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의 어른이 되어 읽기 좋은 동화 5 정여울·작가
나는 ‘인어공주’의 슬픈 결말을 사랑한다. 어른이 되어 깨달았다. 내가 디즈니의 에어리얼보다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백만 배쯤 사랑한다는 것을.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멋진 왕자와의 결혼만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평탄하게 인어로 살아가는 300년과 온갖 파란만장한 고통을 겪지만 결국 ‘불멸의 영혼’을 얻는 인간의 삶. 그 사이에서 인어공주는 불멸의 영혼을 선택한다. 디즈니의 에어리얼은 왕자와의 결혼과 아버지의 허락과 달콤한 해피엔딩을 선택했지만,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걸을 때마다 온몸을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과 가족들과의 영원한 이별과 물거품이 되어도 끝내 사랑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인어공주가 ‘인어냐 인간이냐’가 아니라 ‘나답게 살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갈림길에서 끝내 ‘나다움’을 선택했다는 점이 좋다. 정여울·작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육지와 바다를 통해 상상계와 실재계를 아주 멋지게 표현하고 있어요. 인어는 바닷속에서만 살면 300년 동안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죠. 그곳이 바로 상상계라면, 상징계는 바다 위 육지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인어공주는 바닷속 행복을 뿌리치고 육지로 올라와요. 새로 생긴 다리로 칼로 찔리는 듯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인어공주는 왕자를 위해 기꺼이 춤을 춥니다. 사랑을 자신의 고통마저 감수하는 세계가 상징계라고 볼 수 있어요.”
상상계는 아이들의 세계, 상징계는 어른들의 세계. 그렇다면 라캉의 정신분석학 속 ‘실재계’는 무엇일까? “단 하나의 기쁨을 위해 천 개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 정여울 작가는 실재계를 이와 같이 같이 설명했다.
“왕자에게 버림받은 인어공주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돼요. 동트기 전 다른 이와 결혼한 왕자의 심장을 칼로 찔러 그 피를 발에 적셔 바다로 돌아가야 하죠. 하지만 인어공주는 칼을 바다에 버리고 ‘물거품’이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 사라지는 선택을 합니다. 상징계의 고통을 뚫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 그게 바로 실재계라고 할 수 있어요. 베토벤이 귀가 먼 상태에서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고흐의 작품이 몇 세기가 지나 사람들이 사랑받는 것 역시 실재계죠. 노력이나 재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초인적인 경지라고 볼 수 있어요.”정여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