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석같은 요지부동 마음 있으면 성공
<31>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⑥-1
[본문] 보내온 편지를 자세하게 여러 번 읽고 나서야 철석같은 마음이 있으며, 결정적인 뜻을 세운 줄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소홀하게 할 수(草草)가 없습니다. 다만 이와 같이 납월 30일(죽는 순간)까지 밀고 나간다면 또한 능히 염가노자(염라대왕)와 서로 겨루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정문(頂門)의 눈을 활짝 열고 금강왕보검을 손에 잡고 비로자나불의 머리 위에 앉는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강설] 대혜선사는 증시랑이 보낸 편지를 자세히 읽어보니 깨달음에 대한 철석과 같은 마음이 있고 결정적인 뜻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더라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세상사다. 하물며 도를 깨닫겠다는 꿈과 서원을 가졌다면 더 말을 할 나위가 없다. 만약 입지가 확실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선납자는 오로지 깨달음에 대한 철석과 같은 마음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그 삶이 중요하다. 그 가치관으로 어떤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훌륭한 삶이며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 죽음이 닥친들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이며 염라대왕인들 무엇이 겁이 나겠는가.
“정문(頂門)의 눈을 활짝 열고 금강왕보검을 손에 잡고 비로자나불의 머리 위에 앉는다”는 말은 깨달음을 얻어서 지혜의 눈이 생긴 것을 이마에 있는 제3의 눈이라고 한다. 금강왕보검이란 역시 깨달음에 의한 지혜의 칼을 뜻한다. 비로자나불의 머리 위란 깨달음을 이루고 난 뒤의 부처 중에 근본 부처인 법신불을 능가하는 경지를 이렇게 이른다.
도 깨닫겠다는 꿈·서원 가졌다면
그 마음으로 꿋꿋이 살아가면 돼
[본문] 내가 일찍이 선불교 안에서 공부하는 도반들(方外道友)에게 말하였다. “요즘 도를 배우는 선비들이 다만 빠른 효과만을 구하고 공부를 그르치는 것은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더니 그들은 도리어 말하기를, “일을 없애고 인연을 줄이며 조용히 앉아 참구하면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경전이나 읽고 염불이나 하면서 부처님 앞에 예배나 올리면서 평생에 지은 죄업을 참회하여 염라대왕에게 철 방망이를 맞는 것을 면하리라”라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짓입니다.
[강설] 선불교는 일반불교와 다르다. 일반불교는 경전도 배우고 염불도하며, 부처님 앞에 예배와 참회도 하고 4성제 8정도와 12인연도 닦고, 6바라밀과 같은 여러 가지 덕목을 골고루 수행한다. 그러나 선불교는 그 모든 수행법을 좌선이라는 이 한 가지 방법으로 대신한다.
일찍이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이라고 하여 마음을 닦는 한 가지 방법이 모든 수행을 다 포함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불교에서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짓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본문] 요즘 도가(道家)의 사람들은 온전히 망상심(妄想心)으로 해를 생각하고 달을 생각하면서 안개를 마시고 기운을 삼켜서 이 몸을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하기도 하며, 춥고 더움을 면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이 마음 이 생각을 돌이켜서 온전히 반야 가운데 집중하는 것이겠습니까.
[강설] 동양에는 일찍이 유교와 도교와 불교가 있어왔다. 도교에서는 신선도(神仙道)라 하여 이 육신을 잘 다스려서 건강하고 오래 사는 법을 가르쳤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해의 정기를 삼키고 저녁에 달이 뜨면 달빛을 흡수하며 봄에는 아침 안개를 마시고 여름에는 물에서 피어오르는 이슬기운을 마시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상상하면서 오래 오래하면 신선이 되어 춥고 더운 것을 느끼지 아니하며 수 백 년을 산다고 하였다. 불교는 오로지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올바른 선정으로 일관한다. 신선도 되는데 어찌 깨달음을 얻지 못하겠는가.
[출처 : 불교신문 20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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