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불국토는 별도로 장엄할 필요가 없다. 불국토는 더없이 완전하다. 더 이상 손 댈 곳이 없다.
어떤 장엄이 따로 필요한 곳이라면 그곳은 불국토가 아니다.
스스로 완전한 곳 그곳이 불국토요 정토다.
그러므로 보살은 정토를 장엄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 장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장엄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생소하다. 그런 말이 필요 없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불국토며 정토이기 때문이다.
불국토, 정토는 어떤 곳인가. 부처님의 땅이며, 깨끗한 땅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땅이란 어떤 특정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공간이 아니다.
만약 어떤 특정한 공간을 가지고 정토라고 했다면 그곳은 더 이상 정토가 아니다.
정토는 영역이 정해지지 않은 곳이다. 별도로 경계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
정토의 경계를 긋는 순간 이미 정토는 사라지고 만다.
깨달음에는 시공(時空)의 차별이 없다.
하물며 어떤 특정한 공간을 가지고 정토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어떤 지역을 정토라고 했다면 그 지역에서 벗어난 곳은 예토(穢土), 즉 더러운 땅이 될 것인데,
그렇게 깨끗하고 더러움을 나누고, 이쪽 저쪽을 나누어 놓고
그 가운데 깨끗한 쪽을 택하는 그런 상대적인 곳을 가지고 어찌 정토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부처는 차별이 없다.
깨달음에는 그 어떤 나뉨도 없고, 극단도 없다.
그러니 정토를 장엄한다는 말은 어리석은 중생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보살은 정토를 장엄할 이유가 없다. 그들 자체가 그대로 정토이다.
정토를 장엄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온갖 정토를 무한히 장엄하고 있다.
정토의 장엄은 정토의 장엄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토의 장엄이다.
(금강경과 마음공부 p.194-195 중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