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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六會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周
他化自在天宮
如來放眉間光․相光 金剛藏菩薩 入菩薩大智光三昧 十地法門
金剛藏菩薩 說十地法門. 自三十四卷 至三十九卷. 共一品經
二十六, 十地品
序分
1. 說法因緣
2. 삼매에 들다
3. 명훈가피력을 내리다
4. 삼매에서 일어나다
5. 십지(十地)의 강요(綱要)를 말하다
6. 자세히 설(說)해줄 것을 청하다
正 宗 分
7. 제1환희지(歡喜地)를 설하다
9. 제3 발광지(發光地)를 설하다
(1) 제2지 법문을 찬탄하다
(2) 제3지 법문을 청하다
(3) 제3 발광지에 들어가는 열 가지 깊은 마음
(4) 유위법(有爲法)의 실상을 관(觀)하다
(5) 불지혜(佛智慧)에 나아가다
(6) 일체 중생에게 내는 열 가지 애민심(哀愍心)
九, 第三發光地
(7) 發大精進
菩薩이 如是見衆生界의 無量苦惱하고 發大精進하야 作是念言호대 此等衆生을 我應救며 我應脫이며 我應淨이며 我應度며 應着善處며 應令安住며 應令歡喜며 應令知見이며 應令調伏이며 應令涅槃이라하나니 菩薩이 如是厭離一切有爲하며 如是愍念一切衆生하며 知一切智智가 有勝利益하고 欲依如來智慧하야 救度衆生이니라 作是思惟호대 此諸衆生이 墮在煩惱大苦之中하니 以何方便으로 而能拔濟하야 令住究竟涅槃之樂고 便作是念호대 欲度衆生하야 令住涅槃인댄 不離無障礙解脫智니 無障礙解脫智는 不離一切法如實覺이며 一切法如實覺은 不離無行無生行慧光이며 無行無生行慧光은 不離禪善巧決定觀察智며 禪善巧決定觀察智는 不離善巧多聞이니라
(7) 중생제도의 원(願)을 세우고 갖춰야 할 법의 순서를 관찰하다
"보살이 이렇게 중생계의 한량없는 고통과 시끄러움을 보고 크게 정진할 마음을 내어 생각하기를 '이 중생들을 내가 구호하고, 내가 해탈케 하고, 내가 깨끗하게 하고, 내가 제도하고, 선한 곳에 두고, 편안히 있게 하고, 즐겁게 하고, 알고 보게 하고, 조복하게 하고, 열반케 하리라'하느니라.
보살이 이렇게 모든 함이 있는 법을 싫어하고, 이렇게 일체중생을 불쌍히 생각하고, 온갖 지혜의 지혜가 훌륭한 이익이 있음을 알고는, 여래의 지혜에 의지하여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생각하기를 '이 중생들이 번뇌와 큰 고통 속애 빠졌으니, 무슨 방편으로 구제하여 구경(究竟)열반의 낙(樂)에 머물게 하리오' 하느니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였다.'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머물게 하려면 장애가 없이 해탈한 지혜를 여의지 않아야 하나니, 장애가 없이 해탈한 지혜는 일체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一切法如實覺]을 여의지 않고, 일체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은 만들어짐도 없고 생멸도 없는 행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만들어짐도 없고 생멸도 없는 행의 지혜는 선정의 공교롭고 결정하게 관찰하는 지혜[禪善巧決定察智]를 여의지 않고, 선정의 공교롭고 결정하게 관찰하는 지혜는 공교롭게 많이 앎[善巧多聞]을 여의지 않았도다' 하느니라.
(7) 發大精進
오늘은 제3 발광지에 대해서 3 번째 시간입니다. 그죠?
그러니까 지금 차례를 한 번 앞에 넘겨 보세요.
차례를 가지고 전체적으로 大義 總辦을 한 번 가름하고
오늘 수업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차례 제일 첫 번째 한 번 보시죠.
1 P 에 보면
十地品 제 26 십지품이라고 나와 있죠?
26 이라는 말은 화엄경 39품 중에서
제 26 번째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序分을 배워가지고
서분을 한 대목을 접어서 죽~
설법할 수 있는 인연
또 삼매에 들고
가피를 내리고
삼매에서 일어나고
십지의 綱要를 말하고
지금 2 P로 넘어왔습니다.
그 다음 자세히 설해줄 것을 누가 누구에게 청했습니까?
解脫月菩薩이 金剛藏菩薩에게 청을 했죠.
그래서 서분이 끝나고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正宗分에 와가지고
歡喜地부터 몇 대목으로 나눠놨습니까?
10 대목으로 나눠놨는데
환희지에서 제 1지가 끝나고
제 2 離垢地가 3 P 에서 끝났죠.
그리고 4 P에 넘어와서
오늘 비로소 이제 發光地를 하게 됩니다.
발광지는 잘 아시다시피
환희지에서 보시바라밀을 중점적으로 설하고
이구지에서 지계바라밀을 설하고
제 3지에서 인욕바라밀을 설하면서
발광지의 내용을 죽~ 설명해놓습니다.
그래서 발광지에 오면서
제 이구지의 제 2 지의 법문을 먼저 찬탄해서
앞의 것을 매듭 짓고. 그죠?
3지 법문을 이제 청하고
제3 발광지에 들어가는 열 가지의 깊은 마음
이래가지고 이구지에서는 直心을 얘기하고
3 지에서는 뭘 얘기했죠?
深心, 깊은 마음을 이제 얘기를 했었죠.
여러분들께서 기신론을 배우실 때
능엄경과 기신론을 잠깐 섞어서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능엄경은 한 2 년 배우시고
기신론도 한 1 년씩 이렇게 배웠죠.
한 번 보십시다.~
사람이 믿음이 없다가
음식을 조복하게 되고
주변에 탁한 사람들,
그러니까 세속 오욕락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을 정리하는 걸
三漸次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마치 음식을 오신채를 익혀서 먹으면
음욕심이 동하고 탐심이 동하고
오신채를 날 것으로 먹으면 진심이 동한다.
탐진치를 제거하기 위해서
오신채를 가리듯이 음식을 가리듯이
그렇게 사람도 아주 맵고 독한 사람들을 좀 가려서 만나야 된다.
주변 환경을 환경 정리를 그래 할뿐만 아니라
내심적으로도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음행하는
이 안쪽으로 돼 있는 탐진치도 제거해야 된다.
그래서 바깥으로는 除其助因제기조인
안쪽으로는 刳其正性고기정성
그러면서 違其現業위기현업
현재 어떤 문제에 부닥치든지 간에
정직하고 정의롭게 자비롭게 지혜롭게 대처하라.
違其現業위기현업
소꿉장난 할 때도 도둑놈 역할을 맡으면 안된다는 거죠.ㅎㅎ
정직한 것만 맡다 보면
신심이 돋아나기 전에 빼~짝 마른 지혜가 이제 돋아납니다.
그거를 이제 乾慧地라고 이렇게 얘기하는데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서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어야 되는데
우리가 흔히 부처님의 敎說 四聖諦가 苦集滅道로 돼 있거든요.
그 괴로움을 관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 교설에서는
항상 먼저 등장하는 게
문수보살을 먼저 등장시키고
지혜로운 사람은 반드시 또 자비로워지니까
그 다음에 미륵보살이 나오게 됩니다.
화엄경, 법화경, 공히 그렇습니다.
화엄경도 문수보살이 먼저 등장하고
그 다음에 미륵보살이 등장하고
마지막에 실천적으로 그 지혜와 자비를 완성하는 사람이 보현보살입니다.
우리는 이제 보현, 문수라고 해가지고 죽~ 오고 있지만
법화경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돼 있어요.
저~ 앞 부분에 이래 보면
문수보살이 나와가지고 어려운 문제를 다 해결합니다.
그리고나서 더 구체적인 문제는
미륵보살이 나와서 해결하고
마지막 끝에 가서는 누가 나오겠어요?
普賢菩薩勸發品이라 해서 그렇게 나오고
화엄경도 마지막으로 보현행원품이 이렇게 나오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바짝 마른 지혜가
삼점차를 통과해서 한 번 돋아 나오고 난 뒤에
믿음의 세계를 가면 이 믿음이 완성이 되면
十身初滿에,
열 가지 믿음이 처음으로 원만하게 완전히 됐을 때
그때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發心이라고 합니다. 발심.
그런 걸 다른 말로는 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지금 이해하고 계셔야
지금 여기서 정직한 마음,
깊은 마음,
넓은 마음,
이런 것이 이해가 됩니다.
발심에는 3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 수행할 때는 信解行證, 이렇게 얘기합니다.
一切皆苦라고 하는
또 모든 것이 집착하고 인연을 반연,
붙잡음으로 해가지고 괴로움이 파생된다고 하는 것
팔정도를 수행함으로 해서
滅聖諦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것
이런 것을 이제 사성제라고 해가지고
이 4가지는 거룩한 진리다.
왜 거룩한 진리냐?
이 4 가지는 성자가 깨달은 부처님께서 체득한 지견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까
오온도 모두 사성제요, 십이연기도 사성제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모든 정신과 물질,
인간이 형성하고 있는 환경과 주관이, 주관과 객관이
모두 뭐로 형성돼 있어요?
사성제로 돼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集聖諦를 통해서 苦聖諦로 사는 인생이 있는 반면에
팔정도, 道聖諦를 통해서 滅聖諦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발광지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깊은 마음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 깊은 마음은 비로소 발심의 3 가지 중에서
信成就發心 그 다음에
解行發心 다 기억 나시죠?
마지막에 證發心이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信解行證, 이렇게 되는 거죠.
신성취발심이 되면
사람이 첫째 현상이
정직해지고
그 다음에 깊어지고
광대해집니다.
이것이 증발심,
그야말로 지금 여러분들께서 하시고 계시는
이 십지품
이 대목에 와서는 정직함이 어떻게 발전되느냐 하면
진실하게 변합니다.
진실심이 되고
깊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업식심이 돼가지고
업을 따라 가는 업에 그런 업력에,
그러면 업식, 업식이라고 하는 거는
최초에 생각을 자~꾸 일으켜내는 아뢰야식이 무한한 힘이 있어요.
거기 업식심의 깊고 깊은 경지,
저번 수업 시간에 제가 이런 얘기를,
업식심의 깊고 깊은 경지를 파헤칠 수 있을 때는
반드시 뭐로 해야 된다고 그랬어요?
반야바라밀을 수반해야 된다.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은
자세하고도 정확하고 깊이 사실을 인지해가지고
하나도 오류가 남지 않는 그러한 깨달은 생각을 가진 경지를
반야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십이연기가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십팔경계가 없다고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반야심경 같은 데는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니까 照見해보니까 五蘊이 皆空하더라.
그래서 無眼耳鼻舌身意요 無色聲香味觸法이요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나중에 깊은 반야바라밀까지 들어가니까
사성제도 있다? 없다?
없다.
그렇게 됐을 때
진정 우리가 이제 깨달음의 세계를
자꾸 추구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성제는
부처님의 근본적인 처음에 최초의 설법입니다.
화엄경도 설할 때
부처님이 世主妙嚴品을 설하시고
세상은 이렇게 器世間과 의지해서 사는 세간과,
거기 사는 중생들과,
智正覺世間, 깨달은 사람은 이렇다.
世主妙嚴이다,
서로가 묘하게 장엄하는 걸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如來現相品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거기서 방광을 하죠.
그 다음에 普賢三昧品을 나타냅니다.
그 다음 이 세계는 어떻게 성취됐다고 하는 世界成就品
그 다음 華藏世界品
마지막으로 毘盧遮那品
이래서 첫째 설법이 끝나고 다음에 넘어오면서
如來名號品
부처님 이름을 대고
그 다음에 첫 설법을 하는 게
四聖諦品입니다. 사성제품.
그래서 지금 여기도 사성제라고 얘기했을 때 우리가 지금
제 말이 어렵죠?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요.
아마 이게 많이 찌부는 것 같아요.
선생은 너무 뛰어난데...ㅎㅎㅎ
학생이 좀 많이 찌부는 것 같아요.
찌분다는 말씀 아세요?
결혼식을 하려고 하니까 시어머니한테 물어봤어.
"며느리 참 이쁘고 괜찮네예." 이러니까
"쪼매~ 찌분다."ㅎㅎㅎ
"우리 아~(아이) 하고는 쪼매 찌분다."
그런 거는 복잡한 황당한 이론들이고
간단하게 얘기하겠습니다.
十地에 올라오면
신성취발심이 끝나고
해행발심이 끝나고
마지막에 증발심 대목에 와가지고
이 마음은 정직한 마음은
진실하게 되고
그 다음에 업식심이 되고
나머지 하나는 광대한 마음이라고 하는 거는
방편심으로 이렇게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을 베이스에 다 깔고
지금 여기서 인욕행이라고 했을 때
정직하고
깊고
광대한 마음이
진실되고
갖가지 방편으로써
남을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이 팽배하게
내 마음 속에 세세생생토록 내가 간직하고 살아가겠다고 하는
그런 원력이 심어진 다음에
십지에서 보시하는 것 하고
저기 十住에서 하는 것 하고는 엇비슷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다릅니다.
그 폭이 다르다, 이 말이죠.
어린 아이 때 친구한테 집어주는 돈의 양하고
어른이 돼가지고 친구한테 사업 도와주는 돈의 양 하고는 어때요?
다르다.
어릴 때는 백 원짜리 십 원짜리 서로 주고 받고 하던 그 놀음이
어른이 돼서는 어때요?
몇 억씩 주고 왔다 해도 아깝지 않은 정도
그러니까 십지의 광대한 폭을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십지에서
인욕을 한다는 이 말은
정말 제법의 무아의 이치를 제대로 깨치고 인욕행을 하는 사람이니까
상당한 경지라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어요.
아! 참 이상하네...
좀 많이 찌부는 것 같은데...
제가 느낌이 방금 이렇습니다.
어제 아래 일기를 하나 써놨습니다.
이게 돋보깁니다. 돋보기.
여러분들은 다 돋보기를 가지고 계십니다.
저한테 능엄경 들을 때도
돋보기 있다는 걸 알고 계셨을 겁니다.
돋보기는 다 가지고 있는데
이 돋보기가 이 형광등 불빛 정도 받아가지고는
초점 맞춰가지고 불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결코 없습니다.
그러니까 외도의 어느 정도 교양과 철학적인 그런 현학적인 얘기로써는
내 마음에 그런 초점을 해가지고
번뇌를 결코 태울 수 없다는 겁니다.
종교적인 분상으로
마음의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돌아와서 얘기를 했을 때
그 번뇌가 녹아지고 태워질 수 있다고 하는 거죠.
여러분들께서는 돋보기를 다 가지고 계신데
오늘같은 날 바깥에 나가서
돋보기를 갖다 들이대봤자 불이 붙겠습니까?
안 붙는다.
왜 그렇죠?
구름이 끼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마음에 잡때가 있기 때문에
돋보기가 신심의 불을 발화를 하지를 못한다. ㅎㅎ
이런 얘기를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많이 찌부지요? ㅎㅎㅎ
많이 찌분다.
많이 찌부는데...
그러나 이 돋보기 하나가 힘을 발휘하려고 할 것 같으면
뭐가 좋아야 된다?
신심이 청정해서 다른 번뇌가 끼지 않으면
햇볕에 갖다 들이대면 정확하게 불이 붙습니다.
그런 걸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발광을 하려면 어때야 돼요?
돋보기 초점을 제대로 맞춰야 된다.
제가 일기에 뭐라고 써놨습니까?
돋보기 하나 들고 앉았다.
초점 없는 새벽에
많이 찌부는 새벽에
돋보기 하나 들고 앉았다.
새벽에 뭐 돋보기 있어봤자
촛불로도 아무 거로도 되지는 안 하죠.
그러나 신심의 중대함을 안다고 하면
이런 대목들이 자~꾸 이해가 잘 됩니다.
그래서 그 발광지의 7 번째 대목이 뭡니까?
(7) 중생제도의 원(願)을 세우고 갖춰야 할 법의 순서를 관찰하다
그러니까 자~ 이리로 주목해 보세요~
모르시는 분들은 할 수 없고
여기 이제 세 번째 단계라고 하는 것은
수행을 하다가 우리가 色受想行識이라고 하는 5 가지가 있습니다.
色이라고 하는 거는
결과적으로 도출되는 과보입니다.
識이라고 하는 거는
色受想行, 색수상행을 도발시키는 뭡니까?
우두머립니다.
그게 뭐죠?
識蘊입니다. 식온.
사람이, 식온을 우리는 기신론에서는 뭐라고 배워왔어요?
相續相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상속상.
아주 원효의 탁월한 견해라고 하는 게 그 대목입니다.
이 상속상이라고 하는 거는
지나간 과거에 일어났던 미련스런 기억들을
계~속 끄집어내서 현재 끄집어내가지고
미래를 이끌어 나가는 생각을 상속상이라 합니다.
이거는 한 번 저~기 무명으로부터 야기됐기 때문에
여러분들께서는 단 한 번도 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얘기는
한 번 끊어진 사람이 얘기를 해놓은 겁니다. ㅎㅎㅎ
그렇게 어려운 얘기라.
끊어진 사람의 분상을 우리가 이제 한 번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백화점에 가가지고
사지는 못 할지라도 구경도 못하나, 이 말이지요.
구경 좀 합시다.
살 형편은 안 되더라도 어때요?
아이 쇼핑이라도 한 번 해보자. 아이 쇼핑...
부처님 속옷 한 번 보자 이거야.
부처님의 비밀의 방을
이제 그러니까 진정한 수행자들의
비밀의 방을 한 번 엿보자,
이 말입니다.
중생제도의 원을 세우고 갖춰야 할 법의 순서를 관찰하다.
菩薩이 如是見衆生界의 無量苦惱하고 發大精進하야 作是念言호대
보살 여시견중생계 무량고뇌 발대정진 작시념언
此等衆生을 我應救며 我應脫이며 我應淨이며 我應度며 應着善處
차등중생 아응구 아응탈 아응정 아응도 응착선처
며 應令安住며 應令歡喜며 應令知見이며 應令調伏이며 應令涅槃
응령안주 응령환희 응령지견 응령조복 응령열반
이라 하나니
몇 가지겠어요?
應자가?
동주!
몇 가지?
화엄경에서 무조건 얘기했다 하면 몇 가지예요?
열 가지.
연뿌리 구멍이 뽕뽕뽕 뚫힌 게 몇 가지라 했어요? 몇 개?
열 개.
열 개는 원만의 숫자라 했죠. 원만의 숫자.
열 개가 열 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거는 천 백억 개예요. 사실은
菩薩이 如是厭離一切有爲하며 如是愍念一切衆生하며 知一切智智
보살 여시염리일체유위 여시민념일체중생 지일체지지
가 有勝利益하고 欲依如來智慧하야 救度衆生이니라
유승이익 욕의여래지혜 구도중생
作是思惟호대 此諸衆生이 墮在煩惱大苦之中하니 以何方便으로
작시사유 차제중생 타재번뇌대고지중 이하방편
而能拔濟하야 令住究竟涅槃之樂하고 便作是念호대 欲度衆生하야
이능발제 영주구경열반지락 변작시념 욕도중생
令住涅槃인댄 不離無障礙解脫智니 無障礙解脫智는 不離一切法如實覺이며
영주열반 불리무장애해탈지 무장애해탈지 불리일체법여실각
一切法如實覺은 不離無行無生行慧光이며 無行無生行慧光은 不離禪善巧
일체법여실각 불리무행무생행혜광 무행무생행혜광 불리선선교
決定觀察智며 禪善巧決定觀察智는 不離善巧多聞이니라
결정관찰지 선선교결정관찰지 불리선교다문
(7) 중생제도의 원(願)을 세우고 갖춰야 할 법의 순서를 관찰하다
"보살이 이렇게 중생계의 한량없는 고통과 시끄러움을 보고 크게 정진할 마음을 내어 생각하기를,
보살이 이렇게 중생계의 한량없는 고통과 시끄러움을 보고 크게 정진할 마음을 내어 생각하기를,
사성제도 제일 먼저 뭘 관찰해야 되겠어요?
고성제를 관찰합니다. 고성제.
'인생이 다 괴롭구나... 다 괴롭구나.... 괴롭구나...'
이걸 관찰하고 그 다음에 관찰할 게 뭡니까?
집성제를 철저히 해서
'아!... 이 고통이 전부 다 저렇게 이렇게 이렇게 돼가지고 원인이 됐구나!
집착하고 염착하고 애착하고 하는 그런 것들이 이 고통을 낳게 되는구나!'
그러면 그런 것들이 본래 없는 것이
자세히 관찰하고 나니까
없는 것이라고 하는 멸성제의 지금 방금 나왔던 것
無障礙, 아~무 장애가 없다는 그런 해탈의 경지를 보고 난 뒤
그러면 이걸 갖다가 완전히 사그라뜨리고
번뇌를 소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뭘 행한다?
팔정도를 행해야 되겠다.
팔정도는 다른 말로는 계정혜라고도 얘기합니다.
다른 말로는 육바라밀이라고도 얘기합니다.
다른 말로는 십바라밀이라고도 얘기를 합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여러분들이 지금 이 고기 덩어리 하고
이 흔적도 없는 이 정신 덩어리 하고
같이 붙어가지고 나불나불나불나불 몇 마디 얘기하는 게
신기하고도 신기하잖아요?
이 중생들을 내가 구호하고, 내가 해탈케 하고, 내가 깨끗하게 하고, 내가 제도하고, 선한 곳에 두고, 편안히 있게 하고, 즐겁게 하고, 알고 보게 하고, 조복하게 하고,
조복한다는 말은 調伏毒이라.
아주 삼독심을 조복하는 調伏幢이라.
아만의 깃대가 높~은 거를 꺾어버리는 것
摧伏幢, 調伏毒, 그렇게 얘기하지요.
그리고 난 뒤에 고요한 열반에 적멸에 들게 하리라 한다.
어떠한 번뇌도 불씨도 남기지 않는 것을
열반이라고 이렇게 얘기하지요.
한 번은 백장 스님이
“거기 누구 없나?” 이러니까
“영우입니다.”
위산 영우 스님이
“접니다.”
"아! 니 여기 와 봐라.
저기 화로에 불 좀 찾아 봐라.
불씨 있는가? 불이 좀 있나?"
이러니까
막~ 뒤적뒤적 하다가
“스님 불씨 없는데요” 이러니까
백장 스님이 당신이 직접 이렇게 하시더니 쪼맨~한 것 찾아내서
“이거는 불씨 아니가?”
무슨 뜻이예요?
굳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이러면
여기 지금 나오는 얘기들 하고 연관 있는 것이
불생불멸을 심으면 불생불멸의 과보를 얻게 되고
생멸의 인을 심으면 생멸의 과보를 얻게 된다는 거죠.
모래를 밥을 한다고 솥에 쪄가지고도
천 년이 지나더라도 단지 뜨거운 모래일 뿐이다.
밥은 되지 않는다는 거죠.
지금 여기 정확하게 십지 법문이라든지 화엄경이라든지
이런 정견에 대해서 신심을 내가지고 거기에 이제 추종하면
나중에 부처의 그런 고요한 결실을 맺게 되지만, 열반케 되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그런 거 볼 때도
십지품 이런 거 공부할 때도 그렇습니다.
정도의 길을 걷느냐? 걷지 않느냐?
이거 아주 중요한 얘기지요.
그래서 저는 문수선원에서 강의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와! ~ 진짜 복이 많으신 분들이다.'
저하고는 상관없고...
이런 게 이제 이해가 되시면
정말 이게 복이 많으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열반케 하리다. 보살이 이렇게 유위법을 싫어하고, 이렇게 일체중생을 불쌍히 생각하고, 온갖 지혜의 지혜가 훌륭한 이익이 있음을 알고는, 여래의 지혜에 의지하여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생각하기를 '이 중생들이 번뇌와 큰 고통 속에 빠져 있으니, 무슨 방편으로 구제하여 구경(究竟)열반의 낙(樂)에 머물게 하리오' 하느니라. 이렇게 생각하였다.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머물게 하려면 장애가 없이 해탈한 지혜를 여의지 않아야 하나니,
이런 대목은 우리 반야심경 같은 데 이렇게 해놨죠.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이렇게 해놨죠.
장애가 없이 해탈한 지혜는 일체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一切法如實覺]을 여의지 않고,
이런 대목은 능엄에서는 이렇게 배웠죠.
一切無碍人은 一道出生死라.
한 길로 생사의 길을 벗어났다, 이렇게 해놨죠.
일체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은 만들어짐도 없고 생멸도 없는,
그러니까 일체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은 만들어짐도 없고 생멸도 없는,
무생무멸의 생멸도 없는 행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마음은 조작할 수가 없는 것이죠.
마음은 절대 만들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석가모니부처님 이전의 진리를
우리는 마음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래서 우리 선가에서는
禪家龜鑑에 서산 스님이 써놓기를
그 대목을 이렇게 해놨죠.
그것은 雪竇설두 重顯중현 스님의 글이죠.
설두 중현 스님은 雲門 文偃문언 선사의 후신이라고 이렇게 얘기하죠.
우리가 간화선을 만들었던 大慧 종고 스님은
雲峯 文悅문열 선사의 후신이라고 하죠.
거기에 어떤 글이 써 있느냐면
父母未生前에,
부모에게 나기 이전부터 이 마음은 있었다.
부모미생전에 이 몸은 부모 이후에 있을지 모르지만
이 마음은 부모미생전에 있었다.
釋迦도 猶未會회어든,
석가모니부처님도 오히려 알지 못 했거든
迦葉이 豈能傳가!
어떻게 가섭이가 전할 수가 있었겠느냐!
여하튼 신기하게도 조금만 이제 눈 뜨면 아시겠지만
我와, 나와 我所, 내 것이라고 하고 이렇게 국집해 사는 것들 속에서
우리가 그게 전부잖습니까?
그렇게 살지만 그거는 이제 배역을 맡았으니까
이제 그렇게 산다고 하고
한 세상 왔으니까 어떤 배역이 맡겨진 대로 열심히 산다 하고
배역을 맡기 이전에 본래인, 본래심, 본지풍광,
이것은 결코 인연을 돌지 않는 절대 진리라고 하는 거죠.
그게 이제 여기서 흔히 얘기하는 열반심이죠. 열반심.
그거 여기 상당히 지금 어려운 얘기들입니다. 사실은.
분위기가 좀 더 찌부는 거 같은데
유자 탱자 얘기가 제가 한 번 해드린 적 있죠?
지금 통도사 강주 스님이 어릴 때
능엄경을 천 독 하겠다고
천 번 읽으면 열 권 책을 천 번 읽으면 만 권인데
그걸 읽겠다고 저~기 거금도 전라도 소록도 바로 옆에 큰~ 섬
우리나라 4 번째 섬, 그 거금도에 가 있을 때
누룽지 한 두 박스 싣고 거금도까지 가죠.
가서 누룽지 갖다주러 가는데
혼자 대밭에 쪼~매한 토굴에 사니까
반찬도 따로 있을 리도 없고
그 스님은 멸치 꽁다리 하나도 안 먹는 스님이니까
김치하고 누룽지 하고 그렇게 잡숴야 되는데
둘이서 이제 섬 구경한다고 이렇게 나왔는데
한 바퀴 씩~ 돌아보는데 유자밭이 있는 거야. 유자밭.
그 유자밭에 보니까 유자밭 그 울타리는 뭐가 돼 있어요?
탱자밭이야.
지금 여기도 유자와 탱자가 같이 여러분들께서 ㅎㅎㅎ
미자 유자 탱자 경자 말자 순자...ㅎㅎㅎ
다 모여 계십니다.
탱자는, 김해 보살님은 또 그리 웃을 것까지는 없지요. ㅎㅎㅎ
김해 보살님은 무슨 자예요?
오렌지.ㅎㅎㅎ 오렌지...ㅎㅎ
탱자는 가시가 많아가지고 중국 속담에도 그랬죠.
강남에 있던 귤이 오렌지가 강북으로 건너가면
橘化爲枳라. 귤이 化爲, 변해가지고 枳지, 탱자가 된다 이러듯이
우리가 부처로 돼 있던 이 많은 사람들이
그 환경을 잘못 만나가지고 탱자처럼 살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그러니까 강남에 살아야 돼.
그러면 강남에 살면 유자요.
강북에 살면,
우리가 이남에 사니까 전부 그래도 유자지.
이북에 살면 탱자가 되는 수가 있어요.ㅎㅎ
지금 북한 사람들이 완악하거든요.
지금 여기도 전부 다 유자 얘기를 쭉~ 써놓은 얘기들입니다.
유자는 왜 그게 유자가 그렇게 돈 되느냐 했더니
쭈글쭈글 못 생기고 그렇다 하더라도
가시가 탱자 만큼 없잖아요.
탱자는 줄기가 다 가시야. 가시.
삼독심의 가시를 많이 가지고 살면
이런 얘기가 실상이 잘 깨달아지지가 않고
방편을 자꾸 실상으로 착각하는 수가 많죠.
방편을 자꾸 착각하지 마라, 해가지고 방편주라고 지어놨죠.
일체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은 만들어짐도 없고 생멸도 없는, 행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만들어짐도 없고 생멸도 없는 행의 지혜는 선정의 공교롭고 결정하게 관찰하는 지혜[禪善巧決定察智]를 여의지 않는다.
자! 이리로 보세요~
자! 이거 손입니다.
손을 얼핏 보는 거는 여러분들이 그냥 느끼는 것이고
손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세~밀하게 이래 보는 거는 관...찰! 하는 겁니다. 관...찰!
관찰을 하려고 하면
현미경을 대고 이렇게 관찰을 하려고 하면
정신을 다른 생각을 해서는 이게 관찰이 되지를 않습니다.
휴대폰 받다가 눈이 잘 안 보이거든요.
듣는데 집중해버리면 쾅 박아버립니다. 차.
생각은 하나밖에 잘 못 하니까
아~주 집중해서 예리하게 하는 것이
멈춰 서서 고~요하게 해가지고
사격 선수가 사격을 조준할 때처럼
멈추면 멈출수록 과녁에 더욱더 정확하게 표적에 관통할 수 있듯이
생각을 멈추고 집중하고 집중할수록
그게 지금 방금 이 얘깁니다.
선정은 생각을 멈추고 만들어짐도 없고 생멸도 없는 지혜는, 어디서 더 발휘될 수 있느냐 하면,
선정의 공교롭고 아~주 미동도 하지 않는 거예요.
결정하게 관찰하는 거,
확실하게 꿰뚫어서 미주알 고주알 움직이는 것
그러니까 지금 허공 속에 다니는 먼지까지도 꿰뚫어서 볼 수 있는
관찰하는 지혜를 여의지 않는 것이다.
쉬운 말로는 이렇습니다.
마음을 야! 마음 가라앉혀라 가라앉혀라 가라앉혀라.
막 지금 화가 나가지고 막 죽일라 살릴라 그러고
욕을 하고 이러다가 마음을 착~ 가라앉혀서
'니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봐라.
조용히 좀 쉬고 가~만히 생각해 봐라.'
마음을 가라 앉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떻습니까?
지금 화를 낼 일이 아니더라~
이런 얘기들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그거는 이제 얘들한테 통하는 거고
여기도 이제 어떤 일은 내가 욕심이 일어났는데
욕심이 동해 버리고 나면
눈이 살콤 뒤집혀가지고 모든 근이,
귀도 뒤집혀 버리고, 말 해도 듣지도 안 하고,
보여도 보려고도 생각도 안 하고
자기 아집만 계~속 쫒아갈 때가 많거든요.
그때 어느 정도 빨리 돌아오느냐?
여기에 따라가지고 그 사람의 본성이 느껴지죠.
이거는 이제 학식 지식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철학적인 것 가지고도 안 되고
이게 오직 이제 마음의 근원의 자리에 대해서
수행을 해야 된다는 거죠.
아무리 지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대목이 없어요.
이거는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禪 善巧 決定 察智,
아~주 중요한 얘기죠.
그래 이래서 우리가 흔히 능엄에서 얘기했던 게 뭡니까?
攝心爲戒섭심위계
因戒生定인계생정
因定發慧인정발혜
이렇게 얘기하죠.
마음이 흐트러지고 산란하고 혼침한 것을 간추려가지고 계율로 삼고
그 계율이 바루어진 다음에 뭐가 옵니까?
선정의 고요함을 얻고
선정의 고요한 바탕 위에서 정확하게 꿰뚫어서 과녁을 쏴라!
그래서 書狀 같은 데는
대혜 종고 스님이 그 대목을 이렇게 해놨습니다.
如人이 攝事에, 어떤 사람이 攝事에, 활을 쏠 때에
久久하면, 오래오래 하면 자연적중이라.
자연히 백발백중에 맞출 수,
오래오래 쏴야 되거든. 오~래오래
한 번 연습하고 두 번 연습하고
조작하는 마음 없이 정직하게 정직하게 정직하게 계~속 하다보면
이제 백발백중 하게 돼 있는데
활을 쏜다 해가지고 팔 힘만 의지해가지고는 적중하지 못 합니다.
활을 당기기 전에 뭐부터 단단하게 고정시켜야 되겠어요?
발바닥부터 고정시켜야 됩니다.
발바닥을 땅에 그냥 심어야 됩니다.
움직이지 않게 말뚝처럼.
왜 우리 양궁 잘 하잖아요.
양궁 뭐부터 딱 버티던가요?
발바닥 딱!~ 대놓고 버티잖아요. 그죠?
그게 무슨 말이냐?
신심을 확! 심어놓고
그 다음에 기교를 부려라, 이 말씀이죠.
신심! 신심을 심어놓고 기교를 부려야지
신심도 없는 사람이 지식만 불교의 지식이 상당히 많다 해가지고
그거 해결되겠냐 하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쏘면 쏘는 대로 백발백중이 아니라
백발 오발이다 이거야.
뭐라 해야 되노...모르겠다.
쏘는 족족 그저 헛방이다.
몰라... 그쪽에 부처님처럼 해가지고
뭐 이렇게 미사일처럼 해가지고
아무데나 그냥 공중에서 쏴도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단단히 두 발을 먼저 고정시켜라.
그리고 호흡을 멈춰라.
욕망을 다 그치고 정확하게 눈을 밝게 뜨고 시위를 당겨라.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어요.
비유는 다 틀리는 겁니다.
비유는 다 틀리는데 마지 못해서 비유로 말씀드리죠.
(8) 正法勤修
菩薩이 如是觀察了知已하고 倍於正法에 勤求修習하야 日夜에 唯願聞法하며 喜法하며 樂法하며 依法하며 隨法하며 解法하며 順法하며 到法하며 住法하며 行法이니라 菩薩이 如是勤求佛法호대 所有珍財를 皆無悋惜하야 不見有物이 難得可重이요 但於能說佛法之人에 生難遭想하나니 是故로 菩薩이 於內外財에 爲求佛法하야 悉能捨施호대 無有恭敬을 而不能行하며 無有憍慢을 而不能捨하며 無有承事를 而不能作하며 無有勤苦를 而不能受니라
(8) 정법(正法)을 부지런히 수행하다
"보살이 이렇게 관찰하여 알고는 , 바른 법을 곱이나 부지런히 닦으며, 밤낮으로 원하기를 '법을 듣고 법을 기뻐하고 법을 좋아하고 법을 의지하고 법을 따르고 법을 해설하고 법을 순종하고 법에 이르고 법에 머물고 법을 행하여지이다' 하느니라.
보살이 이렇게 불법(佛法)을 구하면서 가진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고, 어떤 물건도 희귀하고 소중한 줄로 보지 아니하며, 다만 불법을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나니, 그러므로 안 재물과 바깥 재물을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모두 버리며, 아무런 공경도 행하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런 교만도 버리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런 섬기는 일도 행하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런 고생도 받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8) 正法勤修
(8) 정법(正法)을 부지런히 수행하다.
보살이 이렇게 관찰하여 알고는, 菩薩이 如是觀察了知已하고는,
그 위에 한 대목 안 했나...?
선정의 공교롭고 결정하게 관찰하는 지혜[禪善巧決定察智]는 공교롭게 많이 앎을 여의지 않았도다 하니라.
그러니까 뭘 지금 우리도 지금 하는 일이 뭡니까?
한 번 들어서 대충 알 것 같으면
이렇게 반복해서 책장을 넘기면서
지식적으로 다가가지 않아도 될 것인데
계~속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실천을 완벽하게 쌓아올리려고 하는 것인데
단지 듣기만 해가지고는 되지는 않지요.
그래도 뭐 이런 걸 듣는다는 것도 복은 복이지. 일단은
언제든지 씨앗을 간직하고 있으니까
때를 만나면 그 씨앗이 발아하게 되겠지요.
언젠가인가 문제지.
그냥 창고에만 저장해서 놓을 것인지
밭에 갖다가 뿌릴 것인지
그거는 각자의 몫이다.
게으른 사람은 석삼 년 묵혀가지고 낼 것이고...ㅎㅎㅎ
菩薩이 如是觀察了知已하고 倍於正法에 勤求修習하야 日夜에 唯
보살 여시관찰료지이 배어정법 근구수습 일야 유
願聞法하며 喜法하며 樂法하며 依法하며
원문법 희법 요법 의법
樂요자로 써버리세요.
좋아할 樂요자, 즐길 樂락자, 음악할 樂악자,
한 글자가 세 가지로 쓰여지죠.
隨法하며 解法하며 順法하며 到法하며 住法하며 行法이니라
수법 해법 순법 도법 주법 행법
이거 열 가지 대목으로 이제 법을 이렇게 죽~ 써놨는데
더 할 말은 많겠지만
꼭 열 개씩 이래 하는 거 볼 때마다
야!~ 얼굴도 모르는 이가 그 누가 이렇게 자비롭게 해놨는가!
보현심 보살님!
누가 이렇게 해가지고
喜法하고 樂法하고 依法하고 隨法하고 解法하고 順法하고 到法하고 住法하고 行法하고,
이렇게 해놨어요? 네?
제가 볼 때는 이거 보현심 보살이 해놓은 것인데...
자~꾸 내 꺼구나...
이렇게 생각하셔야 돼요.
내 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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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선화님, 주간반 강의 녹취록까지 올려 주셨네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저 같은 사람은 수없이 또 읽어 봐야 겨우 줄거리를 파악한답니다
오늘 강의 앞 부분에서, 십지품의 처음부터 그간 강의를 요약하여
전체 줄거리를 복습해 주시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자세히 또 살펴 주시는 따뜻한 마음에 뭐라 감사해야 할 지...
지선화님 거듭 고맙습니다
꽃피는 봄날, 계절만큼이나 나날이 화사한 날 되십시요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正直....
오직 마음의 근원 자리에 대해서 수행을 해야~~
고맙습니다..지선화 님!! ^^*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머물게 하려면
무장애해탈지혜를
여의지않아야 하고
일체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을
여의지 않아야 하고
만들어짐도 생멸도 없는 행의 지혜를
여의지 않아야 하고
선정의 공교롭고 결정하게 관찰하는 지혜를
여의지 않아야 하고
선교다문을
여의지 않아야 된다
_()()()_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