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아름다운 단어다. 무대를 향해 걸어오는 두 사람, 언뜻 보기엔 청년으로 보인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검은 캡모자를 쓴 사람은 김민섭 작가, 캐주얼한 버니를 쓴 사람은 장강명 작가다. 40대 중반이라는 장강명 작가는 세월이 비켜간 모양이다. 아니면 모자 덕분에 동안으로 보이는 건가. 오늘은 부산 동아대에서 “문학하는 하루”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제목은 “귀기울이는 하루, 장강명 작가×독자 지금 내 이야기”이다. 무대에 올라온 두 사람이 동그란 테이블을 앞에 두고 앉았다.
작년 북구 책잔치 때 장강명 작가가 왔었다. 북구의 책이 《노오력의 배신》이어서, 장강명 작가를 초대한다기에 잘됐다고 여겼다.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나는 밀양에 있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아쉬웠는데 그 사이 시간이 좀 흘렀다고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진행이 김민섭 작가란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그 책의 내용은 사실 좀 충격이었다. 뉴스에 종종 갑질하는 교수들이 나오면 ‘도대체 저 학교는 어떻게 교수를 뽑는 거야?’ 하고 학교를 탓했고 ‘왜 그걸 그냥 당하고만 있어?’하고 학생을 탓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학의 시스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어렴풋하게 교수들이 갑의 자리에 있다고만 여겼다. 대학을 다닐 때 선배들이 조교를 했지만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방시’를 읽으니 대학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 김민섭 작가가 진행이라니 와보고 싶었다. 둘 다 청년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으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김민섭 작가가 장강명 작가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며 공모전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그리고 질문을 했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지요. 그 책에서 이 시대의 젊은이를 표백세대라고 지칭했는데 아직도 유효한 것 같습니까?”
“그 책에서 표백세대라고 표현한 것은 다양한 색깔이 아니라 하얀, 한 지점을 향해 모두가 달려가는 것을 말한 건데요. 그런 면에서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대라고 하면 그 나이 때, 아니면 그 시대별로 공통점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엄밀히 말하면 세대라고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 같습니다.”라고 낮게 내뱉는 그의 말버릇은 특이하면서도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표백》을 읽지 않은 나는 아프리카에 산다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양 스프링벅을 떠올렸다. 처음엔 풀을 먹기 위해 무리지어 달리는데 어느 순간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린단다. 앞의 양을 따라 무작정 달리기만 하다가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책에서 읽었다. 스프링벅을 떠올린 것은 주인공들이 모두 자살하는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인 줄도 모르겠다.
장강명 작가에 이어 김민섭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저는 이 시대를 부유시대라고 생각하는데요. ‘부자되세요’할 때의 그 ‘부유’면 좋겠으나 공중에 붕 떠있는 ‘부유’입니다. 제가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도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었어요.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은 채 붕 떠있다는 느낌.”
어디엔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깊게 뿌리 내린 나무는 튼실하게 자랄 수 있다. 반대로 옆으로만 뻗어나가고 아래로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는 어떨까. 폭풍이 몰아치면 지탱할 수 있을까? 사람은 단순하게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싶으면서도 여기저기 다리만 걸치고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도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김민섭 작가가 계속 말을 했다.
“그리고 저는 이 사회를 ‘대리사회’라고 봅니다. 제 친구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요. 대부분 아이들은 친구의 부모님들이 키워주십니다.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 집에 아이를 맡겨놓고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보러 가기도 합니다. 부모의 역할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리해줘야 삶이 영위되는 사회, 삶을 살기 위해 온 가족이 동원되어야 하는 시대, 대리의 대리 역할도 해야 하는 시대인 거죠.”
김민섭 작가는 현대소설 연구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하나 문학도보다는 사회학도 같았다. 학문을 하는 사람 특유의 진지함이 느껴졌다.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장강명 작가의 작품으로 질문의 흐름이 바뀌었다.
“《댓글부대》를 썼는데 국정원이 그러는지 미리 알고 있었나요,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되었나요?”
“저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경찰도 아니라고 발표했고. 그런데 나중에 검찰 발표 때 맞다고 하는 겁니다. 그걸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글 쓸 때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댓글부대》 쓴다고 하니 쓰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걸 누가 읽겠느냐고. 공모상에 낼 생각이라 하니 그걸 누가 뽑아주겠냐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다른 작품도 구상 중이었는데, 그게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었습니다. 아내 말을 들었다면 《댓글부대》 안 쓰고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썼겠지요. 하지만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쓰겠다고 하고 썼습니다. 그런데 공모상도 받고 독자들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언론에서 ‘댓글부대’ 이야기가 나와서 그 영향도 좀 있었겠지만 그게 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강의가 끝나고 관객 중 한 분이 질문을 했다. 글쓰는 사람인가 본데 공모전에 글을 내니 너무 ‘날 것’이라고 했단다. ‘날 것 그대로’가 아닌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 질문에 대해 장강명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등단하는 방법이 공모전 수상, 신춘문예 당선, 이런 형태만 있는 게 아쉽습니다. 저도 한겨레문학상 받아서 등단했으니 그 수혜자이고 가끔 심사하러 가기도 합니다. 공모전이나 신춘문예를 거치지 않아도 작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심사위원이 그렇게 평했다고 해서 거기에 맞춰 쓸 필요도 없고 그렇게 쓸 수도 없습니다. 글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문체는 그 사람을 닮습니다. 심사위원들 평에 맞춰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이 안 됩니다. 수상작은 심사위원들이 두루 좋다고 하는 2등이 되지는 않습니다. 좀 모자라도 뭔가 강하게 와 닿는 작품, 심사위원 각자가 꽂혔던 작품, 한 가지씩을 가지고 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그런 작품이 뽑힐 확률이 높습니다. 글은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합니다. 독자와의 만남을 하다 보면 글쓰는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들에게 제가 써주는 말이 있습니다. “써야 할 사람은 써야 한다”고. 지금 당장 인정받지 못해도 나중에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도 처음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공모전에서 입선하지 못하고 낙선전에 걸렸던 그림입니다.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고 그림도 아니라고 하고 심지어 찢으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입니다. “폭풍의 언덕”도 그렇습니다. 에일리 부론테도 살아 있을 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폭풍의 언덕”은 나중에 서머셋 모음에 의해 발굴된 책입니다. 그 책 역시 지금은 고전으로 사랑받습니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고 했다. 생명줄이 달려있는 한 쓰는 사람, 죽을 때까지 쓰는 사람. 등단여부와 상관없이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글쓰기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글에 매달려 본 적이 없다. 사실 일기도 거의 쓰지 않는다. 기록으로 글쓰기를 하든, 남과 공유하고 싶어 글쓰기를 하든,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욕구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 자기 방식대로 쓰기. 힘이 되는 말이다.
질문은 어느덧 《우리의 소원은 전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 북한을 디스토피아로 그렸어요. 그렇게 그린 이유가 있나요?”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디스토피아일 것 같지 않습니까? 남북이 통일 되면 상당히 혼란스러울 겁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했을 때도 한 동안 그랬습니다. 우리는 훨씬 더 할 겁니다.”
어느 방송에서 장강명 작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통일이 아니라 위기관리라고 했다. 대부분의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여러 문제에 부딪힐 거다. 돈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흘러들 거고 사람이 모인 곳에는 여러 문제가 생길 거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통일대박’을 외치고 다녔을까. 통일이 될 리도 없지만 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통일대박’을 외치는 건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다.
어느덧 이야기는 중반을 넘었다. 문학의 역할에 대해 장강명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고 댓글을 올립니다. 만약에 ‘롤리타’에 나오는 험프트 험프트 같은 사람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고 상상해 보십시다. 살인자, 소아성애자인 이 남자를 향해 인간도 아니라는 욕이 쭉 댓글로 달릴 겁니다. 하지만 ‘롤리타’를 읽으면 이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소아성애자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
사실 강자인 험프트 험프트 같은 사람을 대변하는 문학이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문학이 한 사람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을 읽는 건지도 모른다. 감수성을 키우는 것, 상상력을 키우는 것, 문학은 자신이 옳다고 우기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김민섭 작가의 말처럼 문학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두 작가는 북 콘서트를 끝내며 부탁을 했다. 책을 읽고 난 후 검색 되는 사이트, sns에 한 줄이라도 좋으니 글을 올려 달라고. 누군가 내 책을 읽었다는 것이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고. 독서생태계를 살리는 길이라고.
성향상 나는 장강명 작가보다는 김민섭 작가 같은 류다. 그래서인지 장강명 작가의 유쾌함이 좋았다. 진지한 이야기도 너무 진지하게 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하는 그 유쾌함.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강연이라는 느낌보다는 두 작가의 대담 같았다. 동일한 내용에 대해 색깔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풍성했다. 장강명 작가는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있다고 했고 김민섭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 벌써 구상이 끝난 듯 보였다.사전에서 청년이라는 단어는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두 작가는 청년이다.
강의가 끝나 작성한 설문지를 내고 포천쿠키를 받았다. 쿠키를 깨무니 안에서 조그만 종이가 나왔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문구다. 세상을 뜰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갑자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떠올랐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진 지 오래되었는지 깜깜했다.