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무당거미
김중석
어제저녁 밤을 지새우면 짜놓았던
거미가 어망을
허공에 힘껏 던져놓았다.
능소화를 찾으려던 나비도
여왕벌에게 로얄제리를 받치려던
숫벌들도,
어둠을 좋아하던 바람 몇 장도
파르르 걸려있다.
무명의 물방울은
이미 만장처럼 펄럭 거린다.
게으른 낮달로
날마다 바다를 밟고 떠오르는
저 태양을
무상으로 맞이하던 나를
거미는 포획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석호
김중석
호수 위에 찍힌 고니의 발자국이
신의 눈물자국인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산다
파도의 흰 이빨이 물어뜯다 버린
바다의 상처라는 것도
사람들은 아득히 잊고 산다
부둥켜안고 있는 작은 물방울들이
봄을 잉태하기 위한
함성이라는 것도 누구도 모른다
너를 바라보는 나의 작은 눈빛이
오늘만이라도
너의 역사를 쓰는 사관이고 싶다
베란다의 석란
김중석
수십억 톤의 맹물을 먹고 밀어낸
0.1mm의 꽃대,
바다가 어둠을 깨며 태양을 낳는
신음소리다
그것은 늘 초심의 연둣빛이다
암매미들의 발정에
수컷매미들의 가슴이 터지는 오후
꽃대궁을 열어
어두움을 향해 당겨진 촛불 같은
꽃 하나 하얗게 구워 놓는다
수상한 바람 몇 송이가 서성거려도
괴석에 앉아, 또
다른 신선한 음모를 꿈꾸며
신발 끈을 동여매는 그의 억척은
땀이 마르지 않은 채
석양을 등에 업고 대문을 들어서는
어느 노동자의 뒷모습이다
꽃
김중석
두 송이의 꽃을 얻었다
한 송이는
매미가 시월의 강을 건널 때,
또 한 송이는
수수꽃다리가 필 때이다
시간이 나를 따라
생의 트랙을
수십 번 돌고 돌았다 그리고
밤새 바람이 몹시 불었다
네가 떨어질까 봐
어둠 속에 펼쳐 놓았던
근심의 돗자리
새벽이 와도 접지 못했다
방파제
김중석
해녀들이 물질하는 오후
바다 위에 길게 누워있는 네 허리를
검푸른 파도가 몰려와
네 앞에서 무참히 쓰러지고 있다
너는 정영 누구이기에
파도가 쓰러져도 아무 말이 없느냐
내가 파도가 되어 너를 흔들어도
아무 말이 없구나
내가 밤마다
회색빛 그리움을 바닷물로 절여도
그리움은 독처럼
연일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오늘은 너의 등을 밟으며 걸었다
너의 몸속에서 들리는 것은
경전을 읽는 소리,
바다로 떠난 너를 잊기로 한다
카페 게시글
신인상 소개 및 작품
나와 무당거미 외 4편 / 김중석
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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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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