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 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첫 문단
박상륭의 문체는 이 한문단으로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으리라.
작가 연보
1940년 전북 장수군 장수면 노곡리에서 출생.
1963년 서라벌예술대학 졸업. 「아겔다마」가 사상계사 제5회 신인문학상 에 가작으로 입선.
1964년 경희대 정치외교과 중퇴. 「장끼전」으로 사상계사의 추천을 받 아 문단에 등단.
1965년 「강남견문록」을《사상계》에, 「이월삼십일」을《세대》에 발표.
1967년 사상계사에 입사. 「시인 일가네 겨울」을《사상계》에, 「하원갑 섣 달 그믐」을《세대》에 발표.
1968년 「열명길」을《사상계》에, 「산동장」을《현대문학》에, 「나무의 마 을」을《월간문학》에 발표.
1969년 「자정녀」를《세대》에, 「경외전 세 편」을《현대문학》에, 「7일과 꿰미」를《아세아》에 발표. 사상계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
1970년 「천야일화」를《사상계》에, 「세 변조」를《세대》에, 「늙은 것은 죽 었네라우」를《월간문학》에 발표.
1971년 박상륭소설집을 민음사에서 출간. 「늙은 개」를《문학사상》에, 「최판관」을《월간문학》에, 「산북장」을《현대문학》에 발표.
1972년 열명길․유리장을 삼성출판사에서 출간. 「숙주」를《세대》에 발표.
1973년 「심청이」를《현대문학》에, 「왕모전」을《문학사상》에 발표.
1975년 죽음의 한 연구를 한국출판사에서 출간.
1982년 3월 캐나다에서 서점을 개업.
1986년 중단편집 열명길, 장편 죽음의 한 연구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1990년 칠조어론 1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1991년 칠조어론 2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1992년 칠조어론 3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1994년 칠조어론 4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1995년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
2017년 7월 1일 사망.
이 작가 연보는 1995년 즈음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 이후 주요 작품은 빠져 있다. 사실은 주로 논의되는 작품이 상기의 작품들이기는 하다. 그 이후 주요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이밖에도 수필집이 몇 권 있을 것이다. 나는 "죽음의 한 연구"와 "소설법"을 읽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 사람의 작품을 좋아하리라고 추측하고는 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이 사람의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野하지가 않다. 그러나 박상륭이 평가 받고 있고, 평가 받을 가치가 있는 작가인 것만은 분명하다.
덧붙이자면, "세대"라는 잡지는 문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잡지이다. 최인훈의 출세작인 '회색인'이 이 잡지에서 나왔다. 그밖에도 당대 참신한 작품을 쓰고자 하는 작가들이 이 잡지에 몰렸다. 또한 그 중 한 명이 박상륭이다. 좌파 잡지의 성격이 강했고, 당대에는 잡지별 성격이 강했을 시기인데, 박상륭 소설은.....
박상륭 작품 연보와 김경수의 비평을 올린다.
첫댓글 읔 ;; 지금 봤는데 어째 '문체'에 대해서 비아냥거린 것 같자나 ;; 혹시라도 오해하지 말길 윗글은 들뢰즈카타리가 정의한 '소수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임...
아, 저도 작년에 정말 우연한 기회에 만난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인 문체에 대해 완전히 다시 생각하게 만든 분이었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만큼 야할 수가 있나 싶었던 분인데, 야하지가 않다고요??? 의외의 의견이라서 뭔가 뼈있는 말일거라 싶어지네요. 혹은 문체가 야하지 않단게 아니고 내용이 그렇단건지...
제가 야하다는 말을 쓰면서 생각한 것은 논어 옹야편에서 질이 문을 넘어서면 야하다 質勝文則野 입니다(冶하다는 다른 말입니다). 반대로 야하지 않다는 것은 문질이 문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고, 박상륭 문장의 진의가 박상륭 문채의 세공 만큼이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하여 일종의 회의를 제가 갖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감일뿐 이 이야기는 작품을 직접대면하고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려 뭉그려뜨렸습니다. //물론 공자가 말한 문은 문채가 아니라 인간성품의 형식인데 제가 전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 말의 묘미가 생기나, 먼 훗날에야 이 논어편에 대한 지극히 허술한 소론을 쓸 날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