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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달콤한 복수
멜빈 브래그 지음, 김명숙, 문안나 옮김, <영어의 힘>(사이, 2019)
영어는 초기에는 소수가 사용하는 게르만어의 방언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15억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고, 인터넷의 70퍼센트가 영어로 되어 있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지닌 언어가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잃고 살아야 했던 것처럼, 영어도 한때 지독한 수난을 당한 적이 있었다. 1066년 10월 14일, 프랑스를 본거지로 한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작 군대와 영국 왕 해럴드의 군대가 영국의 헤이스팅스에서 싸웠다. 영국이 이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영어 또한 프랑스어에 패했다.
승리한 프랑스어는 영어를 파묻어버렸다. 노르만족은 프랑스어를 강요했다. 1066년 크리스마스에 윌리엄 공작이 윌리엄 1세로 즉위하면서 웨스트민스터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의식은 라틴어와 영어로 거행되었지만 윌리엄은 내내 프랑스어로 말했다. 통치권과 권위와 우월성을 지닌 프랑스어는 영어를 압살했다.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300년 동안 대략 1만 개에 달하는 프랑스어 단어가 영어에 유입됐다. 이 단어들은 14세기까지 마구 밀려들어 오다가 그 후로도 간헐적으로 유입되었다. battle(전투), conquest(정복), castle(성), arms(무기), siege(포위), lance(창), armour(갑옷과 투구)가 맨 처음 들어와 자리 잡았다. 영어는 불쌍하게도 자기 나라에서도 프랑스어, 라틴어에 이어 3등 언어였다.
그러나 1066년 이후에도 영어는 여전히 ‘민중의 언어’였다. 처음에 노르만 프랑스인은 전체 인구의 3~5퍼센트를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점령당한 자들의 언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르만 프랑스어의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마치 언어 그 자체가 저항운동인 것처럼 계속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발전해갔다.
영어를 사용하는 농부들은 작은 방 하나가 있는 진흙과 잔가지로 만들어진 오두막집에서 살았던 반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주인들은 돌로 지은 높은 성에서 살았다. 오늘날 사용되는 많은 현대 영어 단어들은 이들 사이의 계급적 구분을 반영해주고 있다.
영어 사용자들은 지금도 고대 영어로 ox(황소), 오늘날 흔히 cow(소)라고 부르는 살아있는 가축을 돌봤다. 반면 프랑스어 사용자들은 프랑스어로 beef(소고기)라고 부르는 식탁에 올라온 조리된 요리를 먹었다. 마찬가지로 영어의 sheep(양)는 프랑스어로 mutton(양고기), 영어의 calf(송아지)는 프랑스어로 veal(송아지고기), 영어의 deer(사슴)는 프랑스어로 venison(사슴고기), 영어의 pig(돼지)는 프랑스어로 pork(돼지고기)가 되었다. 이 모든 예에서 영어는 동물을, 프랑스어는 동물의 고기를 뜻한다. 영국인들은 ‘노동’을 했고, 프랑스인들은 ‘잔치’를 벌이며 즐겼다.
이름도 프랑스식으로 바뀌었다. 앨프리치(Alelfric), 애셀스탄(Athelstan) 대신 리처드(Richard), 존(John) 윌리엄(William) 등이 들어왔다. 영어는 발전하는 언어도 아니었고, 힘을 가진 언어도 아니었으며, 어려운 상거래의 언어도, 심지어 교육받은 사람들의 대화 언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절은 영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영어는 문법을 그대로 간직했고 기본 단어들을 유지했으며 기본적인 체계를 지켰다. 이 어려운 시기에 영어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프랑스어를 하나의 층위로, 즉 대체 수단이 아니라 영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흡수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어에서 토끼 가운데 새끼 토끼(young hare)는 프랑스어 단어인 leveret(한 살 미만의 새끼 토끼)로 불렸으나 leveret가 영어 단어인 hare를 완전히 대치하지는 않았다. 즉 작은 토끼가 아닌 토끼는 여전히 hare라 불린다. 영어 swan(백조)과 프랑스어 cygnet(백조의 새끼)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작은 도끼(small axe)는 프랑스어 hatchet로 대체되었으나 일반적으로 도끼는 여전히 axe로 불린다. 어휘가 더욱 세분되고 풍부해진 것이다. 영어에는 이러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영어는 정복자에게 주먹으로 한 방 얻어맞긴 했지만 그 기반마저 물려주지는 않았다.
영어 단어에는 미묘한 차이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영어 ask와 프랑스어에서 나온 demand(요구하다)는 처음에는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중세에 들어 미세한 의미 변화가 생겼다. 영어권은 지금 두 단어를 비슷하기는 하지만 매우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I ask you for 10 pounds. I demand ten pounds. 이 두 문장은 전적으로 서로 다른 의미다. ask는 부탁하다, 간청하다의 의미지만, demand는 고자세의 명령조로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앞 문장은 10파운드를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고, 다음 문장은 10파운드를 달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bit(작은 조각)와 morsel(한 조각), wish(희망하다)와 desire(원하다), room(방)과 chamber(침실)도 그러하다.
당시에는 프랑스어가 영어를 완전히 대신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주된 원인은 같은 단어라고 여겨지는 두 단어 사이의 의미를 세분화함으로써 사고의 명확성과 표현의 정확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생각의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는 의미의 미세한 차이는 영어와 영국인의 상상력을 크게 확장시켰다. 유사 동의어(almost synonym)로 불리는 단어의 폭넓은 다양성은 영어에 놀랄만한 정확성과 유연성을 가져다주었다.
영어가 프랑스어에 가한 ‘달콤한 복수’였다. 영어는 프랑스어를 영어화했을 뿐만 아니라 노르만의 침략을 이용해 오히려 영어의 힘을 길렀다. 이것이 영어의 아름다움이다. 영어는 강탈자들을 강탈했고, 자신들을 약탈했던 사람들을 약탈했으며, 약점으로부터 강점을 끌어냈다. 영어가 세계어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덧셈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글단체들이 “지금의 김(金), 이(李), 박(朴) 같은 성씨는 신라시대 중국 당나라 지배를 받을 때 뿌리 내린 중국식 성씨”이니 이제 우리 성과 이름도 우리 말글로 짓고 쓰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게 가능할까. 꼭 이렇게 ‘뺄셈의 언어’로 대응해야 할까. 굳이 신라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가 쓰는 자유(自由) 평등(平等) 사회(社會) 권리(權利) 정의(正義) 민주주의(民主主義) 시간(時間) 공간(空間) 의무(義務) 도덕(道德) 원리(原理) 철학(哲學) 등은 모두 19세기 일본 지식인들이 영어를 번역해 만든 한자어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서양을 가장 먼저 수용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중국도 우리와 같은 처지다. 이걸 다 없애면 우리의 어문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뺄셈의 언어’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책 없는 뺄셈보다 달콤한 복수를 겨냥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