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5월 2일 월요일, 맑음, 저녁 소나기
*걷기- 21째 날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ín del Camino)에서 아스토르가(Astorga)
*이동거리 : 23.5km.
*누적거리 : 524km.
‘비바람이 불건 눈보라가 몰아치건 뙤약볕이 내리쬐건 늘 해오던 대로 서슴없이 사는 것. 이것이 씩씩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다’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의 말이 생각난다. 남녀를 구분해서 배정된 4인실 숙소는 편했다.
그래도 아침 불을 켜는 시간은 오전 6시다. 짐을 정리하고 씩씩하게 숙소를 나선 시간이 오전 6시 38분이다. 아직 날은 밝지 않았다. 오래된 마을을 빠져나와 들판 길을 걷는다. 벽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가 반갑다. 시골길이다. 하늘은 회색, 수평 구름이 낮다.
서늘한 기운에 모자를 쓰고 단단히 차려입은 순례자가 앞서 간다. 좁은 잡목 숲을 가면서 초록이 드러난다. 잘 가구어진 농작물 가운데 급수탑이 예쁘다. 말없이 부지런히 걸어간다. 해는 떠올랐고 날은 이제 훤하다. 박목월의 시<나그네>가 생각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마을이 나타난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Órbigo) 마을이다. 마을 길도 돌로 깔려있어 견고해 보인다.
붙어 이어진 주택들도 같은 모양은 없지만 잘 어울려 살아가는 형제 같은 느낌이다. 돌로 지어진 성당의 첨탑에는 십자가는 없고 황새가 집을 지어 자리 잡고 있다. 오르비고 강이 흐르고, 울창한 검정 버드나무와, 신선한 사탕무, 감자, 과일이 자라는 곳이다.
이곳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여러 시대에 걸쳐 변형되었으며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가장 긴 다리다. 또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도 정신이 발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풍부한 역사적 사건들을 잊지 않으면서도 여러 세대에 걸쳐 순례자를 위한 중요한 마을로 변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송어요리란다. 그 중 송어 수프가 가장 유명하다.
3월에 열리는 송어 식도락 축제에서는 튀김, 훈제, 식초 절임, 월계수 잎 절임 등으로 다양한 송어요리를 맛볼 수 있다. 기사의 약속이 전해진다. 후안 2세 시절, 기사 돈 수에로 데 키뇨네스는 그의 연인인 도냐 레오노르 데 토바르와 기묘한 약속을 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매주 목요일 목 칼을 차고 다니기로 한 것이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거나 오르비고 강 위의 다리에서 한 달 동안 결투를 하기로 했다.
돈 수에로는 이 약속을 지키는데 지쳐서 싸움을 허락해달라고 왕에게 요청하고, 유럽 전역에 있는 여러 명의 기사들에게 자신이 목 칼을 벗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다. 이에 수많은 기사들이 싸움에 참가해서 그의 편에 서기도 했고, 그와 맞서 싸우기도 했다.
1434년 7월 10일부터 8월 9일까지 7월 25일 성 야고보의 축일을 제외하고 약속대로 한 달간 창 싸움이 이어졌다. 300개의 창이 부러졌고 기사들 중엔 부상자도 있었고, 한 명은 사망하기까지 했다. 마침내 결투가 끝나자 돈 수에로는 목 칼을 벗었다.
그 후 그는 자유의 상징인 도금된 은 족쇄를 성 야고보에게 바치기 위해 산티아고로 순례를 떠났다. 현재에도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그가 바친 족쇄가 보존되어 있단다. 이 결투 중에 사망한 한 명의 기사는 기독교식 무덤에 잠들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톨릭이 이러한 종류의 결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돈 수에로는 24년 뒤 이 다리 위에서 또 다른 결투를 하다가 다른 기사의 손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돈 수에로가 벌인 결투를 기리는 축제가 매년 6월의 첫 번째 주말에 열린다.
이때에는 도시 전체를 중세 식으로 꾸며놓고 중세 식 시장을 열고, 마을의 사람들이 중세 복장 축제를 즐긴다. 명예로운 걸음의 다리 (Puente del Passo Honroso)에 도착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스무 개 남짓한 아치로 건설된 다리다.
최초의 이름은 알 수 없고, 돈 수에로 기사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투를 치렀다는 이야기에서 다리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3세기의 아치다. 다리 중간에는 아직까지 당시의 사건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이 다리에는 이런 기사도 행위와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르반테스에게 <돈키호테>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452년에 서고트 족이 스와비아 인들을 학살했던 전투를 말없이 목격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알폰소 3세가 이끄는 그리스도교 군대와 무어인들이 맞서는 대결의 장이기도 했다. 또한 로마 시대 이래로 가축을 운송하는 통로의 일부로서 무역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 순례자들에게 강을 건너는 통로로 이용된 것은 굳이 말 할 필요도 없다.
다리 왼쪽에 마상 창 겨루기 시합장이 보인다. 그 뒤로 심어진 미루나무 숲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다리를 건너 돈 수에로 데 킨뇨데스(Don Suero de Quiñones)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쉬어간다. 다리를 건너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식당이다.
빵과 커피는 4유로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올리브 나무도 만나고 조경이 잘된 집과 조형물 십자가도 만났다. 박물관 같은 오래된 집도 보인다. 세례자 요한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도 지나간다.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에 속해 있던 이 성당은 현대에 재건축되었다. 오늘날도 파사드에서 찬란히 빛나는 기사단의 십자가를 볼 수 있다. 알바레스 베가 거리(Calle Alvarez Vega)를 걸어간다. 광장에는 돌 십자가 모형이 나온다.
오래된 승용차도 장난감처럼 보인다. 거리에는 순례자들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산 미겔 알베르게(Albergue San Miguel) 앞에 멈췄다. 오래되 보이는데, 유명한 것 같다. 입구 장식이 예쁜 숙소다. 마을 끝에서 순례 길은 각기 양쪽으로 갈라진다.
오른쪽 방향은 비야르 데 마사리페에서 출발한 순례자가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로 가는 코스, 직진 방향은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서 출발한 순례자가 가는 코스다. 풍경은 오르비고 방향으로 걷는 길이 더욱 좋단다. 우리는 도로 옆을 걷는 직진 방향을 선택했다.
들판 시골길을 간다. 작은 자갈길이다. 낮은 스프링클러에서는 물이 분수처럼 나온다. 교통 표지판에는 N-120 과 아스토르가 방향이 표시되어있다. 275.8km 표지석도 만났다. 하얀 작은 들꽃들이 풍성하게 가득 피었다.
포장된 오래된 길을 걸어 약간 언덕길을 올라간다. 황토벽 절개지에는 구멍들이 보인다. 작은 구멍은 새집이고 조금 큰 구멍은 토끼집이란다. 흰색 꽃이 유난히 빛이 난다. 포장된 잡목 숲길을 간다. 유채꽃 밭이 있고 오른쪽에는 마을이 보인다.
낯익은 나무에 흰 꽃들이 피어있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직선 길, 옆으로 잡목들이 가득하다. 지도 판이 보인다. 오스피달 데 오르비고에서 산 후스토 데 라 베가까지 순례길 안내도다. N-120 도로와 약간 멀어지는 곡선으로 걸아 간다는 표시가 보인다.
평지 황토밭이 넓다. 자갈길을 걷는다. 사슴이 뛴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수평으로 펼쳐진 밀밭 뒤에는 소나무 숲이 넓다. 조개 문양이 새겨진 표지 석 위에 지도가 있고 그 위에 커다란 자갈이 있다. 269.2km라는 표지 석을 만났다.
언덕 위를 무심코 올라서니 언덕 끝에 커다란 돌 십자가가 보인다.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Crucero de Santo Toribio)란다. 5세기의 아스토르가 주교였던 성 토리비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스토르가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아스토르가로 향하는 높은 언덕에 앉아 샌들의 먼지를 털면서 "아스토르가 소유라면 먼지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주교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 아스토르가 사람들은 이 언덕에 그를 기리는 십자가를 세웠다.
이 십자가는 성 토리비오와 성모를 상징하는 석조 작품으로 이 십자가가 세워진 이후 작은 성당이 생겼고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십자가가 세워진 언덕에서는 아스토르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망이 좋아 레온 산을 배경으로 트루에르토 강이 또렷하게 보인다. 이제 언덕을 내려간다. 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순례자들이 많이 보인다. 큰 마을의 지붕들이 가득하다.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영감님이 있다.
유명인사인 것 같다. 책에서도 영상으로도 본 것 같다. 노래 소리보다 기타를 치는 손놀림이 더 화려해 보인다. 마을을 향해 세워진 동상이 있다. 물 마시는 순례자(La Calabaza del Peregrino) 상이다. 순례자의 호리병 조형물과 식수대가 함께 있다.
왼쪽 식수대 꼭지를 틀면, 호리병에서 물이 나온다. 키프러스 나무들이 함께 세워져 있다. 산 후스토 데 라 베가(SAN JUSTO de la VEGA)마을 간판이 보인다. 마을이 자동차 길과 함께 간다.
산 후스토 데 라 베가는, 순례자와 관광객에게 완벽한 시설을 제공하는 곳이다. 마라가테리아 지방의 수도인 아스토르가 인근의 마을이며 국도의 샛길에 위치해있다. 이 마을은 대도시에 들어서기 전 조용한 휴식을 선사한다.
성인 후스토와 그의 형제였던 성인 파스토르가 이 마을에서 출생하여 마을의 이름을 따왔다. 반(反)나폴레옹 국민운동의 중심적 지도자였던 스페인의 정치가 호베야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18세기에 프란시스코회 수사복을 만드는 산업이 번성했다고 한다.
카페 바 OASIS가 눈에 들어온다. 목을 축일겸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많다. 그냥 둘러보고 나왔다. 마을의 시청사 시계는 12시 08분을 가리킨다. 4개의 깃발이 보인다. 약국에는 18℃ 라는 기온도 알려준다. 카페 Venta Chaqueto는 예쁘다.
오래된 기와에 장식용 흰색 자전거와 탁자가 편안함을 준다. 산토스 후스토와 파스토르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16세기에 지어졌으나, 이 후 여러번 개축된 흔적이 남아있다.
성당 내부에는 그레고리오 에그 파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성 후스토 조각상이 있다. 마을 가운데 있는 텃밭에서는 농부가 일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마을 사람이다. 강이 있는 다리가 보인다.
몰라데 시냇가(Arroyo de la Moldera) 위에 세워진 예쁜 아치 돌다리를 건너간다. 멀리 언덕 위에 마을이 보이고 중앙에 우뚝 솟은 교회가 보인다. 아스토르가 마을이다. 멋진 마을이다. 사진에 나오는 장면 같은 마을이다. 한국 타이어 간판이 반갑다.
하얀 구름 위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오래된 로마교 다리를 건넌다. 흙담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밭을 지난다. 철길 위에 만들어 놓은 육교가 특이하다. 사람도 쉽게 걸어가고, 자전거가 갈 수 있도록 지그재그로 만들어 놓은 육교다.
육교를 걸으며 사진 찍기를 한다. 멀리 마을과 눈아래 철길이 시야에 들어온다. 언덕 위 마을을 올라간다. 로터리에 ASTVRICA AVGVSTA 는 글씨 모형이 있다. 아스토르가의 다른 이름이란다. 아마도 라틴어 인 것 같은데 발음도 잘 모르겠다.
언덕 마을은 수도원 같은 4성급 호텔 건물이 멋지게 있는데 궁전같다. 멋진 마을이다. 층층 성벽으로 올려진 마을이다. 마을 벽 장식이 예쁘다. 경사지를 올라 드디어 성내로 들어섰다. 바로 숙소(Albergue de Peregrinos)를 만났다.
프란시스코 광장을 앞에 두고 있다. 오른쪽에 산 프란시스코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숙소 바로 앞에는 순례자 동상(Monumento al viajero) 있어 반가웠다. 지팡이를 들고 가방을 등에 지고 있는 모양이다.
숙소는 성당 소속인 것 같은데 나이 많은 영감님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 청결하고 조용한 숙소에 스텝들은 친절하고 여유가 있다. 남녀 구분된 4인실 방을 배정 받았다.
하루에 7유로란다. 벽에는 아스토르가의 설산 배경, 석양, 야경의 사진이 걸려있다. 짐을 풀어놓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