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월 이달의작품 심사평 및 심사 결과
여현옥 시인의 시「가슴에 박힌 몇 장의 종이」 선정
2026년 7월 문봄 창작방에 올라 온 작품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운문 분야에서 여현옥 시인의 시 「가슴에 박힌 몇 장의 종이」, 유영준 시인의 시 「미역 줄기」, 이정호 시인의 시 「출구」, 장석민 시인의 시 「허물」 등 4편과 산문 부문에서 이미숙 작가의 수필 「서정의 주파수」 1편 등을 포함해 모두 5편이었다.
여현옥 시인의 시 「가슴에 박힌 몇 장의 종이」
이 시는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존재를 향한 뒤늦은 회한을 절제된 언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거창한 슬픔의 토로 대신 구체적 사물과 신체의 이미지를 통해 죄책감의 무게를 축적해나가는 방식이 이 시의 미덕이다. 특히 애도의 정서를 감상에 젖은 어조로 풀어내지 않고, ‘종이돈’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에 집약시킴으로써 슬픔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냈다는 점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시의 전반부는 노인의 헌신을 ‘타인의 성벽을 쌓고 허물며’, ‘자식들의 지붕을 이어 붙이던 손’이라는 건축적 비유로 형상화한다. 이는 노인의 삶을 가족 공동체의 토대를 다지는 노동으로 확장시키는 동시에, 정작 ‘당신 누울 지상’에는 ‘마당조차 없었다’는 대비를 통해 헌신과 소외의 아이러니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가물어 갈라진 논바닥 같은 손바닥’이라는 감각적 직유는 노동으로 마모된 육신을 자연물에 빗대어 형상화함으로써 시적 밀도를 높인다. 이 시의 정점은 후반부, 화자가 끝내 건네지 못한 ‘몇 장의 종이돈’이 ‘가슴 깊숙이 박힌 녹슨 못’으로 전이되는 장면이다. 물질적 결핍이 죄의식으로, 다시 신체적 통증으로 치환되는 이 과정은 후회라는 추상적 감정을 촉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탁월한 형상화다. 노인이 ‘하늘의 먼 집으로 등기를 옮기셨다’는 표현 역시 부동산 용어를 죽음에 대입함으로써, 평생 집 한 칸 갖지 못한 이의 생애를 역설적으로 완성시키는 씁쓸한 위트를 보여준다. 마지막 연의 ‘흩어지는 종이돈 같은 그리움’이라는 표현에 이르러, 시는 물질적 결핍의 이미지를 정신적 그리움의 자리까지 끌어올리며 시상을 완결시킨다. 이로써 이 작품은 못다 한 효도에 대한 개인적 회한을 넘어, 헌신하는 존재와 그를 뒤늦게 깨닫는 남은 자 사이의 보편적 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울림을 지닌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유영준 시인의 시 「미역 줄기」
이 시는 구내식당 식판 위에 오른 반찬 하나로부터 상실의 기억을 길어 올리는 섬세한 감각의 시다. 거창한 상실의 서사를 직접 발화하지 않으면서도, 미역 줄기라는 일상적 소재를 매개로 부재의 흔적을 은근하게 축적해나가는 구성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시적 화자는 ‘식판 세 번째 칸에 바다가 조금 배식되었다’는 낯선 조합의 문장으로 시를 열며, 평범한 반찬을 순식간에 낯선 존재로 전환시키는 감각적 전복을 성취한다. 특히 ‘미역 줄기’와 ‘미뢰’의 발음적 유사성을 활용한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에 그치지 않고, 부재한 이가 남긴 목소리의 잔상을 청각적으로 소환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시의 백미는 3연에서 미역 감던 소리와 미역 줄기의 이미지를 겹쳐놓는 대목이다. ‘찰박찰박, 그녀가 머리 감던 소리’가 ‘배수구, 그 검은 마침표’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한 존재가 완결짓지 못한 문장, 즉 못다 이룬 삶을 시각·청각적 이미지로 응축해낸 탁월한 형상화다. 미역 줄기를 볶는 행위를 ‘잘 떠나라고 정성껏 볶는 것’이라 명명하는 대목 역시, 애도의 의례를 조리 행위에 겹쳐놓는 발상의 참신함이 돋보인다. 화자는 부재를 직접 호명하는 대신 ‘그녀의 간격이 비어서 간이 슴슴하다’는 절묘한 언어유희로 상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슬픔을 절제된 감각의 언어로 다스리는 시적 태도를 견지한다. 마지막 연에서 ‘한 가닥이 냉장고로 돌아가 몸을 눕힌다’는 결구는 소멸을 거창한 사건이 아닌 사소한 정지의 순간으로 마무리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일상의 반찬 한 가지에서 출발해 한 존재의 부재 전체를 감각의 층위로 재구성해낸 이 시는, 소재의 참신함과 언어 운용의 정교함이 조화를 이루며 애도시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하는 성취를 보여준다.
이정호 시인의 시 「출구」
이 시는 지하철역 계단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사랑과 기다림이 완성되는 서정적 무대로 전환시킨 짧고 정갈한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는 시행의 배치와 절제된 언어 운용을 통해, 만남이라는 흔한 소재를 신선한 감각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문학적 성취를 인정할 수 있다. 시의 도입부, ‘행복은 먼저 와 /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표현은 기다림이라는 수동적 시간을 행복이 선점한 능동적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이는 기다림을 지루한 공백이 아닌, 이미 충만한 정서로 채워진 시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시 전체의 정서적 기조를 결정짓는다. 이어지는 ‘지하철은 / 사람을 밀어 올리고’라는 구절은 무심히 오가는 군중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깔아, 그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 기다렸다’는 화자의 목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대비의 기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이 시의 정점은 기다리던 대상을 ‘백발의 소년’이라는 모순어법으로 형상화한 대목이다. 늙어버린 육신에도 소년 같은 설렘을 간직한 존재로 대상을 규정함으로써, 화자는 시간의 풍화를 견뎌낸 사랑의 순수성을 압축적으로 증언한다. ‘계단 끝에서 / 봄을 털며 올라왔다’는 구절 역시, 겨울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봄이라는 생명력을 데리고 등장하는 존재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완성한다. 마지막 연의 ‘그 웃음 하나에 / 도시는 잠시 꽃을 피웠다’는 결구는 개인적 감정을 도시 전체로 확산시키는 과감한 스케일의 전환을 통해 짧은 시의 여운을 극대화한다. 최소한의 시어로 최대한의 정서적 파장을 일으키는 이 작품은, 오래된 기다림도 여전히 소년 같은 설렘일 수 있음을 증명하며 사랑의 항구적 순수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는 작품으로 값진 의의를 지닌다.
장석민 시인의 시 「허물」
장석민의 「허물」은 매미의 탈피라는 자연현상을 인간 존재의 자기 성찰로 확장시킨 사유 깊은 작품이다. 공원 산책로에 떨어진 매미 허물이라는 사소한 발견에서 출발하여, ‘허물’이라는 단어가 지닌 이중적 의미—벗어낸 껍질과 잘못이나 결점—를 절묘하게 겹쳐놓음으로써 언어유희를 넘어선 철학적 통찰에 도달하는 구성이 이 시의 미덕이다. 시의 전반부는 매미의 탈피 과정을 담담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밤새 내린 폭우에 떨어진 듯’이라는 구절은 자연의 무심한 폭력성 속에서도 생명이 감내해야 할 통과의례를 암시하며,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여름밤을 보냈을 터’라는 상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매미의 고투를 화자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감정 이입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찰은 ‘허물을 벗는 생명체들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다’라는 통찰로 수렴되며, 자연의 생리를 생존의 미학으로 격상시킨다. 이 시의 진정한 힘은 후반부, 시선이 자연에서 인간 존재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발휘된다. ‘그러나 허물을 벗지 못하는 생명체도 있으니’라는 전환구는 매미의 허물을 인간의 묵은 잘못이나 습관, 고집이라는 관념적 층위로 이동시키는 절묘한 시적 장치로 기능한다. ‘덕지덕지 때가 쌓여서 누더기가 된 것을’, ‘허물을 갑옷처럼 입고 있는 것일까’라는 구절은 자기방어를 위해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는 인간 심리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지는 세 개의 질문—‘벗는 법을 모르는 것일까’,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잊고 사는 것일까’—은 점층적으로 쌓여가며 자기 성찰의 밀도를 높이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허물’을 되짚어보게 하는 사색의 여지를 넓힌다. 마지막 행 ‘어쩌면 그냥 허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결구는 단정적 결론 대신 열린 물음으로 시를 마무리하며, 존재와 허물의 경계를 다시 한번 모호하게 흩트려놓는다. 이는 자기 갱신에 실패한 존재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자, 동시에 그러한 인간 조건에 대한 조용한 연민을 함께 품은 결구로서, 소박한 자연 관찰에서 출발해 존재론적 성찰로 나아가는 이 시의 여정을 깊은 울림으로 완성시킨다.
이미숙 작가의 수필 「서정의 주파수」
추억 속의 새소리들을 상징의 소재로 동원하여 효용성이 떨어지고 변질되는 서정의 요소들을 차례로 더듬어가는 기법으로 인심의 변화를 본질적으로 파고드는,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시골 동네에 가면 아직도 종달새 뻐꾸기 소리가 정겹게 들리는데, 도시에서 맞닥트리는 까치나 까마귀는 소음을 내고 공간을 어지럽히는 귀찮은 존재일 따름이다. 어린 시절 작가에게 산비둘기 소리는 ‘갓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던, 먼 동네 한 남자아이’를 떠오르게 하는 소리여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시골집 마당 아름드리 돌배나무에 깃들어 우는 소쩍새 울음소리 역시 ‘솥이 적어 밥을 짓지 못했다며 밤새워 우는 새의 비가(悲歌)’로 들려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했던 불편한 소리였다. 세월이 흘러 그 모든 것들이 괜찮아지고 보니 ‘효용성에 밀려 가만히 사라져가는 그 시절의 온기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세월 속으로 아득히 멀어져간 기억들과 그로 인해 파생됐던 고독마저도 하나의 가느다란 주파수였음이 깨달아진다. 그래서 작가는 못내 궁금하다. ‘세상의 속도가 빨라지고 숲이 깎여나가는 동안, 내 귀를 채우던 서정의 주파수들도 함께 지워진 것일까. 아니면 도시의 소음 속 어딘가에 여전히 낮게 깔려, 내가 듣는 법을 잊었을 뿐인 걸까.’ 동원된 소재들이 독자들에게 더러는 새뜻한 상징적 의미를 품어 일깨우기도 하는 좋은 작품이다. 다만 기왕에 착상이 잘 잡혔으니 분량을 약간 늘리고 플롯의 힘을 발휘하여 완성도와 설득력을 조금 더 키웠으면 좋겠다는 감상이다.
숙고 끝에, 상(喪)을 치르는 현장에서 무너지는 억장을 끝내 부여잡고 애달픈 감정을 거듭 삼키며, 회한이 무던히 요동치는 상황을 끝까지 관조적 시점으로 정리하고 차분하게 소묘하여 감동을 일궈낸 여현옥 시인의 시「가슴에 박힌 몇 장의 종이」를 2026.7월 이달의작품으로 선정한다. 8월 문봄 글밭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한다.
2026.8.22. 문학의봄작가회 이달의작품심사위원회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멋지세요 선생님
언제나 좋은 작품으로 빛내 주시는 선생님을 본 받고 싶습니다,
여현옥 선생님 문학의 봄 이달의 작품에 당선되심을 축하드립니다.^^
더 더욱 정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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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 선생님이십니다 박수
선정되심을 축하드립니다.
멋지십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