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법인 경기문화재단에서는 '옛길을 찾아 새길을 걷는다'라는 슬로건으로 의주길, 삼남길, 영남길 등 세갈래 경기 옛길을 발굴하여 장거리 트레일 워킹 코스로 지정하였다.
필자는 서울에서 의주와 대륙으로 향하는 의주길 다섯 구간 중 서울에서 가장 먼구간 부터 역순으로 답사를 하였으며 제5길(임진나루 길), 제4길(파주고을 길)에 대한 답사기는 기히 이곳에 소개한 바 있었고 이번에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3리 마을회관 앞에서 광탄면 신산5리까지 약 14Km 구간의 제3길 '쌍미륵길'을 약 5시간에 걸쳐 답사한 글이다.
시작 지점으로 가기 위하여 구파발에서 703번 시내 버스를 타고 용미3리 마을회관 앞에서 하차하였다.
<그런데 11월1일부터 703번 버스가 불광동까지만 운행된다고 한다. 앞으로 용미리행은 몇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지 모르겠음>
정류장에 내리니 길 좌우측에 수많은 묘지가 보인다. 서울 시립묘지이다.
전신주에 매달린 의주길 리본을 따라 30여분 걸어가는데 인도가 없고 대형 트럭 등 통행 차량이 많아서 걸어가기가 매우 위험하다.
멀리 높은 곳에 우뚝 서있는 하얀 조형물이 보인다. 가까이 가니 거대한 마애석불이다.
용암사(龍岩寺) 절 뒤에 갓을 쓴 인자한 모습의 ‘용미리마애이불입상(대한민국보물 제93호: 龍尾里 磨崖二佛立像)’ 일명 ‘쌍미륵 불상(佛像)’이다.
이 불상(佛像)은 17.4m 높이의 천연암벽에 조각한 석상이며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전설에 따르면, 고려 선종(宣宗:재위 1083~1094)이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중, 하루는 후궁인 원신궁주(元信宮主)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산다. 식량이 떨어져 곤란하니 이곳에 있는 두 바위에 불상을 새기라. 그러면 소원을 들어주리라" 하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그곳에 실제로 큰 바위가 있어 서둘러 불상을 만들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불경과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장지산(長芝山) 자락의용암사를 경내를 한바퀴 돌아본다.
용암사 삼성각 옆에는 1954.10월에 이승만 건국대통령 등 일행이 참석하여 칠층석탑제막식을 거행했고, 대웅전 앞뜰에는 1970년대에 민족중흥의 길을 튼 박정희 대통령이 1군단을 방문하고 참모들과 함께 이곳에서 구국통일. 국태민안을 염원했다는 기록표지도 볼 수 있어 두 분 대통령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서니 왼쪽에 아주 큰 한민고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이 학교는 직업 군인들의 빈번한 근무지 변경으로 인한 군인 자녀들의 어려운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1년도에 설립된 기숙형 사립고등학교이다.
한민고등학교에서 10여분 거리에 고려시대 여진을 정벌한 후 9성을 쌓았다는 명장 윤관(尹瓘 ?∼1111)장군의 묘소인 려충사(麗忠祠) 앞이다.
위치와 규모가 크고 시설물의 관리도 잘되어 보기 드문 충신의 묘소답다.
마침 문화유적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으며 기세등등했던 청나라 사신들도 이곳을 지날 때는 간담이 서늘해졌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윤관 장군 묘 옆에 종중 대결로 유명한 조선의 재상을 지낸 심지원의 묘가 있으며 두 문중의 분쟁이 있었다.
2016년 9월 17일자 유어스테이지에 게재된 조왕래 선생께서 쓴 글을 인용하면 두 문중간의 종산대결에서 파평 윤씨 종중에서 심지원 묘지를 내 주어서 원만히 해결되었다고 한다.>
중국으로 사신을 따라가는 이 길은 한 많은 사연이 깃든 길이다.
‘반 목숨을 건다’ 했을 만큼 괴롭고 위태로운 행로였다고 한다.
양반은 시신이라도 돌아오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민이나 종, 가마꾼, 마부들은 죽으면 이역 땅에 아무렇게나 묻혔다고 한다.
그 간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의 백성들이 중국 땅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까?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난 데 대한 무한한 감사와 행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가 의주로 피란 떠난 수치의 길이요, 병자호란 때는 오랑캐의 말발굽에 짓밟혔고 인조의 항복으로 백성들이 포로 되어 끌려갔던 굴욕의 길이 바로 이곳이다.
좁다랗게 흐르는 분수천의 물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의 슬픈 역사가 반복 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다섯 시간에 걸친 의주 제3길 걷기의 종착점인 광탄면 신산리에 도달했으나 전혀 피곤하지가 않다.
다음 제2길은 또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을까런지 기대를 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