은 모든 장이 “라흐만의 알라의 이름으로“ 으로 시작한다. 이슬람에선 ‘알라’신의 속성을 바로 ‘컴패션(compassion, 憐憫)’ 이라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만능주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 실증적이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진리’라고 믿고 있다. 인간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란 잠정적이며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표시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진리’라고 믿었던 그 ‘진리’도 ‘거짓’이 되고 만다.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를 출간하기 전까지,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믿었고, 그것이 그때까지 인간들의 과학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정지해 있는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 과학적으로 지구의 자전을 실증하자, 그전까지 믿어왔던 ‘천동설’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진리란 가설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하늘에 별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성능이 더 좋은 망원경을 개발하면서 우주 안에 있는 셀 수 없는 별들의 지극히 일부를 관찰할 따름이다. 우리는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관찰할 따름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서식하고 있는 모든 동식물은 생식 작용을 통하여 태어난다. 그러나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구에 생물이 태어났는지는 그 어떤 과학자도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없다. 찰스 다윈(1809~1882)이 주장한 ‘진화론’의 적자생존과 그리고 종의 분화를 통하여 새로운 종이 탄생하고 다채로운 생태계를 이루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이다. 다윈은 인간의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본성을 밝혀냈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명의 기원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과학적 설명인 것처럼 보인다. 과학이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믿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우리의 유전자가 불가피하게 이기적이며 우리는 경쟁자에 대항하여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주장해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타주의’는 환상이며,인간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스러운 일루전이다. 기껏해야 그것은 ‘비유전적 문화요소(meme)’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문화적 아이디어, 상징, 혹은 실천들의 단위일 뿐이다. 이것은 ‘자연 선택’의 운 좋은 실수로,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유용한 생존 메커니즘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협동하는 법을 배운 무리들은 자원에 대한 절박한 경쟁에서 빠른 우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소위 ‘이타주의’라고 하는 것이 껍데기에 불과하고 이 또한 궁극적으로는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이타주의자’는 스스로 그리고 가장 가까운 동족들에게 보답을 기대한다” 라고 하버드 생물학자 E O 윌슨은 냉소적으로 주장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는 무자비하게 ‘이기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것은 대략 50억년전 원시 시대부터 고투했던 파충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파충류에겐 생존이 가장 중요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방식은 ‘먹고’ ‘싸우고’ ‘도망치고’ 그리고 ‘번식’이었다. 파충류들은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경쟁하고, 어떤 위협도 불사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움과 도망을 반복하고, 번식을 위해 무슨 행동도 감행한다. 우리 파충류 선조들에게 이어받은 DNA가 바로 ‘이기적 유전자’이다. 우리는 지위, 권력, 명예, 섹스, 생존에 관심이 있으며, 대다수 인간들은 이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러나 수천년에 걸쳐, 인간은 또한 ‘새로운 뇌’를 발전시켰다. 즉 신피질을 진화시켜왔다. 이것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해 숙고하고 이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격정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지는 추론 능력의 발상지이다. 1878년에 프랑스 해부학자인 폴 브로카(Paul Broca)는 모든 포유류가 파충류의 뇌에는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뇌를 진화시켰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뇌 부분을 ‘르 그랑 로브 림빅’ (le grand lobe limbique)이라고 불렀다.
온혈 포유류의 도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생존을 보장하는 뇌의 진화로 이어졌다. 온혈 포유류의 뇌는 더 커졌다. 뇌가 커지면서, 어미의 산도(産道)를 통과할 수 있도록 새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성숙한 상태에서 태어나야만 했다. 새끼들은 무기력했고, 어미와 그 집단을 새끼의 생존을 위해 보살펴야 했다. 이것은 특히 호모 사피엔스에게 적용되었다. 그들이 점점 커다란 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온혈 포유류는 태어나자마자 걷고 자신 스스로 어미에게 수유를 한다. 인간은 상황이 달랐다. 그 어미가 털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아기는 어미에게 매달릴 수 없었다. 어미는 자신의 욕망과 배고픔을 억제하고 아이가 자랄 때까지 수년 동안 아이를 돌봐야했다. 부모의 ‘전적으로 이타적인’ 돌봄은 아이의 생존에 필수적이었으며, 아이는 어미의 행동을 통해 ‘이타적인 노력과 헌신’이 인간생존의 기초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셈족 언어에서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과 행동’, 즉 ‘컴패션(compassion, 憐憫)’ 을 ‘라흐민’(rahmin)이라고 한다. ‘라흐민’은 어원적으로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레헴’(rehem)에서 유래했다. 어머니와 아이의 원초적인 관계,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의 원형은 바로 ‘라흐민’이다. 이 단어는 아랍어에서도 ‘라흐만’(rahman)으로 등장한다.
특히 이슬람 경전인 꾸란은 모든 장이 “라흐만의 알라의 이름으로“ 으로 시작한다. 이슬람에선 ‘알라’신의 속성을 바로 ‘컴패션(compassion, 憐憫)’ 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를 억제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무조건적으로 이타적 인간성인 모성애를 배양시켰다. 아이에 대한 헌신적으로 사심없는 행위는 하루 종일 요구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집중하여 자신이 없어진다. 아이에 대한 염려가 그녀의 삶의 중심이 된다. 그녀가 싫건 좋건 아이가 밤에 울면 일어나 젖을 먹여야하고 아이가 아프면 자신의 피곤함과 분노를 절제하고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실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가 성년이 되어서도 계속되며 그 사랑은 자신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치게 된다. 인간의 ‘이타적 유전자’는 자기 자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소방관들은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불타는 집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들어간다. 하루 종일 시청에서 쓰레기 수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주말에는 양로원에 가서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 이태석 신부는 1987년 의대를 졸업하고 신학대에 들어가 신부가 됐다. 그는 스스로 내전 중이던 남수단의 톤즈로 들어가 간이 병실을 갖춘 병원을 지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 오르간 연주자, 철학자였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31세에 모교 의학부의 청강생이 되어 의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가봉)에서 일생을 마쳤다.
위대한 종교와 사상을 전한 성인들은 바로 인간이 가진 ‘이기적 유전자’에도 불구하고, 인간 안에 잠재되어있는 ‘이타적 유전자’를 설득력있게 선포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에 의존해 산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 매일경제 Luxmen 제17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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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人間과 神 ㆍ 1 回 ‘종교는 향기다’ |
| ▲ 조토 디 본도네(GiottodiBondone).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1297-1300, 270×200m, 프레스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 성 프란체스코(1182~1226)는 ‘해와 달, 새와 짐승 등 자연과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창조물 속에서 그는 창조주의 숨결을 봤다. 이런 모습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는 닫혀진, 사물의 비경(秘境)에 들어가는 입구를 프란체스코는 찾았다”고 증언했다. [베네딕도미디어 제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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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향기다’
기원전 7세기 북이스라엘의 몰락을 목도한 예언자 미가는 “신이 원하는 것은 선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전 단어는 ‘토브’인데 그 본래의 의미는 ‘향기’이다.
1988년, 88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필자는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보스턴 로건비행장에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도착해, 그 후 12년간의 ‘유배지’ 생활을 하면서 종교와 문명, 특히 그 근저가 되는 고전어를 전공하였다. 하버드대학 종교학대학원 (Divinity School)에 입학하여 전혀 밟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다. 필자는 운 좋게 록펠러가 지어준 기숙사에서 1년 동안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기숙사는 4층 건물로 한 층에 20명 정도 살고 부엌을 공유한다. 한 층은 화장실과 샤워장을 둘러싸고 5개의 조그만 방이 있다. 5명이 싫든 좋든 1년 간 살아보라는 학교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다양한 종교를 접해 보지도 못했고 배울 기회도 없어서 ‘종교적으로 무식한’ 나는 4명의 기숙사 동료를 보고 한참 적응해야 했다. 다섯 명의 프로필은 이러하다. 스탠리는 남침례교회 대형 교회 목사로 키가 2m 정도 되는 흑인이었고, 이브라힘은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이슬람 수니파 임맘(사제), 느왕은 티베트 출신 불교 라마승으로 현재는 시카고대 티베트어 교수, 존은 무신론자로 현재는 FBI 암호 해독가, 그리고 필자.
기숙사 생활은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 필자는 공부 잘하고 좋은 학점 따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 목표였고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전형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처음 보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 특히 종교가 다를 뿐만 아니라 종교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모여 사니,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과 샤워장 청소문제였다. 스탠리 흑인 목사가 화장실이나 샤워장을 사용하면 지독한 냄새로 한 시간은 족히 출입금지였다. 그 누구도 바쁜 아침에 화장실 가기를 꺼렸다. ‘머리 좋은’ 필자는 동료들에게 학교 헬스클럽에서 샤워를 해결할 테니, 화장실 청소를 면해달라고 통보했다. 나머지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든지 상관없이 나는 그 상황을 빠져나왔다. 내 삶의 원동력은 ‘나-먼저’라는 이기심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화장실과 샤워장이 항상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향까지 피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알아보니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 느왕이 항상 남모르게 청소하고 향을 피웠다. 그는 1년 간 묵묵히 자신의 수행처럼 청소했다. 나는 느왕을 보면서 붓다가 생각났다. 붓다의 중요한 가르침은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저 종교적 경험이나 자기증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깨달음을 경험한 후, 북적이는 시장에 돌아와서 모두를 향한 헌신적인 삶을 실행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불행을 경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붓다는 말한다. 그는 열반을 얻은 후에, 초월적 평화에 탐닉하려는 유혹에 빠질 뻔했지만, 그 대신에 남은 생애 40년을 길거리에서 자신이 터득한 바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쳤다. 마하야나 불교에서 영웅은 ‘보살(bodhisattva)’이다. 그는 깨달음의 직전에 열반의 희열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세상의 고통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1년 뒤 기숙사를 떠나기 전 무신론자 존이 우리 모두를 불러놓고 하는 말이 자신이 종교를 가지게 된다면 티베트 불교를 택하겠다고 선언했다. 종교는 신념체계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종교에선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행동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선행을 위해 종교의 교리가 존재한다.
21세기는 세계화시대이다. 세계가 하나로 융합되고 문화가 그 융합의 DNA이다. ‘문화’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간 행동의 일정한 형태와 상징이라고 정의하면, 문화 핵심들 중에 하나는 ‘종교’이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 강력한 문화현상을 이해해야만 한다. 16억 무슬림들이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류의 3분의1을 차지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날에 예배 드리러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원전 6세기 나라를 잃고 2500년 후에 국가를 건립한 이스라엘인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한가? 중국의 지도자들은 13억 인구를 이끌고 G1을 꿈꾸면서 그들이 채택한 ‘유교’란 무엇인가. 글로벌 사회에서 종교, 특히 세계 주요 종교들의 핵심과 그들의 현황, 더 나아가 각 종교들의 특징을 이해하는 일은 글로벌 리더를 지향하는 세계인을 자처하는 지식인들에게 필수이다.
다른 어떤 지식보다도, 종교에 대한 실질적이고 지혜로운 이해는 21세기 리더들의 기본 자질이다.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융합의 시대’에 성급한 종교의 비교는 종교간 우열을 매기고 자기 종교의 기준에서 다른 종교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제 그 ‘다름’을 ‘참아주는 행위(톨레랑스)’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는 처사는 지난 2000년 이상 면면히 흘러와 인류 역사를 바꾼 종교에 대한 모독이다. 각 종교는 나름대로 자기만의 독특한 상징체계와 행동양식이 있는데, 이것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다 보면, 개별종교에서 지향하는 ‘길’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지금 G1 미국의 몰락을 목도하고 있다. 17세기 유럽에서 종교박해와 경제자유를 위해 온 청교도들이 ‘언덕 위에 예루살렘’을 건설하는 특별한 임무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미국에서 시작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20세기 말 부시 정부 당시 ‘테러와의 전쟁’의 기조를 이루었고, 미국은 돌이킬 수 없는 퇴락의 길에 들어섰다. 미국의 동양에 대한 몰이해, 특히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의 이슬람 이해와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기원전 7세기 북이스라엘의 몰락을 목도한 예언자 미가는 당시 종교의 구태의연함과 자기기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는 “신이 원하는 것은 선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전 단어는 ‘토브’인데 그 본래의 의미는 ‘향기’이다. 신이 원하는 삶,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상대방의 기준 안에서 향기가 나는가?” 를 질문하고 연습하는 삶이다. 이런 삶이 바로 인간됨의 삶이 아닌가?
… 매일경제 Luxmen 제17호 |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 2012년 0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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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 ·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우주기원을 성서를 통해 탐구하고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한 후 허송세월하다 정신 차려, 인류를 변화시킨 위대한 성인들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성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경전들의 언어인 고대근동언어, 특히 쐐기문자와 성각문자, 셈족어에 매료되어 하버드대학교 고대근동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와 올해부터 신설될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서아시아언어문명학과 교수이며, 2009~2013년까지 베이징대 고대근동학과 연구교수로 고대근동언어들을 격주로 가르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축의시대’. 인류를 변화시킨 성인들과 그들이 남긴 경전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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