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두 지부 연수에서 다루면서 이런저런 조사도 하고 집행국장들과 의논도 하였는데요.. 지금의 시행상황은 좀 오리무중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교육청마다 연수를 한 곳도 있고 안 한 곳도 있을 텐데 그 연수가 대부분 <DLS 연수 + 독서지원시스템>이에요. DLS는 해마다 관리자가 진급을 시켜줘야 하는데 이 업무가 복잡하고 어려워서 담당하는 분들이 많이 헤매나봅니다. 하긴 도서관 담당자도 계속 바뀌고 담임들 협조며 해서 복잡하겠지요. 제가 연수 자료를 봤는데 6학년 졸업시키는 걸 먼저 하고 5학년->6학년, 4학년->5학년 순차적으로 해야 하고요 한 학년에 한 사람이라도 기록이 엉키면 안 됩니다. 같은 반번호에 두 이름이 들어가게 되니까 안 들어가지겠지요. 근데 졸업생 중에 반납 안 한 친구가 있으면 졸업을 못 시켜요. 1학년 아기들한테는 담임샘이 아디랑 비번 적어서 보내줘야죠.. 야튼 그래서 신학기 때면 보통 DLS연수가 잡히는데 거기에 시스템 안내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청 쪽으로 검색해서 잡히는 건 이런 연수를 한 번 했다, 어디 학교도서관에 장서점검을 해서 시스템 시행을 위한 준비를 갖췄다 정도의 기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당장 학생들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준비시키는 일부터 쉽지가 않아 보입니다. 이 일들은 독서지원시스템 이전에 DLS 이용에서도 문제로 지적돼온 것들이랍 니다. 아이들 아디랑 비번 생성하고 진급시키고, 학교 장서점검해서 시스템 탑재내용과 연결이 되게 하고.. 그럼 학교추천도서, 학년별 추천도서를 점검하겠지요. 시스템에 KERIS에서 제공하는 추천도서가 엄청난 수량으로 있지만 우리 학교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는 자료들을 쓸 수 있게 해야 할 거고요 그나마 이런 일도 학교도서관을 늘 지키고 일할 인력이 있는 곳이나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다 되더라도 아이들한테 거기서 기록하는 방법을 안내해야 하는데 젤 쉬운 독서퀴즈 푸는 거부터 다른 독후활동기록들.. 이건 또 누가 하냐, 도서관담당자가 하냐 담임이 하냐 그러니 가정통신문 몇 개 뿌리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이 시스템이라는 게 지금 학교독서교육 현실에서는 참 어이없는 값비싼 첨단설비 같습니다. 기술적인 관리 어려워, 관리 인력도 없어, 독서교육 맡을 사람도 없어, 책 읽을 시간 있는 애들도 없어...
이 시스템에 날개를 달아준 게 입학사정관제인데 입학사정관제의 명분은 공교육정상화거든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배운 걸로 평가한다는 겁니다. 시험 성적만 갖고 안 뽑고, 논술처럼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걸로 안 하고 해외연수 같은 사비 들여 하는 걸로 평가 안 하고.. 그러자면 비교과영역을 학교생활 안에서 지도해야 하는데요 그 기반이 얼마나 취약합니까. 비교과영역을 창의적체험활동종합시스템이라는 걸로 관리하는데 그 핵심 영역은 진로, 자율, 봉사, 동아리입니다. 올해부터 고1들은 창의적체험종합활동을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진로고, 그래서 교과담당을 빼서 진로담당을 만들고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학교들에서 진학지도 방침을 학부모들한테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비교과영역은 책임 못 지고, 어차피 성적 안 나오면 그것도 소용없어지니까 하던 대로 공부나 열심히 시킬 거니, 나머지는 학부모들 알아서 하라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제의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여건은 그렇습니다. 그나마 특목고 같은 데서나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성공한 케이스들 소개하는 정도지 일반 공립학교에서는 쉽지가 않아 보여요. 동아리활동은커녕 예체능도 다 죽여놓은 상황 아닙니까.
그럼 독서는 어디 있나..실제로 중요도에서 많이 밀립니다. 생각해보세요. 진로와 적성을 평가하는데 책 몇 권 읽은 거 갖고 뭘 평가하겠습니까. 진로 관련 구체 활동, 동아리나 자율활동이나 그런 게 훨씬 중요한 평가요소가 됩니다. 책 읽은 기록은 평가요소로 포함할 수 있다는 거지 중요도가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책 읽은 기록 전체를 쓰는 게 아니라 진로 관련성을 보여줄 수 있는 한두 권 기록이고 기록 자체보다는 면접에서 입학사정관의 질문에 답변하는 게 평가 근거가 되지 기록 자체 갖고 평가할 사정관은 없다는 것이고요. 제 솔직한 심정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시스템에다 돈 퍼부은 것 자체를 국정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기 아이 적성과 진로를 보아가며 어떤 전형이 좋을지, 그 전형에서 중요한 평가요소는 뭔지 알아보고 할 건 하고, 필요 없는 건 안 하면 됩니다. 특히 독서는, 평소 생활에서 중요한 거지 대입 때문에 가치가 더 높아지는 건 별로 없는 게 맞습니다. 앞에서 보듯이요..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는 그처럼 줏대 있는 학부모들이 많지 않아요. 대입 평가요소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만 가지고 그걸 안 하면 대학 가기 불리하다거나, 그걸로도 대학 갈 수 있다거나 해서, 공포감을 조성하고 헛바람을 불어넣는 사교육업체들에 마냥 휘둘려버리기 십상입니다. 결국은 독서를,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냐 아니냐, 각자 분명한 자기 판단을 가져야 하고 학교에서 모든 아이가 자연스럽게 독서를 배워서 평생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길러줘라, 그럴 여건을 만들어라 자꾸 요구해야 합니다. 각자 찢어져서 이걸로 우리 애 진학에 얼마나 이로울까 계산하고 대입에 반영이 되느냐 안 되느냐 목을 매고 눈에 뵈지도 않는 가능성에 매달려 질질 끌려다니고 학교에서 안 되면 내 돈 들여서라도 우리 애는 안 빠지게 해야지 그럴 게 아니고요.
올해 교육청들에서 학교에서 독서토론수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고 여러 시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독서토론논술이란 말을 많이 쓰더니, 논술에 대한 반감이 워낙 높아서 논술은 조금 수그러든 것 같아요. 학교도서관 지원 시책도 늘어났습니다. 학교 독서교육이라는 게 지금 교육에서 중요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는 거지요.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초점도 독서토론수업 쪽으로 잡혀 있습니다. 이런 걸 독서 문제로만,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으로만 연결해서 좁게만 볼 일은 아닙니다. 공교육정상화, 입학사정관제 도입, 교육과정의 변화..더 큰 틀의 변화가 있어요.
지금 교육 상황이 개별적인 대책들로 땜빵이 안 되는 상황이고, 학교를 버리지 않는 한은 커다란 변동을 치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와 있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입학사정관제라는 게 우리가 ‘선진국’처럼 그런 제도를 시행할 수준이 돼서가 아니라 우리 학교가 시험 때문에 더 어떻게 할 수 없게 망가져버렸기 때문에 방향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는 합의가 암묵적으로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어요. 시험만 갖고도 아무 문제 없는 부류들, 특수층을 위한 교육시스템에 돈이 없어서라도 합의할 수 없고,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지금 교육은 사교육이 다 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 개혁은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판가름 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교육에 집어삼켜진 교육분야들을 얼마나 학교가 빼앗아올 수 있는지 말입니다. 학부모들도 학교를 탓하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안 되고 학교가 바뀔 수 있게 나부터 생각을 똑바로 가지는 노력을 해야 하고 우리는 학교에서 독서가 제대로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요. 변화의 압력은 엄청나게 높은데 변화를 위한 준비는 없었잖아요. 철학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시스템이 다르면 접근법이 다르고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가 책읽어주기에서 독서의 철학을 새롭게 세웠는데 많은 도서관과 학교에 가서 갈등이 있었지요. 표면상으로는 방법이 달라서 문제라 했을지 모르나 철학이 다른 게 문제였어요. 철학이 다르면 방법 갖고 다투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도서관과 학교에서 독서교육의 목적을 뒤엎는 변화가 일어나야 할 거고 그러면 철학만 아니라 방법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철학이 올바르다는 걸 접근법과 방법이 우수하다는 걸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학교에서 배제당하거다 주목받지 못했던 수업들이 새롭게 주목될 거고, 교사, 사서, 자원활동가들이 어렵게 발전시켜온 방법들이 학교로 당당하게 들어가 정규교육과정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어야 할 거예요. 우리의 활동도 바야흐로 그렇게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