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끌어 안았던 신동문(1927~1993) 시인. 그의 올곧은 삶과 문학의 여정을 반추하는 평전이 나왔다. 최근 김판수(사진·☏010-3286-3169)씨가 발간한 ‘시인 신동문 평전’을 통해 삶과 문학이 하나였던 신 시인과 만나보자.
신 시인의 뒤를 이어 단양군 소백산 자락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씨는 독자로서 신 시인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생이던 1980년대 중반 서울 청계천 고서점 거리에서 4.19혁명을 격정적으로 노래한 시인의 작품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 최고정치지도자의 무능함을 풍자한 ‘비닐 우산’, 지식인의 무기력함을 참회하는 ‘내 노동으로’ 등과 만났다.
시인의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는 눈과 문학적 감각에 매력을 느낀 김씨는 그 길로 단양에
서 생활하고 있던 신 시인을 찾아간다. 당시 김 시인은 독재정권에 밉보여 수차례 필화를 겪은 적이 있고, 필화사건 후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단양의 오지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88년 가을,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을 시작으로 그는 몇 차례 단양으로 내려가 신 시인을 만났다. 특히 시인이 작고하기 1년 전에 인터뷰 형식을 빌려 지금까지 그를 둘러싸고 있던 무수한 소문들, 즉 ‘절필’, ‘필화사건’,‘은둔’ 등에 대한 신동문의 진솔한 고백을 들게 되었고, 그것이 근간이 되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고백한다.
책은 △1장 남한강 혹은 ‘신 선생’의 터전 △2장 결벽이 키운 열정 △3장 저항시대 △4장 꿈과 열정 △5장 시한부 삶에서 시와 삶을 말하다 등 모두 5장으로 구성돼 있다. 김씨가 시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나 경험담, 신 시인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작품까지 시인에 대한 모든 것이 실렸다.
이 책은 그동안 잊혀온 신동문의 시인, 출판인, 논객(저널리스트), 농부, 침술가로서의 삶을 재조명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삶이 실제로 다른 부분이 많으며, 그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 가운데 적잖은 부분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 “신동문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시나 산문을 자주 썼다가 고문과 협박을 받은 끝에 절필한 채 숨어 살아야 했다”는 식으로 요약되는 소문들이 그의 후반기 삶을 옥죄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힌다. 실제로 신동문은 그런 헛소문 때문에 생의 후반기에 혼자 꽤 심하게 괴로워했고,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신동문의 삶을 은둔이나 불행이라는 ‘언어의 감옥’으로부터 해금시켜보고 싶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독재로부터 자유로웠던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보리죽에 보리떡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판국에 말이라도 마음껏 제대로 하고, 글이라도 소신껏 쓰면서 자유롭게 살아야 했는데, 당시의 현실이 그러하지 못함을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권력에 저항하는 시를 쓴 까닭’ 중 일부분이다.
김씨는 “시인이 5.16쿠데타 이후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시를 잇달아 쓰고 발표한 연유에 대해 ‘독재가 현실의 삶이기 때문’이었다는 고백을 들었다” 며 “시를 특별한 사명감이나 의무감으로 쓴 적이 없다고도 한 시인과의 대화 내용은 시인의 성품에 대해서 짐작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삶과 문학이 하나였던 시인을 삶의 모습은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며 “신동문 시인은 청주와 단양에서 그의 삶과 문학을 완성했다. 지자체에서도 그의 문학을 조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64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한 그는 고려대 정지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 단양의 소백산 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낚시, 여백에 비친 세상’, ‘강태공, 기다림 끝 천하를 얻다’ 등이 있다.
북스코스, 335쪽, 1만6000원.
<김재옥>
신동문 시인
△1927년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 출생. 본명은 건호(健浩).
△1934년 청주영정공립보통학교(현 주성초) 입학.
△1946년 서울대 문리대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마련 못해 포기.
△신흥대학(현 경희대) 수영특기생으로 입학.
△1955년 폐결핵으로 청주도립병원서 투병생활.
△한국일보에 ‘봄 강물’로 가작 입선. 동아일보에 연작시 ‘풍선기’ 중 1편이 가작 입상.
△1회 충북문학상 수상.
△1956년 연작시 ‘풍선기’(6~20호)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첫 시집 ‘풍선과 2포복’(충북문화사) 출간.
△1959년 1회 충북도문화상예술부문 수상. 시 ‘무제’ 발표.
△1993년 지병인 담도암으로 사망.
△1995년 동양일보와 단양의 지기들이 단양군 수변공원에 시비 건립-‘내 노동으로’
△2004년 시 전집 ‘내 노동으로’, 산문 전집 ‘행동한다 그리고 존재한다’(전 2권 솔출판사) 발간.
△2005년 청주시·청주문화원이 청주 발산공원에 신동문 시비건립-‘풍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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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문(辛東門)1927~1993)초당공파32세 시인에 대하여......
신동문(辛東門 초당공파.32세)시인의업적을기리기위해 찬인(충북도청공보관)경철(문의면농업인단체협의회회장)두종인의 노력으로 유관기관의 협조 득하여 신동문 시비 건립을 위한 각계 지역인사가 참여 하는건립추진위발족되어 예산 확보 입지 선정 완료하여 2012년10월31일수요일15시에 대청호변 문의문화재단지내에서 청원군문화원 주관 으로 각계인사를 초대하여신동문시인고향인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시비건립제막식을거행 합니다.첨언 드리면 신동문시인은 향리 출신4선을지낸 경식(卿植)전의원님의 작은할아버지(종조부)로서 경식 전의원은 종손자 되는것이죠..특히.지역출신시인이자.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도종환의원님께서도 많은 격려를 아끼지않았다 후문입니다.
알 림
일시:2012년10월31일수요일오후3시(15시)
장소:문의문화재단지
충북청원군문의면문산리6-1
043-251-3288 연락처: 후손대표 신경철 (문의면농업인단체협의회장)010-8848-7868
신동문 [辛東門
초당공파. 32세
• 출생-사망
• 1928년 ~ 1993년
• 시인, 언론인
• 출신지
•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
• 본관
• 영산(靈山)
• 저서(작품)
• 수정화병에 꽂힌 현대시, 조건사초, 풍선과 제3포복
• 대표관직(경력)
• 창작과 비평사 대표, 충북문학상 수상, 자유문학상 수상
시인ㆍ언론인.
개설
본관은 영산(靈山). 본명은 건호(建湖)이며 동문(東門)은 필명이다. 충청북도 청주.청원 출신으로 2남 3녀 중 차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소학교와 중학교를 몇 차례씩 휴학했다가 다시 편입하곤 하였다. 청주주성중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입학한 뒤 곧 휴학, 동국대학교로 옮겼으나, 6개월도 못 다니고 폐결핵으로 다시 휴학하였다.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충북일보사와 사회일보사 등에서 논설위원을 지냈다. 1960년경에는 『새벽』지 편집장, 『사상계』 편집장, 『경향신문』 기획위원, 1970년대 초에는 신구문화사 주간, 창작과 비평사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말년에는 고향인 청주로 낙향, 농장을 경영하며 소박한 전원생활을 즐겼으며, 바둑을 좋아하였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5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와 195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가작으로 당선됨으로써 시작되었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선기(風船期)」가 당선되어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하였다. 같은 해 처녀시집 『풍선(風船)과 제3포복(第三匍匐)』을 간행하였다. 이 시집에는 공군에 복무하면서 틈틈이 써 모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시 「수정화병(水晶花甁)에 꽂힌 현대시(現代詩)」(『현대문학』, 1957.7.)ㆍ「조건사(條件史)」(『사상계』, 1957.12.)ㆍ「조건사초(條件史抄)」(『현대문학』, 1958.10.)ㆍ「무제(無題)」(『현대문학』, 1959.2.) 등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한편 1963년에는 동인지 『현실』을 주재하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시를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그의 시는 비판적 지성을 바탕으로 자기 시대의 삶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데 뛰어났다. 다분히 현실 참여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른바 ‘앙가주망(engagement, 현실참여)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그의 초기 시는 전쟁의 파괴적인 요소와 전후 사회의 황폐상을 잘 나타낸 것으로서 1950년대 후반에 크게 관심을 끌었다. 1955년 제1회 충북문학상, 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생명기행」김성동『한국일보』1991.9.12「새바람 일으킨 4·19시인 신동문」이근배『동아일보』1991.1.11
‘4·19 시인’ 신동문 문학·업적 재조명 움직임… 5월 개관 충북문학관에 ‘삶의 자취’ 전시2012.04.06 18:12
4·19혁명 52돌을 앞두고 시인 신동문(1927∼1993·사진)의 문학과 업적을 기리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충북도는 5월쯤 신동문의 고향인 청주시에 충북문학관을 건립, 신동문의 문학적 성과물과 삶의 자취를 전시하기로 했다. 그가 남긴 시와 산문, 특히 4·19 시위를 성스럽게 노래한 시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群)들’과 도회지 지식인의 나약함을 고백한 시 ‘내 노동으로’가 내걸리는 것을 비롯, 그가 말년을 보낸 충북 단양 애곡리 수양개의 옛집 사진, 생전의 유일한 시집 ‘풍선과 제3포복’도 전시될 예정이다.
충북향토문화연구소와 충북 지역 문인들도 올 들어 수양개의 옛집을 원형대로 보전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집에서 19년 동안 가난하고 몸 아픈 농민들을 침술로 무료 치료한 신동문의 뜻을 기리자는 의미에서다. 신동문이 작고한 이후 이 집은 지금까지 낡은 채 비어 있다. 단양군은 신동문의 옛집 주위로 남한강을 따라 ‘느림보 강물 길’을 만들기로 했다. 단양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남한강을 따라 산책하면서 그를 추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신동문 평전’을 낸 김판수씨는 “1956년 신동문이 500권 한정판으로 펴낸 시집 ‘풍선과 제3포복’이 요즘 고서점에서 40여만 원의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으며 이는 근래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움직임들이 반갑긴 하지만 지나치게 주변적인데다 관람과 관광 위주여서 아쉽다”며 “차제에 그의 문학을 심층적으로 다루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시집 ‘풍선과 제3포복’은 우리 문학사에서 반전반핵 문학의 효시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랄 동북방의 불모 평원에 인명 피해만은 피했노라고 증인처럼 열 겹으로 그어놓은 동그라미 표적, 그 중심에서 솟아나는 버섯형 오색구름을 손뼉치며 향락하는 동과 서. 또 너와 나의 동자에 핏발 선 광기-그 발광한 이빨로 우리는 문화를 먹어버렸습니다. 역사를 삼켜버렸습니다.”(‘제3포복’ 일부)
1951년 10월 입대해 3년 만기 제대한 신동문은 흥미롭게도 병사의 신분으로 반전반핵시를 썼던 것이다. 발각될 경우 큰 화를 당할만한 일이었다. 김씨는 “신동문은 군복무 중 행여 상관에게 들킬까봐 ‘제3포복’의 원고뭉치를 숨기고 다녔으며, 근무지를 옮길 때나 휴가 때에는 그것을 간수하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고 회고한 적 있다”며 “‘제3포복’과 같은 반전반핵시는 4·19 정신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지적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