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조건
오늘 복음 묵상 중 이영근 신부님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하시는데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3개의 행동하는 동사로 표현하시고, 행동실천이
따른다고 하십니다.
<첫째 동사>는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미워하다’(μισει)는 동사입니다. 너무도 매정하게 들리는 ‘미워하다’는 이 동사의 뜻은 제대로 알아들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의 방언인 아람어에는 비교급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사랑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에, ‘미워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미워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누구보다 뒤에 사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하다’는 말은 ‘앞세워 사랑하다 혹은 선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는 결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무시하라는 가르침이 아닌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분께서 부모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금지하거나 적대시 하실 리 만무합니다.
결국, 세상의 일보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일 중에 더 궁극적인 가치를 앞세우고 더 우위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곧 부모형제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더 앞세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말씀한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는 말씀입니다.
<둘째 동사>는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지다’(βασταξω)라는 동사입니다.
여기서, ‘지다’라는 동사는 억지로 마지못해 어깨에 지는 짐처럼, 압박감에 눌려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짊진 자 다 나에게로 오라’고 하신 분께서 짊을 덜어주시기는 커녕 더 무겁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다’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끌어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어머니가 아기를 품듯, 소중하게 자의로 스스로 품는 것을 말합니다. 곧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와 함께 오라는 말씀이요, 십자가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동사>는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버리다’(αποτασσεται)라는 동사입니다.
‘버리다’의 의미는 단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 자신을 버리고 욕심을 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의 뜻은 ‘거부하다’, ‘거절하다’, ‘부인하다’입니다. 곧 자신의 뜻을 부인하는 것이요, 자신에게 신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요, 하느님의 권능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으로 ‘바치다.’, ‘가납하다.’를 뜻합니다. 쓸 데가 없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익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을 본래의 주님께 ‘향하여’ 봉헌하는 것이요, 건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 묵상글 전문 ===
201104. 이영근 신부님.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하십니다. 그 세 가지 조건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3개의 동사입니다. 동사는 행동하는 것을 표현합니다. 따라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의 행동실천이 따릅니다.
<첫째 동사>는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미워하다’(μισει)는 동사입니다. 너무도 매정하게 들리는 ‘미워하다’는 이 동사의 뜻은 제대로 알아들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의 방언인 아람어에는 비교급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사랑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에, ‘미워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미워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누구보다 뒤에 사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하다’는 말은 ‘앞세워 사랑하다 혹은 선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는 결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무시하라는 가르침이 아닌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분께서 부모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금지하거나 적대시 하실 리 만무합니다.
결국, 세상의 일보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일 중에 더 궁극적인 가치를 앞세우고 더 우위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곧 부모형제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더 앞세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말씀한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는 말씀입니다.
<둘째 동사>는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지다’(βασταξω)라는 동사입니다.
여기서, ‘지다’라는 동사는 억지로 마지못해 어깨에 지는 짐처럼, 압박감에 눌려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짊진 자 다 나에게로 오라’고 하신 분께서 짊을 덜어주시기는 커녕 더 무겁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다’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끌어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어머니가 아기를 품듯, 소중하게 자의로 스스로 품는 것을 말합니다. 곧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와 함께 오라는 말씀이요, 십자가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동사>는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버리다’(αποτασσεται)라는 동사입니다.
‘버리다’의 의미는 단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 자신을 버리고 욕심을 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의 뜻은 ‘거부하다’, ‘거절하다’, ‘부인하다’입니다. 곧 자신의 뜻을 부인하는 것이요, 자신에게 신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요, 하느님의 권능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으로 ‘바치다.’, ‘가납하다.’를 뜻합니다. 쓸 데가 없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익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을 본래의 주님께 ‘향하여’ 봉헌하는 것이요, 건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오니 주님,
제자인 저희가 당신보다 그 무엇도 앞세우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 무엇보다 앞서, 항상 당신을 앞세우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주님!
당신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당신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을 따르기보다 당신을 따르며, 당신만을 바라게 하소서.
제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 당신의 뜻을 따르며,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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