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오늘은 이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을 공적으로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公顯) 대축일’입니다. ‘공현’(Epiphania)이라는 말은 ‘감추어진 것이 공적으로 나타나다’, ‘자신을 열어 보이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성탄이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말한다면, 주님의 공현은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밝히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말씀이 인성(人性)을 취하여 사람이 되시어(요한 1,14) 하느님을 우리 인간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을 공적(公的)으로 구세주로 드러내십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님의 공현을 다음과 같은 세 사건을 통해 기념합니다. ① 첫째는 동방박사가 하늘에 떠 오른 큰 별을 보고 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분께 경배드리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찾아온 ‘삼왕내조축일’(三王來朝祝日), ② 둘째는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내려오시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신원(身元)이 드러나는 주님 세례 축일, ③ 셋째는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사용되는 물을 하느님 나라의 기쁨의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표징을 행하심으로써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음(요한 2,1-11)을 기념합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마태 2,10)
“ἰδόντες δὲ τὸν ἀστέρα ἐχάρησαν χαρὰν μεγάλην σφόδρα.” ‘더없이 기뻐하였다.’로 번역된 ‘χαρά μεγάλη’를 직역하면 ‘큰 기쁨’입니다. 이 표현은 마태오 복음에서 오늘 복음외에 그분의 부활을 체험한 여인들의 반응에 또 한 번 사용됩니다.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χαρᾶς μεγάλης’)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마태 28,8) 이 표현을 통해 마태오 복음사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참된 기쁨이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임을 명백히 제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서 기쁨을 찾나요?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 위대한 임금이 태어나셨음을 알고 그분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준비합니다(마태 2,11). 이를 통해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우리가 1 독서와 화답송에서 읽은 이사야 예언서와 시편의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이사 60,5ㄷ-6)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시편 72,10-11)
교회 전승에 의하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 명의 동방박사들의 이름은 멜키오르(Melchior), 발타사르(Balthasar), 카스페르(Casper)입니다. 성화(聖畫) 안에서 멜키오르는 노년(老年)의 백인(白人)으로, 발타사르는 중년(中年)의 흑인(黑人)으로, 그리고 카스페르는 청년(靑年)의 황인(黃人)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통해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에페 3,6)는 오늘 제 2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세기 경 프랑스 리옹의 주교였던 이레네오 교부는 ‘황금’은 아기 예수님의 왕으로서의 위엄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던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그리고 죽은 사람의 시신에 바르는 약품인 ‘몰약’(沒藥, Myrrh)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고 해석했습니다.
현대 신학자 칼 라너(K. Rahner)는 황금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유향은 하느님을 향해 올리는 우리의 정성스러운 기도이자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크나큰 그리움을, 몰약은 우리가 하느님께 보여드려야 할 우리 삶의 고통과 상처를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기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나에게 삶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기꺼이 나누는 삶, 그리고 비록 삶에 지쳐 힘들더라도 힘든 그 삶의 노력을 바친다면 그것이 우리가 아기 예수님께 드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으로 오늘의 강론을 마무리합니다.
“인간의 욕구가 기도를 자극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어떤 성과와 결과를 내놓고 자신의 신앙 정도를 판단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안에 품고 있는 갈망과 희망을 주님 앞에 내어 드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의지를 보시는 것이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멘.
첫댓글 묵주에기도 빛에신비2단에
카나가 궁금했는데 신부님에 카페강론에글에서 알게되어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